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마케팅 - 그들은 어떻게 비용을 수익으로 바꾸었나?
조 풀리지.로버트 로즈 지음, 박상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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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누구에게 팔아서 지속적인 수익원을 구축할 것인가. 이 과제는 어느 직종 어떤 규모를 막론하고 기업의 절박한 존재 기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태까지 고객과 접촉하는 많은 채널과 방식, 효과적인 소통 수단들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들 중 어떤 것은 불변의 진리로까지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은, 이 모든 것에 대한 가치 부여, 판단, 효능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했고, 어떻게 해야 매출을 증진시킬지 그 답도 (우리 눈에 보이지만 않는다뿐) 정해진 듯한데, 어떤 기업(혹은 개인)은 몹시도 잘나가고, 그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방법을 찾지 못해 무척이나 고전합니다.

"흥하거나 통하는 마케팅"의 해법은 예전보다 그 수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라 저게 필요하다 등등 노하우도 사방에서 제시됩니다. 그러나 따라해 보면 기대만큼, 혹은 소문의 요란함 만큼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분명 놓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홍성태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술은 흔해도 전략은 실종되었다. 지금껏 디지털 마케팅이라 부르던 것들은 구시대의 낡은 방법을 그저 온라인에만 슬쩍 얹은 데에 불과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한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이미 바뀌었다." 아마도 홍 교수가 비판하는 것은, 책 혹은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어떻게 하면 클릭 수를 늘릴 수 있나" 같은 제목 하에 노하우랍시고 돌아다니는 여러 복잡한(그러나 매출로까지 유효하게 이어지지 않는) 노하우들이겠으며, 이는 우리도 의도하든 아니든 자주 만나는 잡다한 팁들입니다. 복잡하기만 할 뿐 정작 매출에 도움이 안 되는데, 그렇다고 비웃어 주고 넘어갈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처럼 장기간에 걸쳐 머리를 짜낸 결과가 왜 그것밖에 안 되었는지 진지하게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놓치고 있는 "본질"이, 이 인터넷 시대를 어느 지점에서 분명 관통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른바 TV, 신문 등 전통적인 대 매체에 의존하는 방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매스컴(일본식 용어죠), 매스 미디어 등으로 부를 때 "미디어(매체)"란 말이 괜히 쓰인 게 아닙니다. 채널이 그런 것들밖에 없고, 많은 대중("오디언스")을 끌어모으고, 혹은 장악하고 있으니 이들 채널에 목을 매는 게 당연했습니다. 인터넷의 대중화는 이 모든 환경을 바꿔 놓았는데, 많은 이들이 기존의 매체, 채널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저격해 주는 다양한 미디어로 관심이 이동하니, 거대한 미디어 기업은 영향력을 잃는 데다 광고 매출까지 줄어들어 휘청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려면 신문 몇은 구독해야 하고, 신문도 먹고살려면 광고를 실어야 하니 이런 것도 봐 줘야 한다는 상식 같은 건 이제 아주 낡은 통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케터 입장이 아니라 해도, 이런 낡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대상부터를 머리에서 지워야, 완전히 바뀐 시대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곳곳에서 주어 "우리"로 시작하는 문장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아마존에서 대시 버튼 하나로 종전에 주문했던 브랜드를 거의 그대로 재주문하고 있다(책 p79)" 같은 것들입니다. 과거에는 매체가 새로이 제시하는 다양한 브랜드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가입 서비스"가 그 모든 번거롭고 소소한 갈등을 부르는 순간을 모두 대체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래도 개인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무엇인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던 그때가 좋았다" 같은 향수의 자극은, 설령 그것이 논리적, 공리적으로 타당하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현실은 이미 송두리째 바뀌어 있으며 대세로 굳어졌고, 저자들은 그런 현실의 엄정함을 "보편적 우리" 같은 주어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들부터가 그런 현실에 엄격히 길들어 있는데, 과거의 고립된 지표와 기준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겁니다.

"우리는 오디언스를 설득하는 데 필요한 메시지를 극대화하면서, 그에 따른 빈도(수고)나 비용은 극소화해야 한다(책 p59)." 지난시대에 거대 미디어 기업에다 집행, 지불하는 광고비용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효과도 컸지만(컸다기보다는 다른 수단이 없으므로), 가격- 성능 비율을 따지면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고개가 갸웃해질 때가 많았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미디어 기업도 쇠퇴하고, 효과적인 전달 수단을 디자인, 연출, 창조해 주는 대행기업(광고사 등)도 엄청 고전하는 중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는 기업도 많고, 이럴 때일수록 저 상단의 원칙(무엇을 극대화하고 무엇은 반대로 극소화해야 할지의 원칙)은 여전히 또 강조됩니다. 시대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낡고 잘못된 강박은 버리고, 본연의 원칙은 그것대로 준수할 수 있습니다.

