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사면초가 1
소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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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쯤은 인기가 많아지는 순간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그게 지금인가 보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왜 인기를 의식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튼 아이들은 자신이 학급에서 인기 있는 편인지, 보통인지, 아예 왕따에 가까운지 무척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공부 잘하거나 장차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능력을 기르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한 듯하고, 왕따를 당하거나 부적응자임이 드러나면 인간적 가치를 모두 부정 당한 듯 괴로워합니다. 사실 그 나이에는 모든 체험과 감정적 반응이 버겁고 아프고 힘겹게 마련이겠으나, 이때 한번 큰 상처를 입거나 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회복이 힘들게도 보입니다.

이 웹툰(도서판)의 주인공은 여성 틴에이저이며, 이름은 "이여주"입니다. 그러니 여주가 "여주"인 셈이며, 고등학생으로 보낼 앞으로의 몇 년 동안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던 그녀는 잘생긴 네 남자가 한꺼번에 자신을 좋아하는 뜻밖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네 아이가 쌍둥이 형제들이란 건데, 그래서 저 제목에 나오듯 "말그대로 사면초가"입니다. "즐거운 비명" 같은 게 아니냐며 마뜩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겠으나, 좋은 건 좋은 것대로 결정(장애)의 순간이 괴로운 법이며, 누구에게는 환희를 안기겠으나 다른 이들(적어도 세 명)에게는 아픔을 주게 될 자신의 처지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아직 순수한 영혼이라서 그렇겠으며, 어디서 세파에 찌들고 못된 것만 가려 배운 썩은 영혼에게는 당치도 않은 고민이나 갈등이겠습니다.

쌍둥이라지만 우리도 봐서 알듯 생김새도 다르고(만약 같다면 여주 등을 걱정하기보다, 밖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엄청 곤란을 겪을 우리 독자들이 문제겠습니다) 어쩜 그렇게 성격들이 차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괜찮은 아이들이라 누굴 선택해도 행복할 것 같지만, 여주는 이 선택의 과정이 사실은 나(여주)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임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됩니다. 누구와 함께 지내야 지금이나 먼 장래에나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겠으며, 그 와중에서 무엇을 얻게 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네 아이 중 각자가 여주에게 잘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도저히 안 되는 게 있겠으니 말입니다) 꼼꼼히 따지는 게 보통 어려운 대목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행복, 만족, 즐거움, 보람을 위해서 삽니다. 여주(혹은 누구라고 해도)가 제 마음에 가장 드는 아이, 혹은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아이를 고르는 건 하나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은 바로 이 미션을 어떻게 만족시키느냐로 그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설령 돈을 많이 벌고 출세 가도를 달려도 이 부분에서 실패한 사람은, 겉보기나 평판이 어떠하든 스스로 불행한 인생임을 자신부터가 부인 못 합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만나고, 또 그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해도, 과연 그걸로 다일까요? 이 1권에서는 여주뿐 아니라 나비 등 여러 주변 인물들을 통해 "영리하게 사랑을 차지하는 것"의 가치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기적인 사람으로만 남지 않는 과제"까지 동시에 지적, 부각하고 있습니다.

p270을 보면 나비네 집에 "여장(!)"을 하고 들어간 사남이가 나비와 나누는 대화가 있습니다.
"넌 일남과 여주가 서로 사귄다고 했을 때 괜찮았어?"
"응, 난 착하니까."
이 말을 듣고 사남은 눈물을 쏟습니다.
"왜 울어?"
"난... 나빠서....."

세상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만큼 착한 사람, 때가 덜 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마지막으로 절망했던 때가 언제일까요? 돈이 없어서, 경쟁에서 패배해서, 비전이 없어서, 머리가 나빠서 자신이 미워질 때야 늙어 죽기까지 수시로 맞습니다만,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빠서, 못돼서" 내가 너무 싫어지고, 슬퍼졌던 때가 과연 얼마나 아득한 망각 속의 과거였는지. 우리가 진정 눈물을 뿜어야 할 때는, 세속적인 무엇인가를 놓치고 분해하던 그 순간이 아니라, "그 좋았던 내가 대체 어디로 가고 없지?"를 깨닫는 부끄러움의 시간이라야 할 겁니다.

나쁘다는 건, 특히 여기서는 "이기적인 것"을 뜻하더군요. 못난 인간은 때를 가리지 못하고 무작정 이기적으로 굴고, 이기적으로 구는 자신이 수준이 향상되었다거나 각성을 한 결과라고 엄청난 착각을 합니다. 사실 이런 인간은 구제불능이며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순정의 세계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그러지 말아야 할 때, 혹은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을 때에 이기적으로 굴거나 그러기 직전인 자신에 대해 몹시도 부끄러워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정직하지 말자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마땅히 챙겨야 할 건 챙겨 가면서, 한편으로는 더티하거나 치사해지지 않고 언제나 근사함, 쿨함을 유지하는 것, 이게 그들이 원하는 경지입니다.

웹툰 연재 당시에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끈 비결은 이처럼 뭔가 마음이 싸해지는 청순한 주제의 강조 말고도 깨알같은 위트가 있겠는데, 예를 들면 p272에서 가발(여장의 일부)이 훌러덩 벗겨진 사남이 나비의 엄마와 바로 마주쳐 (두 사람 다) 엄청 놀라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예상을 비껴가며 나비의 모친께선 "숏컷도 예쁘네?" 라는 말과 함께 어색한 상황을 마무리짓습니다(배려라기보다, 캡션의 해명대로 "정말 눈치를 못 채신 듯"). 이런 모든 "에피소드"를 일일이 네 컷 안에 장악해 넣은 솜씨도 정말 놀랍습니다.

"사실 내가 준 건데" 이는 마치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애서 주인공이 왕자를 구해 주고도 크레딧을 남에게 빼앗긴 채 말도 못하고 상황을 바라만 봐야 했던 대목과도 비슷합니다. 삼남은 생각만 가득할 뿐 전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연애 포함 모든 것을 책에서만 배운 타입입니다. 책으로만 배웠다는 건, 달리 말하면 제대로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나 같습니다.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면 구태여 귀찮게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존재까지 모르는 건 너무 서운한" 게 이 삼남의 안타까운 마음인데, 네, 참 그렇네요.

여주는 중반쯤에 마침내 여튼 "종합 점수가 높은(p206에 다른 누구의 입을 통해 이 표현이 나오죠)" 일남을 선택하는데, 말이 쌍둥이지 일남은 왜 자신만 생일이 다른지 내내 알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진실과 마주합니다. "앞으로 누가 너에게 상처를 주려 하거든...." 우산을 건네며 그녀가 해 주는 충고, 혹은 위안입니다. "공포를 잊는 데에는 과연 남 이야기가 최고인지" 수련회에서 낙오한 둘은 수다 끝에 지쳐 나란히 잠듭니다. p215의 이 장면은 마치 알퐁스 도데의 <별>의 결말을 보는 듯합니다.

챕터마다 이 순정만화의 분위기와는 전혀 안 어울릴 듯한 고사성어, 사자성구, 혹은 속담 등이 인용되어 제목을 장식하는 스타일도 재미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문예도, 가볍게 소화하는 장르에서 이런 반어적 장식을 갖다 쓰며 묘한 미학적 대비효과를 내게 하는 기법을 보곤 하는데, 한국 웹툰의 스타일링이 (그런 것들로부터 딱히 영향을 받았을 법하지도 않은데) 자체 진화를 거쳐 이 정도에까지 이른 사실에 다시 놀라게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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