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자기 여행 : 에도 산책 - 일본 열도로 퍼진 조선 사기장의 숨결 일본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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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문장과 청신한 사진으로 세계 각 지역의 도자기 문화를 소개해 온 조용준 선생의 기행과 수상이 벌써 여러 권째 일본 열도에 머물며 예리한 시선으로 세부를 관찰하는 중입니다. 규슈, 교토에 이어 드디어 덕천막부 삼백년의 도읍지인 에도에 도착했습니다.

"조선 도자기가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도예 공부는 끝난 것이다." 책 띠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대륙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 조선에 비해서도 중앙 집권의 역사가 한참 뒤떨어졌던 일본 역사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예컨대 이 책 중 "... 규슈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가 뒤떨어졌던 혼슈의 각 영주들은...." 같은 문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대륙 혹은 반도를 향해 거대한 침략, 약탈의 기세가 뻗쳤던 시기는 크게 잡으면 두 번 정도입니다. 한 번은 남북조의 혼란기에서 열세를 극복 못 하고 그 좌절의 출구를 침략에서 찾으려 들었던 고무라카미 덴노 진영의 잔당들이 벌인 작태였고, 다른 한 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임진란 7년 전쟁이었습니다. 이 사이에도 크고 작은 왜침은 부지기수였으나, 큰 구간으로 나눠 고찰하자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두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침략이 대체로 영토 확보의 관점에선 무위로 돌아간 듯해도, 초특급 공예인의 유출, 문화 이식과 유입이란 점에선 왜인들에게 대성공이었습니다. 단지 고급 문화의 향유에 그치지 않고, 이의 체계적 생산을 통해 경제적 발전까지 도모할 수 있었다는 게 그들로서는 큰 수확이고 보람이었습니다.

중등 교육 한국사에서 반드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넘어가는 게 "가야 문화가 열도에 끼친 영향"이며, 그 대표적인 예가 스에키(須恵器) 문화입니다. 이 "스에키"의 어원에 대해 저자께서는 "쇳소리를 낼 정도로 얇고 강한", 즉 쇠(鐵)에서 직접 연원했다는 설을 취하고 있습니다.

책은 도자기 탐구 그 머나먼 여정의 중요 기착점(이자, 책 서문에 의하면 아마도 "종착점")으로 에도, 즉 도쿄를 다루지만 유독 그 전사(前史)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이는 아마도 반도사가 열도의 문화에 끼친 직간접 영향의 중요 결론을 (다소 감개어린 어조로) 이 책에서 일단 큰 틀에서 마무리짓고 싶었던 저자의 의욕이 다분히 반영되어서가 아닌가 추측합니다.

p131 같은 곳을 보면 이런 서술이 있습니다. "... 옛날에는 코마이누(狛犬. 앞의 글자는 '짐승이름 박 자'입니다)라고 쓰지 않고, 고려견(高麗犬)으로 썼다. 허나 언제부터인가 고려라는 글자를 모두 지우고.. 일종의 역사 날조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특유의, 그저 언중의 입에서 소리나는 대로 적기보다, 훈독(訓讀)까지를 모두 고려하여 텍스트를 꾸미는 어문학적 관행을 고려해야 문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 명백한 역사적 교류와 영향의 흔적을 인정하지 않고 멋대로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이런 억지스러운 행태는 기실 풍신수길의 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 구축 과정에서 얻은 민족적, 문화적 자신감(비뚤어진)의 발로인데, 이는 도쿠가와 막부의 보다 정교한 봉건 지배 체제의 구축과 더불어 다소 완화되어가는 추세였습니다. 에도 삼백년의 평화와 안정은 곧 조일 관계의 소강 상태로도 이어졌으니 말입니다.

챕터 1에서는 고쿠타니 유적과 이에 관련한 명가들의 찬연한 예술품들이, 눈부시게 화사한 도판 속 자태와 함께 소개, 요약됩니다. 우리가 중등 교육 과정에서 배우기로, 조선 백자의 전형적 특징은 "소박하고 진솔하며 꾸밈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도공들의 예술가 기질 역시 그들의 후원자인 귀족, 지배층의 취향에 따라 그 발현의 수위가 결정되는 게 당연했는데, 비슷한 시기 일본에선 이처럼이나 대조적인  색채와 형상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외적인 화사함만으로 작품의 성취와 완성도를 평가할 것은 물론 아닙니다(물론 겉모습의 추함과 속마음의 일그러짐이 함께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허나 에도 막부의 전적인 후원, 또 이후 전개된 명치 정부에서의 여전한 호의 등에 힘입어 에도의 도자 제조 기법이 이처럼이나 휘황찬란한 경로를 밟은 데 대해서는 뭔가 부러운 마음이 생기는 게 솔직한 느낌입니다. (이는 독자인 제 생각일 뿐이고, 저술의 취지나 맥락과는 무관함을 강조해 두겠습니다)

저자의 어투나 주제의식 표현은 그래서 역설적이게 다가오는 면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처럼이나 도도한 빛깔을 뽐낼 수 있던 게, 알고보면 모두 한류의 영향이다." 에도 도자의 성취와 (해외 만국 박람회 출품이나 호평 등) 높은 인기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면 낼수록, 마치 전자제품 판매고가 향상될 때마다 원천 기술에 지급되는 로열티도 덩달아 볼륨이 커지듯이, 우리 조상들이 열도에 끼친 업적과 위대성도 함께 현창되는 것 아니냐는 뜻입니다. 사회 지도층의 완고하고 편협한 인식 탓에, 이처럼이나 뛰어난 기술과 안목이 우리 영토 안의 번영과 풍요, 자긍의 구체적 현시로 이어지지 못한 역사가 못내 안타까울 뿐입니다.

