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 한현민 이 사람 시리즈
김민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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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훌쩍 더 컸던 그는 초등학교 2학년때 야구부에 들어갔다."

이처럼 한현민은 어렸을 때부터(지금도 어리긴 하지만) 야구를 사랑했고, 지금도 자기는 청주 한씨라며 한화 이글스를 무척 열렬히 응원합니다. 야구는 통계 스포츠이기에 야구팬들이 흔히 그렇듯 그 역시 한화 팀과 선수들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줄줄 외우고 다닐 만큼 몰입하는 팬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어갈 수 없었는데, 야구는 워낙에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며 그의 가정은 이를 금전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죠.("양준혁 야구교실" 회원이었다고 하는데 왕년의 레전드가 펼치는 멋진 프로젝트에 이처럼이나 직접 수혜를 입은[선수는 아니라고 하나] 유명인이 이렇게 이른 시기에 나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현민이 워낙 어려서인 까닭이 크지만요)

"네가 야구를 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어."

가슴 아픈 말씀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야구를 계속하고 심지어 프로팀 드래프트에서 지명까지 되어도 내내 2군에서만 머무르다 은퇴 아닌 은퇴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며, 1군 정규 멤버라고 해도 팬들의 뇌리에 장기간 남는 선수는 극히 드뭅니다. 요즘은 유복한 집안에서 운동을 시키기 때문에 귀염성 있는 외모까지 갖춘 스타 재목이 많지만, 이들 역시 워낙 치열한 프로 세계의 경쟁 속에서 쓴맛을 보고 쓸쓸히 퇴장하기도 합니다. 1군 선수가 그럴진대 하물며...

여튼 이런 기나긴(어른들이 보기엔 짧지만) 고뇌의 시간이 그의 영혼에 남긴 아픔의 열매가 그 나름 보람을 낳은 덕인지, 혹은 타고난 좋은 체형 덕분인지(후자가 크겠지만), 한현민은 모델계에서 바로 주목 받아 현재 활동 중이고, 이런저런 TV 오락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춰 많은 이들이 알아보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도 말입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이는 중학교 선배, 축구부 주장이었습니다. 늘씬한 체형에 (어린 한현민의 눈에는) 비할 수 없이 하이패션을 하고 다니는 그를 보고, 소년은 바로 롤 모델로 삼게 되었지요. 이때 이후로 그의 꿈은 자타공인 모델이었습니다. 헌데 모델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이 분야를 지망하는 대부분의 또래들처럼 무슨무슨 아카데미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한현민이 누구인지 아는 이들이라면 설명 없이도 짐작이 가능하겠으나, 모르는 분들이라면 "아 타고난 체형 조건이 그렇게 좋다며 대체 뭐가 도전이고 아픔이었다는 거냐?"라며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둔 혼혈인이며, 요즘 우리 시대의 핫 이슈 중 하나로 부상하는 "다문화 가정" 출신입니다. 한국처럼 텃세가 심하고 폐쇄적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기 쉬운 문화권에서 아무리 유리한 체형을 타고났다 한들, 하물며 넉넉한 집안 출신도 아니라면, 좋지 못한 경로로 (그의 잘못이 아니라 환경의 탓으로) 엇나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훌륭한 직업인으로서 지금 세상의 주목을 받는, 성공의 일보 직전까지 다다라 있습니다.

"그는 매력적인 모델로 기억되고 싶었다. 어떤 옷을 입든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는 모델이 되고 싶었다."

모델계에 투신한 후 그가 롤모델로 삼은 이는 김원중이었습니다. 이 김원중씨가 그에게 해 준 말이, "포즈를 더 건방지게 해 봐."였답니다.  이 "건방짐", 다른 모델과 영원히 대체 불가 포인트를 만드는 개성이,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스웨그(swag)"입니다. 이는 또한, 남들이 알지 못했고 영원히 알 수도 없을 그만의 상처와 아픔을 당당히 극복하는 영광의 훈장이기도 합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유망주가, 유망주 꼬리표를 이처럼이나 빨리 떼고 대뜸 특정 트렌드의 아이콘으로까지 자리매김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그저 타고난 외모 조건이 빼어나 벼락 출세를 한 경우로 봐서는 곤란할 듯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그는 유독 배타적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다문화 배경 일각을 대표하여 유명세를 탔으며, 이 다문화 배경이라는 게 출세나 주목끌기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예가 거의 없습니다. 혼혈 출신 배우, 가수 등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편견, 따돌림, 손가락질 등에 시달린 후에야 유명세를 탔으며, 유명인이 된 후에도 완전히 꼬리표를 못 떼기가 일쑤였죠. 다음으로, 무슨무슨 아카데미를 다닐 만한 사정이 못 되었기에, 그를 가르친 선생들은 대부분이 "유튜브"였습니다.

다문화, 계층 양극화, 인터넷 미디어 등, 그의 출세 과정에는 이 시대의 여러 사연과 모순과 기회를 대표하는 극적 요소가 고루 담겼고, 어쩌면 그의 영혼이 이런 상처, 혹은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부터 고루 양분을 빨아들였기에 이런 성공이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분위기"라는 게 거저 생기지 않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과 호응을 보내는 건 그의 인성과 영혼에 이 시대의 크나큰 공감대 하나가 자리해서입니다. 한현민의 "스웨그"가 이 시대를 통째 삼키고 포옹할 수 있는 거대한 웨이브로 진화하길 기대해 봅니다. 아직 그에게는 시간이 너무나 많이 남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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