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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가난한 촌동네에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떤 행복과 성취를 일구기란 참 어렵습니다. 사람이 걸어가는 먼 여정에서 어디에 출발점이 놓인다는 게 그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본 영화 중에 <미스테리어스 스킨>이라는 게 있는데, 주인공 청년이 이상한 방식으로 집착하는 "자아 실현"이라는 게, 자신이 태어난 벽촌 "허친슨"이란 동네에 대한 경멸, 증오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알고선 감상 후 허탈감과 연민의 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에서 "허친슨 타운"의 거의 모든 주민들은, 기이하게도 개개인의 타인의 삶에 방관자적으로 임하거나, 아주 소극적인(파괴적일 때조차 소극적이더군요) 반면, 지금 이 소설 <베어타운>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치 우리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데에서처럼, 든든한 소속감과 연대의식 같은 게 구성원들 사이에 확실히 공유됩니다. 허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게 문제죠. 소통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더라도, 전혀 엉뚱한 작은 곳에서 서로 닮은 상처 하나가 있었다면, 두 공동체는 마침내 비슷한 양상의 파국으로까지 함께 치달을 수 있습니다(둘은 상대의 존재를 전혀 모르겠지만).
연대의식과 상호 부조 정신으로만 똘똘 뭉쳐 일어났다면, 공동체를 이끌어갈 때에도 계속 그런 식이면 됩니다. 베어타운은 그러나 출발과 몰락이 그런 식은 아니었습니다. 특정 스포츠, 예컨대 이 작은 베어타운뿐 아니라 인근 일대에서 다들 열광하는 하키 같은 종목(우리는 잘 이해 못하겠지만 북유럽은 물론 대서양 건너 캐나다에서도 거의 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죠)에서, 이 동네 출신 청소년들이 큰 대회에서 쾌거를 이뤘다거나 할 경우, 이제 마을을 살리고 죽이는 건 스포츠의 성취입니다.
"인기, 열광"은 첫째 무형의 분위기이고, 둘째는 타인의 호응에 전적으로 기인하는 겁니다. 자신이 자신에게 열광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고 부나 영예를 가져다 주는 바도 없습니다. 반면 자존과 (한때의 것이라도) 재산, 주목의 획득이 그 인기에 기인했다면, 이제는 타인의 열띤 눈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이게 사라지면 개체로서 견딜 수 없는 허탈감과 자존 붕괴 때문에 개인이 배겨날 수가 없습니다.
베어타운에서 일어난 "그 사건" 때문에 몇몇 관련자들이 견딜 수 없는 갈등(양심과 현실적 이익 사이의)에 빠질 때에도, 끈끈한 연대의식으로 서로를 떠받칠 듯만 했던 주민들은 묘한 "거리 두기"에 나섭니다. "그래, 옳은 일을 해야(do the right thing) 마땅하지. 허나 이 마을은 어떻게 할 거니? 팀이 이기고 지고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와 현실적 이익이 달렸는데?" "너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해지고, 심지어 너도 행복해진다." 원작 소설과 각색 영화가 모두 화제가 되었던 <장군의 딸>도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그 소설(영화)에서는 "결코 방관자, 계산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최악의 배덕자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만.
예시한 다른 두 작품의 경우, 하나는 팀 버튼 식으로 몽환적이다가 최악의 비극을 각성하는 결말로 달리고, 다른 하나는 범죄 수사로 시작하여 누구도(생판 남이라고 해도)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가족사의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 반면 이 작품은 끔찍한 범죄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희생자의 사연을 다루면서도, 수많은 등장 인물과 그등 사이에 빚어지는 갖가지 관계가, 마치 톨스토이 장편에서처럼 다채롭게 벌어집니다. 배크만은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는 관계의 다양성을, 적절한 해학과 풍자를 통해 여태 못 보던 풍속도로 변환하는 쪽에 능합니다. 두 사람 사이의 소통과 관계라 해도, 한쪽은 이런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거고, 다른 하나는 역시 자신만의 편한 오해로 장막을 치고선 해석하고 이용하는 거죠.
읽으면서 이 작은 동네에 참 별의별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다 나온다 싶었습니다.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우리 독자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혹은 어떤 주거 형태라도)에는 어떤 이들이 살까요? 유독 매번 얼굴이 자주 마주쳐지는 사람도 있을 테고, 저런 사람이 다 살았나 싶은 낯선 얼굴도 있을 겁니다. 내 눈에 유독 자주 띄는 사람은 싫든 좋든 내가 그에게 관심을 두고 있고, 내 영혼의 나도 모르는 결이 어느 한 구석 그와 크게 닮았거나, 끔찍할 만큼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크게 다른 건 크게 닮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들었습니다. 반면, 어떻게 해서도 눈에 안 띄는 사람은 기이할 만큼 낮은 확률로, 내 영혼의 빛깔과 일일이 다른 경로를 골라 개성을 빚은 사람이겠고 말입니다.
촌동네에서 비슷한 성장 환경을 거쳐 성인이 된 사람들이라 해도, 전혀 공감대가 없거나, 심지어 적대하더라도 정이라곤 한 톨도 안 붙게 적대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반면 말 그대로 "애증"이라 할 만큼 좋은 쪽이든 아니든 끈끈하게 관계가 들러붙기도 합니다. 오베 아저씨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이야 단연 그 개성 찐한 오베 선생이지만, 알고 보면 오베를 그토록 두드러지게 했던 인물들 역시 좀 기이한 방식으로 스토리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죠. 배크만의 작품은 "양념 같은 조연, 빛나는 단역"이란 평범한 말로는 좀 설명이 부족합니다. 한 사람의 개성이 여럿으로 쪼개지면서, 다른 몇몇 인물들 사이에 들어가 큰 모자이크처럼 다시 반사된다고나 할까요.
소설을 읽다가 "혹시 등장 인물 소개 같은 건 없을까?"하며 앞으로 돌아가 봤는데, 정말로 추운 나라인 러시아 장편 고전 번역본에서 보통 그렇게 하듯 집안별로 간략한, 도움되는 가이드가 나와 있더군요. 열성적인 독자라면 최소한의 성실함을 발휘해서, 인물 관계도 정도는 2차원 메모지나 (하이퍼링크가 가능한) 워드 프로그램 등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설계된 "자신의 두뇌" 안에 스스로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귀찮아서가 아니라, 책이 꼭 그런 장치를 (이미 알아서 잘 하고 있는 독자를 위해서도) 마련했을 것 같아서 기대를 했는데, 마침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아 주어 반가웠습니다. 이 책에서처럼 어떤 가이드가 색다른 의미로 도움이 된 건 처음 하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뭐가 그렇게 개인적으로 반가웠는지는 저도 좀 혼란스러운지라, 시간을 두고 좀 생각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