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모에가라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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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에는 "단카이 세대"라고 불리는, 대략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그룹이 따로 있습니다. 특정 연도에 태어난 이들이야 어느 나라건 당연히 존재하기 마련이겠으나, 일본의 저 연령대를 일컬어 특히 "단괴(團塊)"라고 부르는 건 그 나라만의 사정이 따로 있어서입니다. 이분들의 자녀 세대는 "단카이 주니어(1971~74)"라고 부르며, 그 세대 바로 아래 그룹(1975~82)에 대해서는 "잃어버린 세대(失われた世代)"로 구획하는 게 보통이죠.

이 책 작가인 모에가라 씨의 연령에 대해서는 1973년생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소설을 다 읽고 보니 단카이 주니어에 넣기보다는 그 밑인 "잃어버린 세대"가 더 자연스러운 소속 분류 같습니다. 다분히 자전적인 주인공의 성격이나 행동, 사유 등은 너무도 나약하고 수동적인가 하면, 한편으로는 한 여인에 대한 순정을 고이 간직하며 평생의 지향점처럼 귀히 여깁니다. 처음에 트위터에 연재되던 소설이라고 해서 작가가 젊은 분인 줄 알았는데, 사회의 중견으로 곳곳에서 무거운 책임을 수행할 만한, 예전 같으면 원로 그룹에 속할 만한 나이이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나이 지긋한 분이, 비록 남한테 해 안 끼치고 자기 앞가림만은 해 온 인생이겠으나, 너무도 맥 없이 보낸 청춘과 장년기의 체험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내용이어서, 적잖이 당황했던 게 사실입니다(이른바 젊은 프리터 족 이야기라면 여태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소설가, 작가는 잘 세공된 언어를, 어찌보면 상품처럼 대중에게 판매하는 게 직업이고 본분입니다. 어떤 때는 그 상업적 본의가 너무 빤하게 드러나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고(이런 책을 잘 걸러내는 게 우리 독자의 안목, 취향, 의무이기도 합니다), 작가지망생이랄까 어설픈 아마츄어들이 그런 나쁜 행태를 모방하여 짝퉁 외투처럼 걸치는 모습도 우리는 보곤 합니다.

헌데, 비록 광고업에 종사하는 분이라고는 하나 어찌보면 정통 광고맨도 아니고(광고맨은 어쨌든 언어를 다루는 직종이죠), 직업 작가는 더욱이나 아닌 분이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을 썼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책을 읽기 전엔 이런 예단을 가졌었고, 막상 책을 다 읽어 보니 그저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산 분이구나, 남의 생각이나 글투를 흉내 안 내고 매 순간 자기 감정과 체험과 선택에 성실했던 분이구나, 그래서 절절한 자기 생각이 이처럼 선명하게 표현, 배출될 수 있었겠구나 하는 쪽으로, 독자인 제 느낌이 정리되더군요. 남한테 뭔가 보여 주기 위해 말을 지어내는 사람과, 그저 정직하게 자기 느낌과 사색으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은 서로 이렇게 다릅니다. 또 독서 대중이 그런 차이를 정확히 알아보고 이런 심판, 포상을 내리는 거겠습니다.

부모님의 실수로 부잣집 애들만 다니는 학교에 잘못 배정되어 3년 내내 유령처럼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다는 주인공. 참 딱합니다. 출신 성분을 고칠 수도 없고 전혀 이질적인 집단에서 설움을 겪었던 그 신세가 딱하다는 게 아니라, 어쩜 그렇게 특정 상황을 완전히 고정된 운명처럼 받아들이고선, 변화를 줘 가며 적응해 볼 노력을 전혀 않을 수가 있을까 하는, 그 꽉 막힌 성격과 체질과 판단 기제가 딱하다는 뜻입니다. 아직 성장기 청소년이라고 해도, 그처럼이나 유약하고 체념적인 성향이라면 커서 어떤 어른이 될지도 눈에 훤히 보이지 않습니까. 유령, 왕따로 지내는 고통에 비하면, 뭐라도 해 보려고 노력하는 수고가 차라리 가볍게 느껴질 법도 한데 말입니다.