조용준 선생의 이 시리즈가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나 이 에도편에서는 화보와 도판이 많아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활기차게 돋우는 구실을 해 줍니다. p226에 보면 "이웃집 토토로와 노리다케"라는 짧은 글이 실렸는데, 저는 꽤 의외로 받아들였습니다만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 작품을 놓고 저자께서는 언제나 힐링의 도구로 삼는다시는군요. 제목의 "노리다케"에서도 알 수 있듯, 에도 도자를 주제로 논함에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바로 노리다케입니다.

전직 베테랑 언론인인 저자를 다만 "도자기 여행 저자"로 처음 접한 독자로서는, 가뜩이나 심취하신 주제가, 필생의 애정 애니메이션과 이런 부분에서 접점을 마련하는 게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하긴 다양한 방면에서 가식과 허위 아닌 진정한 애정을 쏟을 부분을 마련한 인생은 이래서 더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인성이 비뚤어지고 거짓으로 모든 추한 에고를 감추려 드는 썩은 영혼은, 뭘 봐도 가당치도 않은 흠집과 생트집 드러내기에서 변태적 쾌감을 느끼는 것이겠고 말입니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도쿄"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비로소) 개관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 재미있는 건, 일본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도쿄가 수도라며 성문화한 대목이 없다는 사실이다... "(p378) 그도 그럴 것이 덕천 막부 통치 기간 내내 이곳은 그저 소박하게 "강호(江戶.에도)로 불렸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명치 연간 초기에 교토를 일러 "서경(西京. 사이쿄)"라 일컬은 사실을 지적함도 체계상 아주 적절합니다. 꼭 우리네 고려 중기 역사에서 북진 정책의 거점으로 기대되었던 평양이 "서경"으로 불린 것처럼 말입니다.

조 선생의 전작들을 유심히 읽은 독자라면 "러스터 웨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아직 귓가에 생생히 맴돌 터입니다. p270 이하에는 가토 다쿠오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이어지는데, 이분 역시 다지미 코우베이 가마의 장손 출신이라는 점 등은 역시 전작 <교토>편에서 우리가 접한 적 있습니다. 어떤 시리즈를 읽을 때 매권마다 전혀 새로운 사실과 정보, 독특한 감상이 전개되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저자께서 전작들의 포인트를 적정 시점에서 환기시킨다거나, 연계점을 다시 짚어 주는 태도도 독자 입장에서는 꽤 반갑습니다.

"... 앞선 선배들처럼 모모야마 시노와 세토 구로를 원점으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p280)" 새로움을 추구했다는 저자의 한 줄 요약은 정곡을 찌른 통찰입니다. 작가와 예술품의 핵심 특질이 이처럼 쉽고도 명쾌하게 요약되는 건, 그만큼 관찰자가 건조한 기술적 프레임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정직한 감성을 대상에 효과적으로 이입, 투영했다는 뜻입니다. 당치도 않은 생트집 잡기에나 열을 올리며 보는 이의 실소, 조소를 자아내는 노출증 사이비 괴수하고는 적나라한 대조를 이루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이 주제에서도 언급 안 될 수가 없습니다. 20세기에 활동(아무래도 에도의 문화사가 근세사, 현대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책에서 우리와 인접한 시대의 인물들이 다뤄지죠)한 하마다 쇼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언급되는데, 아마도 독자들이 단연 주목할 만한 이름은 영국인 버나드 리치일 것입니다. 이쪽 사람들은 왜 이토록 부모나 집안의 간곡한(또 안전한) 충고와 지침을 따르지 않고 구태여 먼 이국으로 건너와 모험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갈 때가 왕왕 있습니다. 아무튼 금기의 사랑을 이루고 일본으로 도피(?)하여 아예 도자기 제조의 달인이 된 그는, 20세기 후반에는 드디어 한국과도 잦은 왕래를 통해 뜻있는 예인, 전문가들과 교분늘 쌓죠.

다시 책 띠지로 돌아가 볼까요?

"조선 도자기가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도예 공부는 끝난 것이다."

이 말이 바로 버나드 리치의 "명언"입니다. 그저 평면적인 도자기 소개, 화사한 사진의 행렬에 그치지 않고 조용준 저자의 기획이 "인문"의 반열에 들 이유가 생기는 건, 바로 이런 촘촘하게 연결된 주제의식의 치밀한 "플롯화"입니다. 앞서 저자는 감정의 힐링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어느 작품 감상에 의존, 해결한다고 했는데, 독자로서 저는 문화나 예술에 대해 그저 기예의 정교함이 빚은 미학적 착시의 효과라는 오해, 회의가 생길 때마다 앞으로는 이 책을 펼쳐들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존재는 그만의 필연을 내포했으며, 따라서 우리네 생도 다 그 나름의 절실한 이유를 갖춘 것이라는 점, 재확인이 가능하다는 언질을 얻게 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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