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업 전략 보고서 - 중국을 뛰어넘고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이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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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파장과 전망에 대해 논의가 분분하고 무성합니다. 대체로는 "종전의 고루한 사고방식, 건전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입에 밴 넋두리 같은 판에 박힌 불평, 노력 없이 자릿세만 받아먹으려는 직함 위주의 사고 방식으로는 현재의 직장도 유지하기 어려움" 정도에 결론이 모아지는 듯도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각 산업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미래의 산업상에 대한 적응이 용이할지는 별 대안과 논의가 나오지 않는 듯합니다.

이 책은, 여튼 가까운 시일 안에 쉬이 위축이나 후퇴, 심지어 퇴출이 벌어지지는 않을 듯한, 또 현재 많은 이들에게 큰 부가가치를 벌어다도 주는 구체적인 각각의 산업군에서, 현재의 업황이 어떠하며, (꼭 4차 산업의 여파가 아니라 해도) 근시일 안에 업계의 지향이 어떤 쪽으로 변할지에 대해, 각종 통계와 지표를 근거로 매우 구체적인 전망과 제언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기틀도 마련 못 하거나 첫걸음도 떼지 못 한 추상적인 직업, 산업에 대한 공상 가까운 논의도 아니고, 믿을 만한 논거와 자료에 기대어 직간접 관련자들을 위한 충고를 상세히 풀어 놓았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듭니다.

그저 장밋빛 미래만 듣기 좋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읽다 보명 "허 참 이런 일을 다 겪고도 여태 몰랐단 말인가"하며 분노가 치미는 대목도 있고, "큰일 났군. 개별 국민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앞으로 뭘 해먹고 살까" 처럼 눈 앞이 캄캄해져오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FDR의 말처럼, 업황과 미래상이 아무리 암담하다 해도 괜한 호들갑으로 직업인들의 사기까지 꺾어 놓을 이유는 없습니다.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적실한 대비책도 마련되기 마련이므로, 독자들은 최고의 전문가들이 정리한 현황, 분석한 대안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읽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망상에 젖지만 않으면, 뭐라도 돌파구가 생기기 마련이며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도 극복해 낸 적 있습니다.

1장은 단 한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었는데, 저자 명의는 못 찾았으나 아마 이근 교수(학부 때 개인적으로 제 지도교수님이시기도 했던 ㅎㅎ)님 저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 아티클은 책 전제를 요약하거나, 이 기획의 성격과 의의를 압축해서 보여 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아무리 암울한 현실이라도 정면으로 시선을 준 후 돌파구를 찾으려 들면 못 할 일이 없다고도 했습니다만, 곁에 버티고 서서 불쾌한 선택(사실상 선택도 아니지만)을 강요하는 중국과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 나갈지는 깊은 고민을 쏟아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 대립각을 세우고 이해가 계속 상충하는 경쟁자로 대할 수도 있고 2) 대등한 관계를 설정한 채 약은 호혜 관계를 이어가는 협력자가 될 수도 있으며 3) 마치 대기업과 중소기업처럼 원-하청 관계로 수직적 분업을 일굴 수도 있는데 사실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3)이며 한국인이 악몽으로 간주하는 시나리오도 3)입니다. 2)는 그저 3)의 현실을 호도하는 우회어법이나 겉만 그럴싸한 가림막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 네덜란드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영리한 생존 방법을 모색하며 한때 무역 제국을 건설한 적도 있었으나, 나폴레옹이 득세할 때는 프랑스에, 호언촐레른 황실이나 나치가 판을 칠 때는 독일에 각각 먹힌 바 있습니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사실상 매우 협소한 몇 가지 길뿐이나, 여튼 겨레 전체와 경제인들의 지혜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2장의 첫 글은 게임 산업에 대한 전망과 진단입니다. 영화 <대부>를 보면 비토 코를레오네와 탐 헤이건이 마약 산업(?)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는데, 결론은 "우리가 설령 손을 안 대어도 누군가가 발길을 내디뎌 거기서 나온 수익으로 판을 다 쓸어 버릴 테니, 이 장사야말로 '미래'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는 대사에 잘 녹아 있습니다. 엄연히 합법의 영역인 게임 산업을 두고 "마약"에 비유하는 건 좀 어폐가 있지만(그 정도가 아니라 그 많은 게임 팬들이 몰려와 항의할 일이지만), 산물 혹은 서비스가 다분히 향유자의 "중독성"에 기인하는 바 크고, 사회 일각(주로 노년층)으로부터 우려, 의심어린 시선, 심각한 질타를 사기 일쑤라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아주 없지도 않습니다.

