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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ㅣ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좀
말이 그렇긴 하지만 "청부살인"이라는 게 "업종"으로 인식될 수 있다면 그 사회에는 역설적이게도 어지간한 자유, 혹은 자본주의
질서가 부여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누가 남 일에 일일이 상관하고, 국가 질서가 마치 빅 브라더처럼 시민의
일상을 감시하는 섬뜩함이 도사리는 사회라면 이런 류의 범죄 대행 서비스라는 게 끼어들 틈이 없지 않겠습니까? ㅎㅎ 물론 아무리
자유가 좋고 경제활동을 마음껏 일궈 나갈 공간이 마련되어도, 누군가가 그저 돈만 주면 기꺼이 내 목숨을 노릴 의향에 가득차
있다고 상상하면, 그런 자유는 기꺼이 사양하고 싶은 게 모두의 공감대이겠습니다. 아니, 예를 들면 전두환때 "민간" 살인청부업
같은 건 없지 않았던가 같은 생각도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청부"는
사실 일본말입니다. 고용은 아니고, 개별 건수를 맡아 그 일의 완성을 도모하는 계약은 우리 민법에서 "도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살인 도급"은 민법 103조의 반사회질서 위반이라 아예 계약으로 성립할 여지가 없고, 구태여 이런 몸서리쳐지는 현상에다
대고 "한국어 순화"를 시도할 이유도 없으니, "살인청부"는 어디까지나 그저 살인청부일 뿐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매년 선정하는 작품에 대해, 근래 우리 한국인들도 유심히 챙겨 보며 그 큐레이션의 높은 안목을 수용하는
추세입니다. 미스터리 장르 문학뿐 아니라, 만화, 라이트 노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선별이 이뤄지고, 그 대부분이 우리
한국인들도 좋아라하는 분야들입니다. 이 작품 역시 해당 랭크에서 일찍부터 주목 받았던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달의 문> 등을 발표한 이시모치 아사미의 아주 깔끔한 미스테리물입니다.
미국에서의
신조어 중에 "문라이팅"이라는 게 있습니다. 본업 외에 다른 부업을 통해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는 건데 우리식 조어로 예전부터
있던 "투잡 뛰기"로 생각하면 됩니다. 아무튼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직업을 지닌 전문직인데, 숨어서는 그 뒤가 매우 구린 범죄에
몰두하는 이들... 이런 모티브를 쓴 미국 영화로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 2007년작 <미스터 브룩스> 같은 게
있었죠.
과연 죽어야 할 인간이란
범주가 따로 있을까요? 겉으로는 헤헤 웃으며 사람 좋은 척 위선을 떨지만, 속으로는 무능하고 멸시 받는 인간으로 살아 온 원한
때문에 극악무도한 살의, 피해의식을 키우는 늙은이 따위를 두고 "죽어 마땅할 인간"으로 규정할 수도 있겠습니다(살 만큼 살았으니
비료가 되어도 뭐). 아무튼 남부럽지 않은 윤택한 삶을 누리는 이들이 특히 "청부 살인"에 나선 그 동기, 알고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도 있고, 한편으로 한숨이 길게 나오기도 하더군요. 미스터리로서도 무난하며, 아마 진즉에 다들 눈치챘겠지만 청부살인
같은 섬뜩한 소재의 느낌과는 달리 의외로 경쾌하게 굴러가는 호흡이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