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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환 시대의 한국 외교 -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와 우리의 미래
이백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미국과 중국의 양대 강국이 패권을 다투는 G2 시대의 개막에 대해서는 여러 저자들이 일찍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망에 대해서는 각론이 엇갈립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포(이른바 조선족)들은 "얼마 안 있어 중국이 패권국이 될 것이며 한국은 속국이 될 것"이라고 대담하게 의견들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전망이 현실이 되기에는 아직 많은 걸림돌이 남은 것도 같습니다. 이번에 전염병의 창궐 과정에서도 중국은 미숙한 모습을 많이 드러냈는데, 무슨 초강대국이 저렇나 싶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도 사람이 많이 죽었으나 그건 경우가 다르고, 원인 제공은 누가 뭐래도 중국입니다. 여튼 패권이다 강대국이다는 우리 입맛에 맞춰 등장하는 게 아니므로, 만약 중국이 정말로(ㅋ) 패권국이 된다면 우리는 그에 걸맞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중국어 열심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당성을 위한 힘, 힘을 위한 정당성" 사실 정의다, 국제법이다, 이거만큼 허망한 구호가 또 없습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정의가 지구 구석구석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에서 살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지만, 적어도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힘이 곧 정의요 정의는 그저 힘의 다른 포장일 뿐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어떤 절대 불변의 정의라는 게 있어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지배했을 겁니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한때의 강대국은 반드시 그 힘을 잃고 다른 나라에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대국굴기> 같은 컨텐츠에서는 머지 않은 장래에 중국이 패권을 잡는다고 당당히 예언했던 겁니다. 문제는, 누군가가 앞으로 미국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중국이 되라는 법이 있냐는 것, 또 미국이 언젠가는 패권을 잃겠지만 그게 대체 언제냐는 것입니다. 만약, 아직 여전히 강성한 미국더러 "너 인제 아무것도 아냐!"라며 횡포를 부렸다간,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은 고사하고 오히려 경칩 날짜를 착각한 개구리처럼 엄동설한에 얼어 죽기나 좋습니다.
왜 국제 질서는 흔들리는가? 앞에서 저자가 말한 대로, 결국은 역학 관계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러시아 같은 나라는 "원유 거래 달러 결제"의 원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거래를 행합니다. 이란도 미국과 불구대천 원수이니만큼 마음이야 달러 무시가 아니라 달러 소각도 주저치 않겠지만, 아직은 미국의 힘이 여전히 강하기에 그리 하지를 못합니다. 사우디는 뭐 마냥 미국의 졸개 노릇이 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힘에 굴복해서 미국의 뜻에 따르는 겁니다. 어제 뉴스에 러시아, 사우디가 서로 싸우며 미국의 비위를 맞췄다고 하는데 이게 현실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들 두 나라가 서로 손을 잡고 미국 중심의 질서를 한번 흔들어 보려 했었습니다. 지금은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마냥 장래가 밝은 건 아닙니다. 미국은 철저하게 개인 중심으로 자기 생존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실한 면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의료 제도지요. 반면 한국은 웬만큼 걷다 보면 무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 있을 만큼 적어도 이런 분야에서는 국민이 살기 꽤 편합니다.
세상은 참 묘한 곳입니다. 1990년대 한국의 어느 대통령은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했으면서 "세계화"를 부르짖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대통령의 모 측근이 장관 세 개를 하는 게 "세개화"라며 그 대통령 특유의 발음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여튼 그 시절에는 세계 경제가 미국 중심으로 분업 체계를 완성하면서, 각국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만 생산하면 그만인 이상향을 꿈꿨습니다. 이는 사실 자본주의 태동 초기의 리카도 같은 자유무역주의자가 이미 꿈꾼 세상이며, 학자들은 아마도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지만)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경계하기도 했지만 완전한 자유 무역이 이뤄지면 결국 증대되는 게 소비자의 후생입니다. 그런데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확고히 세워졌다고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도 그 믿음이 급격히 붕괴했습니다.
짝퉁을 팔건 뭘 하건 시장 질서에 끼워 주기나 해야 그걸로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WTO에 사정사정하여 가입했으며, 이걸로 서유럽과 미국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여 한때 잘 살았습니다. 그 전에는 시도때도 없이 닥치는 불황과 공황 때문에 국민의 원성이 꽤 높았는데 WTO 체제 이후로는 십 년 넘게 그런 일이 없었죠. 그러다가 08년에 큰 일이 터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기술 탈취, 저작권 위반 등 반칙을 일삼고 군비 확충도 도모했습니다. 작은 이익을 얻으려다 미국 등 기존 질서의 지배자들은 더 큰 것을 잃기 직전까지 몰린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일어 "혼돈 엔트로피 증가"로 규정합니다. 엔트로피 자체가 혼돈의 밀도를 본질로 삼으니 동어 반복 같기는 합니다만 여튼 무슨 뜻인지는 우리 독자들이 바로 알아듣습니다. 오히려 지난 냉전 미국 소련 대립 시기가 긴장은 높았지만 혼란의 정도는 더 낮았습니다. 미국과 소련 두 맹주가 세계의 절반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는 했고, 소련 미국 양국은 서로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나 미국이나 경제적으로 너무 의존하다 보니, 싸우고 싶어도 경제가 무너질까 싶어 싸울 수가 없습니다. 이게 바로 혼돈 엔트로피의 증가입니다.
"어려울 때는 원칙으로 가라" 사실 이게 정답이죠. 이럴수록 국가의 책임 있고 양식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절제하고 양보하고 지혜를 짜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마다 이른바 스트롱맨이라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었기에, 그런 기대도 그 어느 때보다 갖기 힘들다는 게 또하나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