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읽는다 지리와 지명의 세계사 도감 1 지도로 읽는다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노은주 옮김 / 이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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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구체적인 지형과 지명, 지리 속에서 펼쳐진, 지난시절 인간들의 생존을 향한 분투의 기록입니다. 추상적인 명분, 가치와 의미의 부여나 따분한 인명의 나열만으로는 그 참모습을 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세한 지도와 정확한 지명이 함께 제시되고, 간혹은 그 시대의 개성과 특질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나 조형물이 함께 책 안에 실려 있다면, 학생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훨씬 역사를 재미나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특히 이 점을 강조합니다. "... 인간이 살고 있는 역사와 세계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19세기에 체계화된 유럽 중심의 세계사나, 20세기를 지배한 미국 중심의 세계사를 가지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그 역사가 가슴 깊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 여기서 저자의 의도는 "역사를 가슴 깊이 느낌" 부분에 잘 드러난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건조한 지식의 나열이나 암기, 재생은 참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뜻이죠. 다시 저자 서문을 보면, 앞부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지중해를 여행한 적이 있다. 누구는 무모한 일이라며 말렸지만, 오히려 얻은 것이 많아서 지금까지도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데 망설임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 저자께서는 (보통 그렇게들 하듯) 역사를 텍스트로 시작해서 지도, 지명, 지리를 보강한 게 아니라 그 반대 순서로 접근하고 공부한 셈입니다. 헌데, 어쩌면 우리는 이 저자분처럼, 구체적인 지리, 지명을 먼저 배운 후 그 속에서 활약한 인간들의 족적을 따라갔어야, 훨씬 생동감 있는 역사의 이해, 나아가 (저자의 표현처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자는 역사를 크게 4단계로 파악합니다.

1단계: 4대 문명의 탄생과 전 지중해로 확대되는 문명
2단계: 유럽과 아시아의 중계 무역으로 이슬람이 세계 주도
3단계: 대항해 시대 이후 세계를 압도한 유럽의 팽창주의
4단계: 변화를 강요 받은 중국과 인도 등 "전통 세계"

이 중 재미있는 건, 중국과 인도는 세계사 전체를 개관할 때 그 폐쇄적인 지형 덕분인지, 잦은 분쟁과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휘말리기보다  자립적이고 독자적 성격을 강하게 유지한 문명권으로 분류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헤겔 등의 규정처럼 "발전이란 게 없고 오랜 시간 같은 패턴 속에 갇힌 정체 상태"로 보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자는 "지속성이 강하다"는 말로 이들 세계의 강한 생명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종래 학계에서 즐겨 의지하던 프레임과는 달리, 이 책은 "지리, 지명에서 시작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론"을 착실히 견지하여, 구체적인 공간으로부터 유리된 추상적인 역사는 존재할 수가 없음을 분명히합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지명 중심, 지리 중심으로 읽고 이해하는 역사는 재미가 납니다. 지리 중심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도감"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당연한 듯합니다. 우리 독자들 모두는, "역사책"보다는 "도감"을 훨씬 재미있어하지 않습니까?

이 책은 제목(과 서문)이 밝히고 있는 대로, 텍스트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지명에 그 기원(어원)을 철저히 밝혀 둡니다. 처음에는 중요한 도시나 강, 산맥 등에만 그런 설명을 다는 줄 알았으나, 정말로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명만 나왔다 하면 어김없이 기원을 밝혀 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정성과 서술 원칙의 일관성을 보며 독자로서 감탄도 하게 되고, 이 책을 역사 공부의 의도 외에 여행 가이드로 써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도 절로 들었습니다. 하긴 저자께서도 본래 여행 중의 각성으로부터 집필 계획을 마련했다고 암시도 하시니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보통 기독교의 성지로 잘 알려졌지만 현지에서는 유대 정치인들이 방문했을 때 큰 소동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 이유는, 현재 너무나 세속화하여 성지 (순례)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기독교인들에게와는 달리, 이슬람 교도들에게는 여전히 이스라엘이 그들의 신앙에 있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해당 종교의 교리상 예루살렘이 이슬람(에게도) 성지라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p68을 보면 무함마드가 이곳 바위 돔에서 승천했기에 성지로 그들에게 기념된다고 나옵니다.

