리처드 매시슨 -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6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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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멋진 단편집입니다. 공포는 길고 긴 이야기에서도 절실히 느껴질 수 있지만, 대개는 짧고 강렬한 사연 속에서 우리 독자들을 사로잡게 마련입니다. 리처드 매시슨은 20세기 후반을 완전히 지배한 B급 장르를 예전부터 태동한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아득한 시기의 고전 작가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 타계한 지 얼마 안 된 분입니다. 그래도 그의 작품은 마치 오 헨리의 그것처럼 정교하고 고아한 정격성을 풍깁니다.

"리처드 매시슨이 누구야?" 이렇게 묻는 분들도 있겠지만,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 원작자라고 하면 누구나 무릎을 칠 것입니다. 그 작품 원작(장편)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는데 독자에 따라 지루하다고 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호러 문학은 누구에게나 진입 장벽이 낮고 보편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특히나 공포에 고유한 색깔을 꼭 입히는 취미를 가진 매시슨 같은 작가의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여튼, 장편 <나는 전설이다>에서 약간의 지루함을 느낀 독자라면, 리처드 매시슨의 입문용으로 반드시 이 단편집을 먼저 맛볼 것을 권합니다.

매시슨은 어렸을 때 영화 <드라큘라>에 지대한 영향을 입고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트란실바니아의 고성에 홀로 거주하는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는 "일상", 특히 현대 독자의 일상하고는 거리가 매우 멀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브램 스토커의 그 고전 역시 본격적인 공포를 풍기는 건 백작이 아주 일상적인 모습으로 런던 거리를 활보하고부터입니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정상적인 가운데, 유독 몇 가지 요소가 질서와 노곤함에서 벗어나 사람을 놀라게 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공포가 시작됩니다.

반대로 거의 모든 게 상궤에서 벗어난 작위적인 환경에서라면 (결국 사람이 미칠 수야 있어도) 진짜 공포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테마파크 안에서, 혹은 한여름 애인과 함께 영화관에서 꺅 소리를 지르며 지레 공포에 질린 양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입니다. 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게 사람을 놀라게 하네? 이런 반응은 크기에만 차이가 있다뿐 대부분의 우리들이 매일같이 겪던 것입니다. 이런 걸 문학의 경지에까지 이끌어낸 게 매시슨의 천재젹 역량이겠고 말입니다.

예전 KBS에서 방영하던 미국 드라마 <환상 특급>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개별 에피소드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비슷한 테마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역시 놀라웠던 체험이었지요. 이 단편집은 역시 그것과 매우 비슷한 구성입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아직 어리거나 나이에 비해 미숙합니다. 그런 영혼에게 환경은 정말 어느날 갑자기 섬뜩한 배신을 가하며, 뭔가 살짝살짝 미심쩍다고 여긴 나날의 교란과 동요는 그예 주인공에게 "진실의 순간"을 쓰나미처럼 안깁니다.

어떤 에피소드는 초현실적 요소가 거의 없는데도 독자들은 등골에 소름이 돋습니다. 이처럼 공포란, 진짜 공포란 우리의 일상에 스며 있는 것들입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어?" 괴물이라든가 딴세상의 체험 같은 건 애초에 우리에게 닥칠 일이 없기에 일상은 그만큼이나 무서운 겁니다. 때로는 일탈 없는 일상이 더 무섭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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