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프레임 전쟁이 온다 - 진보 VS 보수 향후 30년의 조건 새사연 지식숲 시리즈 3
박세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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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는 선거가 며칠 전에 있었습니다. 유생 육가는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유방에게 직언했다는 고사가 있긴 하나, 그 일화는 싸움의 향방이 결정되고 그 사후처리가 더 중요하다는 맥락도 담습니다. 이 책은 이번 지선의 향방이 결정되기 전에 집필, 출간되었겠지만 사실 선거 결과도 그렇고 그 전날 열린 미북 정상회담의 중요한 기조도 일찌감치 누구나 예측이 가능했기에, 책의 이런 주장을 놓고는, 오히려 향후 정국을 보다 크게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어떤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 정권이 프레임 덕에 승승장구한다고만 볼 것은 아니지만, 계속 잘나가려면 프레임의 새로운 국면을 더 가다듬거나, 향후 십 년을 버틸 새로운 프레임을 마련하자는 메시지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김영삼이라는 어느 노회한 정치인이 마련했던 "프레임"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합니다. 저자의 분석은, 김영삼이 맞이했던 정치 여정의 큰 위기에 대한 프레밍에서 시작합니다. 김영삼은 직선제가 도입된 대선에서 낙선하고,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제3당의 지도자로까지 위상이 후퇴하는 결과를 맞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3당합당이라는 담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보수"라는 큰 깃발 아래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한데 모이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외연을 크게 확대하고, 그 지지자들은 "우리는 한편으로는 민주화의 주역, 한편으로는 산업화를 이끈 세력까지 아우른다"는 자부심까지 지닐 수 있었다는 겁니다.

반면 이에 포함되지 못한 진영은, 서로 정체성도 다르면서 주류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소외 의식까지 겹쳐 한동안 올바른 정치적 대응에 나설 수도 없었다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은 김영삼이라는 정치인의 "영웅적인 프레임 설정" 덕택이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입니다. 이 사례가 책 첫머리를 장식하는 건 저자 개인의 성향도 성향이겠으나, 그만큼 각 정치 세력들에게 "프레임의 선점,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려는 의도였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동의하고 싶지 않은데, 첫째 삼당 합당은 김영삼이란 개인이 최초에 주도한 기획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당시 집권 세력 중 신TK계열(이들 역시 제 꾀에 제가 넘어갔던 셈)이 구상한 빅텐트에 가까웠죠. 둘째 너무나 이질적인 세력들이 "보수"라는 기치 하에 몰려들었기에 내부 파쟁에 쉽게 빠져들어 (우리가 다 봤듯이) 가벼운 위기에조차 취약점을 드러내다 쉽게 붕괴되었습니다. 오래 가야 프레임이 프레임이지 내내 자중지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7년만에 깨졌으면 그게 무슨 프레임이겠습니까(홍준표씨 같은 사람도 이때 그 당에 픽업된 사람이고). 오히려 이를 물려받은 구 한나라당, 이회창씨가 뜻하지 않게 프레임 잔재의 이익을 누렸으나, 본인의 역량 부족으로 그 유리한 이점을 살리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지요.

셋째 삼당합당의 한 축인 JP 계열을 1995년에 대대적으로 축출하다 오히려 반대진영에 넘겨주는(이게 사상 초유의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지죠) 어리석음을 범했고, 빅텐트는커녕 자파 패권주의를 어설프게 시도하다 정치신인 이회창에게 별 수고 없이 당권을 쥐게끔 자초한 게 당시 YS계의 서투른 책략이었습니다. 한참 후 2012년 (정반대편의) 민주통합당 역시 너무 무리하게 외연 확장을 시도하다 손발이 안 맞아 총선에서 패배한 것과도 비슷합니다만, 오래 전 "민자당"도 "신한국당"도 다 실패한 프레임이었습니다(진영의 좌우와 무관하게 지나치게 비대한 조직은 운용이 어렵다는 걸 증명). 당시 "민정당"이 살고 싶었으면 자기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했어야 현명한 선택이었겠죠(공화계와의 소연합이라든지). 민정당은 그 아슬아슬한 후신마저 이번 지선에서 전멸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뿌리가 다른 세력은 오래 동거할 수 없습니다. 이익 앞에서 단단한 결합을 영원히 유지할 것만 같았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300년만에 요란한 이혼을 준비하는 모습이라든가, 결국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X친 막대기 취급 당하며 스페인 진보 진영에서 버림 받는 걸 보십시오.

