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이정하 시인의 이름을 혹시 모르더라도 저 유명한 구절은 귀에 익을 듯도 합니다. 사랑에 빠져 본 이라면 (경우가 전부 다를 텐데도) 무한 공감하게 만드는 시구이죠. 아니 정말, 너는 눈부시고 나는 눈물겨운 게 맞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실까요.

이정하 시인의 책이 간만에 나온 거 같은데 책장 넘기면서 내내 좋았습니다. 사진도 많이 실렸고 텍스트와 어울리는 듯 한참을 두고 보게 되었습니다. "기분 좋다!"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말입니다.

얼마 전 "OO 못 잃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뭐 좀 그렇기도 합니다만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은 건 어떻게 보면 우리 존재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결국 육신을 놓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때 잃는 게 육신일 뿐 우리 전체가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죠. 그런데 시인은 "못 잃어하지 말고 놓아주라"고 합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그게 나 자신이라고 해도)에 가두어 두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잃는 건" 더 이상 잃는 게 아니라 그(녀)를 내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긴 많은 치정 사건, 스토킹, 데이트 폭력 같은 게 다 자기만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아주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인공 오혜성처럼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누굴 지켜 주려 했던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사랑은 또 어떨까요? 전 어렸을 때 그 만화를 읽으면서 좀 무섭기도 했는데 이 역시 문제는 있습니다.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우울했어." 이건 꼭 연인이 아니라 친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어렸을 때의 애틋한 친구 말이죠. 그런데 그런 친구는 내일 또 만난다는 보장이 있지만, 시인이 여기서 염두에 두는 연인은 뭔가 내 그릇에는 과분한 그런 상대인 거 같습니다. 아 왜 난 널 좋아해갖구 말이야, 언젠가는 (결국) 부족한 내가 널 놓아줘야 할 거 같은 불안감, 미안함에 시달리게 하느냔 말이지, 뭐 이런 느낌요.

내가 부족해서 미안한 건 이게 본래 그런 걸까요, 아님 특정한 커플에만 해당하는 걸까요. 하긴 현재가 그저 흐뭇한 커플이라면 이런 고민 자체를 안 하겠으니 당연 보편적인 사정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 난 너한테 부족해." 이런 느낌을 가져 본 사람이라야 진짜 연애를 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항상 나아!를 뽐내는 사람이라면 원하는 이성과 문제 없이 여태 연애를 해 봤겠지만, 애틋한 저런 마음을 품어 본 적 없으므로 그런 사랑은 결국 다 속이 빈 것입니다. 하하.

밤 열차를 타 보신 적 있습니까? 전 많은데 그러나 시인처럼 사랑 때문에 "아마도 늦게 헤어져서" 그래 본 적은 없는 듯합니다. 더 나눌 정을 못 나누고 홀로 쓸쓸한 풍경을 보며 몸을 싣는 열차란 확실히 느낌이 다를 것 같습니다.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우울했어." 가 또 떠오르겠지만, 이런 추억은 나이 훨씬 들고 나서 그때를 회상할 때 참 달콤쌉싸름할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언제나 성공적인 연애(헌팅?)만 한 사람한테는 간직될 수 없는, 아픈 사랑의 당사자만 누릴 수 있는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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