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지노에서 투자를 배웠다
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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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지노에서 투자를 배웟다.] 이책 제목을 자세히 보면 , 카지노에서 투자를 배웟다고 써앗다...돈을 벌고 일기도 했을 터이니 벌었다고 표현 하지는 않으니 겸손한 분이다..


저자는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투자를 하엿다  그중에서도 게임의 운이 작용 하는 카지노와 부동산  주식과 그리고 최근 몇년 사이에 크게 각광을 받았다가 이제는 주품 해진 비트코인이다...


그중 그에게 운이 좋던 나쁘건을 떠나서 큰 수익을 안겨준 경우는 비트코인 50 만원 시절에 사서 ( 2015)  -> 매도 1800만 정도에헛 약 35배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것이고 ,   2017년 서울 부동산 규제 들어 가기 전의 강남 아파크 한채를 잘 사서 ( 약 10억 ) , 이후 몇 년사이 50% 이상의 수익률을 올린 것이 그의 자산 형성기에 공헌을 하여 현제의 20억대의 자산가가 된 내용이다.  앞으로의 투자 공부를 더욱 병행 하면서 , 50억 , 100억대의 자산가가 되기까지 부단히 노력 하고 또한 공부 하는 자세가 부럽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 물질욕이 있다. 특히나 졍제적 자유를 위한 로망은 대단 한데 , ,일반인들은 순자산 100억대 넘어가는 부자들은 천천히 유유자적 생활을 할 수 잇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조금 많이 다를 수 있다. 주변의 빌딩 부자들 약 100억 - 300억대 건물주 들을 보라 , 누구 보다 아침에 먼저 자신의 빌딩에 나와 산책도 하고 사무실 들어 가기 전에 사방 점검도 한다... 일간지나 주간지 정보가 될 만한 건은 빠지지 않고 보며, 주변의 전문가와도 늘 상 자문을 구한다.


쉬이 이뤄지는 일은 없다... 카지노를 가보아도 저자의 애기 처험 일확 천금이 떨어 지는 경우는 거의 럿또에 가까운 슬롯 머신 이 운이 좋아 터지는 경우 이다.. 이것도 카지노 측에서 거의 수익의 99% 을 환급해주눈 경우로 ,,, 수년이 걸릴지 아님 수개월에 잭팟이 터질지는 확률 프로그램만이 아는 일이다...


좀더 게임의 법칙에 다가서 보자 ,, 카지노의 경우 대표적인 게임을 할 수있는 종목이 3-4 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화두에 오르는 것이 바카러 , 룰렛 , 블랙젝 이다..다이사이 주사위 게임을 포함 하면 4 가지 정도가 되겠다.. 확률로 치면 거의 50;50 % 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 룰렛은 1 ~ 36사의 숫자와 0, 00 을 마추는 게임이어서 확률로는 1/38 이다... 0이 하나 더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아래 몇가지 도해를 참조 한다. 그리고 블랙잭 게임은 카드를 가지고 합이 누가 21에 근접 하게 가느냐의 게임이다. 당연히 딜러와 플레이어의 확률도 존재 한다... 마지막으로 바커라는 플레이어와 뱅커 두팀으로 나눠지고  각각 받은 2-3장의 카드 숫자 합의 마지막 자릿수가 9에 가까운 팀이 이기는 게임 이다....  다이사이라는 게임음 주사위 3개를 한꺼번에 던저 대 / 소 만으로 게임을 할수도 있고 3개 눈금의 합을 맞추면 상금이 나온다. 눈금 합이 4-10까지먄 소 ,  11-17이면 대 이다... 거의 50;50% 확률이라고 한다. 그러나 3개 주사위 눈금이 전부 111. 222. 333--- 666 이나올 경우는 모두 카지노측의 승리 이고 이래서 이게임의 확률은 48.61 % 이다..


사람들은 왜 카지노에 열광 하는가 혹은 중독 처럼 거기를 갈까 ... 누구라도 그리허듯이 돈을 벌고 싶으니까 하지만 수학적 확률로 계속 한다면 언제나 우위는 카지노에게 있다라는 것이 그간 150여년간의 분석 결과이고 그래서  카지노들만의 대제국이 망하지 않고 세계 곳곳에 성업중이고 크린 공화국이라던 싱가폴도 , 베이 에어리어에 대형 카지노를 개장 하였다.....


카지노를 이기는 방법도 있을까? 있다.. 이전 MIT 교수이자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소프가 그러하다... 확률 통계적 방법론으로 적시 타이밍에 베팅 하는 룰을 알아 내었고 실제로도 적용 실험을 해었다...몇몇 카지노에선 출입급지를 당하기도 했지만 ,,, 그러나 제데로 따라하기는 일반인들은 어렵다.. 그래서 그 이전부터 생겨난 것은 마틴 게일 배팅법 이라는 것인데 ,, 쉬이 애기하면 게임 회차를 거듭 하며 두배수를 늘려 가며 배팅 하면 손실과 이익이 반복 할때 ,이기는 순간 이전 손실액을 모두 만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건 단점은 제로섬 게임이아엇 이기더라도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변형적 방식으로 생겨난 것이...  1,2,4,8 배수로 베팅 하지 않고 ,, ,3,5 ,7,10 ,15 식으로 변형 하게 되고 다른 변형도 존재 한다....


