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멋진 발견 - 빅데이터가 찾지 못한 소비자 욕망의 디테일
김철수 지음 / 더퀘스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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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빅데이터의 시대입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데이터의 광막한 바다 속에서, "맥락"과 "정보"와 트렌드와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을 두고 "데이터 마이닝"이라 부릅니다. 기업의 혁신이나 R&D가 거의 한계에 달한 시점에서, 빅데이터는 수익 창출의 돌파구를 찾을 유일한 원천으로까지 일각에서 여겨집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식, 즉 "직관과 통찰"에 의해 트렌드 예측이 가능하다고 여전히 믿는 분들도 많으며, 왠지 우리들도 그런 입장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빅데이터에 매몰되지 말라." 사실 매몰되지 않으려고 해도, 또 이 새로운 가능성의 바다를 신봉하며 마음껏 항해하려 들어도, 워낙 양이 방대하다 보니 매몰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저자가 말씀하시는 바는, "빅데이터가 전부인 양,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는 양 맹신하지 말며,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건 어디까지나 당신 자신의 밝은 눈임을 잊지 말라"는 취지이겠습니다.

저자는 물론 빅데이터의 중요성도 결코 소홀히 취급하지 않습니다. "...마케팅 활동으로 쌓이는 거대한 데이터는 앞서가는 기업으로서의 자부심이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보험과도 같다...." (p35) 저는 여태 관련 도서들을 읽으며, 빅데이터의 의의를 정리한 문장 중에 이처럼 깔끔하고 공감 가는 표현은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한편으로 ".... 얽히고설킨 데이터의 덩굴 속에 갇혀 기회의 줄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p37)" 게 국내외 막론하고 정직한 업계의 현실입니다.

요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단연 핫한 직업이 바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입니다. 경영학을 연구하는 중진 교수님들은 학생들더러 "너희들 열심히 빅데이터 연구해라. 그걸로 평생 먹고살 수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수님 자신들도 여태 실무(산학 협동 과정)에서 노다지를 여럿 캐신 듯 보이지는 않고, 기업들 역시 심봤다는 듯 빅데이터애서 발견한 "가치"로 돌파구를 찾았다는 사례도 많이는 언급 안 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 현재의 데이터 활용 능력으로는 그것(고객의 맥락과 의도)을 명확히 파악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게 솔직한 진단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씀 하시는 저자 역시 SK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최고의 경력을 쌓으신, 이 분야 국내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분이십니다.

저자는 또한 날카로운 지적을 하십니다. ".... 사람들은 기업이 자동으로 추천하는 일방적 행태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 물론 우리는 이른바 "결정 장애" 같은 상태에 곧잘 빠집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마음에 드니 뭘 골라야 할지 모를 행복한 순간도 있고, 반대로 모든 선택지가 다 시원찮아서 심드렁하거나, 경우에 따라 위험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전문가(그것이 AI이든 뭐든)가 척 하고 권위 있게 추천해 주면 좋을 듯도 하지만, 아직은 시스템에 대해 그런 신뢰가 생기질 않고, 내가 권위를 부여 하는 누군가(물론 사람)가 내리는 판단이 더 믿음직하다 여깁니다. 반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소양을 쌓고 친숙히 여기는 분야나 대상에 대해서는, 설령 결과에 후회가 있을망정 내가 내 소신, 내 감각에 따라 내리는 판단이 훨씬 뿌듯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기계적으로 내리는 예측과는 달리, 아무리 추천 시스템이 정제된 후의 미래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취향과 선호 기제에 더 큰 가중치를 둘 것이라는 저자의 말씀은 그래서 공감이 갑니다.

