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미래, 비트코인은 혁명인가 반란인가
임정빈 지음 / 시사매거진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은 "돈의 미래, 비트코인은 혁명인가 반란인가"로 되어 있어서 아 또 비트코인 이야기구나 하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워낙 이 주제로 많은 책이 나와 있으니까). 근데 책을 읽어 보니 오히려 내용의 방점은 "돈의 미래" 쪽에 놓여 있더군요. 아까 뉴스에 박 시장(현 시점에서 박 "후보"지만. 현 시장이라고 해도 현재는 법적으로 대행 체제이므로)이 "서울페이"를 연말에 도입하겠다는 것도 전해졌죠.

사람들이 거래에서 "피"처럼 쓰는 돈("피 같은 돈"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ㅋ)을 누가 만들고 어떤 시스템으로 운용하는지는 사실 인류 문명사의 어떤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개는 지역에서 패권을 장악한 집단이 독점 주조권까지도 가졌었습니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은 포퓰리즘으로 비난 받고도 있으나) 직접 민주제를 표방한 정치 결사가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바람에 한동안 무정부 상태가 이어진 적도 있습니다. 이때문에, "이탤릭시트"가 온다면서 증시 폭락이 이어질 거라는 뉴스도 떴고, 이런 뉴스야말로 공매도 타이밍 노리는 기관과 기자가 짜고치는 플레이라며 격렬히 반발하는 유저들의 댓글도 열심히 달렸습니다. 참 세상이 요지경인데 문제는 어느 한쪽 편을 간단히 들고 말 만큼 국제 정세나 경제 구조 돌아가는 게 간단치 않다는 데 있습니다. 여튼 직접 민주제가 정말 시대의 대세 중 하나라면, 돈 역시 분권화한 시스템에서 만들어지고 운용될 필요가 있겠고, 어쩌면 경제 섹터에서의 이런 새로운 시도가 (역으로) 정치의 민주화를 가속시킬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복잡한 세상을 올바로 파악하려면, 세상이 복잡해지는 원인을똑바로 분석한 책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죠. 그 원인이란 결국 "돈"입니다. 이것의 흐름이 어떻게 생기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보면 자세히는 몰라도 대략의 판도를 미뤄짐작할 수 있습니다. 밑바닥 돌대가리 주제에 가당치도 않은 상류층 행세를 하는 조류 같은 인간이나 "알고 싶지 않으며, 알고 싶다면 택시기사 말이나 특정 저자 책만 참고하면 된다"는 식의,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를 떠드는 거죠. 자기 생각을 갖고 사는 게 아니라 단기 메모리에 의지해서 지식과 정보를 패스트푸드처럼 먹고 배설하는, 뇌 없고 입만 산 인간들이 많아질수록 인류 문명의 앞날도 암담해진다고 하겠습니다.

책은 비트코인만 다루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화폐제의 미래와 본질"를 꽤 깊이 있게 논급합니다. 1장 제목은 "화폐의 추상화"입니다. 인간이 지혜가 깨면 깰수록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palpable) 구체적인 표상에서 추상적인 가치에 눈을 돌릴 줄 압니다. 뒤샹의 <파운틴>은 일개 중고 변기에 불과했지만, 세기의 미의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 "걸작"입니다. 이처럼 심지어 미술품조차 조형의 구체가 아닌, 그 대상(심지어 "무[無]"일수도)에 던져진(입혀진) 컨셉에 사람들이 관심을 더 두기 시작한 건, 엄연히 인식과 지혜의 발전입니다. 미술품에 밝은 안목을 가진 이들이, 알고보면 돈도 많이 굴리는 알부자를 겸한 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다만 화폐가 (지나치게)추상화하면 불안을 느끼는 구세대도 있으므로 일부에서 가상화폐에 대해서조차 "실물 지갑"을 만들어 배포하는데, 그 아이디어나 배려심도 기막히지만 집단 지성의 힘이 이처럼이나 강하다는 점에 다시 놀라게 됩니다.

"내 정보가 내 정보가 아니다." 책에서는 2009년 인터넷망 마비 사태, 2013년, 14년 연달아 터진 해킹- 정보유출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이 중 적어도 일부는 북한 측의 소행임이 상당 수준으로 의심되며, 아무리 화해와 평화를 논의해도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겁니다. 이런 것까지도 "냉전적 사고" 운운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야말로 냉전 시대의 다른 진영에 페티시적 집착을 가진 게 아닌지 의심 받아 마땅하며, 인터넷상의 범죄행위에 강한 감정이입을 하고 싶은 범죄자 심리에 젖은 게 아닌지 비판 받아도 쌉니다. 그렇게 감옥에 가고 싶으면 보내 주면 됩니다.