투자와 투기는 분명 다르다 , 저자 또한 이선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주식의 경우라도 미수를 걸고서 위험한 투자는 지양 한다... 확룰 99.9% 로 도래할 미래의 확증에 대해서 투자 전력을 세우라고 하지만 이는 쉽지도 않고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평정심과 투자 인내심의 한계치를 실험 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보통의 경우 돈을 벌거나 투자 자본이 회수 되면 또다른 투자처를 찾아 나서고 그게 마땅치 않으면 차 선책을 찾아 조금 떨어진 투자를 하기도 하는데 이것 자체가 위험 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 그리고 블록체인의 기술 한정적인 비트코인의 기술까지 우리들 주변에는 늘 투자처로 넘쳐 난다. 단지 선택의 사양일뿐 , 올바른 투자를 하기 위한 저마다의 전력이 있겠지만 , 우선적이라도 지지 않는 전략 , 잃지 않는 전술을 구가 하여야 오래 가고 평정심 잃지 않는 투자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늘 그렇듯이 개미들의 투자는 시간과 돈도 문제이지만 가장큰 장벽은 정보 게임이다. 어떻게 하변 기관과의 싸움에서 더 좋은 정보를 얻을수 잇을까 ? 거의 불가능 하다.. , 카지노와의 게임은  ? 확률적으로 약 2-3% 정도 게이머가 열세인 시장이므로 자꾸 반복 하면 가산 탕진 된다...오래 하면서 이바닥에서 돈과 부를 쌓은 사람이 없는 경우이다...

부동산은 오를만한 곳을 사라 하지만 -이미 올라 있는 곳은 돈이 없거나 진입 하기 어렵거나 부동산 규제로 불가 하다...

쉽지 않은 투자 상황이다. 2019년 - 2020연 이어지는 랠리에서 그래도 손실을 적게 보고 안전 마진을 가지면서 투자를 이어나갈 수 있는 필드를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찾아 나가는것 ,  다른 각도로 부단히 변화 하는 시장을 읽고 배우고 주식의 경의 추세선과 가치주를 병행 하기도 하고 , 시장의 정보를 종합 분석 판단 해 볼수 잇는 지략과 평정심이 유지 된다면 그나마 중급 투자자의 대열로 이핼 해 볼수 잇겠다라는 생각을 해보는  99.99 % 가능한 베이지의 확률온을 고려하다.


 책력거99 적다.


가장 거대한 카지노[편집]

면적이 넓은 카지노는 세계적으로 보고 미국에 많아, 세계 제일의 면적을 자랑하는 카지노도 미국에 있다. 아래와 같이를 참조. 모두 미국에 소재해있다.

Value Up Tip : 카지노


The first form of roulette was devised in 18th century France. Many historians believe Blaise Pascal introduced a primitive form of roulette in the 17th century in his search for a perpetual motion machine. The roulette mechanism is a hybrid of a gaming wheel invented in 1720 and the Italian game Biribi.

The game has been played in its present form since as early as 1796 in Paris. An early description of the roulette game in its current form is found in a French novel La Roulette, ou le Jour by Jaques Lablee, which describes a roulette wheel in the Palais Royal in Paris in 1796. The description included the house pockets, "There are exactly two slots reserved for the bank, whence it derives its sole mathematical advantage." It then goes on to describe the layout with, "...two betting spaces containing the bank's two numbers, zero and double zero". The book was published in 1801. An even earlier reference to a game of this name was published in regulations for New France (Québec) in 1758, which banned the games of "dice, hoca, faro, and roulette".

The roulette wheels used in the casinos of Paris in the late 1790s had red for the single zero and black for the double zero. To avoid confusion, the color green was selected for the zeros in roulette wheels starting in the 1800s.

In 1843, in the German spa casino town of Bad Homburg, fellow Frenchmen François and Louis Blanc introduced the single 0 style roulette wheel in order to compete against other casinos offering the traditional wheel with single and double zero house pockets.

In some forms of early American roulette wheels, there were numbers 1 through 28, plus a single zero, a double zero, and an American Eagle. The Eagle slot, which was a symbol of American liberty, was a house slot that brought the casino extra edge. Soon, the tradition vanished and since then the wheel features only numbered slots. According to Hoyle "the single 0, the double 0, and eagle are never bars; but when the ball falls into either of them, the banker sweeps every thing upon the table, except what may happen to be bet on either one of them, when he pays twenty-seven for one, which is the amount paid for all sums bet upon any single figure".

1800s engraving of the French roulette

In the 19th century, roulette spread all over Europe and the US, becoming one of the most famous and most popular casino games. When the German government abolished gambling in the 1860s, the Blanc family moved to the last legal remaining casino operation in Europe at Monte Carlo, where they established a gambling mecca for the elite of Europe. It was here that the single zero roulette wheel became the premier game, and over the years was exported around the world, except in the United States where the double zero wheel had remained dominant.

