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쉽게 찾기 - 전면 개정판 호주머니 속의 자연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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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처럼 산천이 수려한 곳은 세상에 또 없습니다. 온갖 기화요초가 강산을 수 놓고, 오묘한 향취와 현란하면서도 그윽한 색채는 이 땅에 처음 발을 딛는 이들(외국인들)의 오감을 아찔하게 사로잡습니다. 이런 금수강산 곳곳을 자신의 부지런한 다리로 답사하며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며 (더 여유가 닿으면 사진으로까지 포착하며) 행복한 물적, 정신적 컬렉션을 꾸미는 이들은 진정 행복하다고나 하겠습니다. 헌데 평범한 우리 일상인들은 그런 기쁨을 애써 추구하기가 힘듭니다. 눈 호강 마음 힐링을 못 시켜 주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지상 최고의 수려한 국토에 살면서 그 소중한 가치를 못 알아보고 아까운 생을 허비하는 데 있습니다.



지천에 널린 게 예쁜 꽃이고 수려한 나무라면, 그저 예사로 봐 넘기고 다음 기회의 완상을 기약해도 되는 걸까요? 영화 <빠삐용>에서 초자연적인 목소리가 주인공에게 선고하는 준엄한 한 마디가 있습니다. "여러 죄 중에서도 인생을 낭비한 죄가 네게 가장 크다." 물론 돈벌이도 중요하고 주변의 이웃과 가족에게 살뜰한 신경과 정성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변만 조금 돌아보면 널린 게 야트막한 산이요 도심에 애써 조성된 공원인데, 그 속에서 자신을 좀 봐 달라고 애처롭게, 혹은 당당하게 하늘거리거나 손짓하는 나무와 꽃과 자연을 외면한다면, 이 역시 내가 몸 담은 공간의 아름다움을 거칠고 무심하게, 둔감하고 투박하게 외면한 죄가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죄 운운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나의 상처와 피로를 씻어내고 치유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돈 안 들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자연과 벗으로 지내는 길입니다. 미술품 감상하려면 먼저 안목을 키워야 하고, 안목을 키우려면 노력과 시간과 돈이 들게 마련이지만, 꽃과 나무와 벗하는 길은 그런 번거로운 중간 과정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들의 품에 가서 안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 책의 제목은 "나무 쉽게 찾기"입니다. 정말 예쁘고 알차고 도톰한 이 책이 자신의 제목을 그리 달고 있다는 건, (우리들 많은 독자들에게) 예상 밖으로 "나무 제대로 찾기"가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뜻(그래서 책 자기가 막 도와 주겠다는 뜻ㅎㅎ)입니다. 나무와 꽃과 사귀는 건 그저 마음을 열기만 하면 되지만, 내가 나무와 꽃에다가 (마치 김춘수 시인의 어느 구절처럼) 이름을 붙여 주고 어린왕자처럼 특별한 관계를 맺으려면, 나보다 앞서 다른 분들(선인들이나 학자들)이 이 아이들에게 어떤 이름을 붙였는지, 얘들의 특징과 생태는 어떠한지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나무가 궁금하고 꽃과 친하게 지내고 싶을 때, 사전보다 더 간편하게, 일반 도감보다 더 정확하게 사항을 찾아볼 수 있는 게 바로 이 책입니다.



꽃이나 나무도 정이 한번 붙으면 혹시 얘가 아플까봐(통각 체계가 우리하곤 많이 다르긴 해도 ㅎㅎ), 예쁜 몸 상할까봐 함부로 건드리질 못합니다. 만져 보고 싶지만 그저 눈으로만 일단 감상해야 하는데, 사실 저는 책 덕후라서 이 예쁜 책에도 도대체 함부로 손을 못 대고, 책 상할까 싶어서 조심조심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사진도 책 중간 벌어질까봐(물론 제본은 튼튼합니다만 그래도요) 얼마나 조심해서 찍었는지 모릅니다. 여튼 아무리 책이 소중하다고 해도, 열심히 읽어 주고 찾아봐 주지 않는다면, 그건 또 위에 적은 대로 주변의 자연을 다음에 감상하겠노라며 참된 가치 평가를 뒤로 미루는 무신경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다 마음껏 책 자랑을 좀 해볼까 합니다 ㅎㅎ

우리가 중학교 생물 시간에 맨 먼저 배우는 게 종속과목강문계의 생물 분류입니다. 그 중에서도 학자건 일반인이건 가장 자주 만나는 단위가 일단은 종(種), 그 다음에는 적정 대분류인 목(目) 정도죠. 이 책도 소나무목, 미나리아재비목, 벼목, 무환자나무목, 장미목 등 해서 목 단위의 분류가, 책의 장(챕터) 분류와 거의 상응한 편제로 기능합니다. 일단 위에 열거한 다양한 식물군(즉 "목")은, 우리가 아는 종의 이름과도 상당 부분 같아서, 아 이 대표적이고 유명한 종이 자기 이름을 딴 단위 안에 친족들을 이처럼이나 많이 거느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은 영어로 order인데, 자유분방하면서도 한편으로 질서정연한 틀 안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나무, 꽃들, 마치 풍부한 정보를 담으면서도 독자를 격의 없이 맞고 환영해 주는 이 책과도 닮은 모습이라고 할까요.

