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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씽킹 - 개정판, 기독교 세계관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
유경상 지음 / 카리스 / 2015년 11월
평점 :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를 놓고 보다 진지한 고민이 많이 이뤄지는 요즘입니다. 저자 유경상 대표는 "생각하는 기독교인"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책 서문에서 꼽는군요.
1) 날마다 자신의 생각과 삶을 점검한다.
2) 날마다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는다.
3)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꾼다. , 즉 하나님이 내 자신을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사용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일상이 감격으로 벅차오른다.
4) 생각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5) 무엇보다 나 자신의 생각과 삶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성령임을 알고 언제나 기도한다.
신앙생활은 주일 하루 교회 안에서만 열심히 하고, 일상은 주 6일 내내 세상에 물들어 철저히 다른 사람으로 산다면 이는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로 영위한다고 볼 수 없는 삶의 태도입니다. 신앙과 일상이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우선 내 자신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두고, 이 책은 저자의 치열한 고민과 사색, 그리고 기도와 실천의 흔적을 담아낸 듯합니다. 한 번이라도, "나, 이런 식으로 살아도 과연 괜찮은 걸까?"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 담긴 한 문장 한 문장에 공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907년은 한국 기독교사에서 특별한 의의를 갖는 해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어언 111년이 흘렀지만, 기독교 신앙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서 저때처럼 강렬한 각성과 영적 부흥의 몸부림이 일었던 때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1907년의 기적이 찾아올 수 있을까요? 교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어느때보다 높고,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들도 드높지만, 정작 그런 비판 속에는 현실을 개선시킬 "대안"이 부재했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개개인 차원에서, 성경에 구체적으로 이리이리하라는 식의 가르침이 나오지는 않는 문제를 놓고서는, 일상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신앙인으로서 가치관은 평소에 어떻게 잡아 나가야할지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지 130년이 훨씬 지났으니, 이제는 표준적인 한국 기독교인의 처신과 신조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모범적인 결론이 나올 때도 충분히 되었습니다.
저자는 1장에서 "카멜레온 크리스천" 유형을 분석합니다. 읽어 보시면 마음이 뜨끔한 분들이 많을 텐데요. 신앙은 개인적인 영역이고, 일상은 공적인 영역이며, 따라서 일상에서 기독교 신앙을 드러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비 기독교인들과의 마찰을 피해가는 유형이라고 저자는 정리합니다. 일상과 신앙을 분리하되, 일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가급적 숨기고 살아갑니다. 이 자체도 문제지만, 그 다음 단계는 거의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게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사향소 크리스천" 유형은 흔히 "문제될 게 아니라 오히려 모범적으로 사는 사람들 아닌가? 다만 저리 살 것 같으면 너무 피곤하니까 차라리 카멜레온처럼...." 같은 생각을 평소에 하게 되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 역시 자신만의 고립된 영역을 언제나 고집하며, 결국 세상으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는 경로를 걷는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삶과 신앙이 별개"라고 생각한다는 점인데, 이는 결코 예수께서 가르친 바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p35(한철호 미션파트너스 대표의 글로부터 재인용)에는 노예 매매선 선장의 우화가 실려 있습니다. 노예로 잡은 여인 하나를 부하가 데려와서 잠자리를 함께할 것을 권하자, 선장은 화를 벌컥 내며 "십계명의 간음하지 말라는 구절을 잊었느냐?"고 외칩니다. 부하가 물러가자 그는 기도를 올립니다. "주여, 오늘도 유혹을 뿌리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사향소 크리스천이 문제인지 여실히 보여 주는 예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일상과 철저히 분리된 신앙의 영역에서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에, 자신이 영적 영역보다 한 차원 낮게 보는 세상의 실무에서 어떤 끔찍한 죄를 저지르는지 전혀 "센서가 작동하지 않았던(저자의 표현)" 것입니다. 이런 사향소 크리스천은 카멜레온형만큼이나 반 그리스도적인 삶을 산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서문에서도, 또 본문 1장에서도 저자는 "점점 주일학교 출석 인원수가 줄어드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자녀들이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다른 삶을 살고, 다른 곳으로부터 즐거움을 찾는 게 현실이라면, 어찌 부모로서 기독교인 다운 삶을 살았으며, 그 본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로서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고, 온전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으로 복귀하려면, 먼저 기독교인로서의 바른 생각을 머리 속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 책 제목도 "크리스천 씽킹"이며, 2장 이후부터 자세한 각론이 이어집니다.
