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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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서 일어선 국가의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흔히 미국을 일러 "축복 받은 땅"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한국의 어떤 시인은 "그X들 하는 짓을 보면 당장 망할 것 같은데 그 땅을 보면 천년 만년 이어질 것 같다!"고 탄식한 적 있습니다. 사실 "축복 받은 땅"은 맨입에 그들 백인에 주어진 게 아닙니다. 원주민들이 있었으나 대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했고, 사람이 살 만한 "인프라"가 깔리기까지는 엄청난 세월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미국인들은 그들의 성과와 터전에 자부심을 느낄 만하며, 그 과정에는 "비결"이 있을 만도 합니다. 물론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없을 수 없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따져야 하겠죠.

미국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각종의 혁신을 일구었기에(전기 최초의 상용화 등) 영국을 위협하며 제조업 대국으로 세계에 우뚝 선 바 있습니다. 그러나 건국 초기, 적어도 독립 초기에는 이 책 1장에 나온 대로 "상업 공화국"이었으며, 이 때문에 대서양 해안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협소한 무역 지대가 그 중추였습니다. 물론 더 남쪽의 버지니아, 더 남서쪽으로 들어가면 조지아, 앨라바마 등의 면화 농업 지대가 자리했습니다만 이곳 농업 주(state)들은 예의 동부 상업 지대와 구조적으로 유리되었다는 게 문제였죠. 이들 주는 오히려 바다 건너 영국과 경제적으로 더 밀착되었습니다.

또한 영국이나 프랑스(특히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짐은 곧 국가다"란 말이 잘 드러내듯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였죠)와 달리, 미국은 처음부터 13개 주의 연방제였습니다. 그러니 국가 중요사 결정에 있어 통일되고 신속된 모습을 보이기 힘들었습니다. 2장에서 "제퍼슨 대 해밀턴"이라 함은 이를 나타냅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조지 워싱턴을 도와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정치적 분쟁, 혹은 개인적인 다툼 때문에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국가를 하나로 묶는 건 "자본주의"였습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속성은 이익과 경쟁에 따라 국민을 사분오열시키기에나 딱 알맞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만은 예외였습니다.

만약 남부가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아마 미국은 하나의 국가로서 그토록 신속한 발전을 이어나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연방제는 느슨한 주들의 연합에서 강력한 중앙 정부의 등장으로 그 성격이 변화했습니다. 동시에, 전 국가를 하나의 법률 하나의 체제로 묶게 됨으로써 서부 "개척자"들이 안심하고 현지에서 이익 추구 활동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혹여, 성격이 완전히 다른 남부 체제가 국토의 중앙에 계속 자리했더라면 이런 동력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주식회사는 본디 독일에서 맹아가 싹텄고, 심지어 지금도 가장 완비된 형태의 주식회사 규율법은 독일에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건 역시 미국이죠. 지금 한국에서 이른바 "동학 개미 운동"이라고 해서 소액 투자자들 중심으로 우량주를 사 모으는 흐름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이에서도 알 수 있듯, 본래 소액 주주란 기업의 투자, 경영에 참여하기가 힘들고, 만약 주식회사 제도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불가능했을 겁니다. 주식회사 제도가 여전히 민주화할 여지가 많다고들 하지만, 그나마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스며든 곳이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입니다. 주식회사와 가장 가깝다는 유한회사를 보십시오. 지분을 갖기도 힘들고 투명한 경영을 감시하기도 어렵습니다. 자본주의란 그저 돈 가진 이가 "위너 테익스 잇 올"하는 제도일 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 혹은 진화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이, 바로 독과점 제도의 규제입니다. 엊그제 배달의 민족 수수료 인상 과정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개입"을 시사했죠. 이런저런 말이 많았으나 이 일이 터지기 훨씬 전 저는 개인적으로 "배달 앱의 순기능은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이 흡수해야 하지 않나"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튼,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는 독과점이 생기건 말건 정부가 끼어들면 안 됩니다. 강자가 독식을 하든 말든 그건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를 뿐이니 말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가 멸망으로 치닫는다고 했죠! 그런데 마르크스의 예언과 아마 무관하게, 시스템을 관리하는 이들이 "이대로 가다간 망한다"고 판단하여 이런 독과점을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두고 공산주의식이라는 비판은 거의 없었던 게, 독과점의 가장 큰 피해는
소규모 기업들과 일반 소비자(노동계층과 직접 관계 없는)이 겪게 바련이니까요. "독과점'이란 비판보다는, "경쟁의 저해"가 규제의 명분이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 중 하나가 바로 "경쟁"이니 말입니다.

"본업"이란 영단어는 아마 business일 겁니다. 남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 라는 표현이 mind your own business이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사업은, 이 역시 business입니다. 따라서 "아메리칸 비즈니스 이즈 비즈니스"라고 하면, 뭔가 동어 반복 같아도 알고 보면 심오한 의미가 깃든 셈이고 약간 웃기기도 합니다. 과연 아메리카는 딴 거 신경 안 쓰고 비즈니스에만 몰두했기에 오늘날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미국이, 저자 그린스펀 등이 역설하듯 왜 성장의 동력을 잃었을까요?

그 답은 갈릴 수 있습니다. 부유층의 탐욕이 극에 달해 사회가 정의를 잃어서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누군가가 중뿔나게 나서서 "부유층이 탐욕스럽다"니 뭐니 간섭하며 자본주의 특유의 장점을 퇴색시켜서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격도 없이) 호루라기만 빽빽 불어대면 어디 경기가 재미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강자의 반칙과 폭주를 마냥 방치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입니다. 20세기 록펠러(라키펠러)의 독과점을 그대로 놔뒀다면 아마 미국은 그때 망했을 겁니다. 허나 인간의 지혜는 언제나 위기에서 해법을 찾았기에, 아마 그들의 미래는 마냥 침체에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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