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 침묵으로 리드하는 고수의 대화법
다니하라 마코토 지음, 우다혜 옮김 / 지식너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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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우리나 사람 사는 모습, 사회 구조가 닮은 구석이 많다 보니(닮은 만큼이나 그 차이점도 엄청나긴 하지만) 이슈에 따라 일본 분이 쓴 책에서 해답을 딱 맞게 얻는 수가 많습니다. 이 책도 제게는 그런 책이어서, 그간 꼬이고 얽힌 관계에 대해 좋은 시사점을 얻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특히 유튜브 등에서 TED 컨텐츠를 종종 보시나요? 저자는 여기서 특히 프레젠테이션의 달인들을 보고 많은 걸 배운다고 합니다(p32). 여기서 저 달인들은 그저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떠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청중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일정 지점에서 공감을 유도하고,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 더 깊은 몰입도 도모합니다. 예전에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도 연설 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되묻는 화법을 자주 구사했고, 지금은 심X정 대표가 자주 쓰는 방법인 듯도 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프레젠테이션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잊지 말라, 그것은 바로 '설득'이다."입니다.

"토킹스틱(p96 이하)"은 예전에 저도 이 주제 하나만을 다룬 책을 한 권 읽은 적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자들이 부족의 소통과 그를 통한 평화를 끌어내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죠. 저자는 한때(대략 12년 전?)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스티븐 코비의 자계서 <성공하는...>에서 이 토킹스틱 이야기를 다시 끌어냅니다. 분쟁이 극에 달하면 우리는 보통 "말이 안 통하는군."이라며 침묵의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 침묵이 이후 더 발전적인 소통으로 승화할지, 아니면 "갈데까지 가"게 되는지는 다양한 변수가 좌우합니다. 토킹스틱은 말하자면 후자의 길로 이끄는 일종의 도구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이 책의 진짜 주제이기도 합니다.

"아니 그래서 결론이 뭔데?(p101)" 부부싸움이 더 나쁜 단계로 치닫는 중 남편이 보통 보이는 반응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남편들이 종종 잊는 점이 있다고 하는데, 아내는 이런 상황에서 그저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 자체를 조성하려고 한다는 거죠. 그 의도를 모르고 남편은 "상대, 즉 아내의 의도, 혹은 결론"만 성급하게 알아내려고 합니다. 남편을 두고 무조건 단세포라며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들이 깨닫지 못하는 건, 애초에 이런 싸움에 무슨 "결론"이라는 게 있기가 힘들다는 겁니다(아내에게건 남편에게건 말입니다). 만약에 만약에 아내가 "결론"이 있다면, 그럼 뭐 남편은 그에 무조건 따를 작정이었겠습니까? 만약 마음에 안 들거나 비합리적인 구석이 있다면 바로 불복하고 또다른 싸움으로 접어 들었을 거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이 뭔데?"라고 묻는 건 그냥 싸움을 이어가자는 거밖에 아니죠. 이런 점에서 "일단 같이 해법을 모색하게끔 분위기부터 만들자"는 아내의 암묵적인 제안은 남편의 그것보다 타당합니다. 이건 뭐 입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성격이 아닙니다. 애초에요.

남들 앞에 서면 일단 몸이 배배 꼬입니다(p120). 사람들, 수많은 청중들이 쏘아 대는(꼭 적의 어린 게 아니라 호기심, 호의도 있지만 말이죠) 시선의 힘을 배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이겨내야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은 물론, 달인까지는 가지 않아도 PT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성과를 만드는 조직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발표자는 상대의 눈을 일단 바라보고(사람들이 많으면 그들과 일단 일일이 눈을 맞추고)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지면서, 몸짓과 손짓은 크게 하라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사실 이게 주관적인 자신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상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마음이 확실히 서면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더군요.

저자는 현직 변호사인데 실제로 상대와의 물리적 거리를 조절함에 따라 다른 소통의 요소, 즉 메시지라든가 태도라든가 분위기가 조절된다고 합니다. p131 이하에 이 말이 자세히 나오는데 어찌 보면 이 책 제목이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내용 본체이기도 하겠습니다. 무조건 우호적인 소통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상대를 제압헤야 할 필요가 있을 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효과적이며, 상대를 압박하려면 실제로 거리를 바짝 좁히라고도 합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물리적 거리를 통한 관계성까지의 조절(p133)"이라 정리합니다.

"개방형 질문"과 폐쇄형 질문은 제가 지난주에 읽은 어떤 책에도 나온 주제인데 이 책(p170)에서 또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청중을 어느 정도 자신의 공감대 영역 안에 끌어들이거나 묶어 둘지에 따라 화자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말이 그렇다 뿐이지 사실 개방형이니 폐쇄형이니 하는 건 일도양단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독자인 저 역시 과연 책에서 설명하는 모든 개념이 과연 현실에서도 칼 같이 적용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많았습니다만 저자 역시 그런 태도였네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이는 말 듣는 사람을 얼마나 배려하는지에 따라 자연히 따라나오는 "지혜, 융통성, 유연함"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자세한 건 p173 이하에 저자의 처방이 나옵니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성현의 시 구절에도 나오지만 우리는 이성을 가진 인간, 또 그 이전에 사람으로서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회인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거리와 힘 조절이 가능합니다. 그게 안 되는 건 이기적이고 유아스러운 자기 욕심이 앞서서입니다. 힘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힘을 조절하는 게 어려우며, 그 "거리"의 조절이야말로 소통뿐 아니라 인간 관계의 달인, 아니 달인까진 아니라도 최소한 남 하는 것만큼은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도리임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평균도 못 하는 사람이 꼭 달인 어쩌구를 입에 쉽게 담기 마련이고, 공감은 죽어도 못 하는 인간이 남더러 자신에 공감 못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며 입에 거품을 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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