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1 - 치명적인 남자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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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벽녀"와 "나쁜남자"의 로맨스는 언제 읽어도 흥미가 당깁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랑이란 이 원형의 변종에 가까우며, 남녀 이성 어느쪽이라도 자신을 저 기본 스탠스 중 하나에 대입하여 사랑이란 전쟁을 이끌고 싶은 게 또한 공통된 심리 중 하나이겠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르물을 읽은 건 지금으로부터 4년 전쯤이 마지막이었는데, 모처럼 다시 접하니 기시감도 느껴지면서 동시에 감정이 정화되는 듯 상쾌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미국도 십여 년 전부터 학력 인플레가 불기 시작해서 무자격 부실 대학이 간판만 차려 놓고 학위를 공장에서처럼 찍어내다 어느날 자취를 감추는 비리를 저지르기도 해 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사커 맘" 이라든가 "타이거 맘" 같은 새로운 교육 풍조가 일기도 했는데, 이는 모르긴 해도 한국이라든가(전세계 어디서도 따라올 나라가 없죠) 동양계의 풍습이 놀랍게도 미국의 평범한 학부모들에게까지 영향을 준 흔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무지하고 거칠며 무능한 자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의 김을 빼고드는 풍조가 우려스럽지,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발버둥이 뭐가 나쁘겠습니까. 이런 교육열이 있었기에 우수한 인재가 그간 배출되었고 1980년대, 1990년대의 호황을 이끈 것입니다. 멍청한 지도자가 다 말아먹어서 문제였을 뿐이죠. 이후 삼성 등 대기업의 도약도 어디 최고경영자 한 사람의 자질과 용단에만 힘입은 결과이겠습니까. 세계 최고 수준인 이공계 엔지니어들이 창의력을 발휘한 덕택이 클 뿐입니다.

여튼 우리 테사, 예의 철벽녀이자 범생이이기도 하며 아직은 자신감이 좀 부족한 그녀("하긴 저런 애가 나한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지."라는 말에서 짐작 가능)는, 열성인 어머니 덕택에(머리가 그리 좋지는 않은 듯하니, 어머니 덕이 아닐지 생각해 봤습니다) 명문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자녀를 명문대에 넣고 가장 뿌듯한 첫 순간이 바로 (기숙사에까지 당첨되어) 문을 열고 짐을 꾸려 주는 바로 그 시간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엄마도 딸 테사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입주를 합니다. 명문대이니만치 다 자기 딸 같은 범생이만 있을 줄 알았으나, 첫날부터 웬 끔찍한 날라리를 마주하고서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요...

장르물에는 언제나 공통적으로 따르곤 하는 공식이 있습니다. 소설뿐 아니라 영화까지 비슷한데, 명문대에 입학한 예쁜, 그리고 실력도 좋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야무진 여학생에게는 항상 고향에서 거름내 풍겨가며 묵묵히 그녀를 기다리는 갑돌이가 있기 마련이죠. 여기서는 그게 아니라(또 테사의 고향도 그런 깡촌이 아니라), 테사에게 여러 모로 격이 맞는, 또 오래 전부터 알아온 공인(?) 교제 이성이기도 한 노아라는 애가, 동시에 합격하여(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당사자뿐 아니라 그 양가 부모님들이 더 기뻐할 만하죠) 같은 학교에 지금 들어왔고, 기숙사 다른 동에까지 입주를 한 상태죠. 아마 딸에 대해 마음이 안 놓인(그럴 이유가 물론 전혀 없습니다만) 그 엄마가, 노아에게까지 닦달을 해 가며 성적이 딸리면 채근까지 해 가며 입학에 공을 세우지 않았겠습니까. 딸을 성공(일차 관문 통과)시킨 후에도 얼마나 이모저모로 걱정이 많이 되겠습니까. 웬 거렁뱅이 변태 늙은이나 만나 욕을 당할까 우려스럽기도 하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열성인 엄마(대부분 자기 희생, 헌신의 열정이 강한 분들입니다)들은 무조건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아무리 한때 이런 유형이 한국 교육계와 사회를 우려 속에 접어들게 했다쳐도 말입니다. 아니 자기 자식 교육 잘 시키겠다는 게 무슨 범죄도 아니고, 그렇게 할 자신도 능력도 성의도 없는, 어디서 쓸데없는 정치 물만 든 건성 부모들이 한심한 사람들이지 열심히 사는 이들이 뭔 죄랍니까. 미국에서도 "우리가 저런 거 보고 좀 배워야 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거더군요. 자신들이 너무 이기적으로 사는 것 아니냐면서요.

여튼 저는 조금 실수를 한 게, 엉뚱하게도 이 테사 엄마한테 너무 감정 이입을 하며 책을 읽은 나머지 정작 청년 하딘과 여주 테사의 짜릿한 연애담에 상대적으로 덜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여성 작가의 필치라서인지 테사보다는 철저히 남주, 즉 나쁜 남자 하딘의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몸매를 보고 테사 마음 속에 이는 반응, 오로지 등만 빼고 온 몸이 타투로 덥힌 외양을 보고 경악하는 그 엄마의 태도, 몸에 타월만 두른 채 방을 나온 테사를 보고 어디가 불룩해졌다는 누구의 상황 묘사 등 이런 장르물에서 독자들이 신경을 집중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지만 말입니다.

하딘은 분명 나쁜 남자의 전형인데다, 또 평범한 미국 여자들이 뻑가곤 하는 "영국 억양"까지 말투에 묻어 있는 그야말로 테리우스형 캐릭터이며, 소설 중반부부터 바로 드러나듯 "출생의 비밀"까지 간직했다고 하니 이건 원... 헌데 앞에서 "왠지 자신감이 살짝 부족한..."이라고 했던 테사지만, 저 하딘이 "어째서 너 같은 애가 아직 처녀인지 모르겠다"라고 한 걸로 보아 그냥 범생이에 그치는 타입이 전~~~~~혀 아님은 또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런 녀석이 설령 작업의 귀신이라고 한들 아무한테나 빈말을 늘어놓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또 솔직한 게 요런 영혼들의 공통점인데, 그 바탕에는 자신감이라는 게 깔려 있다고 해야죠. 학점 관리를 잘해서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할 테사인데, 그간 저런 엄마한테 휘둘리고 관리, 간수당한 세월의 회한과 한창 때의 욕구가 결합한데다 이런 녀석까지 눈앞에 나타났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하고, 다만 게임의 균형추가 너무 남자쪽으로기울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2권이 더 기대되네요.

p123에 "본 이베어" 같은 우리 시대 셀럽들이 언급되어 더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본 아이버"라고 오버하기도 하던데 이 사람들은 프랑스계라서 이리 읽어 주는 게 맞죠. 책에도 그리 나와 있고요. 영어에서 하이버네이션이라고 할 때 그 단어와 어근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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