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 - 마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의 힘
로버트 치알디니.더글러스 켄릭.스티븐 뉴버그 지음, 김아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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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의 중요성은 그 무엇보다도 앞에 놓입니다. 관계가 틀어지면 조직 안에서 개인의 성공과 승진도 불가능합니다. 2차 집단이 아닌, 가족과 같은 정과 의리가 앞서는 곳에서도 관계에 멍이 들면 감정에 상처를 입고, 나아가 아무 일도 못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얼핏 보아 비이성적이고 이해 못 할 일도 그 원인을 "관계"에서 바로 찾기도 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 할 이런 관계에 대해 그러나 속 시원히 해명해 주는 가르침은 매우 드물게나 접할 뿐입니다.

관계의 본질을 안다 해도 이를 일상에 바로 적응할 수 없다면 모처럼 알게 된 지식이 큰 쓸모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로버트 치알디니와 동료 학자 두 분이 함께 쓰신 이 책은 학자가 아닌 우리 같은 일반인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필치로 쓰여졌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정확성과 권위, 가독성 등이 모두 중요한데 이 모든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책은 한 해에 손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쉬운 방법으로 어려운 지식, 지혜를 터득하는 건 분명 큰 행운이겠습니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대중을 위한 교양서와 교과서는 하다못해 생긴 모습(속을 들춰 보면)부터가 다른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는 누가 봐도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분야를 어려워할 걸 고려해서 예를 많이 들어 주고 최대한 쉽게 쉽게 써 주는 걸 보면 또 대중서 같습니다. 교과서를 읽어 가며 한편으로 입가에 미소를 짓고, 한편으로 무릎을 치게 되는 건 정말 오랜만의 체험 같았습니다.

몇 년 전에, 한참 게임에 몰입해 있는 PC방의 몇몇 어린 유저들을 대상으로 갑자기 전원을 내린 후 그 감정적 반응을 다룬 TV 뉴스가 큰 화제가 된 적 있습니다. 관계에 "공격성"이 얼마나 깊이 끼어드는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재미있게 따져 볼 만한 문제이겠는데요. 책 p106에서는 "사람과 상황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었지만, 같은 일을 맡겨도 어떤 사람은 잘 해 내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분명 서투르게 대응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에게 다른 일을 맡겨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이러니 어떤 사람을 어느 상황에 어떻게 쓰느냐가 모든 성패의 갈림길이라는 진단이 타당성을 갖습니다. 앞서 PC방 실험(?)의 예를 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어떤 학생은 대뜸 욕부터 내뱉지 않고 분명 침착하게 대응했을 겁니다. 왜 같은 상황인데도 (같은 사람들이) 다르게 반응하느냐에 대한 의문은, 이 책 곳곳에서 다양하게 해명됩니다.

이 책의 특징은 "A의 답은 B!"라며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러면 더 헷갈리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대단히 미안하게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은 "관계에 서툰 사람들(따라서 이 책을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 딱 하나만 고정될 것 같으면 사람 사는 세상에 관계가 그처럼 꼬일 이유가 애초에 없습니다. 이 책은 과연 그 점을 통찰했는지, 비슷한 상황(어떤 경우에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한 해법을 (일찍이 연구와 실험을 통해 증명된 대로) 제시합니다.

문제가 하나라도 답은 여럿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열 길 물 속보다 복잡한 사람 마음이기에, 어떤 경우에는 해법 a, 다른 경우(라고는 하나 사실은 거의 같은 경우)에는 해법 b를 우리가 융통성 있게 골라 쓸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상황과의 관계로 치환하여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게 이 책을 읽고 얻은 소중한 가르침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빚는 상황은 결국 상대의 심리에 대한 통찰로 이어집니다. 우리 동양에서 공자, 맹자 등은 군자의 처신 덕목중 하나로 겸손을 꼽았는데, 미국 사회심리학자들이 쓴 이 멋진 책에서도 결론은 여튼 같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랑쟁이"를 싫어하고, 기본 룰에 어긋나는 걸 알면서도 자랑쟁이를 때로는 비겁한 방법으로 협공하는 게 용인됩니다. 룰은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자신의 감정적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공동선 추구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자랑쟁이"는 응징되는 게 보통이라는 점은 확실히 흥미롭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문제를 이론적, 실증적, 과학적으로 짚어 보며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독자가 가장 속이 시원한 건 자신이 여태 알던 상식과 "학문적 결론"이 일치할 때입니다.

