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리프레시 -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혼을 되찾은 사티아 나델라의 위대한 도전
사티아 나델라 지음, 최윤희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경영서를 읽어 봐도 기업의 필수 덕목으로 강조하는 게 몇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업에는 영혼이 있어야 한다"입니다. 영혼이란 말이 다소 막연하긴 해도, 기업이 시장에서 오랜 동안 살아남고 소비자들에게 사랑 받으려면, 그 기업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소비자 대중에게 어떤 니즈를 충족히켜 줄 수 있으며, 사회에 왜 꼭 필요한지를 선명히 납득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저 만족할 만한 수준 정도가 아니라,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기업이라야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떤 기업일까요? 요즘은 1990년대 중후반처럼 이 회사가 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리질 않습니다. 간간이 들리는 바에 따르면, 과감히 특정 사업을 발주했다가 그리 큰 성과를 못 거두었다는 정도의 소식이 고작인 듯도 합니다.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여전히 건강이 좋고 사회 기여 활동에도 열심인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상은 그에 못 미치는 느낌도 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엔 소수 직업군에의 제한된 용도의 상품을 제외하곤 현저히 위축된 경영의 표본처럼 보였던 애플이, 지금은 사세가 역전되다시피하여 무슨 결정을 내리든 연일 뉴스를 탑니다.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애플이 태초부터 유일한 IT계의 강자인 줄로만 알 겁니다.

허나 MS는 여전히 중요하고도 영향력 있는 기업입니다. 2010년에 애플이 아이패드를 내놓았을 때, 랩탑은 물론 PC 자체가 없어질 듯 섣부른 예측이 온통 여론을 채웠습니다. 올해가 2018년인데 여전히 MS 운영체제로 돌아가는 PC는 업무환경의 중심에 서 있고, 강제 업데이트 등 말도탈도 많았으나 윈도10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MS는 여전히 업계의 거인이며, P/E ratuo도 17.64인 애플의 3.5배에 가까운 62.24입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애플과 구글에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요즘 트럼프에게 공격 받는 아마존은 MS를 추월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런 마이크로소프트를 진두 지휘하는 현재의 기업 총수가 바로 사티아 나델라입니다. 이름에서도 바로 알 수 있듯 그는 인디아 출신입니다. 인도는 근년 들어 국가 정책으로 이공계 엘리트를 육성하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우수 엔지니어를 공급하는 주요 원천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벌써 세계 최고의 IT 기업 CEO를 배출할 정도였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도 많겠습니다. 이 책은 사티아 나델라가 직접 쓴 진솔한 회고록이자, 경영인-엔지니어로서 분명한 소신을 피력한 에세이집이며, 동시에 미래 사회가 어떻게 변모할지 실무인으로서 내다본 바를 담은 미래학 서적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갓 건너온 시절 이런저런 편견과 차별대우를 겪기도 했던 그가 당시에 대해 이런 식으로 회고하는 대목이 책에 나옵니다. "... 그러나 다부족 사회에서의 특별한 지위를 바탕으로 의연히 성장해 온 남성에게, 이런 일 정도는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인생의 다양한 시련이나 고비를 잘 극복하고 않고의 여부는, 그가 얼마나 넉넉한 환경에서 많은 자양분을 섭취하며 자라 왔느냐에 상당 부분이 좌우됩니다. 사티아 나델라는 풍족한 가정에서, 인도 최상위 그룹에 속할 만한 부모에게 양육된 행운아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설령 낯선 나라인 미국에 처음 발을 디뎌 이런저런 소소한 장벽에 부딪혔다 해도, 하찮은 인간들이 상황 파악 못 하고 함부로 덤벼대는 행태가 얼마나 가소롭게 여겨졌겠습니까. 물론 이는 개인 차가 있기 마련이라, 유복한 환경에서 설령 자랐다 해도 가장 졸렬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례도 얼마든지 발견되기 마련입니다.

사티아 나델라의 부친은 우리 식으로 따지면 행정고시 합격자 출신으로 내내 고위 공직 노른자만 거친 엘리트 관료였습니다(그런데 우리 관점으로는 상당히 뜻밖인 게, 개인적 신조로 마르크스주의를 유지했다고 하는군요. 문제가 많다고는 하나 역시 사상의 자유 등을 존중하는 민주국가로서의 면모를 여튼 확인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어머니는 대학에서 산스크리트를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책 중간쯤에 나오듯, 몇 년 전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셨다고 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국제전화로 이야기까지 나누던 상황이라, 당사자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음이 짐작 가능하죠). 그 자신도 털어놓기를, 이처럼이나 뚜렷이 대조되는 지적 배경을 지닌 가정이었기에, 뭐랄까, 많은 지적 자극을 받아가며 아이가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환경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워낙 교육에 열성인 국가에서는, 웬만큼 공부 잘해서는 잘했다 소리 듣기도 어려운 살인적인 경쟁이 청소년기에 펼쳐지기 마련입니다. 웬만큼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겠으나 소년 사티아는 원하는 학교에 한 번에 척 붙을 만큼 우등생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못하는 게 없었던 부모님이 보기에는 참 허탈하고 실망스러운 결과였기에, 특히 그 부친은 그저 웃음만 지었다고 합니다. 이때 사티아는 인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학업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낯선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교가 제안한 입학 기회를 살려 제2의 도전에 나설 것인가 사이의 선택이 그의 앞에 놓였습니다.

