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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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이 달라지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도 합니다. 올바른 관점이 자리잡히면 여태 잘못 봐 왔던 현상과 사물이 비로소 바른 실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국제 정세와 경제는 너무도 많은 당사자가 참여하는 거대한 게임이며, 이 복잡다단한 현상 중에 무엇이 우리의 생존에 의미심장한 영향을 끼치는지, 무엇이 그저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지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관점"의 장착은 이런 이유에서 너무도 중요하며, 믿을 만한 저자(혹은 팟 캐스터)의 관점은 적어도 진지한 참고 대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 쑹훙빙은 십여 년 전 <화폐전쟁>을 저술하여 중국 본토는 물론 한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며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유명인입니다. 중국에서는 재치 있는 표현과 독특한 프레임으로 많은 고정 독자를 몰고 다니는 지식인들이 여럿 있으나, 쑹훙빙처럼 그 유명세와 영향력의 범위가 한국에까지 두루 미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경제경영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물론, 세계 곳곳을 휘어잡는 이면의 트렌드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관점, 그 관점의 독창성이야말로 많은 구독자들이 그의 컨텐츠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전작 <화폐전쟁>이 상당 부분 미국과 유럽의 정치사에 치중했다면(물론 대개는 유대자본의 헤게모니 성립 과정을 다루는 내용이었으나, 특히 이 신저와 비교하면 정치사회 섹터 서술에 더 많이 치중했었음이 두드러집니다), 이 책은 에너지 자원 확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치열한 막후 쟁투에 보다 초점을 두었다고 하겠습니다. 세월이 십 년 가까이 지났으니 그간 급변한 국제 정세도 쑹훙빙의 독특한 "관점"에 의해 업데이트 된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자원 확보라는 글로벌 경쟁의 다양한 국면을 세세히 기술한 점이 돋보입니다.

쑹훙빙의 책은, 그의 책을 집어 든 독자가 기존에 어떤 관점을 가졌든 무관하게,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힌다는 게 최고의 장점입니다. 이 책 역시 분명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잡고 심각한 국제 정세의 각축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책이나 읽는 듯 흥미롭게 책장이 넘어갑니다. 에너지 자원의 집중 분포는 지구상 어디에 이뤄져 있을까요? 초등학생도 무리 없이 대답할 수 있을 만큼, 화석 에너지 자원이란 바로 중동 땅에 묻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이 세계 어느 민족, 인종보다도 독실히 믿고 있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교입니다. 이뿐 아니라 그들은 종족, 부족의 공감대에 기반한 자부심이 매우 강합니다. 따라서 향후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쟁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에측하려면 바로 이들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능한 자기계발서 저자, 모티베이터, 강연가 들은 뻔하고 익숙한 이야기도 새로운 재미를 불어 넣으며 청중, 독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쑹훙빙은 중국 현지에서 엄청난 수의 구독자를 거느린 크리에이터이기도 한데, 그는 이 책 중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며, 꼬일 대로 꼬여 있는 서남아시아 일대의 역사를 최대한 간략하고 흥미롭게, 맥락을 잡아 가며 쉬운 말로 풀어 줍니다. 이 책은 당초의 의도가 에너지 자원 쟁탈의 국제 구도를 설명하는 데 놓였겠으나, 이슬람과 서남 아시아의 정치, 문화사를 이해하는 개론서로 쓰여도 될 만큼 포괄적이고도 쉬운 필치로 까다로운 주제가 잘 소화되어 있습니다.

저자 쑹훙빙은 수시로, 피와 살을 갖춘 실존 인물로서 이 책 중에 등장합니다. "내가 특별히 연구하고 수십 권의 책을 읽어 본 결과..."라든가, "이스라엘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이스라엘 당국에서 내게 연락을 취해 와 이런저런 주의 사항이나 팁을 알려 주었다" 같은 대목이 특히 그렇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십여 년 전 <화폐전쟁>이 대 히트를 쳤을 때 많은 네티즌들이 "쑹훙빙은 실존 인물이 아니며 중국 당국에서 자신의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기 위해 세팅한 가공의 저자 명의에 불과하다"란 주장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의 실체를 의심하는 이들이 없지만(강연, 팟캐스트 등을 실제로 보았기에), 그로서는 이런 루머들이 적잖이 부담스러웠었는지 책 곳곳에 이런 흔적을 남겨 두었더군요.

쑹훙빙의 "관점"은 지나치게 중국에 치우친 게 아닌지 예전부터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비판도 의식했는지, 곳곳에서 "중국"을 "조국"이 아닌 게임의 당사자 중 하나로 설정한 듯한 말투, 분석이 눈에 띕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관점의 중립화, 객관화가 이뤄진 건 아닙니다. 여튼 한국 독자 관점에선, 이런 견해가 현재 표준적이고 유력한 "중국 여론 지도층"의 스탠스를 분명히 대변한다고 보고, 꼼꼼히 읽고 숙려를 거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쑹훙빙은 그저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스토리, 프레임, 관점의 전달과 교조화에만 몰두하는 저자가 아닙니다. 이 점은 그가 지나가듯 흘리는 단어 속에서 오히려 확인 가능했는데, 예컨대 앞에서 잠시 언급한 "이스라엘 당국에서 어찌 알고..." 같은 에피소드에서도 그렇습니다. 저자는 "...아마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터넷에 오가는 사소한 정보를 통해서도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사건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하는 듯 보였다" 같은 분석 중에, 그가 단지 시사경제 분석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보 당국이 기술적으로 어떤 수단과 시스템에 의존하는지 메타적으로 부지런히 파악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이 AI를 활용하는 방식도 놀랍지만, 무심히 흘려 보내지 않고 이런 사소한 경험을 통해서도 각국 정보 당국의 활동 방식 이면을 추측하는 그의 내공 역시 놀라운 면이 있습니다.

이 신저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서남아시아 일대에서 에너지 수출입의 주요 허브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암투과 각축전을 상세히 설명한 대목들입니다. 특히 파키스탄의 서남쪽 발루치스탄의 과다르 항은 중국이 일찍부터 눈독을 들이고 많은 자본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입 때문에 번번히 좌절을 맛보다가 근래 들어서야 중국 손에 경영권이 넘어온 경우입니다. 책에서는 애초부터 적임자에 관할이 넘어왔어야 할 항구가 미국의 방해 때문에 헛돌고 있었던 듯 서술하지만, 사실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국제 무대에서 책략을 부리는 건 마찬가지이며, 결국 승자가 중국이 된 과정만 봐도 사정이 짐작 가능하다고 봅니다.

책에서는 또한 중국의 외환 보유고 규모,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는 중국의 자세 등을 냉철히 살피고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사실 타국에서는 우리처럼 그리 자주 쓰이는 어휘는 아닙니다. 이 책은 그에 해당하는 말로 "공업 4.0"이란 개념이 주로 인용됩니다. 이 말은 독일에서 신 산업 플랫폼으로 자리해 가는 "Industrie 4.0"의 번역어로 보입니다. 이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 대한 설명(적어도 중국 측의  "관점")이 아주 소상하지는 않아 그 부분이 다소 아쉬웠지만, 다른 대목이 워낙 재미있어 그리 큰 단점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책의 원제는 "鴻觀"인데, 이는 저자 쑹훙빙의 팟캐스트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 중 한 글자를 딴 브랜드이기도 하고, 혹은 "燕雀安知(연작안지) 鴻鵠之志哉(홍곡지지재)"를 출전으로 삼은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합니다. 관점도 범용한 관점이 있고, 탁월하여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처럼이나 세계가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타는 지금, 과연 우리만의 관점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볼 국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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