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감정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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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쓰여진 여러 고전 문학이나 에세이 들을 읽어 보면, 필자나 등장인물들이 그리 "감정"이라는 팩터를 중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감정은 낭만주의의 대흥성 이후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도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자 소재였으며,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자신의 신조나 신앙보다도 차라리 감정에 가까웠습니다. 일개 미물인 동물에 대해서도 학대 등을 해서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들도 생명과 감정이 있다" 같은 것을 들기도 합니다. 지식과 이념 때문에 살인 등의 폭거를 일으키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도, 감정을 상한 경우 거의 누구라도 뒷일을 생각지 않는 무리수를 둡니다. <사기>에 보면 "필부라도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칼을 뺀다" 같은 말이 있을 정도죠.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만큼, 의지나 신조, 인격의 수양 같은 덕목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 안 받기, 내 마음을 잘 챙기고 평안해지기 같은, 감정의 다스림에 신경 썼던 인류는 아마 지상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세계화가 진척 되어서인지(?) 동양과 서양이 전혀 그 양상이 다르질 않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개인 차원을 벗어난 어떤 추상적인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 되고 난 여파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직장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고, 이직이나 사직을 하는 이유 대부분은, 일이 힘들거나 능력이 감당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은 대개 적응을 해 냅니다. 그러나 직근 상사, 동료 들과 감정적으로 심하게 맞부딪힌 후에는, 많은 이들이 가차없이 사표를 던져 버립니다. 이후의 일은 채 대비나 생각도 않고 말입니다. 물론 감정을 잘 챙기지 못해서 억지로 환경을 참아 내다 병을 얻거나 몸을 망치는 것보다는 그런 결단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의 감정을 현명히 관리하여, 애 써 얻은 직장에 충실하는 편이 전 인생 설계의 관점에서 더 유리한 선택임을 감안하면, 감정의 작동 원리에 대해 잘 파악하고 평소에 (향후 큰일이 터지기 않게) 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사람의 감정이 상처를 입는 건 혼자만의 세계에서 벌어지진 않습니다. 보통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는 건 그 타인을 배려한다기보다, 그 타인과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해야 할 나 자신(의 감정)을 위해 중요한 선택입니다.

여태 많은 자계서를 읽으며 그간 심리학자나 뇌과학자들이 밝혀 낸 성과를 바탕으로, 여러 몰랐던 지식이나 팁 등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걸 많이 봐 왔습니다. 아마 책을 자주 골라 정성껏 읽는 많은 다른 독자들도 사정이 같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공감이 가는 내용도 있고, 나에게 너무 무리한 주문을 한다 싶은 것도 있었겠으며, 다 맞는 말이고 수긍하지만 실천에는 가능하면 옮기고 싶지 않다,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알아 보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들게 한 것도 있었겠습니다. 

만약, 소개하는 정보가 비교적 정확하고 근거 있으며, 여러 상황을 전제로 한 제언(충고)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무난히 다가오는 책이라면, 그런 책은 일생을 두고 곁에 가까이하며 좌우명처럼 활용해도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새롭다기보다는 깔끔하고 센스 있게, 여러 독자에게 잘 어필할 만한 사항을 잘 정리한 책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저자께서는 현직 하버드 의대 심리학 교수이므로, 학문적 권위까지 충분히 갖춘 분이기도 합니다. 또, 그녀만의 임상례와 상담 사례를 친절하고 시의적절하게 여럿 소개하기에, 여태 여러 책에서 엿봤던 듯한 익숙함 내지 식상함도 가능한 한 최소로 줄이고 있습니다. 

책의 목표는 저자 스스로 말씀하시길, "감정의 민첩성"을 기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서평 처음에도 말했지만, 우리 이전의 사람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여 행동과 결단을 머뭇거리기보다는 "고지를 향해 전진(물론 그리 말하는 사람 본인부터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서)!"을 외쳤습니다. 그 시대에 나온 자계서(많지는 않으나 있었고, 또 인생 독본 등으로 이름 붙여졌을 뿐 자계서라고 부르진 않았죠)는 감정이란 중요 팩터를 대개는 무시했습니다. 허나, 아이디어의 질(퀄리티), 의지의 지속도, 종합적인 삶의 만족도, 구체적인 개인의 삶에서 후회 없음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잘 보듬고, 좋지 않은 감정을 재빨리 유리한 것으로 바꿔 주는 요령이, 그 어떤 다른 목표나 이상보다 중요합니다. 매일, 덜 늙고 덜 피곤해하며 더 행복해할 수 있는 나를 위해서 말이죠.

감정의 민첩성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저자는 크게 네 가지 과정(혹은 세부 목표)을 제시합니다. 1) 마주하기, 2) 비켜나기, 3) 자기 목적대로 걸어가기 4) 전진하기. 일단 예전 사람들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녀석과 눈을 마주치며 응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최상위 전제이자, 이 책이 담고 있는 모든 주장의 발판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감정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거나 노예가 될 게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길을 들여야 한다는 거죠. 1)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다음 2)가 의미 깊다고 봤습니다. 

