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메시스, 때로는 약이 되는 독의 비밀 - 나쁘다고 알려져 있는 것들에 대한 재발견
리햐르트 프리베 지음, 유영미 옮김 / 갈매나무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살벌하지만 한국인들의 고단한 생존 이력을 잘 보여주는 관용어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다." 원, 일단 섭취한 후 당장 치명적인 부작용만 발생 안 시켰다뿐 두고두고 몸을 축낼 몹쓸 성분이 왜 없겠습니까만, 한국전 같은 극한의 시련을 겪고 용케도 여기까지 끈질긴 생존을 이어 온 집단에서 당연 나올 법도 한 말이지 싶습니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니체는 대체로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오랜 정신적 혼란과 방황을 겪은 인물이긴 하나 삶의 신조 중 하나로 저런 말을 표현해 내기에는 대체로 안정된 환경에서 산 사람입니다. 들을 때마다 이해가 잘 안되지만 여튼 (그의 다른 명언들처럼) 강렬한 진실의 일단을 간직한 말이긴 합니다. 물론 트집을 잡자면 한도 없는 예외와 반증에 취약한 테제이기도 하죠. 엊그제 죽은 모 재벌 그룹 총수의 삶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여튼 살면서 적절한 스트레스가 없다면 오히려 그 개체는 체질이 약해지고 이른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건 꼭 (니체와 국적이 같다거나) 뛰어난 생물학자가 아니라 해도 오래 전부터 여러 현인들(독일인도 아니고 생물학 전공도 아닌)이 해 온 말입니다. 소가 적당히 파리를 쫓기 위해 꼬리도 흔들어야 건강이 유지되는 것처럼, 외침(外侵)없이 장기간 평화만 이어지는 나라는 망한다고 본 학자도 있습니다.

책날개에서 (아마도 이 책 편집자가 정리한 글이겠지만) "호르메시스"는 "적응적 스트레스 반응"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본문 중에서는 p62:10에 정확히 이 어구가 등장합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그리스에서 유래한 말로, 자극을 뜻한다"고 합니다. 정확한 어원은 ὀρ′μαειν(호르마에인. 맨 앞의 따옴표같이 생긴 부호가 h 발음을 지시하죠)이란 동사이며, "자극하다"란 뜻을 가집니다. 고대 그리스어에 "호르메시스"란 말이 코인되었던 건 아니고, 한참 후 근세에 들어 독일의 약물학자들이 이 말을 창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 리하르트 프리베 박사는 1970년생입니다.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이지만, 예를 들어 "오늘날 젊은이들은 예전 세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안온하고 유리한 환경에 살면서... " 같은 말을 꺼내는 통에 약간 의아해지기도 했습니다. 여튼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처럼 좋은 환경 속이라고는 하나, 앞선 세대보다 덜 움직이고 더 먹어대는 젊은이들은 오히려 평균 수명이 더 짧아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프리베 박사가 한창 젊었던 시절 유행한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카오스 이론입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그리 느꼈던지, "사람들은 선형적이고 딱 나눠떨어지는 걸 좋아하지, 불규칙적이고 비선형적인, 예컨대 카오스적인 걸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태도는 사실 지금 젊은이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그 정도나 지났으면 이제는 상식이 되었을 법도 하고 그 이론적 구조가 더 속시원히 해명되었을 법도 한데, 아직도 비선형 세계관은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현상적 기술에 머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분명히 설명되는 인과관계를 숭배하고 강조하며, 그렇지 못한 건 신비의 영역에 맡기거나 신의 권능 정도로 얼버무리며 묻어두길 더 선호한다."

왜 어떤 독성 물질은 사람을 죽이는 지경까지 가지 않고, 면역력을 오히려 강화시킬까요? 사실 제너가 250년 전 종두법을 발명했을 때 그가 착안한 이치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애들을 엄하게 키워야 인간이 된다면서, 감기라도 들면 한겨울에 홀랑 벗겨서 밖에다 세워 놓는 경우도 과거에는 허다했습니다. 저자가 하는 말은, 분명 어떤 한계를 넘지 않는 자극은 인체의 면역력과, 그 외 아직 명쾌히 규명되지 않은 어떤 적응력의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 배로 비싼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세 배의 기쁨을 주지는 않는다. 밭에 비료를 뿌렸는데 그냥 방치했을 때보다 더 수확이 적을 때도 있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비선형적 진행"이라든가 상식에 반하는 인과관계 등이, 모두 호르멘시스의 신비한 효능과 관계를 갖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세기 전에 비해 많은 편익을 누리긴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선조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기대했을 법한 수준보다) 더 캄캄한 무지에 싸인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수 있는 좋은 말들이 많았습니다.