낡은 생각을 분명히 버려야 생존이 가능한데, 저자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원칙이 관통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고도 합니다. "새로운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과, 새로운 마케팅 비즈니스 모델은 완전히 일치한다." 즉, 미디어 회사(낡은 시대의 공룡이 아닌,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그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기업)는, 1) 전통적인 미디어 상품도 제공하고, 2) 동시에 제품과 서비스까지 함께 오디언스에 권유, 판매함으로써, 한 방향이 아니라 양쪽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입니다. 무슨 소린고 하니 광고나 구독은 그것대로 오디언스에 제공하면서 수입원으로 유지하고, 동시에 독자적인 서비스와 상품도 충성스러운(관심을 보이는) 고객에게 판매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쌍방향의 소비자, 구매층을 염두에 두고 관리하는 방식은 예컨대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서 이미 비즈니스 모델의 기본형으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네이버는 기업 상대로 꾸준히 광고도 유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사이트를 방문하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열심히, 유무형의 서비스를 판매하려고 애씁니다. 이 책 저자들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미디어와 마케팅을 일치시키자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따라서, 이 점이 중요한데, 이런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이미 "마케팅"의 개념조차 경계가 허물어지는 겁니다. 소통 자체가 영업이고, 고안, 제조된 상품을 딱히 어필시켜야 한다는 종전의 강박이 해소되는 지점이죠.

대표적인 예로는 디즈니를 들고 있습니다. 디즈니는 미디어 회사일까요, 아니면 서비스나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일까요? 인터넷이 세상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기 훨씬 이전부터 디즈니는 이 양자의 영업을 병행해 왔습니다. 전혀 별개의 영역이었던 두 방식은 디즈니 사 안에서는 서로 수렴해 왔는데, 이것이 여타의 영화사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흥망, 부침을 거듭하는 와중에서 유독 이 회사만 기복 없이 성공 가도를 질주한 비결입니다. 한때 잘나가던 UA 같은 곳은 영화 한 편을 잘못 발주하여 부도를 맞았고, 타임워너-CNN도 십 수년 전에 비해 사세가 위축되었으며, 루퍼트 머독의 폭스 등도 매각을 고려할 만큼 부진하다고 전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잘나가는 회사는 과연 디즈니밖에 없는데, 이는 1) 수익원을 두 방향의 오디언스에서 얻는 데다, 2) 효과는 극대화, 비용은 최소화라는 원칙을 매우 충실히 지켜온 덕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마케팅이라는 별개 부서, 활동에서 낭비 요인이 없으니 이게 가능한 거죠.

"비슷하게 해서는 경쟁을 무너뜨릴 수 없다. 비슷한 것은 더 많은 비슷한 것을 만들 뿐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회사의 시간과,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오디언스의 시간을 모두 무너뜨릴 뿐이다." (p214)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어떻게 해야 두 방향의 활동을 수렴시키고 마케팅(이 자체가 이미 낡은 개념이지만)의 효율을 극대화(비용은 최소화)할 것인지를 논하며, 후반부에서는 "독창성"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소통과 전달(수용까지도)은 독창적인 방식이라야 한다는 거죠.

"지금이 바로 콘텐트의 틈새, 그 틈새에서의 편집 미션, 그 차별화 여부 등을 진지하게 분석해 볼 때다. 이것이 대부분의 회사와 비슷하다면, 우리는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다."

현재도 그렇고 그저 업계 평균만 하면, 남 하는 대로만 딱히 안 뒤처지고 따라하면 성공이라는 관점은 여전히 팽배해 있습니다. "중간은 가는" 미덕이 아직도 통념상 얼마나 높게 평가되는지 모릅니다. 저자들은 이런 생각 자체가 자사의 역량을 좀먹을 뿐 아니라, 고객의 소중한 시간까지 낭비시키는 엄청난 민폐라고 지적합니다.

"어떤 식으로건 관계를 맺는 건 도움이 되지만, 모든 구독자가 동일한 수준의 가치를 주는 건 아니다." (p223)

저자들은, 나의 메시지를 구독하는 계층에 따라 그 중요도를 달리 매기면서 어떤 구독자에 가장 큰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지 차별화 전략을 권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내가 가장 큰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오디언스는 이메일 구독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인쇄물(전통 수단)인데, 통제력 팩터는 높으나 발송비, 인쇄비 등이 발생하므로(이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마케팅 비용 측면[배보다 배꼽이 더 큼]을 결코 간과하지 말라는 주문과 통합니다), 우선순위가 낮아집니다. 그 외, 1) 핀터레스트에서는 최종 소유권을 행사 못 하고, 2) 링크드인은 특정 피드만 업데이트 노출되며, 3) 유튜브에서는 "구독자 번(subscriber burn)"이라는 함정이 있고, 페북, 인스타 등은 계속 알고리즘을 바꾸기 때문에 우리(회사)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게 큰 약점입니다. 다만 여기서도 중요한 게, 아주 독창성이 높은 컨텐트는 이들 매체에서도 결국 높은 순위에 노출된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이런 크리에이터는 여기서도 통제권을 갖는 셈입니다.

마켓 3.0은 진화한다. 첫 단계는 거래 중심, 판매 성사가 목적이었으며 둘째 단계에서는 (고객과의) 관계 지속, 증진이 중요했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소비자를 "초청"해, 제품 개발과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p284)

이는 필립 코틀러의 말입니다. 맥락은 크게 봐서 서로 통하지만, 확실히 이 (과격할 만큼 참신한)책을 읽고 나서 저 유명한 언급을 다시 보니 뭔가 좀 낡았다는 느낌도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뭔가 동기부여가 확 되는 기분 부인 못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실천해 보려 하니 주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자들 말 대로, "시도한다고 손해 볼 게 무엇이겠는가?"가 또 맞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말로 책을 마무리짓습니다. "비즈니스의 미래에 진입한 것을 환영한다. 모든 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미래에 먼저 한 발 들이지를 못하면 미래에 아예 합류할 수 없고, 종전처럼 남들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채널이나 기법은 이미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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