조록나무과의 히어리는 우리 주변에서 아주 드물게 보지는 않는 아이입니다. 헌데 둔한 우리 눈이, 음 그저 나무인가보다 하고 무심히 넘어가는 게 문제지요. 이 책에는 예쁘고 선명한 사진들과 함께, 예를 들면 "꽃자루, 잎자루, 입 뒷면 모두에 털이 없다"거나, "송이꽃차례에 8~12개의 작은 꽃이 모여 달린다"처럼, 그 생태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아도 자연에 깊이 몸 담거나 나무를 봐 온 눈이 꽤 트여야, 사진이나 지나가는 풍경만 흘깃 보고서도 일일이 종 단위로 구별해낼 텐데요. 우리 같은 일반 독자, 문외한 처지에서 그게 쉽지를 않습니다, 안타깝게도요, 헌데 이런 자세한 설명이 담긴 도감이 있으면(도톰하지만 판형이 아담하여 휴대하기가 편합니다), 현장에서 바로 아 이 꽃이 뭐다, 설명과 모양새가 일치하니 이 종이 맞나 보다 하고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홍자단(누운개야광)은 중국이 원산이라고 이 책에 나옵니다. 주로 관상수로 심는다고 나오는데 정말 주변에서 보기로도 그렇더군요. "줄기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져 나오고 비스듬히 누워 자란다"는 게 특히 강조된 설명입니다. 같은 목에 분류된 다른 식물들과 어느 정도 굥유하는 특성, 생리는 검은색 폰트로, 이 아이만 유독 도드라지는 특성은 청색으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연홍색 꽃이 한두 개씩 피는데 지름은 6mm이며, 완전히 벌어지진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완전히 벌어져 흐드리지게 피는 녀석들도 있고, 얘처럼 오래 자신을 봐 달라는 듯 혹은 부끄럽다는 듯 살포시 자신을 감추기도 합니다. 자연은 이래서 천태만상의 아름다움이 깃든 것이며, 그 다양한 경우의 수는 인간의 한정된 상상력을 압도할 뿐입니다.

무환자나무목의 개산초는 주로 남부 바닷가에서 자란다고 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친근한 모습들이 사진과 텍스트 설명 중에 가득 담겨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책에는 예컨대 9월의 열매, 4월에 핀 꽃, 겨울눈 등 해서 같은 식물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는데,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무죄인) 변신을 파노라마처럼 화보로 만든 듯해서 한동안 정신을 놓고 구경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누구라도, 꽃와 나무의 이런 변신, 변모, 화려한 단장과 맵시를 구경하면,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고 이런 다채롭고 화려하면서도 순수한 구경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이 지구상에 눈 열린 생명체로 태어난 보람임을 절로 확신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책은 권말에서 어떻게 본문 내용에 재접근하게 독자를 배려하는지를 보고 그 성의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일단 용어 해설을 별도로 정리해서, 혹시 본문 설명 중 모르는 말이나, 그 뜻을 분명히해 둘 필요 있는 TERM들을 따로 정리해 뒀습니다. 그 다음에는 가나다순 이름 색인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사실 일반 독자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절실한데) 잎 모양만 보고 바로 찾기가 따로 나와 있습니다. 잎 모양 분류 다음에는 꽃 색만 보고 찾는 인덱스가 따로 나오는데, 여기서 정말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더군요. 옆면 THUMB 인덱스 색을 꽃 색과 일치시킨 것도 센스고 말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우리가 무심하고 둔해서 지나칠 뿐 삼천리 금수강산의 나무와 꽃들은 지금도 도처에서 우리에게 정겨운 눈짓과 손짓으로 세상의 참된 아름다움을 좀 알고 가라며 끝 없이 편지를 쓰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어 지상에 생육 번성하게 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우리 역시 그 이치에 맞춰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함이 아닐까요. 이름을 아는 건 바른 방법으로 사랑하느니만 못하지만, 주변의 나무와 꽃 이름을 바로 알면 종전보다 더 깊이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예쁘고 충실한 책이 바로 그 "연애 교본"이요, 올곧고 맑은 삶을 살게 돕는 "인생 독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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