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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유진오 평전 - 헌법기초자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8년 7월
평점 :
현민
유진오 선생은 현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법학자입니다. 물론 헌법의 최종 문언을 완성하는 데에는 권승렬의 안(案)도
참고되었습니다만 대다수의 한국인들(그나마 나이 드신 분들이지만)은 이 현민 유진오 박사를 헌법의 아버지로 알고들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민법, 형법까지 다 유 박사가 기초한 줄 아는데 그건 아무리 법학의 천재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고요. 어느 나라가 진정으로
독립을 이루느냐 여부는 그 나라가 버젓한 헌법을 갖추고 이를 작동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이 이름은 진정 큰 울림을 갖습니다.
현민
유진오는 어려서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하인들의 수발을 듣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수재였고 당시 이름난 문사들이 다들
그러했던 것처럼 청년이 되어서는 소설 창작 등에 잠시 한 발을 담그기도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배우는 문학 교과서 등에 안
나오기 때문에(안 나오는 줄로 압니다. 사실 저희가 배우던 교과서에도 안 나왔으니까요) 무슨 유진오 박사가 소설을 썼느냐고 대뜸
되묻는 게 보통의 반응일 겁니다(그 전에, 유진오라는 이름자나 알기나 하면 그나마 형편이 낫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집에
비치되어 있던 <한국문학대계> 전집에 이분의 단편, 즉 이 책 p50 등에서 인용하는 <김 강사와 T
교수>, <창랑정기> 등을 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다 잠시 생각이 나서 그 작품들까지 간만에 들춰
보았는데, 지금 읽어 봐도 엘리트 특유의 담백하고 청아한 기풍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현민
유진오는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고 얼마 안 될 무렵 전국 학생들을 상대로 한 예과 모의 입학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한 천재였습니다.
이런 면모가 있었기에 그의 이름은 이후 무슨 행동을 해도 사람들 입에 널리 오르내렸고, 당시 수재들이 (정말 취미 삼아서라도 한
번 정도는 관심을 가졌던) 맑시즘에 심취했던 계기를 이곳에서 갖기도 했습니다. 부잣집 자제들의 호사하는 취미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오늘날까지도 맑시즘이 어딘가 대단히 이지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에는 이런 과거의 트렌드가 끼친 영향이 매우
큽니다. 물론 근본 없는 상것은 심지어 이런 곁다리 사정조차 주워 듣지를 못해서 무슨 시대에 뒤떨어졌다느니 뭐니(정작 뒤떨어진 건
"무조건 노조를 만들어서 해결" 운운하는 경박한 생각의 먼 조상이 어딘지도 감 못 잡는 자신의 자가당착 무지몽매함과 비천한
밑바닥 출신이죠)를 떠드는 구제불능 졸혼 인생이겠습니다.
책에는
<맹자> 離婁上(정확하게는 離婁章句上)에서 인용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이 역시 현행 고등학교 국어, 문학 시간에
다들 배우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맹자>의 해당 대목에서 특정 저자의 솜씨로 인용하는 게 아니라 "有孺子歌曰"이란
설명이 앞에 붙어 있습니다. 또, 우리 한국인들이 더 친숙해할 출처로서 굴원의 어부사(두 인물의 생몰 연도, 활동 시기는
비슷합니다)에도 "어부"의 말 자격으로 기록되어 있고 말이죠.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을 춘추시대의 민요 정도로 추정합니다. 아무튼
이 말이 저자 김삼웅 선생에게나 우리 독자들에게 그토록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이후 큰 논란이 되었던 현민의 친일
훼절 관련하여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그저 취미삼아일지는 모르나" 공산주의에 잠시 관심을 보였던 현민의 문학적 성향이 잠시 언급되었습니다. 우리가 역시 국문학
시간에 배우곤 했던 개념 중에 "동반 작가"라는 게 있는데, 현민도 이 그룹의 일원으로 자주 거명됩니다. 동반 작가라 함은, 비록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이념에 공명하여 작품을 통해 지지의사를 드러낸 이들을 가리킵니다. 2015년
<녹색평론>(학생들이 주로 "녹평"이라고 약칭하는)에 보면 정태욱의 논문 중에 현민 유진오를 심도 있게 연구한 글이
실렸고, 이 책 역시 그 논문 중 상당 부분을 인용합니다.
"...
맑시즘의 공식 그 간단명료함에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것이 옳고 그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이... "(p87, 또
정태옥의 녹평 논문 재인용). 헌데 이 역시 현민의 정치경제학 이해라는 게 그리 깊은 수준이 못 되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간단명료한 게 그 자체로 찬탄의 대상이 될 수는 없고, 사회과학 이론이라면 현실 설명력이 있어야 무슨 평가의 가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당시만 해도 맑시즘의 예측은 상당 부분이 다 맞아떨어지는 국면이었죠. 물론 현재(또 저
시대의인접 구간 중 슘페터가 설명을 시도한 지점)에는 너무나 많은 시대적 격변이 있었기에, 꼭 맑스의 잘못이 아니라 이미 죽은지 백
삼십 년이 지난 그가 뭘 해명하고 어쩌구 할 판국이 아니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아울러, 진정한 승자는 "혁신"을 강조한
슘페터이기도 하고요. (요즘 경영학은 물론 어느 학문 분야에서도 혁신을 논하지 않는 곳이 과연 어디 있는지를 살핀다면....)
"..
