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테라피 - 서민금융연구원장 조성목이 전하는 금융 치유서
조성목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테라피"란 병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방법론을 말합니다. "머니 테라피"란 그럼 무슨 뜻일까요? 아마 돈이 없어 곤궁을 겪는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마구 퍼다 주는 식으로 그 병이나 상처를 깨끗이 낫게 할 수 있겠으니 이보다 더 쉬운 치유법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안이한 처방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만큼 엄혹하고 팍팍합니다. 관계가 파탄 나고 싸움을 벌이고 사람을 죽이고 몸에 병이 나는 모든 비극이 알고 보면 다 돈 문제에서 기인합니다. 암에 걸린 사람도 아마 어디서 큰 돈이 생겨 그간 생긴 근심걱정이 해소된다면 물리적 증상까지 차도가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니 어쩌면 머니 테라피야말로 죽어가던 사람도 일으켜 주는 궁극의 처방인지도 모릅니다.

여튼 돈을 퍼붓는 식으로 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옛 속담이 있는데 요즘 나라는 이런 걸 해결해 줘야 진짜 나라 대접을 받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돈을 마구 찍어내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고(그랬다가는 문제를 몇 배는 악화시킵니다) 어디에선가는 아무 이유 없이 놀고 있는 돈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급히 융통해 준 후 나중에 그 대가를 받는 식으로 수혈이 유효하게 이뤄지는 편이 낫습니다.

이 책은 이른바 "서민 금융 전문가"이신 조성목 선생이, 한국의 제도와 시스템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 감으로서 "돈 때문에 죽어가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구해 내는 처방전으로 쓴 책입니다. 과연 그런 문제에 처방전이 있기나 할까 싶었으나 읽어 보니 우리의 현실이 이런 심사숙고의 산물로 크게 개선이 되겠다 싶어서 놀라웠습니다. 우리들 서민들보다는 국가의 정책 당국자들이 먼저 유념해야 할 바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1993년작 영화 <데이브>(우리 나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이걸 표절했다는 논란이 한때 크게 일었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에 보면 온 국민의 영웅이 되는 "가짜 대통령"이 그런 인기를 얻은 비결이 고작 "전국 직업 소개 시스템 구축"입니다. 상상의 빈곤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지만, 결국 국가가 하는 일은 자원의 수급을 잘 맞추는 과제로 요약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는 남아돌고 어디서는 크게 모자라는 걸 서로 연결시켜 주는 일이 그리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며, 이런 것만 잘 해결되어도 사회가 훨씬 나은 곳이 된다는 게 놀랍습니다. 하물며 "돈"의 문제야 길게 말해 뭐하겠습니까.

돈이 없으니까 서민들은 사채를 끌어 씁니다. 사채는 급할 때 돈을 꾸어 주니 일단은 그것도 고마운(?) 일을 합니다만 그 대가가 너무도 큽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나중에는 일가가 번개탄을 피우고 목숨까지 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일만큼은 정말 근절되어야 하는데 불법사채업자만 단속한다고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이 책 저자께서 한때 "저승사자"로 불렸다는 사실입니다(p135). 누구에게? 사채업자, 금융 사기범 등에게 그랬다고 합니다. 금융감독원에 계시면서 특히 이런 악질 경제사범에게 철퇴를 내리는 조치에 앞장 서셨는데, 여튼 결론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태생부터가 교화 불능인 인간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 역시 상황의 산물이었습니다. 서민 금융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아예 부재하니까 희생자도 생기고 서민을 등쳐 먹는 못된 놈들도 생기는데 알고보면 이들 역시 광의의 피해자입니다. 저자님 같은 "저승사자"에게 걸려 전과자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근본 문제는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딱 필요한 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돈을 쓸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얼마 전 박영선 장관의 주도로 P2P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무슨 파일 불법공유 프로그램도 아니고 금융에 웬 P2P냐 할 분들도 있겠습니다. p77 이하에 개인 간 금융 활성화에 대한 아주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활성화된 제도라고 합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소셜 미디어라고 하듯이 이런 시스템도 소셜 금융이라고 부른다면 훨씬 그 뜻이 쉽게 이해되겠습니다. 사실 금융의 실패는 기존 금융기관들이 노력 부족이건 무능이건 시스템의 근본 한계이건 간에 개인의 신용을 정확히 파악 못 하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을 못 해 준다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그런가 하면 돈을 빌려 줘선 안 되는 불량 기업에게는 속아서 돈을 빌려 줬다가 떼이기도 합니다. P2P는 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간의 밀착관계가 보다 많은 정보를 정확히 공유하게 돕기 때문이죠.

저축은행은 과연 쓰레기인가? 실제로 저자께서는 부실 저축은행 잡는 저승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저축은행에 의심의 눈길을 보낼 건 아닙니다. 이 제도 역시 제1금융권이 해결 못하던 문제를 어느 정도 풀어 주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죠.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는 건, "우리 나라는 중금리 금융 시장이 부실해서 이 모든 문제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저축은행은 물론, 몇 년 전 화제가 된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의 활성화, 나아가 핀테크의 여러 혁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DSR 규제는 양날의 칼입니다. 이를 방만하게 운용하면 가계의 부실만 커지고, 너무 강하게 조이고 들면 결국 불법 사채업자만 배를 불리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데 들어둔 보험이 있으면 여태 납입금이 꽤 될 경우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역시 보험사가 우선적으로 해 줍니다. 문제는 이런 DSR 규제에 보험까지 포함시킨다면, 즉 (논란이 되고 있는) 보험약관대출현황 공유가 이뤄진다면 가계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p221)합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발생하면 "때려잡아야 해! 전면 금지 시켜야 해!" 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극단적인 조치를 요구하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마땅한 문제도 있겠으나, 특히 시장 제도와 관련한 것은 보다 융통성 있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금융은 누군가에게 돈을 무상으로 퍼 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필요할 때 잠시 융통해 주는 것이며 이에는 적정한 대가의 지불이 반드시 따릅니다. 효율성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공정성까지 담보하게 되는 이런 멋진 정책적 대안에 대해 정부 당국의 전향적 태도가 꼭 필요해지는 시점이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