Early American West Makeshift Game

In the United States, the French double zero wheel made its way up the Mississippi from New Orleans, and then westward. It was here, because of rampant cheating by both operators and gamblers, that the wheel was eventually placed on top of the table to prevent devices being hidden in the table or wheel, and the betting layout was simplified. This eventually evolved into the American-style roulette game. The American game was developed in the gambling dens across the new territories where makeshift games had been set up, whereas the French game evolved with style and leisure in Monte Carlo.

During the first part of the 20th century, the only casino towns of note were Monte Carlo with the traditional single zero French wheel, and Las Vegas with the American double zero wheel. In the 1970s, casinos began to flourish around the world. By 2008, there were several hundred casinos worldwide offering roulette games. The double zero wheel is found in the U.S., Canada, South America, and the Caribbean, while the single zero wheel is predominant elsewhere.

In 2016, The Venetian Las Vegas introduced the first triple-zero wheel, which has since spread to a few additional casinos.

The sum of all the numbers on the roulette wheel (from 0 to 36) is 666, which is the "Number of the B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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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환경의 미래 -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할 것인가
이승은.고문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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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 변화와 환경의 미래 ] 지구 온난화 이야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 책 속의 내용에도 있지만 지구 해수면 상승이 온난화와 지대한 역학 관계를 가지고 있다 ㅡ 그도 그럴 것이 , 우리의 지구 북극쪽과 남극은 만년빙으로 뒤엎여 있어야 정상인 상태 인데 최근 수십년이래 인간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화석 연료의 탄소 배출로 대기층의 오존층이 깨어 지고 있다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서서히 진행 되고 있고  특정 전문가 집단들이나 환경 보호 단체의 일부를 제외 하고는  각국가나 기업 ,개인들은 이에 무감각 하거나 , 미래 세대로 이러한 이행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 지구온난화가 1도씩 상승 진행 되어도 이미 비극은 시작이된다... 한국만 하더라도 제주도에는 이미 열대 어종이 살고 있고 , 한랭 어류인 명테는 저 멀리 북해도로 건너 간지가 오래이다... 바다 기온의 상승으로 미주 대륙의 경우 이전 보다 빈번한 해류의 변동으로 태풍과 이상 기후가 포착이 된다..


기후는 인간 생태계가 존재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 요소임에도 불구 하고 ,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제어나 예측은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쉽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 , 국가간 기후 협약 등을 통해 탄소 배출권 등을 조율 하고 협의 하여 , 전체적인 총량을 컨트롤 하려 하고 있지만 ,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에 맞추다 보면 이마져 쉽지 않다.


우리나라도 아래 기후 변화 협약에 가입이 되어 있고 전세게 190여개 국가와 공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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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협약은 ?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은 '92년 6월 브라질의 리우환경회의에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현상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채택된 것으로써, '94년 3월 21일 공식 발효되었으며, 2006년 11월 22일 현재 190개 국가가 비준하였음

동 회의시 도서국가연합 및 EU 등은 구속력있는 감축의무 규정을 주장하였으나 미국 등 여타 선진국들이 반대하여 단순한 노력 사항으로 규정됨

협약 하에서 각 당사국은

- 온실가스, 정부정책 및 최우수 사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며,
- 온실가스 배출과 예측되는 영향에 대한 적응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정적 및 기술적 지원을 위한 정부 전략을 수립함
- 기후변화에 영향에 대한 적응준비에서 협력함

2. 기본 원칙은 ?

기후변화협약에서는 그 기본 원칙(제3조)으로 ①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및 능력에 입각한 의무부담의 원칙(온실가스 배출에 역사적인 책임이 있으며 기술ㆍ재정 능력이 있는 선진국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 ② 개발도상국의 특수사정 배려의 원칙, ③ 기후변화의 예측, 방지를 위한 예방적 조치 시행의 원칙, ④ 모든 국가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보장 원칙 등을 규정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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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탈원전의 휴유증으로 앞으로 닥치는 전기 가격 공급의 상승 요인을 기존의 화석 연료나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 한다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므로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즉 , 마지막 소비단계이거나 절차상 , 전기 나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 한다고 하여도 그러한 전기를 생산 하는 혹은 발전 하는 것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처리 할수 없으면 이는 여타 다른 방법과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너지 믹스라는 개념이 생겨 나게 되었고 이의 불요 불급한 내용은 진행 중이다.  인류의 후대 세대에 정상적인 기후 조건과 , 생태계를 물려줄 책무는 우리 세대 전 지구인이 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중 어느 나라라도 불완전한 혹은 과도한 탄소 배출 혹은 화석 연료의 방출로 인해 지구가 더욱 더워져서 약 3도씨만 올라 가더라도 우리는 더 이상 만년설을 볼 수 없게 될 것이고 ,,  가라 않아 가는 뉴욕의 자유 여신상 그리고 해안 접경 지대의 침수도 함께 겪어야 할 바로 100여년 안팍의 미래적 일이 사실일 것이다.


