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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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동안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지배해 온 땅에 느닷 침투해 온 이른바 "서학"이라는 것이 당대 지배층에게는 몹시도 불온해 보였을 터입니다. 공맹의 가르침은 대체로 "객관적 관념론"의 범주에 속하는 터라 완강한 종교적 독단으로 발전하는 편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민 평등이라든가 사후의 구원을 논하는 낯선 "종교"의 전파를 집권 세력은 몹시도 위협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급기야 윤지충 등의 양반이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는 데에까지 이르자 조정은 대대적인 박해를 벌이는데.... 소설은 이 충격적인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상하가 두루 화합한다든가, 치졸하고 명분 없는 권력 다툼이 만연하지 않은 치세라면 구태여 외래 종교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기층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이 겪는 모진 고통과 원한을 가득 담습니다. 우선, 어려서 오라비와 어미를 모두 잃은 소녀 도향은 타고난 재능을 살려 "소리의 그윽한 경지"를 다루게 됩니다. 남사당패에 섞여 여기저기를 떠돌던 악기를 가져다 주어 본분을 살리는 이는 다름 아닌 다산 정약용입니다. 나이는 한참 어린 그녀이지만 다산은 피안과 차안을 넘나드는 진리의 한 자락을 오히려 배웁니다. 도향은 치도곤을 맞고 죽은 어미,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나 느닷 먼 길을 떠난 오라비(중반부 넘어 그 이름이 "도몽"이라고 나옵니다)를 평생 마음에 간직하는데, 깊고 깊은 한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의원에서 일하다 불의에 누이동생을 잃은 김손 역시 끝모를 원한을 품게 된 건 마찬가지입니다. 누이동생은 천주학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이 망가져 고름이 차는 고통을 겪은 끝에 죽음에 이르는데, 놀랍게도 시신까지 끔찍히 해부되어 이중의 징벌을 받습니다. 명색은 의학에의 공헌이라고 하나 장기의 일부가 요리 재료로 쓰이는 등 일벌백계의 공포 시책임이 분명하고, 사람을 살게 하는 세상이라야지 도의고 인륜이고를 모두 망가뜨리는 폭력이 만연한 아수라장이라서야 말이 되느냐는 분노와 한을 품고 그 역시 세상을 등지고 뜻있는 이들과 합세합니다. 이 무리는 소설의 배경으로부터 180년 전,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호남 대동계의 수장 정여립의 유지를 받든다는 게 소설의 설명입니다.

생체 해부의 모티브는 뜻밖의 지점에서 다른 맥락과 만나는데... 소설 제목이 <최후의 만찬>이며 이는 윤지충 등에게서 사헌부 감찰어사 최무영이 압수한 후 임금에게 바치는 걸로 나옵니다. 이 그림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며 임금은 전부터 신임하던 김홍도를 시켜 내력을 알아보게 합니다. 김홍도는 멀리 필리핀을 거쳐 이탈리아의 밀라노까지 향하는데, 압수된 그림 중에는 다 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 등도 포함되었고 저 김손의 누이가 당한 끔찍한 참변이 여기서 교차점을 찾는 셈입니다. 김홍도는 놀랍게도 밀라노에서 귀환하여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고는 임금에게 고하는데 이 대목이 우리 독자들에게 다소 충격입니다.

이 소설은 초장에 대뜸 "조선은 자유의 나리"라는 선언에서 시작합니다. 조선 4대 임금 세종이 아낀 장영실은 본디 천출이었는데, 이를 시기한 양반들의 획책 때문에 결국 지근거리에서 못 버티고 느닷 자취를 감춘 걸로 사료에는 나옵니다. 만인을 자유롭게 할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본향을 등지게 된 그가 결국 향한 곳은 전혀 뜻밖의 지구 반대편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마치 미래를 예언하는 술사처럼 참언을 그림 속에 숨겨 미래에 전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최후의 만찬>은 배경의 소실점 또한 독특한 개성을 가졌는데, 이 소설은 그 소실점에 바로 조선의 OOO이 위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XXX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가. 동시성입니다. 과거는 미래가 내다보는 한 지점이며, 그 미래 또한 과거는 얼마든지 응시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한 지점으로 통하는 지경이 바로 "대동의 세상"이며 "평등한 사회"라는 게 소설의 결론입니다. 이 대동 세상으로 이끄는 수단이 바로 "향기"이고 "소리"이며, 저 김손을 비롯한 다섯 외인은 바로 "변음"을 통해 불평등 세상의 원흉인 누구를 죽이려 듭니다.

무사 백동수, 간서치 이덕무, 박지원, 홍대용 등 충신을 두루 거느린 임금은 바로 정조 이산인데, 공교롭지만 이분 역시 그 아비가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죽은 꼴을 본 "한"을 품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갈등합니다. "모두가 동등한 소리를 내는 세상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베풀어 주는 것은 또 어떠냐?" 개인적으로 예전에 <금강>이란 소설을 읽은 적 있는데, 거기서는 미륵 신앙과 무속이 결합하여 부조리한 세상의 전복을 꿈꾸는 이들이 나옵니다. 합리적인 사고와 논리, 보편의 과학이 세상의 변혁을 이끄는 날이 어서 와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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