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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황제 -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 이야기
이옥순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인도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습기를 머금은 고장입니다. 섬은 아니지만 다른 문명권과 뚜렷한 경계를 이루며, 어느 다른 종족도 일구지 못한
독특한 성취와 개성을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겨 후손들에게 물려 주었습니다. 영국이 거대 통합권역 식민지를 건설하기 전, 유구한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이들 문명이 이룩한 정치 단위가 바로 "무굴 제국"이었습니다.
"GDP
세계 1위였던 무굴!(띠지에 나옵니다)" 아닌게아니라 인구도 엄청나고 워낙에 산출되는 물산이 많으니(이것이 인구 지지력으로 다
이어지는 거죠), 정확한 통계야 현재 남아 있는 게 없다 쳐도 전혀 과장된 문구가 아닙니다. 본디 수백년 전에는 정통 토속 신앙에
기반한 굽타 왕조가 다스렸는데, 페르시아 저 너머에 웅거하던 이슬람이 10세기 이후 이곳까지 넘보게 되죠. 페르시아나 그를 널리
포함하는 호라산 고원의 유목민족, 널리 우즈벡 일대의 전사들이 무슬림화하면서 인도 아대륙의 역사는 아주 복잡하게 꼬이게 됩니다.
"인도의
운명을 걸고 치러진 대회전은 이처럼 싱겁게 마무리되었다"(p26)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바부르의 전략과 재치가 워낙 뛰어났던
이유도 있지만, 라지푸트의 30개 부족이 이브라힘 술탄에 맞서 그를 지지했던 배경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라지푸트는 지금도 인도
공화국의 필수 구성을 이루는 거대한 주(州)이며, 이곳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투지가 굳건하여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독립 세력권을 이뤄 왔습니다.
저자의
해석은 꽤나 명쾌하고 풍부한 감성을 띠는 게 특징입니다^^ 독자인 저도 십여 년 전 인도에 다녀왔었고 일 때문에 이쪽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서 어느 정도는 익숙한데요. 마치 시오노 여사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등장인물과 역사적
대사건에 대해 일일이 주관적 평가를 하는 태도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브라힘 술탄은 인기는 없었으나 원칙은 있었다" 같은
평가를 보고선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원칙만 있는 지도자는 항상 인기를 잃게 되는 게 어느 정도는 숙명일까요?
여튼
토착 힌두 세력이 그렇게나 오랜 세월 동안 몰아내려 애쓴 "델리 5왕조 술탄"의 마지막 군주인 이브라힘이 제아무리 변변치 못한
위인이었다 쳐도, 가즈니 왕조, 노예 왕조 이래 수백 년 동안 델리 같은 요충지에 웅거하며 큰 권위를 행사해 온 이 체제를, 불과
반나절만에 무너뜨린 바부르의 수완이란 실로 대단했습니다.
라나
상가가 어떤 책략과 구상을 품었는지는 p30에 자세히 나옵니다.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어쩌면 저렇게나 태평하게 자기 편할
대로의 망상을 즐기는지 모르겠다. 마치 머리(아니 짬뽕사리) 안에 음란한 상상만 가득 채워 놓고, 고전조차도 저질 도색물로 낱낱이
변환시키며 늙고 썩은 욕망을 밑바닥 사이비스럽게 충족시키는 졸혼 치매 노파와 다를 게 뭐 있을까?" 하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라나 상가에게는 그
나름의 의존할 근거가 있었지요. 앞서 말한 대로 10세기 이후부터 고원의 무슬림 전사, 정복자들이 주기적으로 힌두 아대륙
북서부를 침공해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이 덥고 습한 지역의 엄청난 재보(財寶)를 냉큼 갈무리한 채, 혹은 일부만 챙기고선,
이들은 자기 본향으로 돌아가버립니다. 정 관리할 필요가 있으면 자신들이 부리던 "노예"를 황제로 책봉하고서 말이죠. 라나 상가는
일종의 "적응적 기대"를 발동하여, 이 바부르도 결국 제 땅으로 돌아가겠거니 결론을 내린 겁니다.
고원의
정복자들이 힌두스탄에 대해 품은 경멸감은 예로부터 유명합니다. 이 책에서도 누차 인용되는 대로, "재물은 풍성하나 사람들이
아름답지 않다"는 소회는 바부르뿐 아니라 앞선 시대의 여러 지배자들이 공통적으로 표현한 감정입니다. "일을 시키려면 그에 딱
알맞은 기능을 지닌 장인들이 많은 건 확실히 좋다." 이는 마치 중화 대륙을 점령한 몽골, 만주의 유목 종족들이 처음 정복 사업을
완수하고 천자 놀음을 할 때 피력한 소회와 비슷합니다. 기록이 많이 남지 않았다 뿐이지 전사의 후예로 타고난 운명인 저들
유목민족도, 중원의 농경 민족에 대한 거리낌 없는 경멸감을 무시로 표현했습니다. 청 말기에 어떤 이는 "황실의 재물과 권위를
차라리 양이에게 넘겨줄지언정 가노(家奴)인 한족(漢族)에게 줄 수 없다."는 극언까지 내뱉었죠.
