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를 바꾼 위대한 과학 - 만유인력.원자 구조.상대성 이론.빅뱅.진화론.유전 법칙.DNA
아놀드 R.브로디.데이비드 엘리엇 브로디 지음, 김은영 옮김 / 글담출판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과학이란, 바른 방법론과 신중한 절차에 기댄 한 어떤 것도 위대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위대한 과학은 또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발걸음이 인류 역사를 앞으로 나가게 한 위대한 몸부림입니다. 해서, 정도의 차이가 다소 있을지야 모르나 저 장구한 과학 발전의 자취에서 가장 위대한 일곱 개의 이벤트, 이정표를 꼽는 작업은 무척이나 어려울 듯합니다. 이 지난한 과제에 누군가가 과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듯 나서서 그 깔끔한 결과를 우리 평범한 독자들에게 추려 줄 수만 있다면, 그 역시 위대한 봉사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저자분들의 약력을 보십시오. 공저자 두 분은 형제 사이인데, 한 분은 병리학자, 세포 생물학자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분이고, 다른 분은 이름난 변호사이자 과학 작가입니다. 주된 종사 분야는 크게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 이 두 분은 성장기를 함께하며 자연과학과 그 역사에 대해 열정과 탐구의식을 공유도 한, 드물게 보는 권위자들이자 멋진 호흡을 이루는 한 팀이기도 합니다. 특히 변호사는 청중에게 진실, 혹은 진실에 가까운 어떤 사항을 호소력 있게 공감시키는 게 직업상의 주된 사명입니다. 어려운 과학 내용을, 정확한 소양을 바탕으로 삼고 우리 무지한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납득시켜 준다면 민완 변호사보다 이에 더 적임자인 분도 또 없을 듯합니다.

이 책은 아마존닷컴이 갓 창립되었을 시절 일약 베스트셀러에 올라, 아직 도서 전문 쇼핑몰 정도에 머물었을 무렵 사이트의 인지도와 인기 흐름과 함께한 내역이 있기도 합니다. 모르긴 해도 몰의 관심도를 높이는 데 한몫 했을 이 책에 대해 아마존 측에서도 잊지 못할 듯하고요. 과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힘든 과제이며, 아마존 역시 인터넷에서 책을 판다는 컨셉이나 BM이나 관행이 일반에 대단히 낯설게 느껴지던 장벽을 아직 뚫고 나가야 할 단계였습니다. 이 책은 그 한참 후 개정판이 나왔는데, 이번에서야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저자들의 유려한 설명과 정확한 비전이 우리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중심에서 끌여내려진 지구".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여겼음에도 그 우주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지구가 놓였다고 여긴 걸 보면, 우리 인간은 말로야 섭리를 앞세워도 기실 지극히 자기 중심적 존재인가 봅니다. 이 책은 인류 역사를 바꿔 놓은 과학 업적 첫째 타자로, 비교적 근대로 내려와 뉴턴의 만유 인력 법칙 발견 등을 꼽습니다. 물론 이 첫째 장에는 아이작 뉴턴 경만 나오는 건 아니고, 뉴턴 경 자신이 겸허히 고백했듯 "자신에게 어깨를 빌려 준" 거인들에 대한 서술도 자세합니다.

저자들은 비단 과학사뿐 아니라, 인류사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합니다. 특히 1장은 몽골 킵차크 한국(영문 서적에서는 주로 Golden Horde라고 표현하죠)이 유럽을 휩쓸 때 함께 이곳을 짓밟은 공포의 질병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데, 저자 형제분 중 한 명인 아널드 R 브로디 박사님의 기여가 더 크지 않았을까 짐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로 구태여 첫 챕터의 막을 연 건, 그만큼 유럽 문명의 기반이 매우 허약했던 시대상을 회고하며, 이런 시대를 떠받들던 게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얼기설기 점성술에 끼워맞추던 개탄스러운 수준을 짚기 위함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에 완고한 일부 기독교 세력의 패착도 끼는데, 용감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등의 혁신적 발상 전환은 그야말로 인류에게 단지 지성의 더 환한 축복을 내린 데 그치지 않고, 역사, 생활 양식에의 총체적 개혁까지를 유도했습니다.

뉴턴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명만 꼽아도 그가 선정되어 지나침이 없을 만한 천재입니다. 학설 체계를 인위적으로 구획하기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지만, 만유인력도 그렇거니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해 낸 (물론 독일의 라이프니츠도 독립적 경로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만) 미적분법이야말로 이후 문명사에 무한한 응용의 도구를 안긴대 업적임에 틀림 없습니다. 바로 앞 부분에 케플러라는 천재의 기괴한 개성도 잠시 언급됩니다만, 뉴턴 역시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으로서는 약점이 많은 위인이었습니다. 책은 2012년의 위대한 광학상의 업적 중 하나인, 가시광선 입사시 굴절률이 0로 나온 최초의 성공례도 잠시 소개하는데(개정판 맞죠 ㅎㅎ), 이 쾌거에서 다시 확인되는 건 오히려 뉴턴의 위대성입니다.

