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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 한국 KBS, 영국 BBC, 독일 ZDF 방영 다큐멘터리
KBS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류종훈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6월
평점 :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내놓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나 남한에서나 최근 부쩍
비호감도가 낮아진 바로 그 사람이겠는데요. 사실 이런 쉬운 답이 과연 타당하기까지 한지는 우리 모두가 다시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2천만을 훌쩍 넘기는 인구가 거주하며, 기근과 빈곤에 시달리기는 하나 이렇다할 반정부 폭동, 소요 없이 근 칠십 년을
유지되는 체제, 정치 단위인데 그저 독재자 한 사람의 이름만 거론하고 그쳐서야 책임 있는 설명이 못 됩니다. 좋건 싫건, 대화의
파트너로선 적성 단체로서건 간에, 우리는 그들의 실체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우리 자신의 생존과 복리를 위해서도, 있습니다.
사실
"독재자 한 사람이 다스리는 국가"라는 규정은 기술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옳지 못합니다. 정말로 그런 나라라면 그건 독재자가
아니라 이미 신에 가깝겠고, 독재자에게 요긴한 도움을 주며 시혜를 받는 여러 보좌진, 충신 그룹이 있을 것입니다. 독재자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체제의 내실을 다져 나가는 데 큰 기여를 하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혹시 이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궐위라도
하면 시스템 전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없는지, 전체 구조를 쓰러뜨리는 비결은 꼭 핵심을 타격하는 게 아니라,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략하는 의외의 손쉬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설령 영원한 동반자로 위상이 재설정된다 해도, 그 상황이라면 오히려
서로를 잘 알 필요가 더 절실해집니다.
김정은이
선언한 풍계리 폐쇄는 비핵화 과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중략).. IAEA의 사찰을 받는다면 더 큰
신뢰를... 재래식 무기 역시 중요한 위협 요소이며... 양측이 병력 수를 50만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p30)
이상은
미국 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베넷 박사의 의견 발췌인데, 사실 무엇이 "미국의 입장"인지는 민간기관의 개인이 정할 수
있는 게 못 됩니다. 국가원수라는 사람 말이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판에 일개 전문가 레벨에서 뭘 확언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이 단행한 그 시설의 폐쇄 조치에 어떤 진정성이 담겼는지, 혹은 대외용 전시 제스처에 불과한지는 시간을 두고 더 지켜 볼
필요가 물론 있겠죠. 책(그리고 KBS 등에서 제작 방영한 특집 다큐)에서는 이런 다양한 의견들을 소개하며, 마냥 순진하게 믿을
것도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실제 처지나 속내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도 진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코멘트로 시작합니다.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정확히 측정, 판단하려면, 나의 무지에 대한 점검과 인정 단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일단 권력 승계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을 책은 지적합니다. 김정일만 해도 1980년대부터 사실상 실권자로 자리했을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그의 부친과
파워 게임을 벌였을 만큼이었으며, 많은 소생을 둔 데다 후처 김성애가 현직의 퍼스트레이디로서 군림하던 실정에서, 순전히 자신의
능력과 수완(아무리 잔혹하고 떳떳지 못한 것이라 해도)으로 권좌를 쟁취한 건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기나긴 승계 과정에서 이미
권력 구조의 교통 정리 역시 자연스럽게 끝나 있었을 겁니다. 반면 김정은의 경우 외부에서 그 존재 자체도 분명히 몰랐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유명했던 다른 아들들을 더 선순위에 올려 놓는 예측을 하는 중이라서, 그의 승계 소식은 더 충격적인 뉴스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김정일이
이미 통치 기간 후반부에 중병으로 몸져 누웠던 사실을 지적하는데, 왕실의 적통자로서 많은 호사도 누렸겠으나 사람됨의 그릇이 과연
권력 투쟁 와중에서 그 고뇌와 압박 가득한 과정을 견뎌낼 만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업적과 결과를 이뤄 내어도 큰
대가(건강의 상실 등)를 결국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튼 홀로 병상을 지킨 두 자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정은과 여정
남매였습니다. 이때 각각 스물 넷, 스물 둘이었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권력 서열이라는 게 존재했는데, 인민과 노동자 대중을 위한다면서 이런 음침하고 반민주적인 기제로 권력을 가동한다는 게
아이러니 중 아이러니입니다. 특이하게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이 서열을 발표하지 않는데, 그래서 외부 매체에서는 행사 등에의 등장
횟수 같은 걸 따져 간접으로 추론하곤 한다는군요(이 책이 미디어 종사자들의 시선에 의해 쓰여졌음을 유의해 주십시오).
김정은이
아무리 짧은 준비기간을 거쳐 권좌에 올랐다고는 하나 부친에 의해 확실한 낙점을 받은 게 사실이므로 최고지도자의 사망 후 혼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역시 꼼꼼한 통치자였으므로 젊은 아들이 갑자기 권력을 잡았을 때 혹 주변에서 정변 따위를
일으켜 질서를 위협하지 않을지, 심사숙고와 배려를 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김정일의 관을 운구한 "7인방"은 그가 생전에 가장
신뢰하던 인사들이었으며, 예전으로 치면 "고명대신" 같은 존재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임금과 신하 사이의 충성이란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퇴색하게 마련이며, 사마의 같은 이도 황제가 친히 손을 잡고 당부까지 했건만 기어이 사변을 일으켜 역적질을 벌였던
것입니다.
