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생각에 속을까 - 자신도 속는 판단, 결정, 행동의 비밀
크리스 페일리 지음, 엄성수 옮김 / 인사이트앤뷰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저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느 교수님의 저서, 그리고 토론집에서 그런 주장을 발견한 적 있습니다. "임금에는 생활 보장의 요소와 근로 대가의 요소 모두가 포함된다." 지금은 글쎄요 이게 당연한 상식이 된 세상일지 모르겠으나 과거에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정당성이 어디까지, 또 어디에서 근거를 마련할지 한창 논쟁이 진행 중이었기에 이게 핫한 이슈였습니다.

현재 근로관계(고용관계)의 유연성 이슈를 놓고서는 여전히 사회 각 계층의 이해를 놓고 대립이 진행 중입니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에 서야 한다며 "함부로 남용하는 해고권"은 철저히 법 밖으로 퇴출되어야 한다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생산성의 극대화와 보다 많은 이들의 노동 기회 마련을 위해 "자유로운 해고"가 차라리 불황 타개의 돌파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부 어르신들이 향수를 갖고 있는 "평생직장"의 신화는 이미 깨어져 지구상 어디에서도 구현되지 못하는 실정이며, 어차피 이 신화도 노동자측에 마냥 유리한 이념이라기보단 사용자 측의 시혜적 스탠스라든가 자본 측의 철저한 주도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패러다임이므로, (부담스러워할) 사용자나 (인식이 바뀌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 노동자나 모두 만족 못 할, 언제 깨어져도 깨어져야 할 환각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동맹(alliance)"은 여러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나치 독일을 격멸하기 위해, 기존에 완전히 다른 이해관계를 지녔던 여러 국가들이 맺은 군사 협력 관계도 이 단어로 표현했으며(Allied Forces), 우리 역사에서는 드물게도 자리 보전이 위태로웠던 공양왕이 느닷 권신 이성계에게 제의했던 게 군신(君臣) 간의 "동맹"입니다. 물론 공양왕의 측근들은 "천지가 개벽한 이래 군신의 동맹 같은 해괴망측한 일은 없었다"며 격렬히 반발했고, 이성계 측에서는 이 동맹이 장차 새 왕조의 개창에 큰 걸림돌이 될까 우려한 끝에, 이 제안은 얼마 안 가 무마되고 우리가 아는 바 새 체제의 시작이 진행되었지요.

거창하게 고사(古事)를 거론한 건, 전통적인 노사관계가 현재 전세계에 걸쳐 패러다임적 도전을 맞는 요즘, 어쩌면 기존 시스템의 모순과 비능률 요소를 일거에 걷어낼 혁신이 이 "얼라이언스"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들어서입니다. 사실 이런 식의 고용 형태는 (전통 노사관계가 위기를 맞았다는) 요즘에서야 대두한 게 "전혀" 아닙니다. 이를테면 로펌은 일찍부터 주종 관계가 불분명한 파트너십 형태이며, 소위 "생협" 조직에 몸 담는 분들은 애초에 누가 누구에게 월급을 주는지도 관계 파악이 애매한 편입니다. 이런 평등한 생산 조직 참여 패턴이 마냥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고, 이런 조직이 절도(節度)와 기강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성원 개개인의 자질과 모럴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만 합니다.

애플이나 구글의 경우 직원 개개인이 대등한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안출하고, 충분한 자율이 부여되어도 업무의 질이 떨어지지 않기에 그런 형태의 운용이 가능한 거죠. 이 책은 주로 실리콘 밸리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런 형태의 느슨한 듯하면서도 고도의 업무 효율,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이 되려면, 역시 균질한 인쟁 pool 사이에 자율적이면서도 꽤 유기적인 네트웍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부정과 정실이 개입해서도 안 되며, 투명성과 업무창의성이 자발적으로 유지되어야 "얼라이언스"가 존립 가능하다는 자각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출신 대학을 놓고 어떤 카스트 구조니 뭐니 하면서 이의 강제적, 전면적 해체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일단 사적인 조직에 대고 국가적 강제를 들이대는 자체가 자율과 민주주의 원리의 중대한 위반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인맥과 평판이야말로 고과의 기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조직의 건설과 점검, 지속적인 작동을 위해 생각외로 중추적 기능을 행사한다는 결론,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미국 주요 정부 기관을 이끌어 나가는 현실에 비추어 보아 이는 이미 유효함이 검증된 모델이기도 합니다. 조직의 틀을 비공식과 공식 두 가지 프레임으로 묶어, 상황에 따라 A 혹은 B를 유연히 끌어댈 수 있다는 논리가, 여태 경색되고 침체된 국면이었던 경영 이론 중 조직론에 아주 신선한 활기와 충격을 줄 듯합니다. 이론을 떠나 우리처럼 동문회 네트워크가 촘촘히 구성된 사회에서 적용해 보기에 대환영인 그런 시론이기도 합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비뚤어지고 종래의 틀에 고착된 사고 방식으로는 좀처럼 수용하기 힘들, 멋진 아이디어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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