2편은 원자 구조론의 소개입니다. 먼저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나오고, 돌턴 등의 고전 모델이 잠시 언급되지만,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본편'은 양자 역학 세계입니다. 우리말로 "양자 도약"이라 옮겨지는 퀀텀리프는 사실 영미에서는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일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 하나죠. 이 2편이야말로 "어려운 걸 쉽게 풀어주는" 저자분들만의 장기가 잘 증명되는, 책의 백미이자 압권이라 부를 파트입니다. 닐스 보어, 러더퍼드, 마리 퀴리 같은 시대의 거인들이 교차로 무대에 오르며, 그야말로 역사를 바꿔놓은 대발견과 이론의 구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우리 독자들은 차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2009년의 LHC에 대한 언급도 있고, 이론 자체는 훨씬 전(지금으로부터 반 세기 전)에 나온 힉스 보손도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 본 후,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회고를 통해 과학자 간 국제 연대가 깨어지고 만 아픔도 감성적으로 풀어 줍니다. 잠시 동안, 며칠 전 뉴스를 탔던 로봇 관련 외국 학자들의 카이스트 보이콧 선언(철회되었습니다만)도 생각이 나더군요.

아인슈타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철학자 에른스트 마흐입니다. 물론 뻬어난 "발상"을 과학으로 다듬은 업적이야 오롯이 아인슈타인의 것입니다만, 저자들도 그런 평가를 하고 있듯 그는 실제로 철학자와 과학자 사이의 경계를 끊임 없이 넘나들었고, 이 점이 바로 그를 동시대 과학자들보다 한층 위대하게 부각한 정신적 자질입니다. 누가 닐스 보어나 하이젠베르크를 들어 "철학자"라고는 잘 하지 않지 않습니까. (간혹 철학사 서적에서 하이젠베르크의 인문 유산에 대해 천착하긴 합니다만)

상대성 이론은 물론 아인슈타인 본인이 제안도 했고 본인 당대에 거의 남김 없이 해명도 이뤄졌습니다만(이 역시 흔한 사례가 아닙니다), 그 대중적 이해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며, 근 백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일부 영리한 대중 작가들에 의해 "보다 나은 설명 방법"이 제시되곤 합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임은 우리 독자들이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특히 압권은 상대성 이론을 갈릴레오의 전통 프레임으로 변환했을 때 어떤 모습인지 친절히 풀어주는 대목입니다. 일상은 뉴턴 역학에 의해 거의 부족함 없이 커버된다고도 하지만, 그 일상의 많은 부분은 또한 미해명의 상태로 남았기에 이런 천재가 20세기에 출현이 가능하기도 했던 겁니다. 그의 해명이 워낙 매끄럽고 빈틈이 없던 터라 양식 있는 그 어떤 과학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책에서는 2011년 나사의 "증명"이 이 거대한 행보에 화료점정 구실을 했다며 특별히 기립니다. (역시 개정판의 흔적)

다음 파트는 빅뱅에 대한 설명입니다만 이보다 앞서 천체 물리학 일반의 지난 자취에 대해 간단한 조망이 나오네요. 허블, 배로, 조르주 르메트르 등 이 분야 대중서에서 자주 만나던 친숙한 인명들이 행진합니다. 앞서 아원자 단위의 세계를 다루는 "표준 모형"도 소개되었지만(우리가 이 이름으로 아는 가장 잘 알려진 이론 체계), 빅뱅 이론은 그보다 훨씬 앞서 "표준 모형"의 지위를 이미 얻었습니다. 이 책에는 (당연하지만) 노벨 상 수상자들의 면면이 자주 언급되는데, 1979년에 로리트가 된 스티븐 와인버그 같은 이의 업적 덕분에, 이미 빅뱅 이론은 정황 증거를 수북이 갖춘 가설이 아닌 정설에 가까운 지위입니다.

