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통찰 - 어떻게 원하는 내가 될 것인가
타샤 유리크 지음, 김미정 옮김 / 저스트북스(JUST BOO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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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이들을 늘리라는 주문이 유행하곤 했는데, 요즘은 상대방의 공격을 무마하는 항변 수단으로 "그것은 프레임 씌우기에 불과하다" 같은 말이 자주 쓰이곤 합니다. 벌써 대중들 사이에서도 이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의미가 확산되었기에, 감춰진 의도를 미화하는 게 더 이상 잘 통하지 않으리라는 인식이 자리한 탓이죠. 대의와 명분이 올바로 섰으면 그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게 정도이지, 구태여 어떤 술책을 부린다는 건 스스로의 정당성 기반이 부실함을 자백함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나의 투쟁>이 이해가 안 되는 게, 선동의 기법을 가르친다면서 정작 그 책을 읽는 독자들도 속해 있을 대중을 대단히 어리석게 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2차 대전에서 설령 이겼다손 쳐도, 히틀러 체제가 결국 오래가지 못했을 것임은 이것만으로도 자명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무튼 사물과 현상의 이면에 감춰져 있을 진상을 꿰뚫어 보는, 이른바 "통찰"의 중요성은 요즘처럼 겉발림의 술수, 기만, 과거 왜곡, 미숙한 자기 기만, 얼토당토않은 사기, 자격 사칭, 더러운 욕망 등이 판치는 세상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일시적이든 장기적으로 가는 팀이든 간에 프로젝트를 짜서 타인들과 일을 해 본 사람이라야만, 허울이 씌워진 그 정확한 내막을 정확히 알아챌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 한 건을 통쾌하게 완수해 내어서 평판과 물질적 성과를 얻어 내겠다." 같은 의욕에 들뜨기도 하지만, 반대로 "구태여 대세를 거스르는 튀는 의견을 냈다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을 때 찾아오는 후폭풍"이 꽤나 신경쓰이기도 합니다. 팀 단위로 일해 볼 때라야 남들의 이런 기질, 성향이 정확히 드러나고, 반대로 쉼 없이 갈등하는 자신을 스스로가 목격하고는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찾기도 합니다(못 찾고 본래의 자신에 계속 머무르면 퇴직이죠).

이때, 남들과 비슷한 인식에 도달(가끔은 이런 것도 능력입니다. 사전에 남들 의견을 감 잡을 계기가 없었는데도, 이심전심이라고 막상 까 보니 결국 대세에 수렴했다든가)하는 게 보통 무난한 귀결입니다만(나도 편하고 남도 편합니다), 간혹 기가 막힌 통찰을 척 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어린 친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하고(사실은 우연의 소산일 가능성이 큽니다만), 역시 해당 분야에서 굴러 본 구력이 있어서 남들 못 본 걸 찾아내는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이 중, 통찰은 보통 후자를 가리킵니다. 전자의 경우 한 번이면 이쁘게 봐 줍니다만, 계속 그러면서 능력이 드러나면 조직에서 찍힐 수도 있으니 상사한테 적절히 공을 양보하며 오히려 "빚"을 지우고 약점을 잡는 게 현명한 처신입니다만 그건 지금 토픽에서는 여담에 불과하니 잠시 미루고요.