정서 순화와 인문 마인드 함양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통속 문학류 역시 장르에 빠져드는 중독자 양성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고, 설령 인문 고전이라고 해도 아주 속물적 맥락에서만 인용하거나, 일일이 막장 코드로 (자기 수준에 맞게 변환하는) 저질 독자(독자라기보다는 중독자라고 해야 마땅할)가 유식한 척 떠들어대는 풍조에 비기면, 게임 팬들이 특정 캐릭터를 거론하며 일상의 대화 소재로 삼는 분위기는 하나도 비난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미래의 담론은 게임 스토리와 배경, 캐릭터들이 주된 비중을 차지하며 인문과 픽션을 주도할 것입니다. 게임보다 무대도 협소하고 창의력도 훨씬 덜한 웹툰이 현재 젊은이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점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서브컬처와 주류 고급 문화는 서서히 경계가 사라져갈 뿐 아니라, 후자의 경우 어차피 취향이 고급으로 태어나거나 환경 속에서 길러진 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뇌 대신에 짬뽕만 가득한 돌머리가 어설프고 코믹한 흉내를 낸다고 달라질 문제가 아니죠.

2008년 이전에는 중국 게임 업계와 시장이 혼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국내 업체가 참신한 스토리와 깔끔한 비주얼로 진출만 했다 하면, isbn를 받아와라 뭘 보강해라 심사를 거쳐라 시간만 질질 끌고 허가를 내어 주지 않다가, 어느새 저질스레 짬뽕 같은 헛소리를 늘어 놓는 치매 걸린 노파처럼 짝퉁이 먼저 시장에 깔려 유저들을 선점하기 십상이었습니다. 2008년 이후 저작권 보호를 강화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공정한 경쟁이 이루지기에는 미흡한 실정이며, 몇 주 전 EU 국가들이 입을 모아 그 심각한 실정을 지적도 한 바 있습니다.

국내 업계도 고질적인 문제점과 타성을 개혁해야만 앞날이 긍정적일 수 있으며, 중국이 맹추격한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가 경쟁력을 (다소나마) 보유한 AR, VR 플랫폼에서 비교 우위를 강화해야만 합니다. 가장 우려되는 건 아직도 국가나 사회 단체에서 "유해물"의 범주에 이 게임을 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 생각에는 공대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가 이 AR, VR 섹터에 집중 투입되고, 최고의 인력이 게임사에 영입되어 승부를 걸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일부 마니아층만 접근 가능한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노래방에서 피로를 풀듯 중노년층도 거리낌 없이 향유하는 게임 시장의 외연 확대가 절실하고, 이 저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비전이 절실합니다.

노령 인구가 증가하는 21세기는 누가 뭐래도 건강 산업이 가장 각광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중국 스마트 의료의 현황을 점검하는데, 이 대목에서 사실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환자나 서비스 수요층도 별의별 사람이 다 나오기 마련이고, 이에 대응하며 기업의 체질이 단련되는 속도나 양상도 차원이 다릅니다. 게다가 중국의 정부는 애초에 정책의 기조가 흔들릴 걱정이 없기에, 알토란 같은 프로젝트를 잘 가꾼 후 (독재든 뭐든) 밀어붙이기만 하면 되니, 민간의 창의가 혹여 부족하다 해도 진척과 발전이 두드러집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지역이 워낙 광대하다 보니 원격 의료에 대한 수요도 크고 발전의 유인도 강하게 작용합니다. 한국도 무의촌 무변촌(변호사 없는 마을) 문제가 심각하지만 영원한 장기 과제로 남은 반면 중국에서는 여튼 불편의 타개를 위해 뭐라도 몸부림이 이뤄진다는 게 중요합니다. 치료와 진단이 원격으로 이뤄질 뿐 아니라, 의약품의 판매, 배송도 동일 메커니즘인데 한국에서는 현실과 법제적 제약 때문에 상상히 힘든 풍경이죠.