우연히 발견된 우주배경복사, 과연 광막한 우주에는 우리 인간 외에 어떤 지성적인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요. 미치오 가쿠 같은 이들이 자신의 대중서에서 흥미롭게 설명해 준 대로, 우주에는 과연 종말이 닥칠지, 그간 팽창을 거듭해 온 추세와 중력 간의 숙명적 대결에서 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올지, 이 분야의 과제는 파고파도 끝이 없습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는 이유에서 다윈의 업적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보다 앞서 저자들은 세균들과 고세균(古細菌)들이 따로 분류되는 입장(물론 현대의 다수설입니다)을 지지하며 칼 우즈(2012년 타계)의 탁월한 안목과 전위적인 세계관을 특별히 높이 평가합니다. 이런 태도는 앞선 시대 비슷한 행보로 일거에 패러다임 혁명을 몰고온 찰스 다윈과의 개성 유비를 끌어내려는 의도임을 우리 독자 누구나 눈치챌 수 있습니다.

앞서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통해 행한 "예언"도 이후 학자들에 의해 하나하나 "증명"되었듯, 책은 최근에 이뤄진 각종 화석상의 증거 발견과, 현생 종의 생태 속에서 관측되는 "자연 선택과 진화의 빠르고도 놀라운 양상"에 대해 언급, 소개합니다. 이 중 재미있는 건 인류의 기원을 400만 년 이전까지 끌어올린 아르디(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사연입니다. "아르디"는 에티오피아 말로 "바닥. 기본"이란 뜻이죠. 좀 특이한 건 판 구조론 등이 이 진화론 파트의 일부로서 같이 다뤄진다는 건데, 두 이론이 많은 증거를 구조적으로 공유할 뿐 아니라, 진화론만큼이나 유독 지독한 박해와 차별을 받은 지질학에 대한 이 저자들의 시선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포와 유전법칙, 그리고 DNA 토픽은 서로 한데 묶일 만도 하건만 저자들은 이를 각각 6장, 7장으로 나눠 놓았습니다. 이는 아널드 R 브로디 박사의 주전공 분야에 인접하기도 한 만큼 각별히 할 말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실제 읽어 보면 타 대중서와는 전망의 방향과 컨셉이 다소 다르다는 점도 감지됩니다. 점균류의 경우 우리가 중등 과정에서 배운 대로 동물과 식물의 특징을 겸유하는데, 사실 이처럼 모든 학문 분야에서 배중률을 관철하려는 태도는 참 무모하기까지 합니다. 점균류의 경우 학자들이 놀라워는 하면서도 인식 과정의 모순은 거의 느끼지 않고 수용하는 반면, 양자역학이나 빛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얼마나 거부감이 컸습니까. 개선이나 폐기의 운명을 맞을 것은 현실을 더 이상 설명 못하는 패러다임이지 현실이 아닌데도 우리는 종래의 선입견에 완강히 매달리는 우를 범합니다. 반면 학창 시절 공부 못 한 한이 그렇게라도 풀릴 수 있다는 듯, 기존 이론체계가 무조건 붕괴 대체된다는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는 바보도 종종 발견됩니다.

볼복스처럼 개체들이 서로 달라붙어 살아가는 다세포 유기체 패턴이, 과연 생존에는 얼마나 더 유리한 효과를 볼까요? 저자 본연의 전공 영역인 만큼 특히 대식 세포 파트에 가면 저자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도 나오는 등 서술은 한층 활기를 띠고, 세포론은 이어 멘델의 초기 유전 연구에 바톤을 넘깁니다. 이런 유전자의 "본체"가 DNA임을 알게 되는 데까지는 다시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어느 학문이건 종전과는 다른 차원에의 도약을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이 있는데, 저자(들)의 솔직한 견해는 바로 이 DNA의 존재 규명, A, G, T, C 4대 분자의 발견이야말로 과학사 최대의 대사건으로 보는 게 아닐까 싶게 아주 서술이 자세합니다. 이에는 유전학 뿐 아니라, 물리학과 화학의 위대한 콜라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합니다만 말이죠. 왓슨과 크릭 두 익히 알려진 전설, 젊은(젊었던) 천재들 외에도, X선과 양자역학을 방법론으로 도입한 모리스 윌킨스의 업적 역시 자세히 다뤄집니다.

인류의 여정은 불과 400만 년 레벨을 넘지 못할지 모르나, 그 지적 탐색의 스케일은 140억년에 달한다고 저자들은 단언합니다. 책은 따라서 이 7대 업적이 향후 어떤 추이로 과감한 도약(퀀텀 리프?)를 이룰지 그 특유의 폭 넓은 시야로 담대하게 짚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신생 이스라엘로부터 제의 받은 대통령 취임을 정중히 거절하며, 정치는 수 년의 단위지만 방정식은 영원의 문제라고 한 건 참으로 명언입니다. 따라서 과학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은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본체일 수 있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류의 이 같은 담대함이야말로 유한한 개체의 의의를 영원에 가깝게 만드는 거룩한 몸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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