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스타워즈
가와하라 가즈히사 지음, 권윤경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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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에 대해 뭐라고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존 윌리엄스의 유명한 테마와 함께 세계의 영화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기억될 만한 걸작입니다... 라고 말하기엔 약간 어색하거나,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하는, 묘한 마력(아주 헐하게 평가한다 쳐도)을 지닌 프랜차이즈이자, 이 책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현재 진행형으로 (아직도) 형성되어 가는 중인" 슈퍼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 이십 년 가까이 조지 루카스가 본편의 제작을 미루던 기간 중에도, 미국, 서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이의 팬덤이 지속적으로 성장세였고, 그토록 오래 별러 왔던 "에피소드 원"이 1998년 드디어 공개되었을 때 열성 지지자들은 마치 제의나 거행하는 마음가짐으로 상영관(사실 미국에선 3D 프로토타입이라 불릴 만한 특수 시설이 갖춰진 곳들에서 제한적으로 상영되는 곳이 많았습니다)을 찾았지요. 영화 관런하여 이른바 "굿즈"라 불리는 관련 기념품, 장난감 등이 이만큼이나 많이 제작, 판매되는 컨텐츠도 유례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팬픽이나 팬아트의 볼륨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다른 브랜드가 그저 그 판권을 소유한 제작사의 전략적 고려에 따라 거창하게 붐업되거나 (마땅한 이유도 없지 싶은데) 오래 동면 상태인 사정과는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몇 년 전 에피소드 7의 경우, 열성 팬이 아닌 중립적 관객 입장에선 다소 실망스럽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층이 많았습니다. 에피소드 넘버링이 이어지고 전작들의 세계관이 그대로 이어지니 그저 전형적인 속편 기획일 뿐, 이걸 두고 "리붓"이라 부를 수는 결코 없습니다. 리붓은커녕 이전 에피소드의 여러 매혹 요소를 별반 진지한 고려 없이 그대로 답습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죠. 팬이 아닌 일반적인 영화 애호가 입장에서, <스타워즈> 같은 이례적인 브랜드가 세월의 침식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턱도 없을 듯 보였던 "에피소드 7, 8, 9"의 약속을 지켜 가는 과정, 세월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한 호응 등은, 그저 구경만 해도 마음이 흐뭇한 경사스러운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그런 호의적인 시선을 기본으로 깔고 보았건만, 적어도 <깨어난 포스>는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의 "약속 이행"은 못 되었습니다.

반면 작년에 개봉한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는 꽤 호응이 좋았고, 이보다 앞서 만들어진 <로그원>도 흥행에 성공한 편이었죠. 이런 저력은 조지 루카스 사단의 죽지 않는 창의력, 활력에 기댄 바도 있겠으나, 신기할 정도로 충성을 바치는 팬덤의 견고함, 응원의 덕택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기한 "현상"의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책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책은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일단은 한번 집어들고 내용을 일별하고 싶은 마음이 꼭 들만한 구성이고, 진짜 팬이라면 제목에 "스타워즈" 네 글자가 들어가기만 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겁니다. 이번에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개봉 과정에서도 자막 오역이 문제가 되었는데, 저자는 <스타워즈>의 일본어 자막을 감수한 경력이 있습니다. 해당 언어에 대해 정확한 지식과 감각, 종합적 구사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팬들(글로벌 시대에, 이미 영어 정도는 자유롭게 이해하고 말하는 이들이 많죠)의 까다로운 요구도 만족시키면서 "가슴에 와 닿는 번역"을 하려면 "시리즈의 팬임"은 아마 필수 자격일 것입니다.

"사가(saga)"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기도 힘든 게 스타워즈 연작입니다. 2016년 드디어 에피소드 7이 공개된다고 했을 때, 해리슨 포드나 캐리 피셔, 마크 해밀 등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출연한다는 소식에, 시리즈 팬이 아닌 저 같은 사람도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대부>도 3편만 좀 잘 만들어졌다면 이에 버금가는 "에픽, 사가" 소리를 들었을지 모르는데, 4편 나온다 소리가 십 몇 년 전부터 소문만 무성하고 기어이 성사가 안 되는 것만 봐도, 이 스타워즈 팬들이 얼마나 순수한 열정에 불타는 이들인지 짐작 가능합니다. 스타워즈 연작이야말로 진정한 "사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리붓" 규정은 당치도 않고요)