"진화의 기본 속성은 변이성(variability)이다." 그 위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적응적인'이란 말은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형용사다" 이 대목은 책 전체에서 결국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돕는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자극이 없는 환경에서 개체는 무엇에든 적응하려 들지 않습니다. 험난한 환경에서 시련을 딛고 살아난 종족은 이후 외부를 향해 거대한 정복의 행진을 시도하는데, 과거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무슬림들이 그러했고, 노르만 바이킹들도 마찬가지였으며, 몽골의 정복자들, 또 몽골의 압제를 오랜 동안 겪다가 떨치고 일어난 러시아인들도 이후 무서운 기세로 시베리아로 동잔해 왔습니다. 반면 훨씬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번영하다 몽골에 정복당하고서 계속 숨을 죽여야 했던 우크라이나 인들은 지금도 내분에 시달리는 형편입니다.

파라켈수스는 저자처럼 처음에 약리학으로 학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이들에개 꽤 흥미로운 삶을 산 사람입니다. 오백 년 전에 살다 간 이 약리학자의 이름을 놓고 저자는 이런저런 분석을 시도합니다. 출생시 거의 무작위로 붙은 사람 이름자 하나에 무슨 그런 큰 의미가 있을까만은 여튼 실제 생의 궤적과 인물이 품은 가능성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기라도 한지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대목이 흥미롭기는 합니다 여튼 여기서 그가 강조하고 싶은 건 "동종요법"의 신비한 효능입니다.

오래된 서양의 민담 속에, 똑 같이 생긴 환약(알약) 둘 중 하나를 고르게 하며, 희한하게도 상대가 무엇을 고르든 반드시 이 자가 살고 상대방은 죽게 되는 이야기가 있죠. 답은, 평소에 이 자가 조금씩 조금씩 독성을 섭취하여 면역력을 길러 두었다는 게 비결입니다. 이 이야기가 BBC 드라마 <셜록> 1화에도 등장하는데, 바보 같은 셜록은 50/50의 확률에 목숨을 걸다 왓슨의 명사격 솜씨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한 위기에 빠지고, 끝까지 놈의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하등동물이든 고등동물이든 호르메시스의 장점을 이용하지 않는 생물은 없다. 인간 역시 야생초를 오래 전부터 치료제로 활용해 왔고, 운동의 이로움을 깨달았으며... " 운동도 사실 아주 피상적으로 관찰하면 신체 역량과 열량의 무의미한 낭비이며 노화의 촉진 계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는 여기지 않고, fitness를 위해 하루 일정량의 운동은 필수로 받아들입니다. 이 역시 저자의 관점에선 호르메시스 기제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포 영역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가, 더 이상 건강하지 않은 세포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이다." (p231)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을 통해, 미래에 종양을 유발할지도 모르는 병든 세포(암세포는 엄연히 자기 체계의 일부이며, 기생충과 동일시하는 건 극단적인 무지의 소치이죠)를 제거하며, 저자는 수컷 초파리가 일부러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이런 세포를 조기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수명을 연장하는 게 관측되었다고도 합니다.

"호르메시스는 쉽게 무력화되지 않고, 엄청난 잠재력을 갖는다."

인간은 플라스틱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노화하고 무력화합니다. 저자는 이런 의심을 품어 보았다고 합니다. "왜 인간은 일단 생식 능력이 없어진 후에도 바로 사멸하지 않고, 너무나 긴 잉여의 시간 동안 생존하다가 죽는 걸까?" 이 책에도 나오지만, 손자 손녀를 돌보며 오히려 건강이 좋아지고 지병의 증세가 완화되었다는 노인들도 우리 주변에 많죠. 저자는 책에서 위트를 여러 번 구사하는데, 이 경우도 "아이 돌보는 스트레스가 즐거움을 능가하지 않는 한에서만 그렇다"고 단서를 답니다. 이 책의 주제가 스트레스 관리를 통한 면역력 강화라는 점에서 꽤 우습기도 한 서술이죠.

모르는 영역은 그저 미지의 상태로 남겨 놓아야 사람은 더 흥분과 보람을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비선형 인과관계에 어떤 "설명"을 시도하는 카오스 이론에 대해 반감(일단 저자는 그러시다고...)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그러나 이 호르메시스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오랜 동안 개봉 안 된 채 남아 있었으나 이제 신비의 거풀이 한 자락 한 자락 벗겨지며 오히려 인류에 희망을 안기는 원천이 되었다고 저자는 평가합니다. 사실 이는 체계적으로 매뉴얼화한 학자들의 도움보다, 우리 일반인들도 자기 일상에서 선을 넘지 않고 실천에 옮길 수 있기에 더 유익한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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