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2 - 경기도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2
신정일 지음 / 박하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한 말로 경기도라지만 너무도 넓고 넓은 고장입니다. 북과 남의 환경, 지세가 완연히 다른가 하면, 서울과 경계를 접한 지역들은 생활 패턴이나 시가지 구조가 서울과 다를 바 별로 없고, 그 외 농업생산에 주로 기대는 지역들은 말 그대로 시골, 심지어 버스편도 뜸하게 다니기에 자가용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너른 지역이지만 저자 신정일 선생께서는 부지런히 발로 뛴 답사를 통해 멋진 기행문과 문화유적 답사기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시네요. 서문을 보면 그 말미에 "온전한 고을 전주에서"란 한 마디가 적혔는데, 아직 전라도 편까지 감상하려면 많이 기다려야 할 듯하지만 한자말 지명 하나도 우리말로 되새길 때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점 깨닫습니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가 함께 모셔진 곳이 여주 북성산 기슭인 영릉(英稜)입니다. 이곳을 개토할 때 "마땅히 동방의 성인(聖인)이 안장될 곳"이라는 푯말부터가 먼저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설화와 전승의 객관적 신빙을 따지기에 앞서, 군주가 얼마나 그 백성들로부터 큰 존경과 신망, 앙모의 감정을 얻었는지를 간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여주라고 하면 그저 차편으로 멀고도 멀리 달려야 하는 고장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이제 혹 근처에 들를 일이라도 생기면 마땅히 챙겨 볼 유적지가 한 군데 확실히 생겼습니다.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를 꼽으라면(책에는 "중기"라는 한정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정구, 신흠, 장유, 이식 등 네 분을 꼽습니다. 이 네 분을 일컬어 월상계택(月象谿澤)이라고도 부르죠. 이 중 이식은 "성리학적 학풍이 중심이며, 화려한 문장을 선보였고, 명문대가 출신"임이 그 주된 개성이라고 저자는 정리합니다. "본뜬다고 다 고문(古文)이 아니라 그 나름의 창의와 바른 마음가짐이 깃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특히 새겨들어야 하며, 망령이 든 닭대가리라면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높은 경지입니다. 이분이 (아호이기도 한) 택풍당을 짓고 책만 읽으며 은거한 곳이 바로 현재의 양평군 양동면이라고 합니다. 여주보다 조금 북쪽으로 올라와야 하죠.

한때 부동산 로또(?)라며 주목을 받았고 요즘도 중산층의 거주지로 선호되는 판교는 그 이름의 유래가 청계산에서 발원하는 운중천의 범람에서 비롯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판교에서 청계산까지 가려면 대략 10km 정도를 판교로, 운중로 등을 거쳐 달려야 합니다. 이 책에 나온 대로 문화 유산 답사 코스를 밟으려면 꽤 재미가 날 듯합니다.

청계산에서 다시 동편으로 이동하면 광주시가 나오는데 천주교 신자라면 반드시 한 번은 답사, 순례해야 할 성지가 있다고 합니다. 천주교 박해도 조선 후기의 사실이므로 이들 성지 역시 엄연히 문화유산의 일부가 맞습니다. 다시 조금 북쪽으로 이동하면 하남시, 미사리 등이 나오는데 백제 유적지 위례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추정), 우리들 속된 현대인들은 그저 이 일대를 불륜 드라이브 코스 정도로나 인식할 뿐이죠. 조상님들께 많이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고려시대 문화재인 동사지 오층석탑, 삼층석탑 역시, 이 책에서 읽었으니 답사시 사진에 반드시 담아와야 하겠습니다.

