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제3시장으로 간다
K.I.P 경제연구회 지음 / 산성미디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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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관광이라 하면 아직 국내에는 낯선 분야처럼 여겨지지만 현대인의 기대수명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가까운 장래에 급부상할 유망 산업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마이클 포터의 다이아몬드 모형을 적용할 때 한국은 특히 인적자원, 가격 경쟁력, 상품의 다양성 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편입니다. (그 외 근원적 입지 요인으로, 13억 인구라는 거대 수요 집단을 이웃에 두었다는 어드밴티지가 있습니다) 반면 산업 발달의 장애요인이라면 "의료 민영화"에 대한 공중의 강한 반감인데, 만약 의료관광이 의료서비스의 공적 순기능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위협할 수준이라면 독자로서 저 역시도 반대가 당연한 입장입니다.

의료관광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정체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거시경제에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던 게 원종하 교수님(외 공저)의 저서였는데요. 이런 저술 말고도 벤처기업 창업시 유의할 점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깔끔한 책도 지으신 교수님의 새 책에 눈길이 가서 읽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현재 인제대학교에 재직 중인데, 학교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친 분답게 "대학행정"에 대한 권위서도 집필하신 적 있어서 그에 대해서도 유익한 공부가 독자로서 가능했던 기억입니다.

KIPP 교육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는 약어(略語)이지만 이 책은 원 교수님 스스로 창안한 모토와 방침, 프로그램상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방법론을 제안합니다. 헨리 8세,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를 거치는 기간의 영국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을 뿐 아니라, 국토는 협소하고 안보는 허술하며 국민적 통합이 이뤄지지 못했음은 물론 경제활동도 부진한 쪽이었습니다. 이런 많은 약점을 지닌 국가가 이후 세계 패권을 논할 만큼 번영을 누린 건 어떤 비결 덕택이었을까요? 이유는 여태 다양한 학자들로부터 많은 논거가 지적되었습니다만, 저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지적, 실천적 펀더멘털이 사회로부터 널리 수용된 데에서 그 기원을 파악합니다.

제가 다른 책들의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한국은 현재의 번영상을 가져다 준 표준화 교육, 지식 주입 양태의 시스템으로부터 큰 혜택을 본 바 있습니다. 교육의 객체들(학생들 중 주입식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도 중추 기능을 사회에서 맡으며 중산층으로 기반을 잡았고, 시스템 역시 양질의 인적 자원이 수행하는 서비스로부터 많은 기여를 받아내었습니다. 허나 이는 과거에는 그리 해서 성과가 났었다는 소극적 체험, 교훈일 뿐, 과학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는 지금 큰 도움이 되질 못하며, 오히려 바른 교육과 인적 자원 계발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창의력과 순발력이 지상의 순위를 점해야 하며, 지식의 반복 재생이 아닌 창의적 안출과 건설 능력이 중요해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저자 원 교수님은 이에 대해 어떤 실천 방안을 마련할까요?

그가 제안하는 정답이 KIPP 교육입니다. 앞서 말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유명한 금언(金言)이 "아는 것이 힘이다"인데, 이의 원 표현에서 앞 한 글자를 따온 애크로님이죠. 공교롭게도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대 혁신(그레이트 이노베이션)"을 당시에 주창했고, 암묵적 동의이건 명시적 추종이건 영국 사회, 경제, 강단, 시민 사회 전체가 이에 호응했기에 여튼 국내 차원에서 대도약을 이루는 게 가능했습니다. 원 교수는 이의 현대적(그리고 한국적) 변용을 주장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먼저 "나 자신을 알자"는 선결 과제를 제시합니다. 외우는 지식, 베끼는 학습을 통한 자기과시 혹은 자기기만이 아닌, 책 한 권을 읽어도 내면의 발전이 뒤따르는 공부가 되려면, 우선 학습 주체인 내가 누구이며 어떤 세계관, 어떤 필요, 어떤 적성을 지녔기에, 향후 무슨 학습과 연구를 통해 어떤 인간으로 발전해 나갈지 먼저 분명한 상(像)을 잡아 놓아야 한다는 거죠.

이를 위해 저자는 "어떤 대답도 그 학생에게는 정답이 될 수 있으니 무슨 해답에도 일단은 긍정해 주고, 다만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 학생 스스로 충분한 근거와 이유를 마련하게 하라"고 주문합니다. 또한 저자는 학생들이 무수히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들어, 스스로 알아 가는 쾌감을 체질화하게 돕는 단계를 강조합니다. 질문은 그 자체가 성취이므로 포인트를 부여하여 동기를 심어 주고, 바른 질문이 곧 현실에 대한 바른 답을 도출하는 지름길임을 인식시킵니다. 물론 질문은 내적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추동력을 마련하는 반응이라야 하며, 멋진 질문을 통해 지도교수나 클래스 동료의 감탄을 끌어내려는 연극적 의도라면 이는 경계, 지양되어야 합니다. 교수의 역량은 이 지점에서 다시 중요해집니다.

자 그런데, 이런 가르침이 책 제목인 "인생과 사랑을 디자인하라"와 어떤 연결지점을 마련할까요? 저자는 KIP 프로그램의 초석인 "너 자신을 아는" 단계에서 형성된 강한 주인의식, 자존감, 정체성 등으로부터, 현재의 젊은 세대가 빠져든 소위 삼포, 칠포의 절망감이 치유되고, 밝은 미래의 설계를 위한 정당한 기초가 장악된다는 주장입니다. 바르게 자리잡힌 인생관과 자아관으로부터 창의력도 형성되고, 사회에 유의미한 부가가치를 빚어 낼 수 있는 인생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도 절로 순도 높게 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과 사랑에 대한 "디자인"입니다. 자아실현, 거시경제 활성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개인 단계의 노력이 결코 별개가 아님을, 이 KIP 프로그램은 압축적으로 설득하여 공동체 전체를 향한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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