계획과 방도는 많지만 제대로된 실행 의지와 이행 ㅡ 혹은 규제나 룰이 없이는 공유의 비극처럼 누구라도 세상이라는 혹은 지구라는 토지와 바다위에  오렴된 대기를 방출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다른 각도에서 생각 해보면 , 전기적 효율 혹은 가스의 효율적 사용과 연소를 행한다면 다소 리스크를 부담 하더라도 기존의 원자력을 친환경적으로 사용 하는 것도 좋은 대안의 하나라고 생각 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 이미 내연기관을 사용 해 온지 150여년이 넘어가고 가스등은 200여년 , 석탄은 수백년을 거슬로 올라가니 , 미래 세대에게 다시 이러한 1차원적인 연료를 용인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자외선 차단막을 거둬서 직접적 태양 에너지를 사용 하는것은 현 과학 기술단게에서도 위험한 이행 일 것이다..


준비된 혹은 컨트롤되는 원자력 에너지라면 한번더 재고의 여지가 있다라는 점에서 우리는 주목 하여야 하지 않을까 ..


아래는 에너지별 발전 단가 이다 ======


에너지원별 발전단가는 원자력이 가장 저렴하고 양수발전이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지난해 발전원별 판매단가는 원자력이 kWh당 39.61원으로 가장 저렴했고 뒤이어 석탄(유연탄) 66.34원, 국내탄(무연탄) 103.88원 순으로 경제성이 높았다.
반면 잉여전력을 사용하는 양수발전은 kWh당 222.90원으로 단가가 가장 높았고 유가상승의 영향을 받는 유류발전(254.04원)과 LNG(210.11)도 판매가 상위그룹에 랭크됐다.
전력시장에서 한전에 거래되는 전체 평균 발전단가는 kWh당 90.32원으로 집계됐다.
신재생에너지는 효율상승과 설비비 하락으로 원자력, 석탄화력에 이어 원가가 저렴한(kWh당 118.66원) 에너지원으로 부상한 점이 눈에 띈다.
현재 풍력과 태양광의 발전원가는 kWh당 각각 100.98원, 599.3원이다. 다만 이들 에너지의 설비이용효율은 10~20% 안팎에 머물어 기저부하를 대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에너지자원의 가채 매장량은 석유 41.6년, 천연가스 60.3년, 우라늄 85년, 석탄 133년 등으로 확인됐다.
또 전력 1kWh를 생산하는 과정에 배출되는 온실가스(g)는 석탄 991, 석유 782, LNG 549, 태양광 57, 원자력 10 순으로 많았다.

출처 :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


마지막으로 전지구적으로 각 나라별 신재생이던 기존 에너지원이던 친환경적 소비혹은 생산을 집약화 하고 효율적 가동을 위한 협의회의 충실한 이행에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봅니다. - 책력거99 적다.


Value Up Tip : 소 빙하기


소빙기(小氷期, 영어: little ice age)는 빙하기는 아니지만 비교적 추운 기후가 지속되었던 시기로, 근대와 중세 사이인 13세기 초부터 17세기 후반까지의 소빙하기를 보통 의미한다. 소빙하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시기의 기온저하 현상은 세계 각지의 기록에서 나타나 있으며, 포도의 생산량이 저하되고 식생변화가 이루어지는 등의 현상이 일어났으며,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전염병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영향[편집]

몽골의 건국[편집]

세계사에서는 기후가 바뀌는 것이 인류한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소빙하기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몽골에서는 소빙하기로 인해 초원이 줄어들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마침내 몽골은 하나로 통합됐는데 그 우두머리가 칭기즈 칸이다.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을 건국했는데 정복을 통해 영토를 넓혔다. 얼마나 넓었나면 동유럽에서 중국까지 이를 정도였다. 어쨌든 이로 인해 대륙 끝에서 다른 대륙 끝까지 인류 최초로 안전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양에서는 동양의 발명품인 화약, 종이 등이 전해졌다.

유럽[편집]

유럽은 아시아보다 더 심각했는데 홍수와 가뭄으로 인해 농작물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자연스레 유럽인들은 병약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페스트가 유럽에서 유행하였다. 페스트의 유행이 끝날 때 쯤, 유럽인들은 페스트가 유행하기 전의 4분의 3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않게도 페스트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죽으면서 일손의 수요가 급증하였고 자연스레 일손의 임금 (경제학)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유럽은 호황을 맞게 되고 그렇게 생긴 돈을 탐험에 투자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발견했다.( 아메리카에 천연두가 전해지면서 천연두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싹쓸이했다.) 유럽에서는 모피의 수요가 많았는데 아메리카에서는 이를 얻을 수 있는 동물들이 많았기에 돈 냄새를 많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건너와 동물들을 사냥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충돌하기도 했다. 아메리카로 농부 등이 이주하면서 도시들이 생겨났다. 아시다시피 이는 미국의 건국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재앙이 벌어지는데 엄청난 모래폭풍이 미국을 휩쓴것이다. 농작물 피해가 어마무시했다. 하지만 이를 비료로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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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북미 여행과 나의 로타리
김동기 지음 / 아우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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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여행과 나의 로터리 ] 작자는 아마도 로타리 ? 회원 인듯 하다... 글은 거칠 지만 생활 철학이 담겨져 있고 , 여행 내내 에피소드로 넘쳐 나지만 장소 불문 셀카는 마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책을 거진 다 읽을 무렵이 되면 아마도 길거리에서 마주 하면 그분이 주인공인줄은 인식 할 정도가 된다...