"스마트 헬스 케어"의 경우 가장 총명하고 교육 잘 받은 인력이 대거 모여드는, 마치 1980년대 미국 실리콘 밸리를 연상케 하는 단계라고 합니다. 민간의 의욕이 충만하고, 그 인적 자원의 품질도 높을 때 산업의 전망이 밝은 건 당연하며, 반면 우리는 젊은이들이 공무원 채용에 최고의 열을 올리니 나라의 장래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료와 직접 관계가 없는 회사들도 대거 진입하여 이 시장의 무궁무진한 과실을 탐하며, 자신들 역시 스타트업으로 시작하여 대기업으로 우뚝 선 텐센트, 알리바바 등이 이제 새로 시장에 진입한 타 스타트업들을 후원하며 엑셀러레이터 노릇을 하는데, 저자는 IBM, 구글 등보다 훨씬 양질의 사회적 책무(동시에 자사의 장기적 이윤 추구)를 행하는 이들 기업의 밝은 안목에 경의를 표하는군요.

농업은 그저 전근대 산업으로만 인식되었으나, 저는 3년 전쯤에 "6차 산업"으로서의 농업 그 비전에 대해 상세한 설명과 비전을 담은 남상일 선생의 저술(https://blog.naver.com/gloria045/220382039684)을 읽은 적 있습니다. 한국에서만 지지부진이지 이 분야에서도 다른 선진국이나 심지어 중국조차 엄청난 투자를 하며 미래를 준비하더군요. 사실 중국이야말로 태생에서부터 농업으로 출발의 기반을 잡은 나라이며, 거대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다른 인프라까지 구축한 농경 문명권과, 그저 소수 엘리트 전사의 무력에만 의지하는 유목 문화권의 대결 구도에서 항상 긴장을 곤두세우던 나라가 또 중국입니다. 심지어 공산주의 혁명이란 본시 공장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로서 각성하여 일으킨다는 게 공산주의의 정통 교리인데, 마오쩌둥이 스탈린과 일일이 대립해 가며 이 도그마를 자국 현실에 맞게 수정까지 한 역사도 있습니다. 중국은 3농 문제로 대국으로의 발돋움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데, 이른바 스마트팜의 개척으로 여러 사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포부라고 하는군요.

국가가 야심차게 계획을 마련해도 민간의 의욕, 창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 없습니다. 스마트 팜의 비전에 기대어 민간에서도 이 분야 투자에 매우 열성이고 관련 기술 인프라에도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데, 이 분야 기술을 가리켜 "어그테크"라고 부른다는군요. 우리는 첨단 미래 산업 중 하나인 바이오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도 그저 간간히 회젯거리가 되는 게 고작인데, 중국에서는 이처럼 미래 아젠다 하나하나가 실제의 화두로 부각될 뿐 아니라, 민간의 자금이 제 출구를 알아 보고 몰려들기까지 한다는 게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름이 "6차 산업"인 게 괜한 명칭 인플레가 아니어서, 산업 간 융합이 선행 필수 조건인데 이 점에서 전통 제조업, 서비스업 체질이 튼튼한 편인 한국은 기회가 꽤 열려 있는 편인데도 근시안적 틀에 갇힌 마인드가 아쉬울 뿐입니다.