1) 관련해서는 대개 의지력 충만하고 뭔가 비범한 이들이 종종 저지르는 오류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런 유형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없기에 큰 신경은 안 쓰지만, 그래도 그들과 비슷한 오류를 잘 저지르죠. 예전에는 거꾸로 그런 사람들을 높이 평가했으니까요. 대개 가부장적 유형이기도 한데, 요즘 일부 독서 트렌드에서 "남자 역할의 종말"을 거론할 때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무작정 무시하는 일부 남성"을 특히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2)와 관련해서는, 제 개인적 생각으로 나르시시스트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입니다. 이들은 전근대적 가부장들과는 정반대 지점에 위치하지만, 그들 나름의 이유에서 역시 불행합니다. 그들에게는 감정이 곧 자기 자신의 주인입니다. 왜 나의 부모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할까(사실은 그들 부모는 자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평균보다 훨씬 자주, 그 정제되지 않은 욕구를 풀어 주었습니다). "왜 사회는 내 감정, 내 욕구,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발상을 바로 수용하지 않을까? 내 생각엔 내가 맞는 것 같은데." 반응하거나 생각하는 품이 그저 아이들과도 같습니다. 

어쩌면 그 부모가 단단히 버릇을 잘못 들여 놓은 건데, 물론 나이 들어 그 책임은 본인 자신이 지겠지만, 이들은 여튼 팍 싫어지고, 비위에 거슬리고, 당장 기분을 망치는 모든 요소를 "악"과 동일시합니다. 매사에 합리화를 하려 들고, 희한한 데서 이유를 찾아내어 자기가 맞는 것 아니냐고 우기고, 상황을 거칠고 어이없는 방식으로 정리하곤 자신의 세계에 팍 파묻힙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책 전체를 통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자기 감정을 어떤 초자연적 명령이나 일생을 걸고 완수해야 할 사명으로 보지 않고, 그저 길들여야 할(물론 존중은 해야 합니다만)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들어가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나에게 혹 그런 요소가 있으면 고치고, 타인이 그리한다면 (여튼 그의 인생이므로 중뿔나게 주제넘게 개입할 것까지는 없지만) 저 사람은 그런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이해, 정리"를 하면 됩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에 휩쓸리지 않은 채 거리를 두었다면, 이제는 이미 대상화해 버린(따라서 "내"가 아닙니다. 내가 나를 처리하고 다루고 처분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으며, 이미 과업이 불가능합니다. 아니면 정신병에 걸리거나 말이죠), 이 감정이란 녀석을, 어떻게 잘 달래느냐의 과제가 남았습니다. 이 책 70% 정도는, 다양한 상황에서 감정을 어떻게 핸들링하는지, 저자께서 참으로 정성껏 정리해 둔, 환자나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중한 가르침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네 가지 패러다임을 잘 몰라도, 그 본문에 나온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만, 패러다임을 먼저 머리에 넣고 그 개별 팁과 교훈, 처방을 접한다면 훨씬 내면화가 쉽고 오래갈 뿐 아니라, 사람이 기계가 아니고 창의적인 정신 작용이 가능한 이상 그 "응용"과 "발전"이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개별 방법론의 상세함, 진정성에 못지 않게, 저자의 프레이밍이 매우 유익했던 책 중 한 권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세번째 단계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또하나의 중요 과제는, "감정은 나의 감정이지, 어떤 일반화하고 추상적인, 혹은 공통적인 무슨 별개의 감정 이데아 같은 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자기 감정에 휘둘리는 이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감정만을 최우선으로 배려, 고립화하면서도(즉 타인을 고려 안 함), 동시에 감정을 절대시하는데 이게 자가당착입니다. "그건 너의 개인 감정일 뿐이야"라는 말 중에는, 다른 사람이 자기 감정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 들어 있죠.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은 "너(혹은 그)는 내 감정을 이해 못 해"를 두고, "너(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 못 해"로 일반화, 혹은 격상시킵니다. 내 감정이 내 감정이 아니라 인류 일반이 존중해야 할 위대한 가치로 바꾸어 버리는 거죠. 이런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그럼 이해라도 하고 저런 요구를 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목전의 이익을 얻기 위해 알랑거리기는 합니다. 그조차도 대단히 피상적이죠.

네번째 단계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전진하기"는, 퇴행과 현실 도피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생을 살며 순간 맞이하는 모든 도전에 대해 정면으로 응전하고, 사소한 작은 나쁜 습관을 교정해 가며 큰 변화의 동력으로 삼으라는, 어찌 보면 공자나 맹자, 주자의 가르침처럼 대단히 윤리적이고 지행합일의 경지를 바라보는 성격입니다. 일일이 실천에 옮기다 보면, "감정(옛 사람들이 무작정 억누를 것을 주문했던)"에서 토픽이 시작되었으나, 결국 수신제가와 덕업정진으로 마무리되는 느낌도 듭니다. 

책은 또한 유머 감각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처음에 읽다가 "카드신용을 휴지통에 버린다"는 대목에서, 오타는 오타인데 참 이상한 오타다, 귀엽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는데, 한 장 뒤로 넘어가니 "마음챙김, 마음흘림"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든, 고의적인 미스프린트였더군요. 저자는 관심사가 참으로 넓으신지, 시대별로 서양이 동양과 접촉하며 소중한 교훈이나 수련 방법으로 얻어내고 발전시킨, 예컨대 요가라든가 다양한 노하우를 망라적으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효험을 본다 싶은 모든 바람직한 트렌드는, 우리의 현재에는 특히 다 "감정 수련"과 직결되어 있음을 재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앞서도 말했습니다만 감정이 다스려지면 결국 의지, 도덕성, 추구해야 할 목표 까지 덩달아 해결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이 결국 감정 트리트먼트를 위한 학문이었던가 싶기도 하게, 이 석학의 자상하고 위트 넘치는 충고가 어느새 인생 전체를 관조하는 계기까지를 만들어 주더군요. "감정은 곧 당신 일상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결코 노예가 되지는 말라. 마주하고, 다루고, 친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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