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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가합니다 - 분주한 일상에 충만한 기쁨
아카네 아키코 지음, 김윤희 옮김 / 미호 / 2020년 1월
평점 :
학교 다닐 때 어떤 친구가 저와 함께 요가하러 같이 다니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다른 친구가 저더러 "뇌호흡"도 같이 해 보자고도 했는데 그건 좀 찜찜해서 거절했습니다만). 결국 못 나갔지만 여튼 체형이 바로 잡히고 마음의 평온을 얻는 데에 요가는 확실히 효과가 있긴 하겠으며, 적어도 한국에서 많은 "지지자"를 얻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본디 이처럼 육신뿐 아니라 마음을 바로잡는 첩경이 요가이긴 합니다만, 이 책은 본격적으로 "마음 요가"를 가르치고 있더군요.
책은 모두 84개의 이야기 꼭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84라는 숫자에 어떤 뜻이 담겼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그 한 마디 한 마디 제목이 독자의 차분한 공감을 유도합니다. 재목만 잘 읽어도 마음이 절로 정돈되는 듯한 느낌이나, 본문은 그보다 더 명징한 언어들, 마음이 착해지는 언어들로 이뤄집니다. 참 책이 제목 그대로다 싶었고, 읽기만, 아니 눈길을 주기만 해도 기도나 명상이 이뤄지는 것 같았습니다.
"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에 바람이 통하는 일상(p64)" 말은 쉽지만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렵죠. 왜냐면 이미 우리 마음 속에는 못된 욕심 주제 넘은 생각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모든 잡된 개념, 개념 같지도 않은 개념이 썩 사라지게 할까요? 저자는 이를 두고 요가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요가의 요체는 쓸데없는 동작을줄이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데에 있습니다. 개념,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개념은 그보다 더 간단한 다른 개념으로 대체되며(이른바 오캄의 면도날), 어떤 개념은 아예 건설적인 사고에 필요 자체가 없습니다.
불교에는 제법무아, 제행무상이라는 가르침이 있는데 우리가 일상이건 일에서건 집착하는 이른바 "에고"라는 게 실상은 아주 부질없으니 즉시 버리고 더 큰 세계로 자연스럽게 합일하라는 거죠. 특히 서양 문명의 경우 남과 구별되는 내 자신의 개성을 찾고 나의 욕구에 충실하여 이익을 도모하라는 분위기가 주조인데, 이게 다 쓸데없는 집착이라는 겁니다. 내가 내 이기적인 욕구를 안 내세우면 잡된 분쟁도 그치겠지만, 구태여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단 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요. 그것만 해도 어디겠습니까. 책 p82에 이에 대한 자상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p95에는 "새장 속에 갇힌 새"라는 말이 나옵니다. 새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죠. 만약 우리가 중력이라는 새장이 없다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능력의 부족도 결국 새장입니다. 우리가 지적 능력을 어디서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다면 회사에서 칭찬도 받고 승진도 하며 자영업자라면 세상 손님을 모두 모을 수 있겠으나 "새장" 때문에 그게 안 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 세상에 새장 따위는 없다는 겁니다. 그럼 왜 우리는 우리의 뜻을 못 펴는 걸까요? 답은 p95 이하에서 스스로 찾아 보십시오.
p104에는 우주의 바나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주의 바나나가 대체 뭔가요? 저자가 요가 수행을 위해 인도 모처에 머무를 때, 어느 원숭이가 냉큼 저자 손에 든 바나나를 나꿔 채 가고 사람들은 박장 대소를 하더랍니다. 이때 요가 행자가 "저건 선생님의 바나나가 아닙니다. 우주의 바나나입니다." 라고 하더라는 거죠.
우주의 바나나! 성경에는 "흙에서 나와 흙으로 가는..."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흙이 본디 속할 곳인 흙으로 돌아갈 뿐이나 허무할 것도 아니고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내 것을 원숭이녀석에 뺏겼다고 비통해할 것도 없습니다. 내 손도 원숭이 입도 모두 우주의 한 자락이고 우주 그 자체입니다. 부분도 전체도 경계가 없습니다. 생각과 마음이 이에 미치면 무엇이 서럽고 무엇이 아프겠습니까?
사람을 가장 지치게 하는 건 인간관계입니다(p33). 나도 에고 덩어리이며 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 없이 많은 에고와 에고가 맞붇잊고 진창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판에 전쟁이 벌어지고, 누군가 하나는 땅바닥에 맞아 뒹굽니다. 저자는 여기서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옳다는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기서 저자는 "당신이 틀리고, 타인이 옳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무대리"란 만화에선 직장에서 치이고 박살 날 때마다 "그저 내가 못난 탓이거니"로 돌리라고도 했습니다(다분히 반어적, 자조적). 물론 맞습니다. 내가 잘나면 안 터지죠. 그런데 그렇게 자기 부정을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내세우는 게, "나도 옳지만 더 차원을 넓혀 '우리'가 옳다"라고 생각을 고양, 승화시켜 보라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허상을 극복하고 자연스러운 본성에 다다르게 됩니다(p80).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갖가지 집착을 가지며, 요행히 얻은 행운을 두고 나의 참모습이라며 타인에게 강변하게도 됩니다. 이런 게 쌓이다 보면 자신이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과대망상을 갖게 되는데 워낙 경쟁이 치열한 현대이다 보니 망상이나 허세가 거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최대 피해자는 이런 허세를 견뎌 줘야 하는 옆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품을 걷어 내고 자신, 정직한 자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남도 편해지고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안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분량이 짧은 책이지만 마치 요가를 잘 끝낸 날씬한 몸을 보듯, 필요한 가르침만 오롯이 담긴 착하고 지혜로운 책, 아니 스승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