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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트 특급열차 ㅣ 철도 네트워크 제국 2
필립 리브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18년 9월
평점 :
드디어
2편이 가람어린이에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1편도 엄청 재미있게 읽었고, 멀찌감치 앞서 진도를 나간) 원서를 구해 읽으면
충분하지만, 서현정 역자님의 문장 스타일에 이미 맛을 들였고 또 필립 리브의 이 시리즈는 이 분위기로 쭉 가야겠다는 생각에 내내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또, 독자의 특권으로 "다음 사연이 이렇게 가지 않을까?"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맛이 따로 있기도 하니,
그 기다리는 시간을 그런 식으로 잘 활용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이 2편도 결코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저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 999> 같은 애니를 보면서, 왜 일본 컨텐츠는 이렇게 암울한 상황을 구태여 미래로 잡았을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주인공 소년은 그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겪고, 그 상처와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
이후 펼쳐지는 모든 모험을, 결코 그 나이 또래가 지닐 수 없는 용기와 배짱으로 헤쳐 나가는 거죠. 애초에 그런 상처와 상실이
없었으면 그 고생을 할 필요가 없고, 어 이건 안 되는데, 뭔가 만회, 회복(, 나아가 정의의 실현)이 이뤄져야 하는데 하면서
어린 관객들도 그 긴 사연을 매주 조바심치면서 계속 이어 보게 되는 겁니다. 이런 부당하고도 길고 긴 사연이, 마치 물리적으로
길쭉한 모양새를 지닌 기차에 담겨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거죠.
세월이
지나도 기차는 여전히 낭만적 상상의 대상입니다. 이해가 안 되지만 시골 꼬마들은 (요즘 그렇다는 게 아니라 예전 이야기지만)
지나가는 기차에 돌을 던지는 못된 장난(을 넘어 범죄)을 치기도 했죠. 그런 행동은, 자신들이 이루거나 도달하지 못할 어떤 아련한
지점을 향해 쾌속 질주하는 물체, 혹은 그 위에 올라탄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서가 그 동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왜 우리가
기록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열차 지붕에까지 새까맣게 올라타서(얼마나 위험합니까) 당장의 연명을 도모하는 피난민 행렬 같은 걸
떠올려 보십시오. "오리엔트 특급" 같은 낭만과 사치 외에도, 기차는 이처럼 뭔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애환 같은 게 담긴
피사체였습니다. 거의 언제나.
아니
기차에 인공지능이 달려 있고, 이것들이 이루는 네트워크가 그 자체로 생명력, 혹은 의사능력과 의지가 갖춰진 "재국"이라니, 이런
발상은 어렸을 때부터 철도와 기차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고 자라난 마인드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2편에서
캐릭터들은 더 다양한 경로를 틀고, 희한한 개성을 보여 주며, 독자의 상상이 미치기에 훨씬 먼 간격으로 "광활한 제국"의 영역을
넓혀 나갑니다.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이긴 하나 혹시 작가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런 걱정일랑 싹 접어도
되겠더군요. 간혹 예외도 있지만 기차는 그저 몸만 거기 실으면 나머지는 기차가 알아서 하지 않습니까. 필립 리브의 이 작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