요즘은 이름도 듣기 힘든데 1980년대 중반에 한창 크레딧 카드가 도입되고 대중화할 무렵 다이너스 카드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신용카드의 원조 다이너스 카드를 소개하며, "전자 화폐, 추상 화폐"의 시발이 이것임을 친절하게 독자에게 환기시킵니다. 가상화폐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못 가진 이들(주로 노년층)도, 자신들이 한창 왕성히 경제활동을 시작하던 무렵 신분의 상징으로 소지하던 신용카드와 지금 이것이 큰 맥락에서 동일선상에 놓였음에 착안한다면 아마 관점이 확 바뀔 것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외견상 무관해 보이는 여러 현상이 사실은 동일 선상에 놓여 있었음을 친절히 일깨워 주는 데에도 있습니다.

말도 탈도 많지만 토렌트 쓰시는 분들 많을 텐데, 비트코인이다 전자지갑이다 하는 게 토렌트 프로그램과 다를 것 없습니다. 예전 eDonkey 같은 것만 해도 중앙에 서버가 있었는데, 저 프로그램은 그런 것도 없이 개인(peer) 사이만의 교류로, 훨씬 빠른 "공유"를 이뤄내어 각광을 받았죠. 책에서는 p63 이하에서 여러 도판(사진)과 그래픽을 곁들여 가상화폐의 원리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인터넷상에서 실물이란 게 없이 디지털 부호의 교환만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는데, 어떻게 불법 복제, 이중 지불의 위험이 없을 수 있는가. 사실 이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 인문학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일찍부터 제기한 바 있었습니다. 전 아직도, 책 한 권으로 그만큼이나 폭 넓은 주제를 다루고, 아젠다 획정이 정확하며, 심지어 정확한 미래 예측까지 가능한 경우가 과연, 이전에나 이후에나 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논하는 모든 프레임은 이미 그 책에서 제시되었더랬고, 마치 고골리의 외투에서 우리 모두는 나왔다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여기에도 유비될 수 있다고까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은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를, 초심자도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를 겪는 이가 어디 비잔티움 제국의 장군뿐이었겠습니까만, 연유야 무엇이 되었든 이 이슈가 처음부터 그리 이름이 붙었고, 사토시 나카모토 이래 익명의 집단이 이 난제를 멋지고 깔끔하게 해결했기에, 이름은 아마도 영원히 바뀌지 않고 "비잔티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페르마의 정리가 앤드류 와일즈에 의해 25년 전 증명되었지만, 너무 많은 원리가 개입되었기에 일반인은 그 함의가 뭔지도 감 잡지 못합니다(그랬거나 말았거나 그 증명이 완벽한 위업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지만). 헌데 비잔틴 장군 딜레마는 해결 방법조차도 단순하고 깔끔하며, 마치 앨런 구스가 우주 인플레이션 이론을 처음 거론했을 때 "왜 우리는 저 단순하고 멋진 아이디어를 못 떠오렸을까?"라며 다들 탄식한 사실과도 비슷합니다. 비잔틴 장군 딜레마(와 그 해법) 이야기는, 바로 비트코인(나아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가상화폐 전반)의 원리 그 핵심을 이루기에, 수학의 원리 중 하나에 머무는 게 아니라 바로 비트코인 라이프 스토리 자체와 내내 붙어다닐 겁니다. 여태 읽어 본 책 중에서는 이 책의 소개가 가장 깔끔하며, 또 포괄적이기까지 합니다.

비트코인에는 괜한 선입견을 가진 이들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일단 신중한 태도로 돌아서거나, 최소한 "뭔가 있음"을 인정하며 미래 핵심 테크놀로지로서의 비중을 평가합니다. 이낙연 총리도 몇 달 전에 "블록체인을 블락(규제)하지는 않겠다"며 재담을 한 적 있는데, 사실 묘하게도 두 블락은 철자가 block으로 같고, 아예 같은 뜻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책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소개하는데, 기술이란 이처럼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며 경제 활성화와 혁신에 기여하는 것도 있고, (일부에서 지적하는 대로) 반사회적 결과만 낳기 일쑤인 것도 있습니다.

앞으로 과연 시장의 형세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도 책은 비교적 많은 정보를 다룹니다. 예를 들어 한국 비트코인 시세가 유독 높게(환율을 고려해도) 형성되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책들은 이런 언급을 잘 않더군요. 시장, 혹은 최전선에서 참여자들이 체감하는 (그러나 공식화하진 않은) 이슈를 분석해 줘야 독자가 직접 효용을 얻고 만족하게 됩니다. 증시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었다면(사실 저는 최근 호황이 꼭 반도체 견인 요인이라기보다,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그간의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가상화폐 시세는 오히려 반대로 "김치 프리미엄"이 있는 셈인데, 책 p205에는 제이미 다이먼 전(前) JP 모건 CEO 역시 "모두 거품"이라고 했다가, "블록 체인 등 첨단 기술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내 잘못"이라고 이후 입장을 철회한 바 있습니다. 본시 문제를 규제로 대뜸 해결하려 드는 습관, 체질이야말로 바보들의 공통점이며, 무지한 자가 환경 변화에는 덮어놓고 반발을 하게 마련이죠. 눈을 감으면 감은 그 사람의 미래에만 암흑이 드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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