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길더 구글의 종말 - 빅데이터에서 블록체인으로 실리콘밸리의 충격적 미래
조지 길더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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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도래한 어떤 세상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몰락하고, 그 자리를 전혀 다른 또하나의 질서가 차지한다는 예언. 참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 조지 길더가 "앞으로는 구글의 세상이 올지니 잘 대비하라"고 이 책에서 말했다 쳐도 우리 독자들은 눈 크게 뜨고 집중해서 읽었을 터입니다. 그런데 그를 넘어, 저자는 이제 막 도래한 거인 구글이 괜한 짓을 벌이는 중이며, 이러이러한 이유로 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발판이 되리라며, 대담하고 장구한 예언을 합니다. 독자로서 넋을 놓고 그의 박자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광막한 우주의 무수한 생명체들은 이미 떡하니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에 굴종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끝내는 압제를 거부하는 세력이 승리를 거두는데, 아마도 이런 희망적인 결론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토록 저 영화의 세계관을 지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광범위한 사건, 의지, 생각, 거래 따위를 포함하면 할수록 그를 통제하는 확고한 "중앙 집권 세력"을 필요로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럴수록 우주는 이를 배척하며, 또 그럴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디지털 혁명은 이미 사람이 사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았으며, 이는 첫째 개인 레벨에서의 보안 강화, 둘째 (그러므로 필연적이게 될) 탈 중앙집권화의 원칙 준수, 이 둘이, 모든 개체의 생존을 위해, 또 질서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요구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IT 혁명 이후 이 판의 유일한 지배자로 군림하는 구글은 이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중이며, 그래서 구글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단지 구글뿐 아니라, 보안 경시, 광고의 타락한 기획과 집행, 뭐 이런 행태를 일삼는 아마존(특히 이 회사의 알렉사라든가, 애플의 시리 같은 음성 중심 주문 체제의 구축을 두고, 저자는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시도라며 힐난합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저자의 약력을 보면(저는 이 대목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무려 1939년생이시라고 나옵니다. 1939년.... 이분보다 십 년, 아니 이십 년 정도 연하라고 해도, 이미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적응 노력을 포기한 채 꼰대짓이나 일삼는 게 흔한 풍속입니다. 그러나 팔십을 훌쩍 넘긴 저자의 유연한 사고가 펼쳐 놓는 담론을 읽으면, 마치 이십 년 전의 워쇼스키 형제(이제는 자매)기 <매트릭스>에서 놀라운 환상(아마도 이미 현실이 된?)을 펼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할지(그러나 그들은 젊기라도 했죠).

이미 <텔레비전 이후의 삶>에서도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신 적 있지만(그의 책들은 고도의 과학기술 이슈를 다루면서도 "문학, 이야기"처럼 신명나고 박력 있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 "그런 주제를 이런 투로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싶게, 마치 판소리처럼 독특한 흥이 배어납니다. 나이 40까지 비즈니스, 정치 분야에서 자기 경력을 확실히 쌓다가 그 늦은 나이에 기술 담론 쪽으로 전향했는데, 이 분야 기초 소양인 미적분 등 고급 수학도 비로소 시작했다고 하며 이 책에도 그것 관련 회고가 잠시 나옵니다.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어디에 모여 있다. 당신들은 자발적으로, 또 공짜로 거기 모였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다른 것'을 위해 거기 동원된 것이다." 맥이 탁 풀리지만 정곡을 찌른 날카로운 한 마디입니다. 이게 뭘 두고 하는 말인가 하면, 바로 구글 서비스와 사업 핵심을 간파한 저자의 일침입니다. 우리는 소중한 정보를, 어떤 유능하고 거대한 회사가 제공하는 검색 서비스를 통해 얻습니다. 상당 부분은 오락과 호기심 충족, 상당 부분은 생계와 관련되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아무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결과가 제법 만족스러우니 이를 가능케 한 구글의 "능력"에 속으로 경탄합니다. 바로 이걸 두고 저자는 크게 비웃는 겁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책 서두는, (직전) 수백 년 동안 과학자들, 특히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이 어떻게 일반 대중이 모르는 새("대중"이란 개념도 비교적 새롭지만) 세상을 바꿔 놓았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은 그저 수학, 과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세상이 동작하는 질서를 탐구하여 이를 석명함으로써 그 근본 토대까지 변화시켰다는 겁니다. 직접 비교할 게 아닐지 모르지만,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를 신랄히 비난하며, 직전에 등장한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봉건제 등을 선명히 프레임화한 적 있습니다.

책 제목을 다시 보죠. "구글의 종말(원제는 '라이프 애프터 구글'인데, 이 말이 벌써 '구글이 한 번은 망함'을 전제로 삼는 겁니다. 우리말 번역이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30년 전의 저서 <라이프 애프터 텔레비전>가 한국에 번역 소개되면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비포 구글"에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었고, 구글과 함께 새로 등장한 질서는 이러이러한 취약점, 자기 모순이 있으며, 앞으로 그래서 구글식 질서는 망한다는 겁니다.

엊그제 프로바둑기사 이세돌과 한국형 AI 한돌 사이의 대국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AI도 이 책에서 중심 화두 중 하나인데, 저자의 표현을 잠시 인용하면 "... 문제는 인공지능 그 자체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을 개선한다는 많은 약속을 짊어진 매우 인상적인 기술(p175)일 뿐"이라는 거죠. 그럼 뭐가 진짜 문제인가? p49로 돌아가 보면 저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화폐 등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과 경쟁, 방황과 혼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처럼 느릿느릿하게 지식을 탐색(초기 알고리즘적 접근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하더군요)하는 게 아니라(본인도 아마 그러셨겠죠?)" 무한히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센서 프로세서(우리의 뇌도 이에 가깝다고 합니다)"가 주도하는 세상이 곧 도래한다...

저 "느릿느릿 탐구"하는 진리 체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졌던 이가 다비트 힐버트(뿐 아니라 앞선 그 모든 과학자, 철학자들이 거의 다 포함되죠)였으며, 이런 신뢰를 무참히 뭉개 버린 이가 괴델이었고, 힐버트의 저자이기도 했으며 이 과정을 다 지켜 본 폰 노이만이 그 맹아를 다진 게 바로 "정보 중심의 패러다임"입니다. 이것도 이제는 상식이 되어 버렸지만 사상사를 이런 식으로 간편명쾌하게 정리하는 트렌드도 따지고 보면 이 조지 길더가 선구자입니다.

새로운 질서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미 전작 <마이크로코즘>에서 잘 설명했지만 저자는 여기서 다시 한 번 1) 개인 차원의 보안 2) 탈중앙집권화 등을 거론합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유전자가 이처럼이나 세상에 번성하게 되었는가. 위의 원칙들을 잘 지켜서 그렇다는 거죠. 책 후반부에는 "구글의 종말"을 끌고 올 블록체인 등을 설명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와의 "대화"에 대해 긴 분량을 할애합니다. 아직도 그의 실체에 대해 논쟁이 분분한 가운데 이 책에서의 "나카모토 사토시"는 자신을 사칭한 누군가에 대해 분개하기도 하고, "자기 말을 못 알아 먹는" 저자에 대해 경멸감을 드러내는 등 생생한 피와 살을 지닌 실물의 이미지라 더 재미있습니다.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아인슈타인이 처음 상대성 이론을 들고 왔을 때 이해 못했던 이들도, 그가 새롭게 해석하는 뉴턴 이론을 설명할 때 뭔가 새로운 각성이 왔었다고 하죠. 이 책 저자 조지 길더가 말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해 설사 이해가 어렵다고 해도, 그가 극복된다고 예언한 현 질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참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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