책을 잘 읽어 보면 주인공이 그리 가난한 집안 출신도 아닙니다. "당신들의 일은 워낙 성실히 한 덕에, 돈 걱정은 평생 안 하고 살았다."는 말이 있는 걸로 보아 말입니다. 하긴, 아들이 이런 성격이면 그 부모 되는 분들도, 마치 정해진 궤도만을 반복 운행하는 쳇바퀴 도는 다람쥐 같은 이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항상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기에, 급한 지출 용도가 안 생겨서라는 정도라면 그리 넉넉한 집안은 또 아니었겠지요. 여튼 주인공이 부모님께 아쉬움을 표하는 대목이라면, "너무 성실하셔서 나한테 신경 써 주실 여유가 부족했다" 정도입니다. 어째 한국의 중산층 출신 1970년대생들이, "아빠는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 정도로 여기고 성장기를 보냈다는 평판의 데자뷔 같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입시 지옥을 훨씬 앞서 벗어난 사회입니다만, 주인공이 고교를 졸업할 무렵은 여전히 전국 단위 시험 점수로 학생의 진로를 정하는 시스템이었나 봅니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유령처럼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주인공이라서, 성적에 맞게 갈 만한 대학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시험 전형을 시행하는 곳에 원서를 넣었고, 졸업 후에는 작은 홍보 회사에 몸을 담아 성실히 근무했습니다. 조금 표현이 엇갈리는 대목이 있긴 했는데요. 대체로 정리해 보면 일감이 꾸준히 들어오는 편이긴 하나 업력이 짧아서 단가를 높게는 못 받는, 그런 작은 회사로 보입니다. 여튼 주인공은 부모님 닮아서 열심히 일합니다. 업무도 사랑도 일단 자기 일이다 싶으면, 그리 공격적이거나 특별한 재주를 발휘하지는 못해도, 열심히는 하는 분 같았습니다. 청년기건 장년기에건 말입니다.

허나, 주인공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 보십시오.

"잠시도 일탈을 꿈꾸지 않는 바른 생활이 어른들이 견지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면, 차라리 나는 철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p41)

바로 이 구절입니다. 그를 부모님과 차별되게 만들어준 기질과 신조라면, 비록 무기력하게 성장기를 보낸 자신이긴 하나, 저런 알듯모를듯한 반항아의 단초가 영혼 한 구석에서 자라고는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반항은, 비록 세상을 향해 정면으로 승부를 건다거나 강자를 향해 도전하는 패기는 지니지 못했어도, "삶의 단조로움과 강요된 정형성"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하려는 몸짓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는 어설프고 정형화한 상업적 비판 멘트와는 다르고, 여튼 매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는 충실히 임하는 태도이기에 현실 회피와 무능 은폐를 위해 지어내는 핑계성 저항과도 엄연히 구별됩니다. 그런 자들은 한 여인만을 사랑할 줄도 모르고, 어설픈 에고의 만족을 위해 주제도 모르고 이 여자 저 여자를 기웃거리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찾아낸 삶의 이유, 베아트리체, 혹은 둘시네아가 바로 "가오리"입니다.

가오리는 주인공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그리 모델 같이 잘 빠진 몸매도 아니고, 남들 눈에 확 띄는 용모도 아니었던 듯합니다. 젊은 시절 기준으로도 말입니다. 여튼 그런 가오리에게 주인공은 흠뻑 빠졌습니다. 뭔가 평범함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주는 매력도 그러하고, 영혼의 빛깔이 서로 통하긴 하되 자신이 차마 현실을 향해 드러내지는 못하는 과감한 반항도 그녀는 더 거침없이 해 내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겠습니다. 주인공처럼 주변머리 없는 분이 어찌 총각딱지는 떼었겠으며 (한국이나 일본이나 참으로 흔한) 러브호텔은 생전 가 보았겠나 싶었는데, 이 가오리라는 분이 숙맥 같은 그에게는 참으로 구세주 같은 존재였습니다, 거참.

이 가오리상, 이분이야말로, 주인공에게는, 보잘것없는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더 위해 주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열정과 과격함, 재능의 천재성 면에서 서로 극과 극이긴 합니다만, 마치 엄지에게 오혜성이 보이던 만큼이나 그의 애정의 순도는 강했습니다. 그러나 가오리 역시 어느 선은 넘지 않는, 행동 반경이 빤히 정해진 "얌전한 반항아"였고, 주인공은 그보다 몇 배는 더한 초식형이었기에 무슨 큰 사고는 안 생겼고, 세상이 그들을 향해 주목의 시선을 던질 일은 더군다나 없었습니다. 이 소설, 평범함의 미학과 깊이를 추구하는 소설이 히트를 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실수로" 친구 신청하기 버튼을 눌러,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후 다시 가오리상과 연이 닿았다는 그이지만, 또 언제나처럼 전철 안에서 무기력하게 이리 떠밀리고 저리 치이다 누른 게 맞겠지만, 어떻습니까? 과연 그의 실수가 실수라고만 볼 독자가 있을까요? 이분은 이처럼, 아닌 듯하면서 은근 자기 의도대로, 세상의 정해진 흐름을, 아주 소극적이고 제한적 범위에서나마 바꿔 보려는 발칙한 생리가 작동하는 분입니다. 그런 기질이, 그 나이를 먹도록 여태 도쿄의 번화가 한복판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든 뭐든 그를 살아남게 한 비결입니다. 주인공보다 더 유능하고 한때 더 잘나간 사람도, 어느 한 고비에서 몰락하거나 더 이상 못 버티고 도피한 이들도 많습니다. 그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준 건, 첫째 실체가 무엇이든 그가 그의 순정을 투영한 가오리였고, 다음으로는 결국 진실과 변화와 성실을 동시에 추구한 그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루저의 선정성 고백이 아니라, 오히려 순수한 영혼의 치열한 생존기이자 진지하고도 깊이 있는 "사랑 탐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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