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여행 - 가족과 함께하는 첫 번째
장정호 지음, 김상화 그림 / 수경출판사(단행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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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을 일러 보통 "성웅"이라고들 합니다. "군웅, 영웅"의 차원을 넘어선 초인적 요소가 그의 생애에는 깃들어 있다는 뜻이죠. 해전에서 그가 적시에 보급을 끊어 반도에 침략, 주둔하던 왜군의 전략에 큰 혼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저쪽에서도 거물급 명장이 등판(?)한 대회전에서 보란듯이 완승을 거둠으로써 적장은 물론 본토의 간특한 왜놈 수괴인 관백 도요토미에게 전의를 상실케 한 공적이란, 누천 년을 두고도 오히려 칭송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허나 저자는 이런 역사적 의의나 관점을 상세히 설명하기보다, "어떻게 해서 그는, 당대 동아시아 세계 대전의 결정적 국면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가" 같은, 구체적이면서도 소박한 질문에 대해 이야기처럼 쉬운 포멧으로 그 답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전략 전술의 능수능란한 구사란, 특히 왜란 당시의 충무공처럼 물량 면에서 절대 열세인 입장에서, 그저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축구에서 아무리 발재간이 좋아도 그 0.1초 동안의 챈스에서 킬러 인스팅트를 발휘하는 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니듯(발재간만 좋은 분은 축구 선수 아닌 분 중에도 꽤 많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오히려 신의 한 수를 구사하는 건 품성 자체가 완성의 경지에 다다라야 가능한 법입니다. 멘탈이 불완전한 자는 오히려 평소에 피우던 잔재주도, 위기에 몰려서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망각하고 마는 법이지요. 하물며 민족 전체의 존망을 한 어깨에 책임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 책은 충무공의 생을 조명하되, 그의 발자취가 아직도 아스라이 남아 있는 남도(南道) 여러 곳의 명소를 저자께서 직접 답사하여 집필된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미소가 여러 번 머금어졌는데요. 일단 뒤표지를 보시면 책의 발간 취지가 12컷의 만화로 소개되었습니다. 재미도 있을 뿐더러 오늘날 우리가 충무공의 고결한 족적을 왜 되새기고, 앞으로 어떻게 현창해야 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인 독자는 물론 어린 학생들도, "까다롭고 낯선 옛날 역사" 같은 거부감을 떨쳐 내고 성웅의 행적에 한층 편하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대체 이순신 같은 성웅을 배출한 가문은 어떤 내력을 지녔는지 누구나 궁금해할 만합니다. 덕수 이씨이며 서울 건천동 출생이심은 독자인 저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이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근래 새주소명에서 이곳을 "마른내"로 바꾸었다고 적습니다. 건 자가 마를 건(乾), 천 자가 내 천(川)자였나 봅니다(쉽게 유추할 수는 있지만요). 저자께서는 예쁜 이름으로 잘 바꾸었다고 하시는데 저 역시 같은 느낌이며 아마 다들 생각이 비슷하실 듯합니다.

구도장원공인 이율곡과도 같은 문중에 동시대인이시긴 하나 (아무래도 당대의 가세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는지) 왕래는 자주 없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충무공의 조부 이백록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집안이 한미하게 전락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젊은 순신이 번번이 입신 양명에 지장을 받았다던 과거의 정설을 잠시 언급하지만, 아주 최근의 학설(정설)은 이런 주장에 딱히 근거가 없다고 본다는 점도 소개합니다. 따라서, 이순신이 (억울한) 역적 누명을 쓴 집안 출신이라는 통념은 수정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백록은 조정암과 고유가 깊었으나, 사화에 연루된 건 아니고 연산(조정암 이전의 폐출 군주지요) 대의 어지러운 정치에 실망하여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책은 설명합니다. 그의 증조부는 연산이 세자 시절 스승을 맡기도 한 이거(李琚)입니다. 우리가 조지서와 허침은 알아도 이거가 연산의 스승 노릇을 한 사실은 잘 모르죠. 이거는 성종 연간 암행어사로 활약하여 탐관오리를 적발하기도 했으니 과연 그 증조부에 그 증손자입니다.

책에는 재미있는 만화가 여러 번 끼어들어 어린 독자층의 이해를 돕습니다. 요즘 가정마다 아동용 전집 몇 질 정도는 다들 구비하셨을 텐데요. 이전에도 전집은 애들 교육을 위해 몇 세트씩 갖춰 두었지만, 요즘은 그 중 상당수가 만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아동 전집에서 눈에 익은 듯한 포맷의 만화가 수시로 삽입되어, 입가에 미소도 머금게 하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주는 게 최고의 장점입니다. 텍스트는 장정호 선생이 집필하셨고, 이런 만화들은 김상화 선생이 담당하셨다고 나오네요. 위 문단의 내용 상당수(일부는 독자인 제가 보충해 넣었지만)도 만화로 설명되었기에, 어린이나 초심자가 읽기 상당히 편합니다.

저자도 말씀하시듯 이순신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늦은 나이인 32세에, 문과도 아닌 무과에 몇 번의 낙방을 거쳐 간신히 급제했습니다. 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기록이 미비하여 현재까지도 명쾌히 해명되지 못하고 있죠. 다만 어려운 가정 형편이 그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가능합니다. 전남 보성에서 수재로 소문 났던 박주선 씨(구 민주당 사무총장, 청와대(DJ 시절) 비서관 등 역임. 현 바른미래당 국회의원)도 동생들을 돌보느라 사시에 늦게 합격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죠. 그가 맡은 첫 공직은 "권지 훈련원 봉사"인데, 책에도 설명이 나오지만 "권지(權知)"는 임시직이란 뜻입니다. 이 시절에도 그는 강직한 품성을 구태여 감추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처결하다 죄천당하는데, 인사 담당 관리를 탓할 것도 없이 조정의 최고 어른인 임금 자신부터가 못난 아집 분자였으니 이런 초보 공무원 시절은 고사하고 일생 전체가 얼마나 피곤한 여정이었는지는 벌써부터 조짐이 보였다고나 해야겠죠.

영웅의 일생에는 소소한 빌런이 들러붙어 서스펜스 양념 구실을 하는 경우가 왕왕 보이는데, 충무공 본인이야 물론 고달프기 짝이 없었겠습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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