열심히 사회 속에서 룰에 따라 목표를 추구하는 건 사회적 동물의 숙명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성공(명예)의 사다리"를 타는 건 야심 있는 젊은이들의 열띤 경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p348이하에서 책은 성공을 위한 경쟁과 집단 내 관계의 우호성 사이에 놓인 묘한 상관관계를 파고 듭니다. 동성 내 관계에서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더 서열 우위를 뚜렷이 정하려 들고(따라서 긴장이 더 커집니다), 반면 여성은 (여성들끼리만 있을 때) 더 평등 지향적이며 우호적입니다(그래서 여자 동성 친구들끼리 떠는 수다가 더 즐겁다는 거죠). 그러나 이성을 두고 각축이 벌어질 때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적대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우리 속담이 있죠. p406에서는 :사랑 싸움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는 제목 아래 커플 관계에 주의해야 할 점 여러 개가 제시됩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데 "피곤해!"라고 답하기보다는 "내일이 어때?"라는 식으로 최대한 상대의 요구와 자신의 것에서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의 부부, 오래된 연인들은 마치 오래된 관계인 만큼 나의 이 정도 직설적 반응은 상대가 이해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듯, 본심보다 더 과장되고 퉁명스러운 표현으로 거절합니다. 그러니 상대는 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실망은 최초 발화자에게 몇 배는 배가된 채로 전가되는 것입니다. 죽어라 하고 싸우는 파탄의 갈등이 이런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건 한편으로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 너무도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누가 누굴 돕습니까? 자기 위치에서 자기 할 일이나 제대로 해야죠." 이 대사는 최근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극중 백승수 단장이 인상적으로 빚은 구절입니다. 책 p442에는 "도움(자선)은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나를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열등감, 원한 따위를 품는 경우가 꼭 있고, 그래서 "인간 못된 건 잘해 준 이에게 역으로 앙갚음을 한다"는 말도 있나 봅니다. 책에서는 내들러 등의 연구를 통해, 성별, 상황, 자존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자선에 대한 거절, 상처"의 양상을 재미있게 분석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더러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어이없는 패악질에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윌리엄 골드만의 어느 소설을 보면 주인공 중 한 명이 감금되어 극한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생각의 조절만으로 이런 고통을 극복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설령 인간에게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전체의 0.00000...1%도 안 될 것입니다. 책 p502에도 그저 생각만으로 어떤 괴로운 상황을 극복하거나 고통의 조절이 가능할지를 놓고 정말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논의를 더 흥미있게 이해하려면 그보다 좀 앞 p460 이하에 나오는 "공격성 있는 성원"에 대한 파트를 심도 있게 읽을 필요가 있더군요.

우리가 직장에서 "꼰대" 때문에 피곤해들 하죠. 이른바 꼰대 스타일은 대개 권위주의적 성격에 의해 발현되는데, p540 이하에는 어떤 조직에서도 나타나곤 하는 "권위주의"에 대해 자세한 언급이 있습니다. 권위는 필요하지만, 권위주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있는데 혹 권위주의가 절대악이라고 쳐도 조직에서 일거에 없애기란 매우 힘들 겁니다. <스토브리그>에서도 재송그룹 권일도 회장의 권위주의를 추방하는 건 아마 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고, 그 유능한 백승수 단장도 결국 현실과 타협했던 게 이런 이유입니다.

이 책은 관계의 미묘한 점과 그 배후에 깔린 사회 성원들의 "심리"에 대한 책이지 무엇의 선악과 당부를 재단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단죄하기보다(그럴 권리는 없습니다) 까다로운 상황과 관계를 잘 핸들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바른 소통을 해야 합니다. 책의 과제는 주로 여기에 놓여 있고, 괜히 명작이다 고전이다 칭찬하는 게 아니라서 어떤 단정을 자제하면서도 결국은 독자가 답에 대햔 "감"을 잡게 쓰여졌더군요. 두고두고 곁에 두고 읽을 책이며, "아 그래서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구나"를 연구하게 돕는 책이지만, 결국은 "타인이 아닌 내 자신이 이래서 이런 거구나" 같은, 자신을 먼저 성찰하게 돕는 책이라서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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