오히려 저는 2016년 총선 전 반대파(안철수, 천정배, 정동영, 박지원 등)를 차례차례 다 몰아내고 지휘체계와 노선을 선명히, 일사불란하게 구축한 이른바 친노계의 무지비하고 냉혹한 선택이 여기까지 온 성공 동인이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승기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벌써 오늘 아침에도 장하성 실장 사임 여부를 둘러싸고 작은 잡음이 있었고(결국 스테이한다는 쪽이었으나), 조국 수석 역시 입지가 취약해졌다는 루머가 계속 떠돌기도 했고요.

여튼 책에서 주장하는 본론은 좀 더 넓어진 지평을 응시하자는 겁니다. 요지만 먼저 말하자면 크게 변화한 국제 정세 덕분에, 한국의 현 진보 진영이나 보수 세력이나 전혀 주체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중인데, 그게 바로 미-북 평화 협상이란 거죠. 저자는 다소 조심스럽게 논의를 전개하지만 요점만 얘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냉전 구도의 해체와 함께 남북 간의 체제 경쟁도 끝났다고 보던 김영삼 - 이명박 - 박근혜 정권에선 대북(對北) 고사 정책을 이어갔으나(여기서는 기묘하게도 YS가 보수로 분류되네요? 여튼 뭐), 북한은 죽을 듯하다 죽지 않고 핵무기 개발로 미국 본토 공략 카드까지 손에 쥐었다는 겁니다.

이 책에서 날카로운 분석이 하나 있는데, 이라크를 미국이 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대량 살상 무기(침공의 명분이었던)"를 이라크가 보유하지 못했기에 가능했다는 겁니다. 반대로 북은 실제 핵무기를 지니고 있기에 미국은 "절대, 절대" 쳐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저자의 관점입니다. 친다 친다 말만 많았지 미 본토가 핵 공격에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도저히 감행 못한다는 겁니다(여기에 트럼프는 한반도에서 수백만 사상자가 난다는 핑계를 또 대고 있지만). 이 지적은 불편하긴 해도 현 시점에서 반박이 불가한 타당한 분석입니다. 지금 하는 짓을 보면 트럼프가 꼬리를 내린 게 명백하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지금 기준으로 그렇다는 거고 앞으로 미국 강경파가 또 어떤 추동력을 얻어 "정밀 타격"을 추진할지는 모르는 거지만요)

"현실(북을 치기 힘듦)"을 똑바로 보자는 세력이 미국에서 힘을 얻으면, 그들이 한국의 보수 세력을 무슨 배려라도 하여 대북 강경책을 이어나가리리는 기대는 터무니없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과거에도 사실 미국은 한국의 보수세력을 그리 배려한 적도 없었습니다. 이승만은 북진 통일을 주장했으나 리지웨이 장군은 휴전선의 현상 유지 후 전쟁의 조기 종결을 의도했죠. 닉슨이나 그를 이은 카터 등은 남한에서 주한 미군 완전 철수까지 추진했었는데 카터는 카터라고 해도 닉슨은 공화당 소속의 확고한 보수주의자였습니다. 시대에 적응 못하고 현 보수 세력의 상당수는 그대로 도태되리라는 게 저자의 소 결론인데 저자만의 예측은 물론 아니고 다들 예상했던 바였지만 이번 지선 결과를 다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 자못 비장감이 들 만도 합니다.

그럼 트럼프 이전 오바마는 어떠했는가? 책에서는 미국이 북핵(ICBM까지 추가)이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 고려할 수 있는 세 가지 옵션을 분류하는데, 그 중 두번째 옵션이 "암묵적 용인, 현상 유지 관리"입니다. 명시적으로 용인도 안 하지만 경거망동시 바로 행동에 돌입하겠다는 태세를 유지하는 건데, 저자는 이 역시 힘들다는 겁니다. 파키스탄 등과 달리 북으로부터 핵 보유 용인을 대가로 얻어낼 수 있는 게 없고(근데 이건 좀 아닌 게, 파키스탄은 제대로 된 협력을제공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빈 라덴을 숨겨줬죠), 이를 방치하다간 미일, 한미 동맹의 기반이 되는 핵우산 체제까지 모두 깨어지고 되려 핵 확산 추세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오바마가 바로 이 기조를 잘 유지했다고 보고요. 이 지루한 현상 대치가 의외로 오래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는 않았는데(그 사이에 북한은 경제난으로 붕괴할 수도) 트럼프가 어리석게 혼자 조급증을 낸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네요. 여튼 저자는 단칼에 잘라 "이 두번째 전략은 유지 불가능"이라 말씀하시는데 저는 좀 고개가 갸웃해지긴 합니다.