책은 현재 "당시의
7인방" 중 자리를 지킨 이가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특히 장성택 같은 이는 김정은의 고모부이기까지 한데도 무참히,
극단적인 수단으로 처형당했습니다. 현재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냉정히 수를 두는 그의 스타일이나 기질, 국량을 볼 때 우리가
모르는 무슨 사정이 있었으며, 당시 서방 언론의 관측처럼 일시적 변덕이나 정신적 불안정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음도 우리는 족심스레
떠올려 보게 됩니다. 즉 상대 측에서 어떤 모션, 무브가 있었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패륜적, 비인도적 악행임은 분명하지만, 냉정한 현실정치에서 윤리 도덕이 우선 잣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도자의
깜냥은 그 밑에 어떤 사람들을 부리는지로 재어 볼 수 있습니다. 무능한 통치자는 한편으로 컴플렉스 때문에, 한편으로 안목의 결여
때문에 주변에 아첨꾼들만 득실거리게 방치합니다. 이런 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애쓰고, 정식 계선 조직보다는 비선 라인에
조언이나 의사 결정을 의존하다 재앙을 자초합니다. 현재 국무위원회 국장, 조선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 등의 직함을 지닌
마원춘(오원춘은 아닙니다!)의 경우, 책에 나온 대로라면 "어떤 건축물이라도 한 번 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원가 계산이 가능한
특출한 재능을 지닌" 인물이라고 합니다. 충성도보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지도자라야 비전이 서 있고 자신감이 충만한 그릇이라고 할 수
있죠. 책에는 이처럼 새로이 실세로 떠오르는 인물들에 대해 정부직과 당직 두 가지를 병기하는데 북한 체제의 특성상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그리고 연계 다큐)에서 발언을 인용한 북한 출신 인사(탈북민 등)들에 의하면, "전에 잘 못 듣던
인사들로서 아마도 실무 능력 위주로 등용된 듯"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창업자 김일성의 카리스마는 확고부동하며, 제작진이 러시아 등과 접촉하여 확인한 문서에는 김일성 대위가 1930년대 만주에서
"문화 수준이 높은" 조선인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 투쟁을 벌인 기록이나 문서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일성 자신의 자필
서명이 과연 어떤 신빙성을 새로 확보하는지는 알 수 없으며(인물 사진 같은 것도 없이),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혁혁한 공적을 세운
건 간도 일대의 동포들이 일찍부터 입을 모아 동의했으나 문제는 그 김일성 장군과 지금 이 사람이 동일인이냐는 점입니다. 군사정권
시절 반공 선전 출처 여부와는 아무 관계 없이 그것대로 당연히 객관적 검증이 되어야만 하며, 결코 북한 측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서 좋을 게 하나 없을 연변 동포 전문가 상당수가 여전히 "가짜설"을 근거에 의해 제시한다는 점 유념해야 합니다. 물론
학문적 연구 결과 의심의 여지 없이 항일 행적이 결론 난다면 지체없이 수용해야겠지만 말입니다.
마치
한국의 대기업에서 구 "기조실" 같은 게 전략 구상의 사령탑이었던 것처럼, 북한의 노동당에선 "조직지도부"가 파워 엘리트, 핵심
실세가 집결한 조직이라고 합니다. 전 인민군 고위 장교 출신이라는 장광일(가명)의 의견으로는,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의사와
약사의 관계"에 비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령 조직지도부에 비해 부차적 위상이라고 해도, 당이든 정부든 정상적인
시스템에서 "선전선동부" 같은 게 그처럼 실세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게 납득이 안 됩니다. 정부나 지도자는 국민에게, 무언가 공리와
효용을 누릴 수 있는 실체, 실물을 쥐어 주는 게 의무이지, 현실은 시궁창인데 기만과 선전만 일삼아서 뭘 어쩌자는 건지요.
한국에서 실세 부처는 재정경제부 같은 곳이 아닙니까.
김정일은
과거 열차를 타고 러시아 등을 방문하곤 했는데, 이때 그를 직접 본 전 러시아 극동전권대사 콘스탄틴(퇴마사 아닙니다~)
폴리코프스키의 증언이 나와 있습니다. "수완 있는 딸이 있는데 나이는 20대이다." 이 딸은 김설송을 가리켰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북한 같은 가부장 체제에서 여성이 권력을 승계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김설송은 김정일의 결재
사항까지 일일이 대행했다고 하는데 서명만 김정일일 뿐 실제는 그녀의 처리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의 진부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김일성이 "인정"한 유일한 며느리의 소생이라는 점에서 긍정하는 의견이 있고, "전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는 이가 있는데 이 사실이 중요한 건 북한 권력 구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죽기 전 두 딸, 즉 설송과 여정에게 정은의 보좌를 각별히 부탁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헌데 지금 우리가 보다시피, 권력의
실세이자 지근거리 보좌역으로는 후자만 요란하게 눈에 띌 뿐입니다. 서류를 들고다니거나 의자를 뒤로 빼 주는 시중은 더 낮은
직급에게 시켜도 될 텐데 뭐하러 그런 것까지 친동생에게 맡기는지 모를 일이기도 합니다. 살세는 더 비밀스러운 포지션에서, 머리를 더
쓰는 업무에 몰두하는 게 정상이죠.
"달러벌이
일꾼" 이야기는 과거 김일성, 김정은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이때 스웨덴 외교관들이 위폐 유통, 심지어 마약 밀수에까지 손을 대다
추방당하는 극도의 망신도 당했죠. 경제 제재가 수십 년 동안 이어졌는데 리비아나 이란, 쿠바 등과 달리 아직도 체제가 유지되는 걸
보면 의외의 강점, 건강성 등이 내재한 게 북한 경제입니다. 이 책에서는 소위 "달러 히어로즈"를 거론하며, 그저 세뇌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 나름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발휘인지 세계 최악의 고립 경제 단위인 북한을 떠받치는 노동 계층의 실상을
조명합니다. 예상하던 바이지만 이들 노동자들의 생활상은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고 합니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정작
노동자가 이처럼이나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는 현실, 북한의 엘리트 상층부가 가장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