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제국의 미래 -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그리고 새로운 승자
스콧 갤러웨이 지음, 이경식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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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한국의 공정위가 구글, 애플 등의 "갑질"에 대해 제재 심사에 들어간다는 뉴스가 떴었습니다. 이를 두고 포털의 어떤 덧글은 "플랫폼의 기능 본질을 이해 못하는 처사"라고 비판도 하던데, 여튼 생태계의 최초 조성자, 운영자로서 플랫폼의 기여와 권력이 새삼 부각되기도 한 기사였습니다.

현재 IT 업계의 4대 "제국"으로까지 평가 받는 기업들은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네 곳입니다. 사실 이들의 업종은 겹치는 면도 물론 있으나, 시장의 지향성이 꽤나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각각의 "플랫폼"이란 공통분모로 묶으려면, 일반 대중의 감각이나 안목으로는 무리가 다소 따를 것입니다. 허나 전문가들은 장기적, 항구적 시야에서 지속적으로 큰 수익을 창출할 전략으로 일찍부터 각각의 시장에서 플랫폼을 구축하려 든 이들 기업의 비전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자릿세를 내고 이런 플랫폼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 개발자로서는 억울한 면이 많겠으나, "파운더"들의 혜안과 초기 노고에도 당연히 평가를 해 줘야 공정한 태도이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다소 파격적인 전망을 내어 놓습니다. 향후 이런 "플랫폼 제국"들이 모두 몰락하고, 새로운 강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현상의 힘(fait accompli)이란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여간해선 현재의 상태가 장래에 바뀌리라고 쉽사리 짐작을 못합니다. 잘나가던 거인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나면, 변덕스럽고 잊기 잘하는 대중은 그제서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도를 돌변합니다. 그러나 현인은 멀찍이 앞선 시점에서 사소한 징후들만으로도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이에 대비합니다.

책은 IT 산업에 한해 전망을 펼치는 게 아니라, 과거 소매업계의 다양한 부문에서 어떤 대단한 업체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는지, 이 거인들을 수면 위로 띄우고 침몰시킨 정부 정책의 변화나 시대 흐름, 트렌드의 추세는 어떠했는지 매우 폭 넓게, 그러면서도 핵심만을 짚어 가며 과거를 회고합니다. 이 대목부터 해서 죽, 그는 인간이 벌여 온 사업이라는 게 어떤 패턴에서 벗어나질 못했는지, 제아무리 한때 천재성을 발휘한 기업과 오너라고 해도 어떤 필연에 떠밀려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는지 마치 역사학자의 너른 시야로 회고하듯 담담히,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톤으로 풀어 놓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가 (의외로) 재미있다"는 겁니다.

아마존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도 종이책, DVD, 그리고 킨들을 매개로 한 전자책 소매업자 정도로, 혹은 최근에 전방위로 업종을 넓힌 인터넷 백화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베조스 회장을 파악하기로는, 크게 두 가지 비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1) 소프트웨어와 로봇 공학 분야의 앞선 노하우를 통해, 오프라인 리테일링은 물론 물류(육상 운송이나 해운 등)를 모두 장악하려는 야심. 이건 실로 놀라운데, 여태 해운 분야는 진입 장벽도 높고 몇 년 전 한진해운 사태에서도 알 수 있었듯 업종의 경기 부침이 심해서 한번 어려움을 타면 걷잡을 수가 없다는 게 특징입니다. 아마존은 이미 엄청난 자본을 쌓아둔 상태라, 어느 산업에 대해서도 갑(甲)의 위치에서 침식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드론 택배나 로봇 활용은 기존 업체가 아예 꿈도 못 꾸던 방식이라서 이 강점을 바탕으로 베조스 회장은 원가를 대폭 절감할 수 있고 이는 경쟁자들을 바로 도태시킬 수 있는 결정타입니다.

2) 저자는 이 책 내내, 소수 부유층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라야 미래가 있다고 전제를 깔고 논지를 폅니다. 왜냐면 몇십 년 전에 비해, 미국 역시 중산층이 완전히 몰락한 상태라서라는 겁니다. 아마존은 방문해 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아마존 프라임이란 차별적 회원제를 따로 운영합니다. 그 가입이 현재, 예컨대 프라임 비디오 같은 건 그저 넷플릭스의 경쟁자 정도에 불과한, 문턱이 낮은 대중적 서비스이지만, 앞으로는 가입비를 대폭 올려서 그 자체로 신분의 상징이 될 수 있게 브랜드를 가꾸는 게 베조스의 야심이라고 저자는 추측합니다.

사실 이 아마존 파트에서 "그럼 왜 그가 몰락한다는 건가?"에 대한 답은 분명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단, 책 서두에서 그가 편 일반론을 잠시 적용해 보자면, 첫째 초원의 사자라고 해도 전성기 수컷, 프라이드의 수괴로서 떨치는 위력은 대단하나, 그도 늙게 마련이고 더 젊은 경쟁자에게 프라이드를 뺏기게 마련이므로 고작 수명은 십 년을 조금 넘길 뿐이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가 여태 그런 패턴으로 전개되었으므로 아마존 아니라 무엇인들 배겨낼 재간이 있겠냐는 거죠.