선대와는 달리 ICBM이나 핵무기를 완성품 단계까지 이끈 현 지도자 김정은이 뭔가 판 자체를 크게 바꿔 놓은 건 사실이고, 이번 싱가폴 방문에서도 리셴룽(이현룡) 총리나 외무장관, 전 교육장관 등에게 이상할 만큼 따뜻한 환대("야.. 너 대단하다.." 뭐 이런?)를 받는 걸 봐도 뭔가 자기 힘으로 위기를 타개한 게 상징적으로 비춰지긴 합니다. 저자는 지나가듯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 팩터가 크게 작용하긴 했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이정희씨 같은 사람이 전대(김정일)와는 달리 이상하게 힘을 내던 것도 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지금 새삼 들기도... (앗 이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ㅎㅎ) 어쨌든 현재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고, 당장 남한에서 보수세력이 궤멸된 게 이 점을 선명히 증명합니다.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고 마냥 만세를 부르거나 승리감에 도취될 게 아니라, 변화한 상황에서 잡은 승기를 오래 유지하고 항구적인 시스템으로까지 이어가 보자는 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저자의 "제2프레임"론입니다. p183을 보면 그러나 저자는 큰 우려를 표현합니다. 소위 촛불혁명으로 인해 전통적인 보수 세력은 이미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었고, 여론조사에서도 보듯 문재인 대통령은 높은 개인적 인기를 여전히 누리고는 있습니다. 허나 "사회 경제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으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목표와는 매우 먼 거리에 놓였는데 이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문제의 진짜 원인이 다른 데 있었고, 문 정부가 의거하는 프레임이 (역시) 변화한 현실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입니다.

이 책이 취한 태도 중 크게 신뢰가 가는 건, 현상을 분석할 때 그 인근의 좁은 시점만 보지 않고, 현재를 있게 한 먼 과거(이의 획정은 사람에 따라 범위, 관점이 당연히 다르겠지만)까지 응시한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글로벌화가 확고한 대세라 여겨졌던 1990년대 중반을 돌이켜봅니다. 저 앞 1부에서 또하나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이 있었는데, 민자당 3당 연합이 워낙 큰 덩치로 외연을 확장하는 통에 그 반대진영이 자신을 진보, 좌파, 민족주의, 사민주의, 혹은 심지어 리버럴리즘(이거는 너무나도 애매한 스탠스라서, 반대로 신자유주의와 오히려 맥이 좀 통할 뿐 아니라, 나중에 등장한 미국의 티파티와도 한 발을 걸치는 겁니다) 중 무엇을 정체성으로 삼아야할지도 모를 만큼 혼란에 빠지게 했다는 겁니다(그나마 일시적이었다고 저는 봅니다만). 뭐 이거 하나만큼은 성공이었죠. 아무튼 현재의 국제 무역 질서가 어느 시점에 뿌리를 두었었는지 책은 제법 긴 분량을 할애하여 고찰하는데, 프레임이란 본래 이처럼 이론적 뿌리가 탄탄해야 오래가는 법이죠.

