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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
브룩 윌렌스키 랜포드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에덴 추적자들] , 할아버지가 예전에 성서에 존재 했다라는 [ 에덴]을 찾아 나선적이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영감을받는 작가
-브룩 윌렌스키 랜포트-는 어느날 갑자기 도서관으로 찾아가 진화론이 대두 되엇던 18-19세기 기록을 토대로 에덴의 기원을 찾아 나섰던 ? 용감한 사람등의 기록을 하나 하나 찾아 가길 시작 하였다....-라고 시작되는 이책은 픽션인지 논픽션이지 약간의 혼동이 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그러한 기록상의 지명을 찾아 나섰다라는 근거 역사론적입장에서 보자면 논픽션적인 이야기 이지만 어디까지가 각각의 사람들의 상상의 산물인지는 픽션적인 스토리에 맞춰 재구성 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이책을 읽으면서 처음 드는 생각은 , 아하 ,, 지구상에는 이런한 호기심으로 혹은 지적 충만함으로 직접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한다..
우선 에덴을 찾는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가 궁금 해진다 당연히 [ 창세기] 에 나오는 6일동안 세상을 만드는 하나님이 나오고
마지막날 인간을 만들어 4개의 강이 흐르는 지류에 무화과 나무로 뒤덮인 그곳은 지상 낙원이었고 아담과 이브의 인류의 시초는 뱀의 사악한 악마적 꽴에 빠져서 [ 선악과]를 따먹으로면 [에덴]으로 부터 추방 당하고 난 이후로 거의 영원 히 그 곳에는 다시 돌아갈 일이 없는 미지의 장소가 되어 버렸고 ,, 이후카인과 아벨의 반목과 세기말의 위험에서 노아의 방주를 타고 떠난 여정은 신비롭기 까지 하다..
이러한 몇가지의 근거만으로 길을 찾아 나선 수많은 에던 추적자들은 지표상 곳곳에 그들만의 깃발을 내리기 시작 하였는데
주된 위치는 , 북극을 위시해서 , 지중해의 어느 섬, 이라크 , 터키 혹은 아르매니아 ( 이지역은 성서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가 흐르는 강의 지류라는 기원을 찾아 올라간 지역이라 추정 된다. ) 세이젤 , 플로리다, 켈리포니아, 오하이오 , 스웨덴, 페르시아만, 이집트, 등 몽골과 중국 대룩에도 에덴의 기원이 있었다는 ? 용감한 학자도 있었다...
19세기 현존 하는 [ 과학과 ] [ 근거의 믿음] 만 가지고 풀기에는 어려운 난제들이 워낙 많아서 때때로 성서 이야기는 왜곡 되기도 하고 편향 된 해석을 내리는 집단도 생겨 나기 시작 한다... 종교적인 문제여서 뭐라고 말할수 없겠지만 서로가 서로에세
이단과 메시아의 차이를 구분 하려는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것만은 분명 한듯 하다... 칼뱅교든 , 미국 시골마을로 숨어든 [ 몰몬교] 등 , 태생은 한 뿌리였는지는 모르나 인간의 해석의 다름으로 인해서 나름대로의 가지치기가 생겨난 점은 어찌 할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 가지면 , 결국 수많은 시도를 행 했던 사람들은 이제 [ 무덤가] 에 저마다 조용한 비문을 가진채 잠들어 있고 그들의 흔적 만이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전설로만 맴돌던 이야기를 간혹 전하기도 한다라는 점이다..
작가는 공지를 한다.. [ 이제라도 진정한 에덴을 ] 발견한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 역사와 과학의 이름으로 그 간극을 매꾸고 성서의 기록을 정확히 부합 할 수 있는 그 땅 ,, 어쩌면 , 대 홍수 시기에 물에 잠겨 버려 찾을 수 없는 아틀란티스가
기록에서 말하는 [ 그땅 ] 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 인디에나존스의 [ 성배를 찾아서 ] 처럼 , 미지의 세계에 아직도 남아있는 궁극의 지리적 위치는 최 첨단 NASA 의 궤도 위성에서 아무리 찍어 지구로 전송을 해 주어도 표피 적인 흔적만 찾아 넬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 신께서 , 아니 하나님께서 인간이 그토록 찾아 해매에는 [ 에덴] 이라는 곳은 다시는 결코 돌아갈수 없는 땅이기에 우리가 아는 물리적인 지구상의 그 어느곳에서도 발견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력을 동원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 [ 오즈의 마법사 ] 의 마지막 장면 처럼 , 절대 대황을 찾아 나선 일행이 뚜겅을 열어본 사자상의 진실은 다른 면이었다면 너무나도 실망이 크지 않을까, 인간의 믿음은 영적인 존재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전제 한다면 , 우리가 찾아 나서고자 했던 , 혹은 미래에도 인공위성으로라도 찾고자 했던 그곳은 영원히 찾을 수 있는 지리적인 [ 지명] 이 아닐수 도 있다라는 다른 가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라는 생각을 해보는 < 책력거99 > 였습니다.
에필로그; 유년기의 사고로는 달표면에선 분명히 토끼가 살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가설이 어른이 되어서 깨어진것에는 유감이지만 많은 시간동안 그러한 상상력으로 유년기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날아 올랐던 기억은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 인류가 바라고 희망적이라고 바라보는 [ 믿음] 또한 언제가는 깨어질 수도 있는 사실 일지도 모르지만 [ 현세]를 살아 나가고 있는 수억명의 [영혼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그로인한 위대한 동기부여를 일으켜 낸 다라는 측면은 그 것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 믿음] 자체로서 성립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영적 채널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음이 움직 이는것 또한 생각의 판단이나 믿음이 앞서서 신뢰한다는 신호를 보내야만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고민을 해봅니다..







