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죄 : 프로파일링 심리죄 시리즈
레이미 지음, 박소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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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우리, 혹은 일본은 같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이라고 해도 그 용례가 상당히 다릅니다. 네덜란드와 독일은 서로 바로 붙어 있는 나라들이고 언어의 뿌리가 그 이상 같을 수 없을 정도지만 여튼 아주 수월한 의사 소통은 잘 안 됩니다. 이는 각각의 나라가 서로 다른 특질의 기반 위에서 언어를 발전시켜 온 까닭인데, 사고(思考)가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쳐 와서이죠. 이 책 제목 "프로파일링"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 일본은 그냥 profiling이라 해서 영어를 그대로 갖다쓰는데, 중국어로는 罪犯側寫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画像이라 했습니다만, 이 단어는 꼭 프로파일링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더 넓은 뜻을 본래 담습니다. 하긴 영어 profiling 역시 그저 범죄자 신원 추측 기법만 가리키는 게 원래는 아닙니다만(그런 뜻에서 중국어 원제 画像은 참 적절한 센스네요).

"너 역시 괴물이잖아?" 소설 서두에, 끔찍한 사진 자료를 보며 토하는 누구(학생입니다)는 주인공 팡무를 가리켜 비난합니다만, 지나친 태도죠. 소설 읽고 나서뿐 아니라 읽기 전에도 심지어는 말입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어간다"고도 했습니다만, 세상은 본디 악의와 살의가 가득한 곳이죠. 적응 못 하면 죽는 게 자연의 이치인데, 투쟁 중에 강해진 사람을 두고 괴물이라고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은 젊은 주인공 팡무가 세파와 그리 오래 싸우진 않았겠으나, 짧은 시간이라도 그 영민한 두뇌가 범죄자들을 향해 정신의 비수를 겨누고 있었다면, 그는 평범한 남들 몇 배의 인생을 이미 산 겁니다.

중원에 주유 같은 인뮬이 나고 또 제갈량이 났다거나, 셜록 홈즈의 당대에 모리아티 교수 같은 사람이 활약한 것처럼, 범상치 않은 인물은 반드시 자기 시대에 호적수를 또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팡무(한자로는 方木이라 쓰더군요)는 특유의 예리한 두뇌, 혹은 일찍부터 "준비된" 프로파일링 마인드를 가동시켜 이 도시를 어지럽히는 연쇄 살인마의 모습을 그려 냅니다. 평소처럼("평소"라는 말에 어폐가 있습니다만...) 타이웨이가 찾아와서 자료와 증거(빈약한)를 설명하자, 그는 역시 평소처럼 특징적인 몇 가지 피처를 짚고 읊어 줍니다.

"그게 무슨 큰 도움이 되나? 어차피 범죄자란 대개 남성이며 40대를 넘긴 나이이고, 키 역시 그 정도 구간이 가장 흔히 발견되는 데다...." 이런 한계는 팡무 자신도 잘 압니다. 그러나 가장 흔한 중간값 구간에 범인이 반드시 속하라는 법은 없고, 예를 들어 7, 80%의 막막한 범위에서 다만 1, 20%만 표본이 떨구어져 나가도 수사는 진일보한 겁니다. 대개 범죄 수사란 게 얼마나 막막한 출발점에서 발걸음을 떼어야 하는지는 전문가 아니라도 잘 알거나, 이해하죠.

쿨하게 코트에서 우아한 포즈로 농구를 즐기는 팡무. 셜록 홈즈 같은 캐릭터는 복싱을 즐겼다고 소설 속에 나옵니다만, 대개 영리하게 두뇌의 작용을 조절하거나 가동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는 운동 신경도 덩달아 민첩합니다(그 반대가 항상 성립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이런 외모, 취향, 스타일의 탐정 캐릭터를 우리는 자주 봐 왔기에 조금은 식상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여튼 "중국인"은 또 독자로서 흔히 접해 온 출신, 소속이 아니지 않습니까. 녹스의 십계에는 탐정으로는커녕 주변 세팅으로도 등장시키지 말라는 훈시가 있습니다만, 흠.

"놈은 이 도시를 성폭행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우월감, 지배 본능을 충족시키려는 거죠." 과격하고 충격적 표현이지만 역시 뛰어난 두뇌에서 나올 법한, "무엇, 혹은 누구에 대한 규정"이 맞습니다. "이 정도 중형 도시에서 살인 사건은 흔한 일이다." 아니죠. 인구 2백만인 도시면 한국에도 몇 안 되는 인구 밀집지인데, 독재 아닌 자유 체제가 다스리는 행정 구역에서도 "살인이 흔한 일"은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너무 흔쾌히(?) 설정을 정한 듯합니다. J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으나, 소수 민족들이 다양히 들어 와 사는 곳이 그리 흔치는 않으니, 서로를 잘 이해하는 한족 절대 다수 구성에서 그런 사정이라면 보통 무서운 일이 아니네요. 하긴 그래서 팡무가 각별히 각오를 다지며, 또 두뇌를 풀 가동시켜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놀랍게도 놈은 팡무가 재학 중인 학교에까지 들어와 종래와는 다른 패턴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빼어난 점은, 아직은 뭔가 어설픈 구석이 많고 나이도 젊은 탐정이, 자신과 맞먹는 듯한 재능(...)을 지닌 호적수를 만나 画像, 즉 프로파일링 능력으로 대결을 펼친다는 점입니다. 라이엔바흐 폭포에서 홈즈와 모리아티가 대적한 것처럼, 이들 역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The World is not enough."를 외치며, 둘 중 누구 하나는 죽어야 종결이 될 싸움을 시작합니다. 범죄의 잔혹성, 엽기성도 흥미를 끌지만(끌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런 두 천재적 개성의 충돌과 시비, "엮임"의 치열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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