광해군은 제주도로 유배된 후에도 제법 고령의 나이에 유형 생활을 시작했으면서 꽤 장수한 분입니다. 반면 연산군은 젊은 나이에 폐위되어 서울서 그리 멀지도 않은(제주에 비하면) 섬 교동도로 안치되었는데, 울화를 참지 못하고 서른 하나에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건강은 인성 요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산보다 훨씬 이전 사람(여말 선초)인 목은 이색은 이곳의 독특한 풍광과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그윽한 시도 한 수 남겼나 봅니다. 풍수지리학상 이곳 교동도는 개성에게 외안산이 되며, 반대로 한강은 교동도에 대해 안수가 된다고 책에는 나오네요. 어떤 절대적 위상이라는 게 풍수에는 존재치 않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희 장군이라고 하면 세 치 혀의 놀림만으로 강토의 회복을 꾀하여 성취한 담대한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워낙 출중한 인물이었던 만큼 여러 일화가 있습니다. 안산시 단원구(이 구 명칭도 단원 김홍도에서 따온 것이죠)에는 당시 송나라로 떠나기 위한 항구가 마련되었는데, 내부시랑직이었던 서희가 이곳에서 일박할 당시 경순왕의 비인 홍씨와 그 모친 안씨가 소복(책에는 "소박"이라 나오는데 미스프린트인 듯합니다)하고 꿈에 나타나선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잿머리 성황재가 실시되었는데,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런 설화 하나에서도 안산 일대에 큰 세력을 형성한 순흥 안씨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경주 김씨인 경순왕과 이들 호족의 정치적 연합은 결국 실패했다는 뜻이죠. p151:9의 "1984년"은, 모르긴 해도 "1894년"의 오타이겠습니다.

안성은 책에 나오는 대로 수원의 동쪽이며(<택리지>에서의 재인용), 사실 동쪽이라기보다는 먼 남동쪽인데 여튼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호남 바닷가와 경기 사이에 위치하여 공장과 장사꾼이 모여 드는" 번영한 고장 정도로 기술합니다. 사실 바닷가와도 꽤 멀고, 다만 멀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강의 상류가 이곳이긴 하죠. 호남은 지금의 전라도를 가리킨다기보다 인근 아산호 일대를 지칭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안성맞춤"으로 잘 아는 안성 유기가 유명한데, 이 때문에 사실 당대 백성들은 공납 공출의 요구 때문에 무지 핍박을 격었으며, 새 수령이 부임하면 부임 첫날부터 송덕비를 세우는 게 차마 웃지 못할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안성 도기동의 경우,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기에 예로부터 중시된 고장이며, 큰 시장이 섰을 뿐 아니라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도 이곳에서 매점매석을 벌여 큰 돈을 모은 허생의 일화(물론 가상이지만)가 나옵니다. 안성이라고 다 풍요로웠던 고장은 물론 아니며, 죽산면에는 훗날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당시 비운의 죽음을 당한, 우리 국어 교과서에도 게재된 "송인(送人)"의 작자인 정지상이, 분행역을 지나며 남긴 시의 자취가 스며 있습니다.

귀주는 앞서 말한 서희 장군이 거란에게서 뺏어온 강동 육주(저 북방 압록강 동안) 중 하나인데, 세월이 흘러 송문주 장군이 한때 주둔하던 중 새로이 발흥한 몽골군이 어떤 식으로 성을 공략하는지 그 진법의 정수를 보고 배운 곳이기도 하나 봅니다. 우리가 몽골에 결국 항복하여 이후 고려 왕실과 조정이 원(元) 제국의 간섭을 받았으나, 치욕의 역사뿐인 건 아니어서 이 송문주 장군의 경우 몽골과 항쟁(그 이전)하며 그들의 습성을 낱낱이 알아 대비하였기에 기어이 죽주산성이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나 동유럽보다 우리가 훨씬 근거리였고 더 고도의 정예군이 파병되어 침략을 받았는데도 이런 유능한 사령관이 있어 국지적 침략을 막아 내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안성시 근방에는 미리내라고 불리는 천주교 성지가 있는데, 밤이면 집집마다 불을 켜고 천주교학을 연구하던 모습이 미리내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 근처에는 유명한 김대건 신부의 유적지가 있는데, 출중한 외모와 반듯한 성품으로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초지를 지켜 젊은 나이에 순교한 위대한 성인(책에도 나오지만 무려 1925년에 복자품을 받았고, 1984년에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이 되었습니다)입니다. 그가 순교한 건 4대 박해 시절은 아닌 병오박해 때의 일입니다. p198:3의 "한남금맥정맥"은 아마 "한남금북정맥"의 오타인 듯합니다.