바이오 시밀러는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를 떠나서, 이미 십 년 전부터 "이 분야야말로 국가간 승패가 갈리는 최후의 격전장"이라는 점이 이미 합의에 이르렀다 할 만큼 각광 받는 분야이고, 삼성 이재용 회장도 이미 십 년 전부터 자사의 미래로 언급한 적 있습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2012년에 삼성은 미국의 바이오젠과 합작사를 설립하여 착실히 기반을 다져 왔습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전망 좋다며 자주 거명되는 (주)셀트리온의 모범적인 R&D와 전략도 책에 자세히 소개되었습니다. 사실 여기서도 규제 문제가 또 말썽인데, 중국에서 현재 크리스퍼 기법이 잠시 서유럽을 추월한 것도 애시당초 윤리나 인권 관련 규제가 전무한 중국 특유의 무식한 분위기가 한몫 한 겁니다. 근데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이 한국에서는 매우 엄격한 규제로 자리하며, 앞서 언급한 대로 게임 역시 온갖 규제와 비우호적인 분위기 때문에 산업으로서 온전한 발전을 도모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한국에서는 이른바 오픈마켓이라고 불리는 C2C 섹터가, 가뜩이나 시장도 좁은 터에 발전하기가 여러 모로 힘든 조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디 열악한 생존 조건 하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발전시킨 베두인 족, 노르만 족, 몽골 족 등의 사례가 있긴 합니다만, 공통적인 다른 성장 촉진 요소는 뻬어난 리더십과 효율적인 조직 문화가 개개인의 성취욕, 승부욕을 돋우어 주는 구조였습니다. 한국은 이 중 과연 무엇을 갖추고 있습니까? 또, 이제는 모든 면에서 최우선의 고려 요소가 되어 버린 중국이 갖춘 강점은 무엇입니까?

성장이다 혁신이다를 논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실 이 책의 저술 팀에 속한 저자의 면면에서는 대개 이런 기조로 논의를 이어 왔습니다(전작들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러나 이 책은 결론 파트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 하나를 던집니다. 어차피 물적인 성장도, 또 국가가 마련한 혁신의 인프라도 이제 중국과 정면으로 견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중국이 보유한 물적 기반이 우리보다 월등하고, 심지어 지도층의 혁신 의지나 장기 비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전술 역량도 우리보다 앞섭니다. 무엇으로 중국과 붙어야겠습니까? 무엇을 들이밀어야 중국이 애초에 우리와 경쟁이 안 되는 강점으로 항구히 의존하고 체질화할 수 있겠습니까?

저자들이 제시하는 답은 "인간 중심 경제 구조"입니다. 스마트팜이나 혁신의료, 핀테크, 게임과 AR, VR 등도 자세히 보면 중국은 서유럽, 미국에서 일단 기본 이론과 프레임을 베낀 후 무식하게 물량을 투입해서 밀어붙이는 매우 단순한 전략뿐입니다. 명목은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사람 값이 개값만도 못한, 천민 자본주의의 전형입니다. 텐센트 같이 멋지게 살아남은 스타트업도 있지만 이 하나를 띄우기 위해 비참하게 떨려나간 패배자, 도산 기업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거리를 다니다 그저 공안의 눈에 밉뵈어 범죄자 신세로 떨어져 남편도 자식도 없이 모르모트 취급 당하는 짬뽕 같은 인생은 일일이 거명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국은 인권 사정이 이 정도는 아니며, 운전기사에 대한 오너 가의 가혹 처우까지 일일이 문제가 되는 걸로 보아 국민들의 자의식과 명예욕이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높습니다. 저자가 제언하는 건 사회 친화적인 기업, 소비자를 배려, 공감하는 인간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비인간적인 산업 구조의 경쟁자들을 자연스럽게 따돌릴 수 있는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추자는 쪽입니다. 현 대통령의 지난번 선거 캐치 프레이즈 중 하나가 "사람이 먼저다"이기도 했던 만큼, 실천에 옮겨지기만 한다면야 이 험악한 경쟁의 장에서 그야말로 최후의 결정타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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