저자는 또한, "젊은 층일수록 시스템에 그저 끌려다니기보다, 시스템과 '협력'하면서, 자신만의 옵션을 매번 행사하는 편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p37). 사실 독자인 제 생각으로는 노년층이라고 해서 어디 AI의 자동 추천 기제에 마냥 추종들만 하시겠나 싶습니다만, 여튼 이 패턴의 주된 소비자로 떠오를 젊은 층마저 마냥 손쉬운 데이터 마이닝 타깃이 되지 않으려 든다면, 이 채굴의 전망은 가뜩이나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나다를까 p42에는 어느 노년 고객의 이런 반응도 소개되네요. "저 아직 그렇게 늙지 않았어요. 나이가 훨씬 더 들면 써 볼 수도 있겠네요." 요즘 광고에 나오는 "2000년대 액션물 중 UHD로 나온 것 찾아줘" 같은 건, 당장 제목이 생각 안 날 때 요긴하게 의지할 수는 있는 시스템이겠으나(그 모델 분도 그 정도 용도로 쓰신 거겠죠), 사람의 복잡미묘하고 변덕스럽기까지 한 취향을 완전히 대체, 분석할 수는 없습니다. 혹여 여기에 자신의 일상 패턴을 송두리째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첨단 기기를 능숙히 활용하는 현대인이 아니라(남들 눈에 그렇게 보이고 싶었겠지만), 기업 마케팅의 호흡에 자신의 영혼을 길들이는 모자란 백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이는 일자리를 걱정하는 소극적 혁명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깊은 맥락까지 모두 찾아내어 어떻게 니즈를 만족시킬지를 밝히고 성과를 거두는 적극적 혁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백번 맞는 말씀인 게, 혹 일자리만 잔뜩 축소시키고 소비의 포텐셜을 갉아먹는 "혁명"이라면, 애초에 그 추진 동력을 무엇으로부터 마련하겠습니까. 자기 설 자리를 스스로 붕괴시키거나, 그리스 신화의 에뤼직톤처럼 제 살 깎아먹기 식의 혁명이라면, 그 혁명의 성과가 애초에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대체 앞으로 전개될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바가 뭔지부터 한번 살펴 보라고 권합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카리스마적이고 통찰력 있는 지도자의 방침에 따라, 생산이든 소비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대량 생산 대량 소비 패턴이 행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소비자 각 개인이 모두 취향과 선호를 달리하며, 기업은 이런 세밀한 흐름을 어떻게 찾아내어 니치 시장을 발견, 공략할지가 사활이 걸린 과제입니다. 아예, 모든 시장이 니치 마켓이 되어 가는 게 작금의 추세이며, 이런 미세 트렌드까지 재빨리 파악하여 비즈니스 모델(저자는 "관점"이란 표현을 쓰십니다. p51)로 연결 시킬 수 있을까? 이는 저자의 단언에 따르자면, "빅데이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겉으로 드러난 팩트가 아니라, 보다 깊은 곳에 존재하는 본질과 새로운 관점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각의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는 "한두 번의 학습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며, 일상 속에서 꾸준히 습관화하여 몸으로 체득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역량(p51)"이라고 하시는데, 사실 앞으로 잠시 돌아가면 "고객의 체험과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기업이 고객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체험하는 동선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여야, 이런 통찰과 감각이 생긴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전통적인 분류 방식대로, 고객의 니즈에는 표현 니즈가 있고 잠재 니즈가 있습니다. 또, 잠재 니즈는 다시 감성적, 사회적, 문화적 니즈의 세 층위로 나뉘어지는데, 물론 이 셋은 정도와 방향에 따라 표현 니즈 영역에도 몇 발을 걸칩니다. 그런데 벌써, 감성, 사회, 문화의 층위와 범주가 등장한다면, 도대체 모바일 앱이 열심히 모아들인 각종의 데이터로부터 이런 추상적, 비정형적 맥락이 쉽게 포착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설령 빅데이터로부터 이런 맥락이 잡아져도, 이를 공식화, 표면화, 비주얼화하는 건 벌써 사람의 안목이고 통찰이며인문적 해석이지 빅데이터의 공로가 아닙니다. 말끔히 다듬어진 싱싱한 회 한 접시가 우선은 셰프의 솜씨이지, 거칠고 무심한 바다에 대고 감사할 게 아니듯 말입니다.

