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나이트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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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뭘 읽어도 즐겁고 신 납니다. 어떤 세계적으로 이름 난 작가(이름은 안 밝히겠습니다만)들의 경우, 정말 시장에서 잘 팔릴 만한 스타일과 프레스를 몇 개 정해 두고 조금씩만 바꿔서 찍어내는 듯 당혹스러움을 안길 때가 많지만, 이분의 작품은 통속적이면서도 그런 상업적 느낌을 받지 않게 됩니다. 최근 <나미야...>가 영화화하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 안에는 언제나 세상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 또 그에 동참할 것을 독자에게 권하는 따스한 목소리가 스며 있는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스커레이드 시리즈"는 첫째 작품 "호텔"부터 계속 읽어 왔습니다. "대형 추리물"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스케일이 크긴 하지만 <질풍론도> 같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보았듯 그는 꽤 자주 배경 규모를 크게 늘려서 이야기를 꾸리는 작가이며,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듯 제법 쫄깃한 스릴러를 잘 만들기도 하는 분이죠. 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도, 추리 장르가 이제 나올 게 다 나온 편이기도 한지라 (또 유독 그에게만) 너무 많은 걸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의 기본 소명은 "이야기"인데, 정말로 장르를 전혀 안 가리고 온갖 포맷에 다 도전하여 그만의 푸근하고 훈훈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노고에는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심지어 그는 추리물이나 스릴러에서도 인간미를 언제나 심어 두는데 이는 그의 천성이 아닐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관성이 있을까 싶습니다.

"매스커레이드"란 단어만큼, 여타의 허름한(dingy) 숙박업소와 달리 호텔이란 업소에 잘 어울리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귀족들이나 신흥 부르주아의 키치 의식에선 "가면 무도회"가 긍러했듯, 20세기 들어서 성업하기 시작한 호화 대형 접객 업소에서는 각자가 이날만큼은 성장(盛裝)을 걸치고 다른 사람이 되어 꿈 혹은 망상을 실현하고자 애씁니다. "즐기는" 게 아니라 "애 쓴다"는 말이 맞을 만큼, 이런 데 와서 구태여 다른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이들은 사실 내면이 외롭거나 버림 받은 처지에 가깝습니다. 이런 대형 접객 업소는 주로 미국에서 비롯한 건데,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호텔 전속 "탐정"을 고용하여 행여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폭력은 물론 각종의 불륜 등)을 "어디까지나 호텔 안에서" 마무리짓고자 했습니다. 영어에 "What happens in Vegas, ....." 어쩌구 하는 관용구는, 따지고 보면 도박장과 호화 유흥업소가 밀집한 그 도시만 한정해서 해당하는 게 아니죠.

아마 1편에서 "알고 보니 좌표" 운운하던 그 트릭을, 이 작가분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잊지 못할 것입니다. 기발해서가 물론 아니라, 어쩜 ㅎㅎ 그렇게나 자주 장르물에서 아주 예전부터 쓰여 욌던 트릭을 또 쓰실까 하는 놀라움, 그러면서도 (다른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별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 독자 자신에 대한 의아함 때문이겠습니다. 진짜, 그의 작품 속에서는 어째 그토록 고색창연하고 낡은 갖가지 잔재주조차, 마치 "나미야 잡화점"의 마술이나 입은 듯, 새삼 신기하고 자못 설레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독자들은 그저, 그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 줘도 유쾌하고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일까요?

이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1권부터 계속 모아왔습니다. 히가시노 상의 작품들은 국내 번역 출판사가 다양(그래도 큰 곳 아니면 계약을 못하죠)하고 어떤 "고전"은 재판, 한정판, 기념판이 나오기도 해서 컬렉션 꾸리는 데 좀 애로가 있긴 합니다. 양윤옥 선생님의 마치 한국어 같은 자연스러운 문장에선, 히가시노 상 특유의 위트와 인간미가 그대로 묻어나서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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