본시 노동 vs 자본의 프레임으로 세계를 획정한 건 마르크스의 사상에서였습니다. 어떤 바보 같은 밑바닥은 "마르크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목청을 높이다가, "모든 문제는 노조를 만들어 해결하면 다 풀린다"는 둥 전혀 앞뒤가 안 맞는, 지 얼굴에 지가 침을 뱉는 근본 없는 헛소리를 떠들기도 하죠. 지금 현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 대부분(임종석, 조국, 김경수 등)은 도대체가 NL의 깊은 뿌리를 제외하고는 그 올바른 정체성이나 정책 기조를 파악할 수가 없는 인사들인데, 이들 앞에서 마르크스를 폄훼하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근본 없는 비천한 인간의 아부란 건 이처럼이나 코믹하게 마련입니다. 뭘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고 심사숙고한 바도 없으면서 주워들은 풍월로만 떠드는 인간들이 대개 이런 행태를 보이죠. 여튼 저자는 이 노동 vs 자본의 "슈퍼프레임"에서 이후의 모든 정치모델이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친 맑스 진영뿐 아니라, 확고한 반대 진영 역시 이 노동vs 자본 프레임 하에서 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폈다는 소립니다. 개인적으로 백번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저자는 "복지국가" 프레임 역시 슈퍼 프레임인 자본 vs 노동에서 파생된, 작은 제3의 길로 보는데, 이 역시 슈퍼프레임 자체가 퇴조함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 2015년 10월 경에 서울대 교수들이 공동 집필한 <축적의 시간>이란 책을 읽고 일개 독자 입장에서 간단한 독후감도 남긴 적 있습니다. 뭐 여튼, 저자는 그 책 내용 중 일부를 원용하며, "개념 설계 지식 대부분은 명시적인 매뉴얼(밑바닥 바보는 매뉴얼이라면 무작정 사이비 숭배를 하고 보는데 그 매뉴얼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뭔지는 또 까맣게 모르죠)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개념 설계 역량은 자본 축적의 정도에 결코 비례하지 않으며, 오로지 지난한 시간의 시련을 견뎌야만 형성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일부 좌파 이론가들 중에는 여전히 자본 축적을 신비화, 절대시하는 경우가 있으나 현실 변화를 도외시한 시각이다(p314)." 그 정도가 아니라 자본 축적의 고도화로 인해 오히려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고 결국 무너진다는 스토리텔링은 맑시즘 이론 구조의 핵심 블럭입니다. 저자는 이런 프레임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겁니다.

저자가 대안 모델로 내세우는 건 "사람 중심 경제"입니다. 이 모델의 다른 이름은 창조경제이기도 한데, 특정 정치인의 구호와 꼭 연결시킬 건 없습니다. 이 컨셉 자체는 십 몇 년 전부터 있었고, 어느 정치인이 자기 편할 대로 선거 프레이즈로 선점한 거지 그 사람이 창안한 게 전혀 아니며 실제로 그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 바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청년 창업가들의 "후츠파" 정신과도 맥이 닿는데, 쉽게 말해 조직 내 경영자와 노동자의 구분을 없애고 직원 모두가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성공적인 벤처 기업에서 볼 수 있는)를 조성해서 여태 없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자는 겁니다. 이 모델 자체는 충남지사를 역임한 (몇 달 전에 처참히 몰락한) 모 정치인도 옹호한 바 있는데, 이게 보수 진영에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었지요. 그러나 현 대통령의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사람이 먼저다"와도 오히려 크게 맥이 통하는 이론입니다. 낡은 프레임으로 현실을 보니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난 시대의 슈퍼프레임을 올바로 이해하는 작업은 물론 중요합니다. 역사의 단절이란 있을 수 없고, 과거의 맥락을 올바로 이해해야 현재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는 역사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합니다(칭찬을 해도 뭘 똑바로 알고 칭찬을 해야 비례[非禮]가 아니듯). 그러나 구 프레임을 이해한다는 것과, 이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현 정부가 역사에 없던 대승을 거두었으나, 이런 호기를 제대로 활용 못 하고 또다시 전 시대의 실패 패턴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프레임 자체를 성공적으로 갈아타는 과정이 필수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책의 결론부, 즉 뉴 프레임과 대안 모델의 제시가 더 구체적이었으면 좋았겠으나, 이런 작업은 지식인 개인 레벨에서 이룰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죠. 판을 깔아줘야 할 쪽은 오히려 정치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 핵심 세력이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현실과 적극적으로 융화하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민노총에서 여당의 선거 유세 현장에 일일이 나타나며 방해한 일이라든가, (앞서 말했지만) 낡은 주장만 일삼다 처참히 몰락한 보수 진영의 참화가 다 뭘 말하는 거겠습니까?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면 현 정부의 미래도 과연 어떤 곤란한 상황을 맞을지 아무도 장담 못하는 겁니다. 중요한 건 진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적응해야 할 "현실"입니다. 이데올로기도 현실에 맞추어 이를 설명해 낼 능력이 있어야 존속할 가치가 있는 거겠고요. 저는 처음에 예전 조국 교수의 <진보 집권 플랜>같은 류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혀 편협하지 않고 그보다 훨씬 원대한 비전이 눈에 들어와서 무척 만족스럽고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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