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대인인가 - 상위 1% 유대인의 부와 성공의 비밀
마빈 토케이어 지음, 박현주 옮김 / 스카이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연세 지긋하신 분들 중 마빈 토케이어라는 이름이 많이들 귀에 익으실 줄 압니다. 지난시절 워낙 이분 명의로 된 책이 많이 출판되었으므로 4, 50대 이상이시라면 이 이름이 익숙해야 정상입니다. 아직도 생존해 있는 저술가이자 랍비이고요, 그 이름을 아는 분들은 대개 약력까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포교" 활동에 힘쓴 분입니다(물론 유대교 랍비이니 유대교를 전파하는 거죠). 일본은 풍신수길 집정기에도 천주교가 예수회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적이 있고, "순교자"도 다수 배출된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기준 이런 외래 종교의 교세는 대단히 미미한데, 일본에서 지난시절 엄청 큰 열풍을 일으킨 마빈 토케이어의 저서들(사실, 그 바람 때문에 한국인들도 이 이름을 기억하는 거죠. 요즘이야 일본 독서계의 영향이 크게 줄었지만)과 그의 대외 활동이, 유대교의 교세 신장에는 과연 얼마나 기여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그는 젊은시절부터 주일미군 군종 사역자로 복무했는데, 전역 후에도 아예 일본에 터잡고 전 커리어를 헌신한 경우입니다. 이 덕분에, 미국에서는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종교에 무관하게 최소한 베스트셀러 저자로서의 그에게 대단히 큰 친밀감을 느끼는 게 보통입니다.

대개 그의 책들은 탈무드의 교훈을 적절히 축약하고 쉽게 설명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그보다는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갈등하고 상처 입고 속을 썩이는 여러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해, 저자 나름의 답을 내어 놓은, 보다 현실에 친밀해진 논의라는 게 눈에 뜨입니다. 예전 저서들이 현명하고 근엄한 교훈(moral)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소소하지만 치사할 만큼 내면을 번잡하게 만드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자상한 충고에 가까운 토닥임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용기는 지성에서, 지성은 책에서 나온다." 이때 용기란, 만용이나 욱 하는 감정, 혹은 혈기와는 다릅니다. 형세가 아주 불리할 때도 끝까지 항전할 수 있는 건, "이 특수한 사정에선 혹 우연히 내가 궁지에 몰렸는지 모르겠으나, 보편적 조건에서는 내가 옳다"는 게, 그간 교육과 훈련을 통한 뿌리 깊은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책 몇 권 읽고 암기한 몇 줄짜리 단편적 지식만으로는 그런 확신이 생기질 않으며, 사이비에 가까운 엉터리 고집이라면, 위기에 몰려서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아 내가 당장 살고 봐야지 명분이니 지식이니 하는 게 다 뭔데 그걸 위해 희생하겠습니까.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지성은,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완전히 안착한 지혜를 가리킵니다. 엉터리들이 가당찮은 거짓말, 합리화하는 수작이 한눈에 다 꿰뚫어보이는 경지를 뜻한다고도 할 수 있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걸 중시합니다. 기독교 역시 모세의 십계를 중시하지만, 유대인들처럼 교조적으로 이 규범을 준수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나 근거야 여태 수도 없이 많은 현명한 랍비들이 논변을 펴 왔습니다만, 마빈 토케이어는 짧고 명쾌하게 우리들에게 유효한 설명을 베푸는군요. "자신을 해방시키는 날이 진정한 휴일이다." 일과 관계와 이익을 살피는 게 평일의 과업입니다. 유대인들은 대개 완전히 몰입하여 직업을 수행하므로, 다른 생각을 품을 여유도 없이 일에 집중하죠. 이게 끊임없이 정신을 점유하면 그러나 그 사람의 정신에 탈이 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희년"이라는 개념도 중시하는데, 계급과 채무채권 관계가 완전히 리셋되는 게 그 이상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실천에 옮겨지기란 극히 힘들죠). 한번쯤은 원점으로 회귀하는 계기가 있어야, 생산을 위한 에너지도 충전되고,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에 건강도 찾아진다는 생각은 확실히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또 이런 리셋 지향의 사고가 있었기에, 유독 유대인들 중 "혁명가"가 많이 배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단단한 쇠붙이도 내부에서는 활동하고 있다. " 이는 기초 수준의 화학, 물리를 배운 분들이면 다 아는 내용입니다. 내부의 맹렬한 수련, 시련, 모색, 극복을 위한 도약이 없다면, 결코 고체가 그 튼실한 외관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 이미 랍비들은 근대과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 가려진진실을 통찰하고 있었다는 뜻일까요? 사실 랍비들 중에는 꽤나 과격한 이들도 많아서, 전통의 해석과 명제를 충실히 학습하되, 개인의 이견이나 반대, 이설을 대단히 존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단을 정죄할 때 서슬이 퍼런 기독교와는 차이가 너무도 크죠. 전 언제나 인상에 깊이 남은 말이, "랍비 열 사람이 모이면 입장이 열 두 개로 갈린다."였습니다. 그렇게 합리적인 풍조가 정착되었으니 오랜 세월을 불리한 여건 속에 살아남은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그런데 왜 통일된 정치 단위는 못 이루고 그토록 오래 떠돌이 생활을 했을지는 좀..).

"돈은 자기 도취의 지름길, 자기 도취는 악의 지름길."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역시 지갑이 든든해야 생활의 최소 기반도 마련 가능하고, 다른 자아 실현의 통로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언제나 놀랍게 받아들이는 건, 근검 절약과 혁신으로 결코 마르지 않을 듯한 부와 이윤 창출의 근원을 그들이 지켜 왔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최상의 모범으로 여겼습니다. 남들이 발견 못 한 재산증식법이나 투자 기법을 개발해 낸 것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고 아까워 그의 효율적인 활용을 궁리하고 궁구한 끝에 어렵사리 도출해 낸 지혜들이지요. 이런 걸 두고 무슨 못된 꾀를 배타적으로 꿍쳐 놨다가 남들한테 사기나 치는 양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성의있게 문제에 대처하다 발견한 노하우를, 공유할 자격이 있다 싶은 이들에게만 귀띔하고 협업하는 게 나무랄 일은 전혀 아니지요. 여기서 가르치는 교훈은, "돈을 모으되 자기도취에 빠질 만큼 집착하지는 말고,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항상 나의 중심이 유지되도록 본질을 바라보라"는 정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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