북미 비행기 출발 시간을 기점으로 시간 순으로 나열한 그의 방식은 일기식 형식을 빌어 순차적으로 진행되어 간다...

애틀란타에서 다름 여행지 일정 , 그리고 복귀 ,,  인상 깊었던 몇컷 사진들에서는 항상 그의 짙은 선글라스와 함께 맘면 웃음 이다.... 대자연 그대로 찍은 사진들도 같이 올려 주었으면 하는 바램은 중간 챕터를 읽어 나가면서 였다.. 결국 그의 가족 사항도 다 알게 되었고 동네 잔치에 가면 알아볼 ? 정도로 전혀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아서 가족 관계 구성원을 소상히?도 알게 되엇다,.


인싱  깊은 것은 그의 단답식 영어에도 불구 하고 ,,어찌 되었던 소콩이 이뤄져 무사히 목적지에는 간다라는 사실이다. 이부분은 우리가 살면서 상당히 중요 한 부분 이다... 거슬러 가더라도 목적지를 목표한 바데로 간다는 것 , 다시 한번 배우고 넘어 간다....


그리고 다시 로터리 클럽,,, 길다가 보아온 " 초아의 봉사" 를 떠올린다... 나도 은근 관심이 생겨서 다시 찾아 보게 되었고 오늘 급기야 회원 신청이라도 해두게 되었다 ,, 연락이라도 올까나 ?... 


여행자는 미국 워싱턴을 들어 먼발치의 트럼프 대통령과도 일별을 하고 , 월스크리트의 황소 상에도 뿔을 쓰다 듬는다...

자유의 여신상은 필수 코스 이고,  위쪽 나라 , 캐나타의 토론토의 대회는 또다른 멋을 선사 한다... 나이아가라에서의 대자연의 호흡 , 거칠은 물살은 작은 배들을 사정 없이 흔들어 대고 ,,, 폭포 상류는 또다른 관점에서의 볼거리를 제공 한다.


봉사를 위주로 구성 된 로타리 클럽은  지구상 빈곤 퇴치와 소아마비백신 , 그리고 깨굿한 물의 공급 등 필수 불가결한 자원 이 필요한 곳에 적절한 지원을 해줄 수 잇는 기부 행사를 하는 단체 이다...  한국에도 지부 지회가 있고 꽤나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래는 링크에서 발췌된 내용을 토대로 다시 한번 정리 해보며 이제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봉사 기부 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 하고 잇음을  자랑 스럽게 생각 하는 책력거99 였습니다.


Value Up Tip ; 로터리 클럽

https://my.rotary.org/ko



History[edit]

The first years of the Rotary Club[edit]

The first Rotary Club was formed when attorney Paul P. Harris called together a meeting of three business acquaintances in downtown Chicago, United States, at Harris's friend Gustave Loehr's office in the Unity Building on Dearborn Street on February 23, 1905. In addition to Harris and Loehr (a mining engineer and freemason), Silvester Schiele (a coal merchant), and Hiram E. Shorey (a tailor) were the other two who attended this first meeting. The members chose the name Rotary because initially they rotated subsequent weekly club meetings to each other's offices, although within a year, the Chicago club became so large it became necessary to adopt the now-common practice of a regular meeting place.

The next four Rotary Clubs were organized in cities in the western United States, beginning with San Francisco, then Oakland, Seattle, and Los Angeles. The National Association of Rotary Clubs in America was formed in 1910. On November 3, 1910, a Rotary club began meeting in Winnipeg, Manitoba, Canada, the beginning of the organisation's internationality. On 22 February 1911, the first meeting of the Rotary Club Dublin was held in Dublin, Ireland. This was the first club established outside of North America. In April 1912, Rotary chartered the Winnipeg club marking the first establishment of an American-style service club outside the United States. To reflect the addition of a club outside of the United States, the name was changed to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Rotary Clubs in 1912.

In August 1912, the Rotary Club of London received its charter from the Association, marking the first acknowledged Rotary club outside North America. It later became known that the Dublin club in Ireland was organized before the London club, but the Dublin club did not receive its charter until after the London club was chartered. During World War I, Rotary in Britain increased from 9 to 22 clubs, and other early clubs in other nations included those in Cuba in 1916, Philippines in 1919 and India in 1920.