알렉산더
대왕이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 받은 그 풍부한 소양으로 내내 그윽한 운치 담긴 행적을 남겼듯, 바부르 역시 시인 기질을
십분 발휘하여 다양한 기록을 후세에 전합니다. 감성 풍부한 부친에게 유감스럽게도 그 낭만적 기질만을 더 많이 물려받았는지, 후계자
후마윤은 처음에 이브라힘 술탄의 잔당을 잘 다루지 못해 꽤 고생을 합니다. 세르 샤는 이브라힘의 부장이었는데, 오히려 모시던
주군보다 더 수완이 좋았는지 거의 아대륙의 패권을 후마윤에게서 빼앗기 직전까지 갑니다.
"당신에게 힌두스탄 전체를 넘겨주었으니(무슨 자랑임?) 내게 라호르만은 남겨 주시오."
"당신을 위해 카불은 남겨 놓았으니 라호르에서는 물러나시오."
카불은,
잘 아는 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중심지이며, 라호르는 지금도 파키스탄의 경제 요충지이고 영국 식민 통치 기간에도 핵심적인 구실을 한
곳입니다. 이 책에는 후마윤이 고전한 이유 중 하나를 놓고, "유목 민족 특유의 분할 상속제"를 들고 있습니다. 사실 대제국의
경영과 분할 상속은 서로 함께 맞물려 갈 수 있는 관계가 전혀 아닙니다.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가문과 국가가 영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르크 제국은 형제(왕자)들 간의 죽음을 불사한 투쟁을 통해 제국의 후계자를 결정했죠. 낭만적이고 맘 좋은
바부르가 자식들에게 두루 영토를 나눠 주다 이런 혼란이 초래되었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단, 출생상의 서열보다는 능력 위주의
대접이 마땅하다는 유목 민족 고유의 정서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의
조부가 말한 대로 힌두스탄에는 뛰어난 인재가 참으로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제국은 1인 기업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크바르
대제는 마치 조부가 여러 협력자들과의 제휴로 대제국을 일군 것처럼, 아직도 도처에서 일어나는 패권에의 도전에 대해 능수능란한
정치술과 탁월한 군사적 능력을 병용하며 맞섰습니다. 책에는 암베르 왕국의 만 싱과 아크바르 대제가 평생에 걸쳐 이룬 인연에 대해
재미있는 서술이 나옵니다.
"신이 천국에서 아름다움을 나눠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만 싱의 검은 피부를 놀리며 스물 살의 젊은 아크바르가 만 싱에게 건넨 농담입니다.
만
싱 같은 뛰어난 인재에게 제국의 위신과 지위를 적절히 배분하며, 제국은 나날이 기반을 다져 나갔습니다. 다신교의 폐습을
결정적으로 혐오하며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던 게 이슬람 정통파였지만, 아크바르 대제는 융통성 있게 제국 내 세력 균형을
도모하며 타 종파에도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힌두 고전 음악도 애호하며 탄센 같은 예술가를 후원하는 등, 아크바르는 편협한 특정
종족만의 군주가 아닌 만민을 애호하고 보살피는 "제국의 통치자"로서 면모를 더욱 과시했습니다. 인도 역사에 길이 남을 현군으로서
그가 기려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훌륭한
아버지 밑에 꼭 불초한 자식이 나와서 골칫거리를 만드는 건 동서고금이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사이비 밑에 더한 사이비
치매 딸이 태어나서 대대로 가정을 망치고 망상 속에 들어앉아 추한 자위를 일삼는 건 그보다는 드물지만 말입니다. 무라드는
아버지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술과 난행에 중독되어 아버지의 속을 문드러지게 하고(p108), 마침내는 노망한 닭처럼 먼지구덩이에
둘러싸여 비참하게 고독사합니다. 망나니 아들 살림은 어울리지 않게도 "자한기르"라는 이름으로 황제위를 잇는데, 세상에 과연 천도가
있는 것인지 이 현명한 아버지이자 "진정한 세계의 정복자"는 사실상 패륜 자식에게 찬탈과 시역을 당한 셈입니다.