현재도 호기롭게 미국에 대항하는 이란은 아득한 고대부터 가장 왕성한 문명을 건설한 대제국의 후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페르시아, 바빌론에 잡혀왔던 유대인들을 해방한 구약의 제국은 아케메네스 조(朝)인데 p70을 보면 그 판도가 지도로 잘 표시되었습니다. 이처럼 깔끔한 지도와, 요령껏 잘 편집한 범례(legend), 텍스트 설명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게 이다미디어에서 나온 도감들의 큰 장점입니다.  

지중해 세계는 혹독한 겨울이 없고 풍경이 아름답기에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명들이 이곳에 밀집했습니다. 시돈, 티루스 등의 지명이 어디서 유래했으며 비블로스(작은 언덕이라는 뜻. 현지어로는 바알 신과 연계) 항구를 통해 거래된 파피루스가 이 지명과 연관하여 그리스인들에게 아예 그 이름으로 바뀌어 불렸다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바이블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각종 지명들, 심지어 보통명사들의 흥미로운 어원까지도 잘 정리해서 알려 주는 게 매력입니다.

지중해 연안이 고대부터 크게 번성한 것과는 달리 사막의 베두인 족은 척박한 환경에서 초라한 방식으로 연명할 뿐이었습니다. 이러던 게, 예언자 무함마드가 AD 7C에 이 지역에 갑자기 등장하여 그들의 종교적 열정과 정복욕을 일깨우는 바람에 덜컥 대제국 하나가 건설되었습니다. 물론 로마 제국과 아케메네스 조가 소모적인 대립을 지속하다가 후자가 붕괴하는 바람에, 이 지역에 힘의 공백이 발생한 까닭도 크지만 말입니다. 책은 여기서도 메카(마카)의 어원을 친절히 설명합니다.

"바그다드는 인공적으로 건설된 도시(p146)"라는 책의 간명한 규정이 눈에 띕니다. 다마스쿠스는 지중해 무역이 번성할 때 자연스럽게 그 유리한 지리적 여건에 힘 입어 우마이야 왕조의 중심으로 우뚝 섰지만 바그다드는 그에 비하면 다분히 계획적으로 형성되었죠. 마치 콘스탄티누스가 세운 비잔티움(p187)처럼 말입니다. 물론 두 도시 모두 그럴 만한 곳에 세워져 오랜 동안 제 기능을 다해 왔다는 사실은 공통입니다.

영국은 작은 섬나라에 지나지 않지만 그 민족 구성이 매우 복잡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 계급 대립으로까지 현대에 계승된 면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복잡해졌을까에 대해 책 p174 이하에 재미있고 요령껏 설명됩니다. 이 부분은, 축구 좋아하는 이들이 왜 영국만 4개 축협으로 나누어 FIFA 월드컵에 출전하는지 그 근원적인 유래에 대해서도 좋은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앵글로색슨이 대거 침입해 왔을 때 켈트 족 일부가 도버 해협을 건너 반도에 정착했는데 브르타뉴(작은 브리튼)이란 이름이 여기서 기원했다고도 책은 가르쳐 줍니다.

어떤 전쟁이라도 그것이 순수하게 종교적 동기, 혹은 대의명분(정당한 상속이라든가) 때문에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커다란 경제적 목적이 눈에 띄기에 세력들이 이를 새로 차지하려고, 혹은 지키려고 대판 싸움이 붙는 것입니다. 영불의 귀족 간에, 결국 프랑스 땅의 와인과 모직물의 향방, 귀속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 그토록 오랜 전쟁이 이어진 것이죠. 급기야 현지의 민중까지 조직화하자 영국은 적지에서의 싸움이 더욱 불리해졌고, 프랑스 왕실은 그들대로 민중의 기세가 왕권까지 넘봐서는 안 되겠기에 적절히 타협하고 싸움을 마무리짓습니다. 사실상 플랜태저넷 왕조는 그 방대한 프랑스 영지를 모두 잃은 부작용으로 망하고 맙니다.

해외에서 큰 횡재를 하여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사치를 누릴 때까지는 좋았으나 이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재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퇴폐와 낭비로만 귀착되었기에 이베리아의 제국들은 전성기가 길지 못했습니다. 거품이 꺼진 후에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다시 대침체가 찾아와 나라에는 완전히 망조가 들었으며 두 나라는 이후 영영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욱일승천하던 기세가 한번 꺾이면 이처럼 비참한 신세가 되는데 20세기 후반 세계를 집어삼킬 듯하던 일본도 부동산 버블이 터진 후 저처럼 고전 중입니다. 플라자 합의로 느닷 국부가 세 배로 불어났으나 이것이 건강하게 재분배되지 못한 탓인데, 16세기 이베리아 제국들의 말로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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