고 정주영 창업주 같은 경우도, 대처에서 막 큰 사업을 시작할 때 그 부친이 찾아와서 "너 없으면 난 누구하고 함께 농사를 짓고 집안을 지키겠냐"면서 눈물로 호소할 때 크게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다고 하죠. 이 당시를 회고하며, 평생 엄격하기만 했던 부친이 그처럼이나 약한 모습을 처음으로 보일 때, 너무도 마음이 아파져 바로 귀향할 마음을 먹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때 인지상정의 효심이 발휘되어 청년 정주영이 고향으로 돌아가 눌러앉았다면, 한국 현대사는 어떻게 바뀌었겠습니까?

사티아 나델라 회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온한 인도에서 그저 무난한 경로만을 골라잡았다면, 이처럼이나 큰 규모의 성취를 거둔 인생을 가꾸지는 못했을 겁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나마 선방하며 다음 단계의 도약을 꿈 꾸는 숨고르기를 잘 수행하는 관리자, 경영자를 갖지 못하고 어쩌면 더 이른 시기에 주저앉았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외국 비즈니스 매체들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MS 중 누가 먼저 레이스에서 탈락할지"를 두고 여전히 잔인한 점치기를 계속하는 중입니다.

사티아 나델라 회장은 "뜻밖의 출세"를 한 인물은 아닙니다. 위기다 뭐다 소문도 무성했지만 스티브 발머 전 CEO는 여튼 회사를 여기까지 끌고 왔고, 나델라 회장은 발머 체제에서 총애를 받던 실세였으며, 그가 회장직을 승계했을 때 거의 아무도 놀라지 않고 당연한 결과처럼 받아들였습니다. 발머 임기 말년에는 "준비된 후계자"였던 그가 오히려 "마음을 비웠으니 다른 이가 취임(등극?)해도 그에게 전폭적으로 협조할 뿐"이라며 이례적인 입장 표명을 할 정도였는데, 역으로 그가 얼마나 오랜 동안 "대세 잠룡"으로 간주되었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델라 회장은 서두에서 취임 당시의 난맥상을 돌이켜 말합니다. "관료제적 내부 알력은 심각했고, 조직은 활기를 잃었으며, 외부에선 우리를 걱정 섞인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제 취임 몇 년이 갓 지난 시점에서 MS가 종전의 이런 병폐나 위기를 다 극복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발머 체제가 남긴 부정적 측면을, 역시 발머의 사람 중 하나였던나델라 회장(그는 이 책에서 내내 그를 "스티브"라는 퍼스트네임만으로 부릅니다)은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편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며 자신을 트랜스포밍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조직 내 실력자들은 대개 진심으로 조직 장래를 위한 길보다, 조직 안에서 자기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쪽으로 제안이나 진로 변경을 꾀하기 마련입니다. 나델라 회장의 주전공은 클라우드 쪽이 아니었지만, 그는 서버 구축 사업이란 종래의 주력 분야에 안주하길 과감히 거부했고, 그 자신이 새로 (대학 시절에 전공한 바 없었던) 클라우드 쪽을 연구하여, 조직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기를 택했습니다. 최고 경영자에 접근하면 할수록 그는 경영학 쪽 소양도 두터이 익혔습니다.

예컨대 그는 구글에 맞서 Bing(여전히 고전 중이지만 MS가 열심히 키워나가는 검색 사업이자 사이트 브랜드 네임이죠)을 론칭하면서, 이른바 two-sided market의 특징을 천착했습니다.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일반 유저에게도, 사이트에 광고를 노출시키려는 기업 고객들에게도 동시에 관심을 기울이며 개척해야 하는 특성의 시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엔지니어라면 시야가 좁아서 이런 양면의 전선을 응시하지 못하는 법인데, 그는 자신의 한계를 언제나 극복하려 드는 인물이었다는 뜻입니다.

"비행(flight. 飛行)을 인공비행이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시 엔지니어다운 말입니다. 기술 중에 "인공" 아닌 게 없듯, 인공지능 역시 어떤 이질적인 분야가 아니라, 그저 인류가 역사 내내 해 왔던 대로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 복리를 증진시키는 수단일 뿐이란 거죠. 그는 2016년에 한창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통령 선거전을 회상합니다. 당시 유력 후보 중 하나였던 케이식 주지사는 "무역에 반대하는 이는 성장에 반대하는 것"이란 발언으로 큰 호응을 받았었죠. 아무리 당장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아가는 듯 보이는 자유 무역 확대 추세, 업무 자동화 트렌드라고 해도, 이를 인위적으로 가로막고 국수주의나 블록화를 시도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겠습니다. 미국에 건너온지 28년만에 세계 최고 기업의 CEO로 우뚝 서고, 대통령에게 자신의 소신도 직간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한 인물, 그의 솔직한 속내가 가득 담긴 이 책을 통해 우리 독자들의 시야도 더불어 미래를 향해 더 넓어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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