대체로
동아시아 제국사의 패턴에서 이런 식으로 정권을 잡은 후계자의 연이은 패착으로 나라가 누란의 위기까지 가는 게 보통이나,
자한기르는 제 아들 쿠슈라우(그 할아버지 아크바르가 무척이나 아낀 손자)에게 도전을 받고(업보죠), 막내아들의 반란을 겪는 등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어른"이 됩니다. 마치 사이비 닭머리가 어려서부터 사이비를 과학으로 잘못 알고 세뇌 당해 평생 치매에
시달리며 나잇값도 못한 채 추태를 떠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죠. 자한기르는 타 종교 타 문화에 대해서도 관용적이었고(이거 하나만은
아버지한테 참 좋은 본을 받은 것입니다), 반항의 기운이 보이면 가차없이 진압하여 제국의 정치적 안정도 기했습니다. 마치 조선의
신문고처럼 "저정의의 줄"을 마련하여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직접 돌보려 애도 썼습니다.
"그런가?
나의 후비가 실수로 너의 남편을 죽였구나. 그럼 이렇게 하자. 내 아내가 너의 배우자를 죽였으니, 너도 저 여자의 배우자, 즉
나를 죽이면 되지 않겠느냐. 내 어명을 내려 둘 터이니, 나를 네가 죽였다고 해서 누구도 너의 신상에 해를 못 끼치게 하리라."
물론 "쑈"이겠지만, 쑈치고는 대단한 쑈입니다. 여튼 이처럼 공정하고 사심 없는 통치자라는 인상을 신민에게 심어 주어, 초기의 찬탈자 패륜아 이미지를 많이 벗었다고 저자는 평합니다.
이
다음은 샤 자한이 제국을 다스립니다. 샤 자한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타지 마할"을 지은 바로 그 군주입니다. 무슬림은 본디
일부다처가 법제이며, 더군다나 샤 자한은 세상에 둘도 있기 힘든(생각해 보니 동시대에 셋 정도는 있었겠네요) 제국의 통치자인데
배우자 여럿을 둔들 전혀 흠이 될 바 없습니다. 그런데도 꼭 보면 저 오스만 제국에도 그랬고, 일구월심 한 배우자만을 바라기하는
통치자가 이처럼 드물게 나오긴 합니다. 제가 더 이해 안 되는 건, 이처럼 가정적인 부모님을 둔 왕자들이, 어쩜 그리도 잔인하며
인륜의 기본을 저버리는 이상한 성품으로 자라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치 세종의 둘째(적자 중)아들 수양대군 이유가 저지른 악행과도
유사하죠.
아우랑제브는
광신자였습니다. 어쩌면 그 선조들 중 가장 나쁜 형질만 골라서 타고난 게 아닌지, 여태 종묘 사직의 위대한 군주들이 극구 피하던
길만 골라서 걷고, 오늘에 계승해야 할 업적만큼은 기를 쓰고 내던진 못난이였습니다. 어설픈 정복자 흉내를 내다 제국도 망쳐 놓고,
제 자녀들과도 불화하는 등 한 개인으로서도 성격 파탄자였습니다. 말년에는 완전히 망령이 든 듯 실의와 좌절에 가득한 나날을
보냈는데, 타고난 제 깜냥을 돌이켜 보지 않고 미친 망상에 젖은 자들의 말로가 꼭 이와 같습니다.
이후
무굴제국은 처연한 행로를 보냅니다. 삼백 년 전 창업자 바부르가, "골목대장" 정도로 전락한 이브라힘을 신나게 두들겨 제위에
오른 것처럼, 페르시아의 정복자(정확하게는 그 위 고원 지대 아프샤르 족의 우두머리였습니다만 여튼 사파비 조의 몰락 이후 이
일대를 잠시 제패했습니다) 나디르 샤에게 처참하게 공략당한 후(델리 시민 2만명이 학살 당했습니다. p254) 완연한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이보다 얼마 전에 사이드 형제 같은 간신에게 황제가 농락당한 적 있고, 이후 샤 알람 같은 군주는 굴람 카다르 같은
악인에게 모진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합니다. 이때 이름만 남은 군주를 보위해 준 곳은 마라타 동맹이었으니, 이 동맹은 백여 년
전 어리석은 광신자 아우랑제브가 그토록 멸절하려 든 바로 그 힌두스탄 중부의 적대 세력이었다는 게 아이러니를 더합니다. 이후
무굴 제국은 거의 형해화되었다가 대영제국에게 병합되는 사정, 우리가 잘 알죠.
예전에
시공사에서 디스커버리 총서(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디쿠베흐트 시리즈를 한국어로 번역한 기획)의 일환으로 "무굴 제국"이란 책을
낸 적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이 그 책보다 분량도 많고, 도판도 대개 양이 비슷하지 싶으며, 그 책에서 살짝 얼버무린 대목을 더
명쾌히 더 감성적으로 서술했으며, 무엇보다 한국인저자의 시각이 반영된 점도 탁월한 미덕입니다. 인도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
교양서로 누구한테나 추천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