In 1922, the name was changed to Rotary International. From 1923 to 1928, Rotary's office and headquarters were located on E 20th Street (now E Cullerton Street) in the Atwell Building (designed by famed Chicago architect, Alfred S. Alschuler). During this same time, the monthly magazine The Rotarian was published mere floors below by Atwell Printing and Binding Company. By 1925, Rotary had grown to 200 clubs with more than 20,000 me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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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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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  저자 델리아 오언스 , 일반 작가와는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약 7여년 동안 야생동물울 관찰 하고 그 연구 성과를 정리해 엮은 책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고 ,,늦은 나이에 출간한 이책이 잔잔한 여운을 넘어서 마지막엔 폭풍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 잡는다.


글의 주제를 한마디로 표현 하지면 [습지] 와 외로움 , 그 자연속에 살아 가는 인간 또한 생물 처럼 , 자연의 큰 법칙에는 어김없이 순응 한다라는 것,  모든 세포와 종족과 동물 생물들이 생존과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다라는 것 그리고 특히 숫컷들에 대한 탐사는 누구의 눈 보다도 에리해서 ,, 동물과 일반 생물,  반딧 불이에 이르기 까지 망라 하여 그들 습성 하나하나를 꿰 뚫는다.    카아 라고 불리우는 습지의 소녀를 태동으로 , 오갈데 없는 마을 소녀이지만 외로운 그녀는 친구 하나 없었다. 하지만 , 하나 둘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몇 안되는 남자친구는 타지로 공부 하러 떠나고 , 미처 성숙 되지 못한 그녀는 다른 숫컷들의 본능적인 표적이 된다... 하지만 , 세상사 응전과 보답은 반드시 이뤄지는법,  잠시 이성으로서의 욕구를 채운 그 남자는 얼마되지 않는 시간을 두고 결국 그녀를 떠나 버렸고 , 소설속의 플롯은 마치 잘 짜여진 구조 처럼 누구라도 알아 버릴 것만 같은 결말을 우선 선사 한다.


하지만 , 습지에서 자라고 바닷가의 생테계를 누구 보다도 잘 알던 그녀의 남자 친구 테이트의 도움으로 스스로 학습 하며 하나하나 습지 생케계를 깨우쳐 마침내 책을 내고 바야 흐로 전문가의 대열에도 동참한다.. 비극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지만 아무얼지도 않는 일상이 오히려 그들 마을의 풍경을 생경 스럽게 느껴 지기도 하다.


습지이야기에서 미스터리 법정 스릴러까지를 오가면서 시대를 시간 연대기적으로 표현 하고 , 사건 당일을 전후 하여 오버랩되며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를 호출 하며, 글의 전개는 새로운 국면을 맞기도 하지만 치밀하게 잘 짜여진 법정 공방 처럼 배심원단의 최종 판결을 받으려는 검사측과 변호인단 측의 보이지 않는 진검 승부를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쉬이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묘하게도 , 어찌보면 단순한 치정 싸움의 결말이 되고 , 그렇고 그런 소설속 스토리가 될뻔한 이야기가 , 이토록 아름답게 전게 되고, 시간과 공간 속에 익숙하지 않는 그녀와 그를 남겨 두고 홀로 저녁 파도 속으로 떠나는 일탈을 거듭 보여 준다.


작가는 때때로 대자연의 섭리를 아무렇지 않게 묘사한다. 이를 테면,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 수를 늘리고 힘들때 새기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저 계속 이어져 오듯이 인간 세상에서도 적자 생존처럼 혹은 불완전한 유전자의 제거를 위해 그렇게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 질 수도 잇다라는 것,


사마귀가 교미시 암컷의 반응을 받아 내고자 숫컷은 자신의 움뚱아리가 암컷에게 먹혀 가면서도 번식 능력에만 치중하여 마지막 교미를 하는 모습,


최종 인간의 마지막에서도 교미후 숫컷은 버려 질 수도 잇다.. 대자연의 습지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갈매기의 노래와도 같이 일부분이 되어 줄 수 잇는곳 ,,, 인간의 윤리과 교리로도 판단 내리기 어려운 그곳 , 그곳을 거쳐 힘들게 다시 마을로 돌아 오는 일상은 타인들의 시선이다.


풍경화를 그리듯 전개 되는 글들의 흐름은 매끄럽고 , 미국 남부 특유의 여유로움이 묻어 나기도 하지만 , 주인공은 여전히 습지를 사랑했던 카아 ( 그녀) , 그녀를 보듬어 안아 올렸던 노스케롤라이나 연안 한적한 마을 이었다..


그녀가 자연으로 돌아가버린 지금 , 그 누구도 다시 그녀에게 주홍 글씨를 새길 수 없다..대자연 습지의 규칙과 법을 충분히 충실히 따랐던 그녀를 인간 법률의 잣대로 재단 할수는 없었기 때문 이었다..