지드가 보기에 소련의 가장 큰 결함은 획일주의, 비개성화, 인간성의 무시였던 것이다... " 참 희한한 게, 기존 체제의 온갖
결함을 통렬히, 통쾌하게 비판하여 집권에 성공하고 전세계 민중과 지식인의 성원을 등에 입은 공산주의 체제가, 이후에는 태세를 싹
바꿔 오히려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유일 가치 선호, 숭배로 치달았다는 사실입니다. 앙드레 지드는 물론 <좁은 문>
등으로 한국에서도 폭 넓은 독자층을 한때 확보했던 프랑스의 대표 작가 중 한 분이죠. 아무튼 이 지드의 <소련
방문기>를 읽고 현민 역시 결정적으로 공산주의를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외면의 대상이 "공산주의"에 한정되었으면
좋았을 걸, 이족의 압제 하에 시달리던 민족 전체의 참상이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 시작이 꽤 박력 있고 심오한 정신을 담은 게 이 헌법 전문(9차의 개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지금도 저 문구 등 포함에서 상당 부분이 그대로입니다)인데, 이 역시 현민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근데 원래 현민이
쓴 어휘는 "국민"이 아니라 "인민"이요, 바로 뒤에 나오는 "3. 1 운동" 역시 "3. 1 혁명"이 원안이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인민"이란 본디 특정 정치 이념을 담은 용어가 (특히나 현민의 활동기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인의 눈으로 보면 역시
진보적 색채가 물씬 배어나는 말임에 틀림없고, "3. 1 운동"을 "혁명"으로 표현한 데에서는 뭐 더 생각하고 말고 할 여지도
없습니다. 1980년대까지도 예컨대 이현희 교수 같은 이(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었으니 당연히 보수 인사입니다)는 "동학
혁명"이라는 용어가 맞다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책에는
또 조봉암 선생(당시 국회의원 신분)이, "대한"의 "대(大)"는 그저 봉건적 자존비타심의 발상이요, 궁극적으로는 사대주의
표현이다"라고 통렬히 비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p116). 여기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고 리영희 선생의 어느 글을
봐도 "쬐끄만 나라가 무슨 대 자를 붙여 대한민국인가. 이는 대청제국, 중화민국 하는 것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김삼웅 선생의 책을 보면 이처럼 어떤 부대사정에 대해서도 지식이 늘고, 상황을 그저 뼈대만
앙상하게(이런 건 대부분 진실의 왜곡이며, 밑바닥들이 지네들 머리 아프니까 그저 결론만 요구하는 비천한 심리의 산물 이상이
아닙니다) 추려 놓은 엉터리 책과는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을 보면 1966년 유 박사가 고대 총장직에서 물러나 쉬고 있을 때 민중당에 영입되어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민중당은 윤보선, 장택상, 박순천 등 당시 야당의 거물들이 결집한 정치 결사였으나, 이후 강온파의 분당이 이뤄져 강경파는
신한당을 만들어서 나가고, 남은 온건파 중심 민중당의 대통령 후보였다는 뜻입니다. "단일화"가 무슨 김영삼 김대중 양김씨
시절이나, 문재인 안철수 때에만 유행한 말이 아니라, 벌써 이 무렵에도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에 대항하여 야당 단일 대오를 짜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결국 윤보선 전 대통령에게 후보직을 몰아주었기에 우리는 "유진오 후보"가 대선에서 몇 표나 획득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출마 자체가 결국은 없었으니).
박정희
대통령이 초기에는 경제 건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국민들의 성원이 좋았으나(1967년 선거에서 윤 후보는 참패했습니다. 4년 전
선거[군사정변 직후]에서는 불과 15만표 차이였지만[당시 인구 수 기준으로도 초 근접전]), 이후 3선 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여당인 공화당 안에서도 정구영 당 의장 같은 분은 끝까지 반대를 하고 나섰지요. 정치색이 없는 국민들도
"왜 최고 지도자가 말을 바꾸느냐?"를 두고 적잖은 실망을 한 게 엄연한 사실입니다. 어떤 치우친 이념(그나마 이념을 올바로
이해할 능력도 없는)에 찌든 사람들의 획일적인 불평은 곧이들을 게 없겠으나, 이처럼 소박하고 정직한 백성들의 소리에마저 귀를
닫는다면 그런 정치인의 처신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아무튼 이 무렵 민의를 바로 읽었는지 현민은 바로 야당
당수직을 맡아 올곧은 비판을 하며 지식인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으로 (소위)꿀보직 제의를 마다하고 자청해서
가시밭길을 걸은 이 무렵의 현민이 가장 멋진 행보를 보였던 듯합니다.
삼인출판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고록 등 여러 책을 낸 곳인데, 딱 그 무렵 이문영 선생의 <겁 많은 자의 용기>라는 책도
여기서 나온 듯합니다. 이무튼 김삼웅 저자는 그 책을 인용하며, 이문영 선생이 "전두환의 국정자문위원을 지낸 자가 고려대학에
빈소를 마련할 수 없다!"며 분연히 저항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말년에 정신이 혼미해져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도 명확한 인식이
없을 수 있었던 현민의 행적에까지 너무 가혹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겠으나, 여튼 이문영 선생의 저런 의기는
정말(그때야말로 남산에서 나와 어디로 끌고 가 고문을 해 댈지 모르던 무서운 시절이죠. 지금이야 아무나 아무 말을 다 해대는
시절이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저런 분이야말로 현민의 진짜 제자라 불릴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최고의 역사 관련
출판사인 채륜에서 낸, 최고의 평전 저자인 김삼웅 선생의 책은 이번에도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