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어퍼 이스트사이드
티에리 코엔 지음, 박아르마 옮김 / 희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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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어퍼 이스트사이드는 초고가 주택이 밀집한 지구(地區)로서, 어지간히 성공한 이들이 아니고서야 접근조차 힘든 곳입니다. 사무엘 샌더슨은 그전에도 태생의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이게 소설 후반부의 반전을 위한 복선이더군요) 원만한 가정(20대 초반에 일찍도 결혼한...)과 괜찮은 직업을 갖고 젊은 시절을 알차게, 행복하게 보낸 남성이었습니다. 이러던 그가 어느날 소설가로 전업하기를 작정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본 결과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처녀작이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부와 유명세를 누리게 되었네요.

기욤 뮈소 등과 함께 프랑스에서 장르 문학의 록스타(나이는 좀 많은 편이지만)로 오랜 동안 군림했던 작가 티에리 코엔에 대해, 혹 자신의 이 소설이 다분히 자전적이지 않냐고 한다면 꽤 문제가 생길 듯합니다. 공식에 따라 서로 비슷비슷한 내용을 담는 장르 문학으로 떼돈을 버는 이들에 대해 심지어 범속한 대중들조차 거부감을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이처럼, 판에 박힌 상업적 창작 활동에 대해 짙은 회의, 심지어 반성까지 내비치는 소설을 쓰는 건 보지 못했습니다. 더글라스 케네디도 작가가 주인공이 되어 슬럼프에 빠졌다거나 초심을 잃었다거나 해서 위기에 빠지는 스토리는 여러 번 다뤘지만, 이 작품은 그 선을 한참 넘어 통렬한 자아 비판(?)까지 담고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보면 어느 열성 팬(정신 이상자)에 의해 납치되어 창작을 강요당하는 내용도 나오는데, 여튼 거기서도 과연 바른 태도로 양심에 거리낌없이 독자를 대해 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잠시 비춰지기도 했죠.

여튼 이 작품의 주인공 사무엘 샌더슨은 처녀작으로 일거에 스타가 된 후 성공에 도취되어 수많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다가, 자신이 20대 시절 첫눈에 반하고 순정을 바친 아내 다나(그녀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배우자였습니다)와 헤어집니다. 딸 메이앤은 아빠에게 너무도 실망이 커서 전화도 안 받고 연을 끊다시피하는데 샌더슨이나 우리 독자들이나 당연히 여깁니다. 즐길 여자는 많아도 아내인 다나를 대신할 만한 상대는 없는데, 의외로 정숙하고 수줍은 구석(그에게 접근한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제시카 에반스라는 여인에게 마음을 주게 됩니다만, 뭔 이유에선지 갑자기 그녀는 샌더슨과 연락을 끊습니다. 진정성 때문에 처음 그녀에게 끌렸듯 샌더슨과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의 역시 진짜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샌더슨의 나쁜 속물 근성이 나오는데, "유명 작가와 한때 사귀었다는 걸 자랑하려고 계획적으로 접근했다가 목표를 이루고 사라짐" 정도로 진실을 왜곡하고 자기 편할 대로 사정을 정리했다는 거죠. 이 제시카가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인연으로 독자 눈엔 보였으나....

이후 샌더슨은 레이첼이라는 여성, 딸 뻘로 나이가 어린 데다 전처 다나나 제시카와는 판이하게 다른, 화사하고 세속적인 여성과 장기적 관계를 맺습니다. 욕구도 풀 상대일 뿐 아니라 에이전트 네이선이 커버 못 하는 사업상의 여러 부분까지 맡는 비즈니스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정체 불명의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기 시작하는데, 해킹 흔적도 없고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던 터라 그는 일종의 망상에 시달리는 것 아닌지 이중의 불안에 빠집니다. 충전을 위해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에 다녀오는데, 여기서 또다시 한 젊은 미인을 만나 관계를 갖고, 이후 그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근데 이런 외형적 사고가 터지기 전에도, 그는 행복한 가정을 스스로 버리고 가족들을 불행으로 밀어넣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지요.

샌더슨은 사르데냐에서 자신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도 미인의 마음을 살 수 있었다는 자긍심을 되찾는데, 나이 사십을 넘긴 이가 이미 포기해야 할 부분에 이처럼 집착한다는 게 인격적 미숙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의문은 소설 후반부에 가서 좀 풀리더군요. 그는 학창 시절부터 남성적 매력으로 이성에게 큰 인기를 끌던 스타였나 봅니다. 이러던 사람이 용케 스타 기질을 잘 누르고 살다 때늦은 성공으로 대박을 치자 카사노바 근성이 폭발해 버린 거죠.

[이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우리 독자들은 여러 정황(경찰이 확인해 주기로도 해킹 흔적이 없었으며 - 사실 이건 서술 트릭을 넘어 좀 반칙입니다 쩝)으로 봐서도 그렇고, 본인도 확신이 안 서는 정신 건강 쪽에 혐의를 두는 걸로 보아, 샌더슨 본인의 망상이 틀림 없다고 여기지만, 그리 진상이 확정되면 끝까지 소설을 읽을 이유도 없는 거죠. 결국 충격적인 반전이 하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범인"의 좌절, 동기도 어느 정도는 이해 됩니다. 희곡 <아마데우스>에서 아무 재능 없이 태어난 노력파가 천재에 대해 적의, 살의를 품고 신에 저항하는 사연이 나온다면, 여기서의 범인은 "신" 대신 "멍청한 대중"에 원한을 품고, 그 대중이 열광하는 "출생에서부터 우연히 주어진 자질"을 모조리 갖춘 샌더슨을 표적으로 삼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완전성으로 통하는 천재적 재능을 지녔기에 범속한 살리에리가 질투할 만한 이유를 충분히 지녔다면, 사실 샌더슨은 그럴 자격조차 갖지 못한, 그저 행운아에 불과한 인물입니다. 어떻게 해서 늦은 나이에 일약 작가로 떠오를 수 있었냐 하면, 어려서부터 무난한 환경에서 비뚤어짐 없이 인성을 갖출 수 있었고, 이런 "자연스러움"이 그의 문장과 문학 세계에 배어났기 때문이죠. 출판사는 그런 모나지 않은 대중성을 선호했고, 반면 "범인"은 스스로도 말하듯 "노력과 수련"을 통해 일정 경지에 올랐으나, 그닥 창의적이지도 못했고 독자 일반을 사로잡을 매력도 부족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상황과 환경을 탓할 만큼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체념하고 살았나 본데, 천만뜻밖에도 자신이 일생을 바치고도 아무 소득 없던 분야에서 (자신이 익히 알던) 샌더슨이 느닷 스타로 부상하고, 게다가 아내까지.... (이하 생략)

끔찍하고 위험한 범죄로까지 사태가 악화되고, 게다가 아무 잘못도 없는 데니스까지 죽인 건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짓입니다. 하지만 사람 하나를 구름 끝까지 띄웠다가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변덕스러운 세태, 혹은 사람의 참된 자질을 못 알아보고 피상적인 외모 따위에 열광하는 천박한 풍조를 두루 비판하는 주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베스트셀러 공식에 편승하여 손쉬운 명예를 누려 온 자가 자신에 대한 반성도 비치는 듯하여 여러 모로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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