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쇼크 - 인류 재앙의 실체, 알아야 살아남는다, 최신증보판
최강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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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체가 바이러스 하나(변종도 많다고 하지만)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 TV 뉴스에서도 서점에 부쩍 바이러스 관련 책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는 소식이 나왔는데, 지금 이 책도 화면과 멘트에서 다뤄진 책들 중 하나입니다. 책이란 게 집필되고 제작, 배포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종의 레거시 미디어라서 과연 나의 관심사가 다뤄지기는 할까 같은 의구심이 있었는데, "쓸데없는 걱정 하덜 말어!"라고나 일갈하듯 벌써 p76에 "2019년 12월에 출현한 우한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혹 아니라고 해도 배경 지식은 필요할 텐데, 책이 대뜸 시사성, 시의성까지 증명한 셈이라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갔습니다.

이미 한국은 2014년에 메르스라는 특이한 병원체 때문에 나라가 큰 홍역을 앓은 적 있습니다. 메르스는 물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에볼라 따위와는 달리 한국에서도 유독 감염자가 발생했고 몇몇 분이 격리조치되는 등 그전에는 없던 사태가 벌어졌기에 국민적 관심을 뜻하지 않게 모았죠.

역시 책 p76에는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는 경로에는 여럿이 있다. 그것은 푸시&풀이다." 여기서 저자는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숙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최소한 한 개체 이상을 감염시킬 여건이 되어야만 한다고 알려 줍니다. 상식에 가까운 말입니다만 바이러스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신종"이 새로 고고의 성을 울리기 위해 숙주나 감염체의 조건이 언제나 녹록한건 아니겠죠. 인류 역시 그들에게 해가 되는 여러 치명적 바이러스를 격퇴하기 위해 나름 분투해 왔으니 바이러스 입장, 특히 신종 입장에서 마냥 우호적인 조건은 아닐 테니 말입니다.

여튼, 자연숙주에서 다른 종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스필오버"라 부릅니다. 스필오버는 미생물학 외에도 다른 분야에서 갖가지 뜻을 지니는 단어인데 여튼 이 불길한 스필오버가 지금 전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셈이죠. 어제쯤 한국에서 "확진자 인간을 통해 반려견에 전염된 사례가 최초 보고"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아직 확인이 필요합니다), 혹 그 반대, 즉 동물에게서 거꾸로 사람에게 옮겨지는 사례까지 확인된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 지는 겁니다. 이처럼 일단 바이러스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어떤 종과 종을 건너뛰는 자체가 보통 힘든 과업(?)이 아니죠.

지금 겪는 난리가 어제오늘 시작된 게 아니라며 일단 위안을 구하고 다음으로 선조들의 지혜를 참조하는 노력 역시 인간의 본성입니다. p118이하에서는 여태 인류를 엄습해 온 전염병과 그 바이러스, 혹은 세균들의 역사에 대해 다룹니다. 근대까지만 해도 세균의 존재, 즉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떤 녀석들이 바글거리며 병을 옮긴다는 가설 자체를 황당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선입견을 극복하고 백신 등 예방법을 최초 개발한 과학자들이야말로 인류의 구원자에 가깝죠.

일단 병의 만연이라는 건 위생 조건의 불비에서 비롯합니다. 2003년 사스가 중국을 강타했을 때 유독 한국에서만 환자가 없는 걸 두고 김치의 면역력 증가니 뭐니 별 말들이 많았습니다만 그때 많은 이들은 중국에 비해 월등히 나은 한국의 위생 상태를 지적했습니다. 헌데 2014년 메르스 사태, 2019년 우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그런 정도로 설명이 안 되는 게 있음을 깨닫게는 됩니다. 저자 최강석 박사님은 p134에서 수 년 전 동남아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담을 들려 줍니다. 파리가 들끓는 식당에서 제대로 씻지도 않은 접시에 음식을 내 주는 주인... 그런데 아무리 미개(?)하다 해도 그처럼 더럽게 해서 먹다 탈이 나면 사람인 이상 주의를 하게 됩니다. 안 그런다는 건 몇 차례 겪고 면역이 생겼다는 뜻이겠죠. 박사님 같은 경우 그 과정이 없었기에 바로 설사병에 걸렸던 거고요.

대상포진 역시 한국에서 한때 큰 문제가 되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이들을 괴롭히는 병입니다. 이 병은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데 어느새 사람을 죽음에까지 몰고가는 게 황당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저자는 이런 병의 원인으로 스트레스와 함께, (책의 주제에 맞도록) 대상포진 바이러스를 지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분명 특정 바이러스가 서식하고 번식하기 좋은 숙주, 감염체의 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p206이하부터는 대체 어떤 조건에서 바이러스가 한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지,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일 이 난관을 해결하는 기제를 설명합니다. "새로운 숙주에 서식하기 위해, 바이러스는 그 새로운 현관문의 자물쇠를 열기 위해 입자 표면 단백질에 있는 열쇠 구조를 변형시킬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메르스의 경우 구체적으로는 "S단백질의 746번째 세린, 762번째 아스파라긴이 핵심이며, 이 아미노산이 각각 아르기닌과 알라닌으로 바뀔 때 사람 감염 가능 바이러스로 돌변할 수 있다"고 합니다(p207). 이런 기제가 아마 바이러스 일반에 대해서도 비슷한 과정으로 유추될 수 있겠죠.

이번 바이러스는 대체로 우한이 그 시발점으로 여겨지지만 많은 학자들은 중국 광둥성을 예전부터 주목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p246). 비위생적인 환경, 유독 다양한 가축들이 별다른 방역 관심 없이 자라는 풍조 등이 그런 좋은 "숙주"를 만듭니다. 한국에서도 조류 독감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농가의 큰 근심거리를 만드는데 이런 가금류가 바로 신종 바이러스의 좋은 모태가 되곤 한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습니다.

이 글 앞부분에서 뉴스 언급을 잠시 했습니다만 우리가 이런 유익한 책을 찾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차피 몸이 아프거나 하면 우리가 스스로 병을 낫울 수도 없고, 자가 치료를 할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병은 그저 전문가에게 맡기면 그만 아닐까요?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전염병에 관해 일반 대중의 지식이 늘면 그만큼 경각심이 생기고,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의 확산이 그만큼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겁니다. 책에는 바이러스 관련 전시회의 예를 들며, 바이러스가 스스로 자신을 증식시켜 나가는 과정을 마치 퍼즐 풀듯 이해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잠시 묘사됩니다. 이런 고민을 해 본 어린이들이 커서 더 유능한 전문가가 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인이 코딩 능력을 키워 모두가 4차 산업혁명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시대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지식이 널리 퍼져 바이러스에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지혜까지 퍼져 나간다면 이런 재난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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