이안류가 다시 흐르고 , 그 마을 바클리 코브에서 분주함이 잏어나고 ,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 나갈대 습지 연안의 파도와 조류는 모래펄에 남아 있엇던 그녀의 마지막 진주 목걸이를 마악 휩쓸어 가버린 후였기에 .....다만 기억만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드 그들 처럼  글 속의 습지 생태 전문가가 되어 버린 그녀를 다시 기리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책력거 99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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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기 기술 - 돈.시간.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인생 청소 3단계
세라 나이트 지음, 유혜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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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신 차리기 기술]  인생이 복잡헤 지기 시작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갰습니다만 그중 유력 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정리 하지 못하는 습관이나 예전에 해왔던 관성적인 일들에 대한 익숙함에 있다라고 할수도 잇다... 우리는 때때로 편하다라는 관점으로 많은 불편한 것들을 감내 하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특이한 것이 정리 하지 못하고 잘 버리지 못하는 습관 이다.


무슨 일로든 집안에 들여온 것을 내보내기 아까워 하거나 어쩌면 한번 더 쓸일이 있을 지 몰라서 약 5년 이상 보관 하고 있던 헌 옷 가지들이나 한복 셋트를 결혼식 페백 이후 로 약 10년 이상 보관해 오신 분들이 있다면 당장 내일 기부 를 하시길 권해 드린다.... 장올속의 가치는 1도 없고 만약 타인에게 가서 하루 라도 입어 준다면 감사할 따른 이고 그로 인해 돌아 갔던 복이 되돌아 온다면 금상 첨화 이다...


이책 정신 처리기 기술은 맥락은 다르지만 , 주변부 늘상 모든 것을 껴 안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성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일의 순서는 차지 하고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 지는 환경에서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 겠다면 좀더 세부적으로 시행 계획을 짜고 전략적으로 그리고 행동에 돌입 하는 것만이 문제를 최소화 하는 것 이다.


아무런 실행 계획 없이 걱정만 하는 일은  하늘이 비가 오는 날까지 기우제를 지내 겠다라는 사고와 같아 .... 언젠가는 이뤄질 일이지만 , 효율성은 제로 이다..


우리가 쉽게 착각 하는 일중의 하나와 현상은 인간은 절대 멑티 펑션 하지 않다 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이어폰 들으면서 자판을 두들 기고 소설가가  카페에 않아 글을 쓰면서 옆사람과 애기 하는것 , 이멜일을 주고 받으면서 업무 지시를 내리거나 , 반대로 , 업무 지시를 받으면서 다른 일을 동시에 생각 하고 실횅 한다라는 불가능에 가까웁고 선행적인 시간 흐음 속에서 순차적인 신호 전달만을 받은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동시 다발적이라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한번에 하나씩 ,,, 먹는 것도 그러하고 , 생각하는 것도 그러하다. 다만 신속한 빠르기와 반응이 사람마다 다를 뿐 ...


글은 전체적으올 4가지 챕터로 이어져 있고 ,, 서론에서 사소한 문제들로 고민 하는 사람들과 왠만헤선 정리가 안되는 일들은 순차적으로 풀어 보는 방법 , 그리고 챕터 2에서 비교적 어려운 문제를 잘게 쪼개서 자금과 시간 계획 전햑을 짜는 일 .. 챕터 3과 4는 좀더 강화하는 프로그램으로 근본거인 인생의 문제들, 내면적인 갈들을 넘어서는 멘토로서의 해결 책을 저자는 제시 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To do 리스트는 안다. 그리고 그중에 좀더 중요한 할일 Must to do 도 안다... 하지만 이둘을잘 분간 하지 않으면 머스트 두 와 투두가 그냥 석여 버려서 우선 순위에 지장을 초래 하고 처음 부터 다시 챗바퀴를 돌려야 한다.


인생의 순서 또한 그러하다 내 입장에서 분명 To do 이었여야 하나 결과적으론  먼저 진행 하였어야 할 Must to do 리스트 엿다라는 것을 나중에서 알아 버린다. 시간은 되 돌릴 수가 없고  체스나 바둑 처럼 되 물리기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방법은 잇다. 더이상 나빠지지 않게 전략을 짜는 방법 , 가능 한 빠른 시간안에 정상적인 범주로 회귀 하는 모든 방법을 강구 해 보는 것 ,,,때때로 일이나 생각이 벅차 오른 다고 느낄때마다 사물을 단순화 해보자 .. 그리고 하나 하나 퍼즐을 풀듯 도전 하고 이뤄내자..


인간 관계도 이제는 SNS , 페이스 북에 1000여평 이상 50000명 이상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 났지만 과연 일생에 한번이라도 아님 단 10초 라도 일별 할 수 있는 관계 일까 ...너무 번잡한 관계망은 정리를 하도록 하자 ,, 내인생 나만의 시간을 기계적인  동작으로 SNS 관리에 허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 하기엔 저마다의 인생 경로가 너무 짧지 않는가 ....