천주교뿐 아니라 서학(西學)에 대한 안티테제 격으로 등장한 동학, 즉 후대에 이르러 천도교로 개칭되는 흐름도 있었죠. 이 종교의 2대 교조가 최시형인데, 이분이 순교한 곳이 이천(利川)입니다. 이천은 예나 지금이나 밥맛 좋은 쌀로 유명하며(제가 최근에 마트에서 사 보니 4kg 기준 타 상품보다 5천원이나 비싸더군요 켁), 사실 경기도가 이름이 경기(京畿)인 이유는 딴 데 있지도 않습니다. 관리들에게 지급할 양질의 봉록이 근처에 소재해야 하니 말입니다. 책 맨처음에 다뤄진 여주의 바로 서쪽에 위치한 고장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도 이천에 첫발을 디뎌 가장 먼저 나오는 화제가 바로 진상미입니다.

수원의 문화재라고 하면 대뜸 우리는 정약용의 화성(華城)부터 떠올리며, 교통도 편한 까닭에 서울 시민에 쉽게 찾을 수 있는 대표적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특히 경기도 남부의 중소규모 도시라면 버스만 잘 골라 타도 이곳을 얼마든지 통과할 수 있으며 근처의 백화점 등 다른 명소도 실컷 구경 가능하죠. 경기도 남부는 황해안과 면한 곳이 많아(저 위에 언급한 안산 잿머리처럼) 중국으로 사신길을 떠나다 "뭔 일"을 겪은 이들의 일화, 전설이 많이 남습니다. 인천도 예외가 아닌데 이 길게 남북으로 뻗은 항구도시의 경우 사실 언급해야 할 대목이 너무 많지만, 빼놓지 않고 중국행 사신의 에피소드가 문학상 인근 등에 얽혀 있습니다. 인천은 또한 비류백제가 터전을 정한 고장이기도 하니 매우 유서 깊은 문화 유적지이기도 하다는 점 처음 알았습니다.

경기도는 초기 백제의 중심지여서인지 곳곳에 그 아득한 옛적 백제 왕들의 이야기가 인용됩니다. 남양주 양수리에는 팔당댐이 소재하기도 했는데, 이곳은 다시 (앞서 언급되었던) 하남시 미사리와 연결되죠, 백성 도미의 부인을 뺏은 못된 군주 개루왕의 전설도 이곳을 근거로 하는데, 고구려와 전투 끝에 죽은 개로왕은 한참 후대인 21대 임금입니다. 수종사라는 절에는 조선 초기 임금 세조(수양대군)와 후대의 실학자 정다산이 다시 자취를 남깁니다. 정다산만 해도 이 책에서 대체 몇 번을 등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학자요 경세가였던 그는 한국 삼천리 강산에의 열혈 답사가이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고양과 파주는 그저 남북 대치 상황 때문에 개발이 안 된 벽지인가 여겼는데, 이 책을 보니 곳곳이 서원이고 유적입니다. 하긴 민족 분단, 대립이란 꿈도 꾸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야 훨씬 북쪽인 개성도 그만큼이나 번성한 고장이었는데, 거기보다 서울에 훨씬 가까운 이곳 경기 북부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부대찌개나 미군 기지(켐프 레드클라우드) 정도로나 알려진 의정부에도, 사문난적으로 노론에게 몰려 죽은 <사변록>의 저자 박세당의 묘가 있으니 뜻있는 이들은 꼭 찾아볼 일입니다.

경기도 하면 그저 농촌이나 드라이브 코스 정도로만 알아도, 실상은 오백 년 도읍인 서울, 그보다 더 이전에도 역시 (고려 도읍 송도의) "경기" 구실을 했던 고장이니 곳곳이 문화재요 발 디디는 처처마다 조상님들의 숨결로 가득합니다. 이번 여름에는 경기도 문화 유산 답사부터 시도해 봐야겠으며, 이 책을 세 번 정도 더 읽고 계획을 짤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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