아마존을 비롯, 플랫폼 거인들은 "일자리 파괴자"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이들은 놀라운 혁신으로 "인적 자원"에 투입되는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기존 경쟁자들을 추월, 압도해 왔는데, 이들 역시 수없이 많은 경쟁자들의 도전을 다시 받으리라는 거죠. 다른 경쟁자들은, 이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절치 부심 중인 수없이 많은 이들의 역량을 밑바탕으로 삼고, 혹은 응원을 받아, 일개 스타트업이었다가 현재는 많은 이들에게 갑질 폭군으로 군림하는 저들 제국을 반드시 전복하고 말리라는 게 저자의 전망입니다.

아마존이 다른 기업을 무너뜨리고 중산층의 일자리를 뺏은 것도 부족해, 극소수 부유층에만 영합하여 그들의 편의를 봐 주는 식으로 "반사회적" 전략을 펴 나간다면, 과연 얼마나 사회의 지지를 얻겠냐는 겁니다. 베조스 회장 역시 "기본 소득"의 옹호자인데, 이는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녀서가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죄과의 여파를 두려워한 나머지, 경쟁에서 밀리고 피해를 본 숱한 루저들의 한(!)을 그런 식으로 다스리려 한다는 게 저자가 내다본 그의 속셈입니다. 책에 이처럼 직설적 표현이 있지는 않으나 제가 정리하기론 결국 이 얘기인 듯했네요.

요즘 포털의 뉴스 덧글을 보면, 왜 건전한 방향으로 혁신을 하지 않고 이처럼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쪽, 반 사회적 방향으로 연구를 하냐는 일반 네티즌들의 불만이 눈에 많이 띕니다. 만약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엄청 공감되는 바가 많을 것 같습니다. 여태 일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나 그게 시대의 필연이고 더 좁아진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설령 내용이 옳다 해도 대안이 막연하고 추상적인 주장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게 아니라, 뭔가 활력을 주는 결론이 있고, 시대의 트렌드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듯하여 좋았습니다.

페이스북이야말로 개인 신상 정보를 "연료" 삼아, 현재 미디어의 거인, 즉 ABC, 디즈니 등의 가치를 모조리 합친 제국을 이루리라는 게 저자의 전망입니다. 확보하고 있는 개인 신상 정보 활용에 무슨 돈이 추가로 더 들겠습니까? 한 일 년 전에 "네이버에 보여 주세요." 같은, 이미지 정보 업로드를 독려하는 듯한 광고가 TV에 집행되었는데, 페이스북이 확보한 수없이 많은 일상의 사진이야말로 (빅데이터 분석을 거쳐) 향후 컨텐츠를 무궁무진 뽑아낼 수 있는 자원입니다.

인스타가 요새 뜨는 것도, 유저 층에서의 호응도 호응이지만 이미지 자원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아본 증시에서의 기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죠. 저자는 젊은 나이에 여러 사업을 전개해 보고, 업계의 거인들과 합작을 추진하여 성공도 해 보고 실패도 맛본 분인데, 그가 상대했던 파트너 중 하나인 NYT에 대해, 이대로 가다가는 페이스북의 일개 하청 업체로 전락할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십여 년 전 NYT더러, 구글에 더 이상 기사를 노출시키지 말라고 이미 의견을 내놓은 바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공짜로 홍보가 된다며 오히려 반기지 않았겠습니까. 요즘 많은 업체들이, 구글 검색 차단을 옵션으로 거는 건 때늦게나마 개인 정보가 얼마나 큰 자원 노릇을 해 줄 수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결론에서 저자는 두 가지 이야기를 이어서 합니다. 첫째 그럼 다섯번째 제국으로 떠오를 자격 있는 기업은 누가 될 것인가. 이에는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것, 현재의 애플이나 구글처럼 살인적인 IQ 테스트를 거쳐 채용한 신입 사원 등 풍부한 인적 자원을 갖출 것, 대중에게 성공적이고 호감 어린 이미지를 형성해 왔을 것 등 여러 조건이 제시되는데, 특히 이미지 메이킹 부분에서 우스꽝스러운 풍자나 현실 분석이 많아 읽으면서 자주 웃었습니다. 다음으로 독자가 이런 유망한 기업에 들어가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도 여러 조언을 베풉니다. 이게 꼭 특정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격변하는 미래에 어떤 식으로 대비해야 할지, 가장 치열하게 사회를 겪어 본 경영자 겸 분석가, 학자의 말씀이라 피부에 와 닿은 대목이 정말 많았습니다. 근래 읽은 책 중 거의 버릴 게 없는 알찬 독서였는데, 좋은 건 나만 알고 있자는 생각으로, 서평은 이쯤에서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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