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 부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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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 소위 "역사의 종언"을 논한 적 있습니다. 이보다 반 세기 전, 파시즘과 그 반대진영이 정면으로 맞붙은 2차 대전이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세상은 민주주의와 자유가 충만하게 될 것임을 의심하는 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적어도 대중 선동과 증오의 부추김에 기반한 저열한 독재가 세상에 만연할 것이라고는 바라지도, 내다보지도 않았죠. 획일화한 세계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도 썩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대신 부패와 독선, 개인 숭배 따위는 싹 없어질 줄만 알았습니다.

21세기도 이미 1/5 가까이가 지난 지금, 오히려 지구 곳곳에는 시대착오적인, 퇴행적이고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독재자들이 독버섯처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차 대전이 막 끝났을 무렵에도 독재자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닙니다. 스페인의 프랑코는 히틀러와 처칠 사이에 어정쩡한 양다리를 걸치다가 비루하게 살아남았지만 집권 기간 내내 서유럽으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스페인이 서유럽 세계에 다시 초대받은 건 민주주의의 이행 이후이며, 남의 나라 이야기할 것 없이 한국도 본격 민주화의 길을 걸은 후에야 세계 체제에 제 대접 받으면서 편입된 것입니다. 우리 국민 중 혹여 "독재, 과거로의 회귀"가 미래의 지표라고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홍콩 등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고(오늘자 뉴스에서 광주 시민 단체는 홍콩 당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고 합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죠), 필리핀 등에서의 독재자 발호를 비웃는 경향은 일부가 아닌 대세에 가깝습니다.

"세상은 바야흐로 스트롱맨의 시대." 예전 미국의 시사주간 TIME이 박근혜 후보자(당시)를 가리켜 "스트롱맨의 딸"이라고 규정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 뜻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지만 대체로 영미 문화권에서 스트롱맨이 좋은 뉘앙스는 결코 아닙니다. 스트롱맨의 딸은 권력을 잃었지만, 대신 오히려 미국에서 비주류 아웃사이더가 이상한 방법으로 선동을 펼쳐 아무도 예상 못 하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필리핀에서도 "범죄자는 즉결 처형"이라는 다분히 논쟁적인 구호를 외치며 어두운 인상의 전직 시장이 최고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범죄자에게 너그러우라는 게 아니라, 누군 그걸 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를 유지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 작자는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비이성적인 애국주의에도 호소하는데, 힘의 논리를 숭배하는 선동가답게 정작 강대국인 중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련의 동향에 대해서는 끽소리도 못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터키에서는 국부(國父) 케말 파샤가 일찍부터 세속주의, 보편주의, 탈종교,유럽 지향을 국민 정신으로 정했건만 그와 하나하나 반대되는 노선을 새로 부르짖는 독재자가 나와 자작극 친위 쿠데타까지 벌이며 독재 노선을 굳혀 갑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북방의 러시아를 다스리는 독재자 푸틴은 유독 그에게 큰 친밀감을 표시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른바 "가짜 민주주의의 원흉"으로 러시아의 푸틴을 중점 분석합니다. 특히 "가짜 민주주의"가 문제되는 건, 본디 푸틴은 공산 독재가 무너진 후 적어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운 보리스 옐친을 계승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푸틴은 집권 초창기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도 했고,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로 기자 회견도 가져 한국인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푸틴은 그의 전임자가 세계에 대고 약속한 민주주의에의 지향을 교묘히, 교활하게 저버렸습니다. 특히 "민주적 부정선거"의 술책에 능했던 그는, 마치 1950~60년대 한국의 자유당 정권이 보여 줬던 온갖 추태와 범죄를 병행해 가며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나라 자유당 정권도 선거구 부정 획책, 인구 수보다 많은 투표 수, 사사오입 같은 구차한 법률, 헌법 해석으로 국민의 빈축을 샀는데, 푸틴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푸틴은 대통령 3선을 금지한 헌법상의 제약을 피해 가기 위해, 그의 꼭두각시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신 권좌에 앉히고 자신은 총리직에 올라 실권을 갖는 편법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근대 헌법학에서 말하는, 헌법의 침식(verfassungsdurchbrechen)에 해당합니다.

"민족의 대속자". 러시아인은 본디 추운 변방에 자리한 작은 부족에 불과했으나 몽골 족의 대대적인 침략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정체성도 생기고 강한 생존력도 키웠습니다. 부작용이라면 강한 실력자의 지휘 아래 맹종한다거나, 절차적 정의와 자치 정신, 공정한 민주주의 등에 대한 믿음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건데, 구 소련의 급격한 몰락과 이에 이어진 국격의 실추, 자존감 손상이 결국 기이한 독재자의 등장을 불렀다는 게 저자의 분석입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알렉산드르 두긴은 마치 히틀러에 봉사했던 나치의 괴벨스 같은 인물인데, 독특한, 그러나 위험한 유럽의 미래상을 제시하며 반미주의의 선봉에 섭니다. 미국 중심의 일방통행도 문제지만, 이런 사람이 표방하는 괴상한 독재 체제가 다스리는 러시아 중심의 세상이란 그보다 나빴으면 나빴지 나을 건 하나도 없지 싶습니다. 뭘 본받을 게 있어야 따르든지 말든지 하지 않겠습니까.

2014년에 마이단 혁명(유로마이단)이 세계에 충격을 주었을 때 우리는 큰 관심을 주었던가요? 비슷한 시기에 홍콩에서도 1차 우산 혁명이 있었습니다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듯합니다. 지금은 한국 시민들의 정서도 그와 같지 않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사연이 남 일이 아님을 알고 크게 동조하는 편입니다. 러시아의 리버럴 진영 중 세르게이 글라지예프 같은 이들도 푸틴을 반대하기는 하나, 책에 나오듯 스키조나치즘의 큰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자가 괴물이 되어간다는 니체의 오랜 금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러시아의 독재는 그저 러시아에만 영향을 끼치고 머무는 게 아닙니다. 러시아 제국은 이백 년 전부터 폴란드, 우크라이나, 카프카즈 여러 나라, 발트 3국 등에 부당한 간섭을 하려 들었습니다.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주의, 평등, 주권 존중 등이 자리한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들 나라들은 과연 안전한가요? 전혀 아니라는 걸 2014년 이후의 우크라이나가 보여줬고, 조지아와 체첸은 지금도 고난의 길을 걸으며, 심지어 폴란드는 나토에 가입하여 러시아의 위협을 덜려 듭니다. 이 책은 그간 동유럽 여러 국가가 겪은 비극, 분명 배후에 러시아가 있지 싶으나 아직 증거가 없어 미처 건드리지 못하는 수수께끼의 사건을 여럿 다룹니다.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이런 러시아가 타겟으로 삼고 무너뜨리려 드는 미국 역시,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에 트럼프 같은 우스꽝스러운 독재자 흉내를 내는 지도자가 당선되어 여러 내홍을 겪습니다. 미국을 위협하는 여러 시도에 대해 미국은 애써 모른척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독재자의 체제를 흉내내어 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위험한 수를 두려 합니다. 이 책은 그런 미국의 행태를 "러시아라는 거울 앞에 선 미국"이란 멋진 말로 요약합니다. 일찍이 정치학자 미헬스는 "모든 정치 체제는 과두정으로 수렴한다"고 한 바 있는데, 과연 앞으로의 우리 세상은 무엇을 바라보게 될까요? 러시아의 그 악명 높은 올리가르키가 혹여 하나의 롤 모델이 된다면 참 암울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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