너무도 복잡 하게 일상과 과제가 꼬여 있다면 그림으로 플로 차트를 한번 만들어 보자 ,, 이책 뒷편에 일러 스트레이트로 알기 쉽게 설명 되어 있다... 차트를 그리다 보면 나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정지 하고 다음번 무엇을 해야 할지가 그림이 그려 진다.. 그림을 그리고 머릿속 상상력이 작동 하면 계획을 세울 수 있다라는 것이고, 계획이 서면 행동 하고 실행에 옴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문엫 보자 나의 인생 설계는 과연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맡긴 것일까 ?  내가 관여한 부분은 과연 몇 % 나  될까 ,,, 지금 부터라도 한번 시작 해보면 결코 늦은 적이 없는 시행 하기 바로전 가장 빠른 날이 오늘일 것이다,...


그러하게 생각 해보고 싷천 준비계획을 세워 보는 또한 冊曆去99 99 였습니다.


Value Up to 벤자민 플랭크린 -미화 100달리 지폐 주인공


생애[편집]

Franklin, 1825

유년기[편집]

대장장이이자 농부인 토머스 프랭클린과 제인 화이트의 아들이자, 프랭클린의 아버지인 조사이어 프랭클린1657년 12월 23일 영국노샘프턴셔주 엑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아비아 폴저는 제분업자이자 교사인 피터 폴저와 전에 계약 하인 (Indentured servant)이었던 메리 모릴의 딸로서 1667년 8월 15일 매사추세츠주 낸터킷에서 태어났다. 폴저의 자손 J.A. 폴저는 19세기에 폴저스 커피를 설립했다.

조사이어 프랭클린은 2명의 부인과 함께 17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는 엑튼에서 대략 1677년 그의 첫 번째 부인으로 앤 차일드와 결혼했고 1683년 보스턴에 그녀와 함께 이주했다. 그들은 이주하기 전에 3명의 아이가 있었고 이주 후 4명을 더 갖는다. 그녀의 죽음 후에, 조사이어는 새뮤얼 윌러드의 주례로 올드 사우스 미팅 하우스 (Old South Meeting House)에서 1689년 7월 9일 아비아 폴저와 결혼했다. 그들의 8번째 아이인 벤저민은 조사이어 프랭클린의 15번째 아이이자 10번째 막내 아들이었다.

1706년 1월 17일에 보스턴에서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집안의 15번째 아이로 태어난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10살 때 집안 형편으로 인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형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의 열정적인 노력 덕분에 능숙한 인쇄기술을 습득하게 되었고, 또한 글쓰는 솜씨를 늘려가기 시작하였다.

1723년, 그의 나이 17세 때에 프랭클린은 가출하여 보스턴을 떠나 필라델피아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하여 빠른 시간에 인쇄업자로서 성공했고, 1730년에는 24살의 나이로 인쇄소를 소유하기도 하였다. 1732년 프랭클린은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Poor Richards Almanac)이라는 책을 발간해서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정치활동[편집]

1731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도서관을 설립하여 도서관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736년에 펜실베이니아의 하원의원으로 임명되어서 1751년부터 1764년까지 국회의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펜실베이니아 시 체신장관 대리로 일하였으며(1737~53), 그 결과로 전 식민지의 체신장관 대리로써, 우편 업무에 관한 사항을 많이 개선시켰다.(1753~74)

과학[편집]

1748년 그의 사업이 많이 번창함에 따라서, 프랭클린은 과학에 뜻을 두어 사업을 대리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봉급을 받으면서 과학을 탐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1740년대 초기에 그가 발명한 난로(프랭클린 스토브)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아주 많은 실험을 행하였다. 1752년에 그의 유명한 실험인 '연 실험'을 행하였고, 번개가 전기를 방전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는 번개를 구름에서 끌어내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뾰족탑을 세우자고 제안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로, 또 프랭클린의 실용적인 면의 재현으로, 그의 피뢰침이 발명되었다. 후에 복초점 렌즈가 발명되는데 이것도 프랭클린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다.

1753년 영국의 로열 소사이어티(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정 되었고, 코플리상을 받았다. 그해 전 식민지 체신장관 대리 가 되어 우편제도를 개선하였고 54년 올버니회의에 펜실베이니아 대표로 참석, 최초의 식민지 연합안을 제안하였다. 57년 펜실베이니아의 이익을 위하여 교섭을 벌일 목적으로 영국에 파견되어 식민지에 자주과세권을 획득하고 귀국하였다. 64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인지조례의 철폐를 성공시켰다. 75년 귀국하여 제2회 대륙회의의 펜실베이니아대표로 뽑혔고 76년 독립선언 기초위원에 임명되었다. 그해 프랑스로 건너가 아메리카-프랑스동맹을 성립시키고, 프랑스의 재정원조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83년 파리조약에는 미국대표의 일원이 되었다.

정치적 업적[편집]

정치가로서 그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자치에 대해 영국의 관리들과 토론을 벌일 때 식민지의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했으며, 미국 독립전쟁 때 프랑스의 경제적·군사적원조를 얻어냈다. 또한 영국과 협상하는 자리에서 미국 대표로 참석하여 13개 식민지를 하나의 주권 국가로 승인하는 조약을 맺었으며, 2세기 동안 미국의 기본법이 된 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들었다. 특히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기초한 '미국독립선언문'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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