고객은 모릅니다. 자신이 진정 뭘 원하는지 모르고, 단지 목이 말라 찾아 헤맬 뿐입니다. (이를 일일이 아는 고객이라면 그 사람은 똑똑한 소비자이기 이전,  이미 현명하게 자기 생을 꾸려 나갈 줄 아는 선택 받은 소수라고나 해야겠습니다) 이처럼,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니즈를 먼저 알아채고 "이거 말씀이시죠?" 라며 눈치 빠르게 서빙하는 직원처럼, 그래서 "나 여기 말고 딴데 안가" 같은 고객의 자발적 충성을 확보할 줄 아는 기업이라야,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살아남는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그저 싼 값에 많이만 찍어 내고, 세뇌 같은 광고 공세로 소비자를 길들이려는 무지막지한 기업은 설 땅이 없습니다. 벌써 소비자는 광고라고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빅데이터에서 고작 광고 거리만 찾아내서 잔뜩 확성기로 떠들 생각이나 갖는다면 그 이상 시대착오적 발상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내 맘을 나보다 먼저 알아 뭘 제안해 오는 기업이라니 그게 바로 감동 아니겠습니까.

그런 상품, 그런 기업, 그런 엔터테이너(이미 이런 기업은 기업이 아니라 연예인과도 같습니다), 그런 호스트가 있냐고요? 이 책을 읽으면 몇 챕터에 걸쳐서 그런 성공 사례가 줄을 이어 행진합니다. 클라우스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코인하기도 전에, 이미 이들은 채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먼저 살고, 또 선도했던 셈입니다.

해외의 다채로운 사례 소개도 좋지만, 저자는 한국인이시고 한국의 가장 치열한 경쟁의 장, 혹은 가장 앞선 소비자들이 거주하는 부촌(富村)에서 직접 피부로 맞닥뜨린 여러 사례를 개발, 정제(?)하여 독자들과 공유하시는 게 참 만족스러웠습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선릉역 앞에서 저자가 목격한 트럭 상인의 실례가 아주 흥미롭게 소개되는데요.

1) 트럭 상인과 고객(시니어 쇼퍼) 사이에 자신들만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재미있는 언어 소통이 이뤄진다.

2) 큰 봉투를 준비해서 양껏 채워지게(다 사가게) 미리 세팅한다. 고객의 이름도 모르면서 열심히 메모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다음 번에 판매할 상품은 여튼 성의껏 준비한다.

3) 어차피 마트나 몰에 가서 쇼핑을 즐길 젊은 층은 배제하고, 철저히 시니어 쇼퍼의 눈높이와 정서에 집중한다. 중요한 건, 이들의 구매력이 장난 아니라는 사실.

4) 경쟁심을 처음부터 치밀하게 자극하는 선착순 판매 방식을 고집한다(애초에 고객 주문을 메모하는 건 그저 제스처였을 뿐)

5) 그러면서도 판매 중의 소통은 철저히 개인화하고, "덤"은 필수이다. 타겟층의 정서에 철저히 융화.

이런 전략을 몸소 개발, 실천하는 사장님은 50대이며, 이분으로부터 물건을 사는 분들은 6, 70대 할머니들이 대부분인데, "아가씨" 등으로 호칭하며 구수한 반말로 상대해도 그렇게들 좋아하시더랍니다. 마치 책 저 앞에서, 동네에 우물을 파 주었건만 인도의 젊은 주부(며느리)들이 외면하더라는 그 사례와도 맥락이 통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기계적 편의가 아니라, 문화적 니즈가 반영된 총체적 체험이며, 이런 고차원, 심층의 심리를 알아내려면 인문과 일상의 반복적 수련이 필수라는 게 이 책의 멋진 결론입니다. 요즘처럼 값싼 정보화, 디지털 만능론의 시대에 이런 참신하면서도 효과적인 제언이 담긴 책을 만나본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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