올바른 세세한 생각이 자리잡으려면, 먼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1) 이 세상의 기원과 목적은 무엇인가?
2) 이 세상의 고통과 문제는 무엇 때문인가?
3)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올바른 생각이 작동하려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세 가지 다른 렌즈가 모두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생각
2) 죄에 대한 생각
3)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
이 셋은 저 위의 세 가지 근본 문제와 정확히 하나하나가 매칭됩니다. 세 가지 "렌즈"가 모두 필요할 뿐 아니라, 세 가지 렌즈는 하나로 통합된, 그리스도인 다운 정신과 세계관 안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앞서 저자가 지적한 "카멜레온형"과 "사향소형"은, 이 중 몇 가지 렌즈가 바람직하지 못하게 분리되거나, 아예 결여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랑의 통로가 되기 위해 창조되었다."
피조물이라 함은 조물주의 도구가 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의 큰 수고가 부여된 각종의 편의를 누리며 살고 있고, 이는 내가 속한, 혹은 직접으로 속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이웃을 구성하는 다른 공동체에 대한 감사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자세가 하나의 특징이죠. 그 바탕에는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설계에 의한 것"이란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러나 인간이 저지른 죄로 인해 불완전해졌습니다. 사람 마음 속에 두려움이란 녀석이 돌아다니는 건, 바로 사람 스스로 저지른 죄 때문이라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숭배하게 되는 모든 것은 바로 우상인데, 마음 속의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우상을 숭배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덧대어 저지름입니다. 이 우상을 감연히 마음 속에서 모두 떨쳐 내고, 그 자리에 사랑과 하나님을 자리하게 못 한다면 이 죄의 영원한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르게 살기 위해 신앙을 갖는 게 아니라, 주일헌금이나 몇 푼 던지고 일종의 액막이, 푸닥거리를 하는 양 세속의 더러운 가치를 보전하려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그냥 세속의 논리대로 사는 이들보다 더 큰 죄를 짓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뉴에이지를 경계하는 건 이 흐름이 힌두이즘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고,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비뚤어진 영적 가르침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절대적 진리"를 배척한다는 점에서 현대에 등장한 기독교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라고 파악합니다. 낙태를 예사로 여기고 "그저 해파리 하나를 떼어내는" 정도로 간주하는 충격적인 움직임도, 현대에 들어와 각별히 타락한 인간 관계의 파괴적 트렌드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는 "꿈꾸는 사람들"이 사라진 가장 불쌍한 시대입니다. 물론 돈을 더 많이 벌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세속적인 꿈을 꾸는 이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꿈은, "나만 생각할 게 아니라 나보다 더 큰 존재를 지향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래서 신앙의 불모지에 찾아와 전도에 힘 쓰는 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쓰신다"는 경건한 깨달음과 희열 역시 자리할 데가 없습니다.
교회나 기독교는 은둔처나 개인적인 안식처 정도가 아닙니다. 삶이나 일상이나 세속으로부터 유리된 곳이 아니라, 정반대로 세상의 온갖 문제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해결하는 곳이라야 합니다. 또 올바른 생각이 아무리 자리한 후라도, 이것이 일일이 실천에 옮겨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역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삶입니다.
책 끝에는 기독교인을 위한 CTT 계획서가 나옵니다. CTT는 "크리스천 씽킹 툴"의 약자인데, 6단계에 걸쳐 18쪽에 이르는 아주 상세한 매뉴얼입니다. 진지하게 나 자신의 생활 태도를 돌이켜 보고, 무엇이 여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했는지 성찰해 볼 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소그룹 스터디 가이드도 나오는데, 이런 매뉴얼을 실천에 옮길 때 꼭 필요한 게 신앙상의 동지입니다. 혼자 머무르면 아무리 확고한 소신도 유혹과 시련에 들기 마련이니, 반드시 뜻을 같이하는 여러 성도들이 모여 하나하나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마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