스타워즈의 성공 비결에 대한 분석은 여태 여러 번 이뤄졌고, 그 중 "웨스턴과 동양식 무술 전수 등 이색적인 요소가 SF와 미래의 옷을 입고 절묘하게 결합되었으며, 기본 서사 구조는 아주 익숙한 패턴, 즉 버려지고 미숙한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원수를 갚고 신분을 되찾으며 일신의 이익이나 명예가 아닌 모든 이들의 자유와 권익을 옹호하는.... 등등의 단순함에 기대었다" 같은 말이 정설처럼 통하며, 그 정설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우리 대중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이 책 역시 그런 통설적 입장에서 별반 벗어나지 않고, 차분하고 겸손하게 모두의 컨센서스를 되풀이하는 편입니다. 사실 스타워즈 팬들은 파격적이라거나 과격한 주장, 해석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매트릭스> 등의 팬덤(물론 상대도 안 되지만)과는 이런 점에서도 차이가 크게 나죠. <스타워즈>의 기본 서사 역시 어떤 기발한 굴곡이나 트위스팅은 없습니다. 이른바 "내가 네 애비다."가 당시 영화팬들에게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지만(특히 이 책 p45의 서술을 참조하십시오), "사악한 부친과 대립하는 버려진 아들"의 화소 자체는 문예 전반을 놓고 볼 때 아주 오래 전부터 개발되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스타워즈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이처럼이나 성공하고, 반 세기가 지나도록 활력을 유지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 브랜드는 더욱 신비함을 더하는 겁니다. 하도 이전 세대부터 스타워즈 스타워즈 해 대기 때문에, 미국의 젊은이들도 크게 위화감을 갖지 않고(오타쿠나 나잇값 못하는 꼰대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의식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이 즐겁고 뭔가 권위까지 풍기는 컬트에 기꺼이 동참하는 겁니다. <스타워즈>에 대해서는, 이게 더군다나 SF 장르인데도 (미국 기준) 전혀 시대에 뒤처졌다거나 특정 세대 소속이란 느낌이 없습니다. 미국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도 관련 "굿즈"를 모으거나 담론에 참가해도 별로 촌스럽다는 느낌이 안 들고, 반대로 뭔가 글로벌 트렌드에 합류한 듯한 뿌듯함(착각일 수도 있으나)마저 공유하는 듯합니다.

스타워즈는 그저 특정 크리에이터의 지적 재산도 아니고, 이상 열기를 이어가는 특수층의 편협한 기호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문화"인데, 서브컬처로 보기에도 그 스케일이 너무도 거대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10억인의 유대감"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연인원으로 계산한다면 50억으로 잡아도 된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평가합니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3편(즉 에피소드 6) 상당수 시퀀스에서 민망할 정도의 유치함을 느꼈고, 일부 장면에는 불필요한 선정성까지 가미되었으며, 시원격인 에피소드 4에도 명백한 구성, 촬영상의 구프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팬덤 참가(유무형 불문)라든가 열성 지지층에 낀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스타워즈만이 빚는 이런 "문화 현상"이 더 대견(?)하고 경이롭게 다가오는 겁니다.

2부 전반부에는 "스타워즈" 개별 연작을 떠나, 대체 대서사시형 흥행작이라든가 블록버스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이 결정되고, 역사를 남을 히트를 치거나 반대로 대재앙에 그치는지 제법 심도 있는 분석이 이뤄집니다. 독자로서 저는 이런 분석도, 영화 산업 전반이나 미학적 구조에 대한 일반론 이해가 선행된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스타워즈> 개별 컨텐츠에 대한 애정이 워낙 깊다 보니 상위 영역에 대한 소양까지 절로 형성된 소산이라고 봅니다.

저자는 "한정적인 일본 문화의 영향"이라고 규정하지만, 사실 조지 루카스 본인부터가 공공연한 재퍼노파일인데다, 제다이들이 걸치고 다니는 헐렁한 도복(?)하며 멀쩡한 강력 화기 놔 두고 광선검으로 설쳐 대는 설정 하며,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일본 풍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건 너무도 명백합니다. 이걸 얼버무려 "동아시아 스타일"로 호도하려 들어도 그(조지 루카스)의 작가적 배경(p161)이 너무도 뻔하기에 반박 근거가 취약합니다.

저자 가와하라 가즈히사 씨는 자신이 소속한 세대도 그렇고(본래 이쪽 팬 1세대는 이만큼이나 나이 드신 분들입니다. 개인적 체험에 바탕하여, 할 이야기를 많이 풀어 내려면 넉넉한 중산층 이상 집안에서 성장해야 했겠고요) 거쳐 온 경력도, 딱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다 할 만한 분입니다. 이쪽 산업의 뒷이야기도 잘 아실 만하기에, 처음에 잘못된 결정을 내려 (결과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가 드디어 정신 차리고 이번의 후 3부작 제작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디즈니 사의 전략적 선회에 대해서도 자세한, 그리고 믿을 만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량이 길지는 않고 스타워즈 팬들이라면 다 알 만한 화제들이긴 하나, 역시 진짜 팬들이라면 들은 이야기 듣고 또 들어도 여전히 흥겹지 않겠습니까. 소장할 만한 아이템이고, 일반 영화팬들에게도 전문가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통찰이 자주 보여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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