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코노미스트 세계경제대전망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미래를 예측하는 건 언제나 어렵습니다. 미래를 제법 잘 예측하는 사람은 큰 돈을 벌기도 합니다. 사회에서 올리는 수입은 성원들이 그의 능력과 기여에 대해 베푸는 평가의 척도이기도 하니, 미래를 잘 예측하는 일은 그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편안하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과업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예측이라 함은 우리가 아무의 말이나 믿지 않고, 여태 공신력 있게 세상을 바라보고 정확한 진단을 해 온 전문가 집단에서 나온 말들을 믿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큰 공신력을 지닌 미디어 중 하나가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일 것입니다. 잡지의 역사도 오래되었고 필진의 무게와 설득력도 여전히 대단합니다. 세상사를 가벼히 논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라도 용납이 안 되겠으나 특히 경제 문제를 따질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 있으므로 각별히 신중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경제 이슈 분석에는 경제 본연의 영역뿐 아니라 정치, 사회, 가까운 역사 정보까지 총동원되며, 경제 영역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경제 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게 (그게 바람직하든 아니든 간에) 언제나 정치였지 않았습니까.

2020년은 새해 벽두부터 중요한, 위험한 국지적 충돌로 장식되었습니다. 이 책은 2020년을 전망하지만, 사실 책이 쓰여지고 출판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대부분의 아티클들은 꽤 오래 전에 자작성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많은 글들은 여전히 흥미로우며, 아직도 열 한 달 이상 남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서 유용합니다. 어떤 글은 그 실현 여부를 바짝 앞두고도 있기에, 과연 이 글이 "지면상의 성지글"이 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게 다 독자로서의 특권입니다. 필자들은 조마조마하겠지만 말입니다.

"출판되기까지 꽤 긴 시간..." 운운했습니다만 마치 전혀 아니라는 듯이, 이 책 p91이하에서 다루는 이슈는 바로 잉글랜드 은행을 새로 이끌 총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은행은 우리 식으로(사실은 일본식으로) "영란은행"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아주 유서 깊은 기관인데요. 바로 십수 일 전에 이와 관련된 뉴스가 전파를 타기도 했기에 이 책의 해당 분석글이 더욱 큰 실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카니의 통치는 끝났다.". 영국이나 미국이나 저널리즘 기사투는 대단히 문학적(?)이며 때로는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사십여 년 전 닉슨이 특별검사를 해임했을 때에도 "학살'이란 표현이 즐겨 사용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사건은 그리 불리기도 하죠. 카니 총재의 행보나 스타일도 여튼 전횡이라 일컬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글의 필자는 그 나름 복잡한 소회를 피력하는군요. 여튼 어디서나 브렉시트가 문제입니다. 이제 해결의 갈피를 잡아 갑니다만 말이죠.

수십 년 전부터 중국이 새로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다느니, 사실 지난 수천 년 간 누려 오던 자리를 되찾을 뿐이라느니 하는 말이 유행했지만 어떻게 된 게 최근의 그들 행보는 갈수록 전망이 나빠집니다. 언제까지 그들은 "이름 뿐인 금융 중심지(이 책의 표현입니다)"인 상해를 목표 지점에 올려 놓을까요? 이 글에서는 말미에 뜻밖에도 축구 이야기를 꺼내는데, 이코노미스트 같은 점잖은 매체에서 다루기에 가벼운 소재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축구 이야기가 결국은 정치 이야기이고 경제 이야기더군요. 이 책 나오고 나서 얼마 후에 히딩크가 대표팀에서 짤리기도 했기에 더욱 시의성이 높습니다.

이 책은 바로 지금 사서 읽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꼭 지금이 새해 벽두라서가 아닙니다. 대만의 총통 선거 이슈, 홍콩의 시위, 페르시아 만의 위기 등등이 마치 사전에 조율이라도 한 양 지금 연달아 핫 이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하필 지금 읽는 독자는 "와 과연 이코노미스트라서 이슈가 될 만한 일들을 잘도 엮었구나."하고 감탄할 만도 한데(TV만 틀면 그 뉴스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는 우연의 일치이지 이코노미스트의 필진이 탁월한 데에만 기대는 건 아닙니다(그건 신이라고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지...). 하긴 모르죠. 내공 깊은 필진이라 정말로 적중을 시키고 있는 중일지도요. 여튼 이분들이 하는 이야기는 특히나 신년 정초에 한번쯤 차분하게 귀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분명.

책 말미에 실린 간단한 세계 전망에는 한국 이야기도 나오는데, 한국의 4월 총선에 대해 제법 대담한 예측도 꺼냅니다. 보통 이런 데서 하는 이야기는 두루뭉술 펼쳐지기 마련인데 이 책의 태도는 그 기준보다는 훨씬 직설적입니다. 오랜 명성은 괜히 생기는 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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