여튼 통찰은, 인문적으로야 아무리 고상한 의미를 가져도, 조직의 현실 속에서는 "남들 못 본 걸 정확히 짚어 내는" 바로 그 능력입니다. 파트너 기업과의 협상에서도 그렇고, 숨어 있는 시장의 진짜 지스팟을 찔러 내는 마케팅상의 혜안도 그렇습니다. 마케팅 능력이 따로 있고 협상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영역에서 일관되이 중요 팩터로 작용하는 건 바로 이 "통찰력"일 뿐입니다. 저는 영화 흥행과 선거의 승리가 이 비슷한 구조라고 보는데, 특히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단위 선거에서 참으로 전술을 잘 짜는 머리가 있습니다. 잡지나 신문, 방송 따위에서 "뭐가 문제"라는 식으로 아젠다를 던집니다만, 대개는 진정 하나마나한 소리이거나, 속내를 감추고 그저 듣기 좋은 구호를 포장(그것도 능력이긴 합니다만)하는 기선 제압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능력은, 시장(市場)이나 선거구에서 데모그래픽 스트럭처가 어떤 색깔인지 정확히 알아채고, 그들 자신도 모르는 그들의 욕구를 미리 파악하여 그들에게 일깨우는 능력입니다. 간혹 보면 이런 중소 규모의 선거구(혹은 시장)에서 무패의 경력을 자랑하는 이가 있는데, 몇몇 우연이나 행운의 사례를 제거한다면 그들이야말로 "통찰력의 대가"였기에 이게 가능했던 겁니다. 자기가 떠든 헛소리에 자신이 속는 게 낙오자들이며(정작 속아야 할 남은 콧방귀를 뀝니다), 헛소리는 남들용으로 남겨 두고 자신은 진짜 정보를 챙기는 이가 승자인 거죠.

그래서 회사건 어디건 간에, 진짜 전체를 살리는 능력은 "통찰력"입니다.  예전에 "기발한 아이디어는 IQ나 다른 능력에 무관하게, 정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행운이다"란 말을, 자계서 저자도 아니고 이름난 수학자가 한 적이 있는데(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고 믿음도 더 가나 봅니다), 문제는 그 문득 찾아 온 아이디어를 잘 살려 나만의 성취로 가꿔 나간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나만의 '아하'를 경험하라"고 부르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 중요합니다. 사람의 두뇌는 기이하게도, 학습한 정보의 총체나 민활한 연산의 결과 그 이상의 것을, 간혹 도약하듯 이뤄내고 얻어냅니다. 그런데 "아하의 쾌감"을 겪고 내적인 자산으로 편입한 사람은 이게 자주 되고, 안 그런 사람은 반대로 더 루틴 반복의 수렁에 빠집니다. 그 정도면 차라리 나은데, 자신이 안 된다고 남들까지 다 안 되어야 정상이라고 우긴다거나,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아니, 이미 다 드러난) 말할 수 없이 구질구질한 근성을 타인에게도 전파, 일반화하려는 물귀신 작전까지 펼치는 퇴행분자도 있습니다.

주자(朱子)도 그 비슷한 말을 했지만, 여태 봐 오던 사물을 좀 다른 각도에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15도 다른 각도에서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너무 튀면 그건 시장의 대세를 비껴가는 엉뚱한 패착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 대중 음악계에서는 서양의 대세를 참조하되, 대중의 기호보다 단 반 발짝만 앞서가라는 주문이 유행했죠(쉽게 말해, 남의 걸 베껴도 무작정 베낄 게 아니라 티 안 나게 하면서 기존의 관행을 존중하라는 거죠. 그러다가 요즘 같은 개명천지엔 그런 구린 베끼기 관행이 다 들통나기도 하는 건데). 지금은 뭐 한류가 세계적 트렌드 세터의 일원이므로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저자는 "절망을 창의적 몰입으로 바꾸라"고 하시는데, 이때의 절망이란 야심차게 추진한 일이 말짱 실패로 끝나거나 하는 참담한 체험을 가리키겠죠. 이럴 때 현실에 집중 못 하는 건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겠는데, 이걸 오히려 기회로 삼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에 안 그러던(못 그러던), 15도만 바꾸는 방식으로 사물을 관찰하라는 겁니다. 일이 잘 되고 있으면 사람은 매번 익숙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외부를 관찰합니다. 요즘 같이 혁신을 강조하는 시대에 이는 대단히 위험한 습관일 수 있습니다. 한 번 정도는 큰 좌절을 겪어 봐야, 여태 안 떠오르던 생각도 떠오르고 패러다임의 건전한 수정이 가능한 겁니다. 이러다가 전혀 새로운 관점과 성과가 나타나면, 바로 그것이 "창의적 몰입"이 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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